"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 " 詩作 note

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평안한 단어는 ‘엄마’이다.
‘고향’이나 ‘사랑’이나 ‘자연’ 등도 사람의 마음을 안온하게 만드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영원한 인간의 본향을 의미하는 참다운 낱말을 제시하라면 단연코 ‘엄마’이다.
‘엄마’를 사전에서는 ‘어린아이의 말로,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머니'라는 말은 '엄마'라는 말보다 왠지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보면, '어머니'보다는 '엄마'가 친밀도가 더한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보통 '엄마'는 어린아이들의 말이라는 점에서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엄마'가 쓰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머니'도 충분히 높은 친밀도를 드러내는 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는 한다.
요는 이 ‘엄마’라고 하는 호칭이 사전에서 정의하는 것처럼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데만 극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대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예 늙어서까지도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 않은가 ?
그러고보면 마치 누구에게나 최후의 피난처요 보루로 마음속 깊이 자리매김 되어있는 후견인이야말로 바로 ‘엄마’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엄마’의 힘은 정녕 위대하여서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도 언제나 변함없는 중량감으로 사람들의 삶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어머니’가 모든 상황에 불가능이 없는 위대하고 거룩하고 엄격한 존재인데 반하여 ‘엄마’는 ‘어머니’ 만큼 힘은 없지만 자상하고 친밀하고 정겨운 나만의 사랑하는 ‘엄마’이기에 아마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엄마’를 찾고 그리워하는가 보다.

그런데 그토록 나에게 힘을 주고 애정을 쏟아주는 ‘엄마’는 본인이 힘들 때 과연 누구를 찾고 있을까 ?
우리는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얼마 전에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녀들과 떨어져서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 오래된 지인 한분을 찾아가 면회한 적이 있다.
이미 여든이 넘으신 나이인데다 노인성질환까지 겹쳐진 상태인지라 다른 건 전혀 기억도 못하고 대화는 커녕 의사 표현조차 거의 불가능한 중증의 병세인데도 창밖을 바라보며 어눌한 소리로 “엄마, 엄마” 하면서 미소같이 아련한 표정을 얼굴에 띄우는 모습을 보았다.
과연 의식이 사라진 세계에서도 ‘엄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가 하여 숙연했던 기억이다.

서울시에서 주관하고 있는 힐링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의 첫 수료자 24명에 대한 수료식이 지난달말에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치유받은 뒤 치유활동가가 돼 또 다른 시민들을 치유해주는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한다.
프로젝트의 기획자는 “자기 치유를 경험해 본 시민이 주체가 되어 시작하는 이 프로젝트는 상처를 인정하고 직면해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치유하는 의미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의 상처를 그냥 들어주는 입장이 아니라 ‘엄마’의 생각으로 들어주는 입장이 되는 이른바 경청의 자세에 대해서 강조했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되어 어렵고 힘든 현실의 고충을 들어주며 더불어 고민하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일이겠는가 ?
참석자 한사람은 “돌아가신 엄마가 단 1분이라도 돌아오신다면 내가 살아가면서 억울했던 일들을 다 일러바치고 싶다”며 울먹였고 “치유가로서의 활동은 새로운 엄마가 생기는 것”이라면서 “내 편이 되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바로 치유활동가”라고 새로운 '엄마'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전문가는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치료의 한계는 있다”며 “사람을 진정으로 치료할 수 있는 건 사람, 그 중에서도 엄마라고 믿는다”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엄마’의 마음으로 대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엄마’는 자존심도 경계심도 주저함도 없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다.
아낌없이 주고 또 주고,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녀가 원하면 다 들어주는 마음이 ‘엄마’의 마음이다.
일상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를 느끼는 건 돈이나 물질적인 무엇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더불어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엄마’의 마음이다.
옷이 별로 없다면 헌옷을 입으면 되고 배가 고프면 물이라도 마시고 참을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직 따뜻한 사람의 위안으로 치유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남몰래 가슴 아파하고 있다면 ‘엄마’의 마음으로 가만히 손을 잡아주자.
많이 아파하고 부족했던 내가 이렇게 잘 자랄수 있었던 건 차가운 내 손을 ‘엄마’가 따뜻하게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파 우는 사람은 가슴을 보듬어주고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로운 사람이 있다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함께 하는 따뜻한 ‘엄마’의 마음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게 하자.

가족들이나 동료들과도 스킨쉽을 많이 하면 그만큼 사랑이 싹튼다.
사랑이 담뿍 담긴 스킨쉽은 모락모락 사랑을 키워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갓난아이가 ‘엄마’에게 애정을 보이는 건 모유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따뜻한 신체 접촉 때문이라고 한다.
말을 하기 보다 많이 들어주자.
외면하지 말고 따뜻한 시선을 고정시키자.
그게 바로 치유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건강하면 나 또한 절로 건강해지는 법이다.
어느 ‘엄마’의 고백을 들어보자.
- 나는 걸음을 멈추고 어린 딸이 자신의 방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한 손에는 플라스틱 전화기를, 다른 손은 장난감 빗자루를 쥐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마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는데, 결코 그 말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넌 이 아이가 왜 방구석에서 벌을 서고 있는 줄 아니?
그건 말을 잘 듣지 않아서야.
이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시키는 일도 전혀 하질 않아.”
방구석에는 레이스가 달린 핑크색의 옷을 입은 아기인형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 인형이 몹시 외로워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마룻바닥에 앉아서 딸의 대화를 계속해서 엿들었습니다.
“나도 이젠 지겨워.
이 아이에게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니까.
내가 일 좀 하려고 하면 울면서 같이 놀자고 하는데 미치겠어.
글쎄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니까.
내가 설거지를 하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데 팔이 짧은데 어떻게 ?
수건도 접을 줄 몰라요.
내가 한가해야 설거지 하고 빨래 접는 것을 가르쳐 주지,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집은 커서 청소를 하려면 한나절이지, 정말이지 이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전혀 없다니까.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
그날 나는 인생에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의 말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었지요.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는 의무감에 더욱 분주해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자세를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 딸의 눈으로 세상을 달리 보니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지요.
집안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걸리고 마루 바닥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도 이후로는 여유롭게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당장에 그것을 치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조급증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대신 집안 곳곳을 어린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인 나의 추억으로 가득 채우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딸아이에게는 어린시절이 단 한번 뿐이거든요.
어린시절은 두번 다시 오지 않는 걸요. -

비단 어린시절 뿐이겠는가 ?
시간은 지금 내가 키보드를 치고 있는 이 순간도 흘러가고 있고 그 흐르는 시간속에 우리가 속해 있다.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또 늦출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추억 만들기’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으로 구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나눌 수 있는 넉넉한 ‘엄마’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추억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때다.
여름의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조석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소슬하니 불어와 목하 가을의 전령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간절기이다.
눈에 보이는 일들, 조급해지려는 마음들, 잠시 미루어 두고 사랑을 위해, 또 나 자신의 푸근하고 윤택한 삶을 위해 오늘 ‘엄마와의 추억 만들기’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