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9집. 돼지 껍데기  


  "9집. 돼지 껍데기"
1998년 6월17일의 이 詩集을 끝으로 하여
더 이상은 詩集을 출판하지 않았으니
현재까지의 마지막 詩集인 셈입니다.

52편의 일반詩와
童詩集 '자라는 나무가 되어'에서
비교적 성장한 수준의 어린이들에게
권장할 만한 내용으로 사료되어 발췌한
39편의 童詩를 선별,
'童詩모음 코너'를 뒷부분에 덧붙여 편집한 詩集입니다.

특별한 독자층을 확정하지 않았기에
詩集의 성격이 약간은 애매모호한 관계로
독자들에게 '무리수를 두었다'는 비판과 아울러
그리 좋은 작품평을 듣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긴 시간이 흐르도록
더 이상의 詩集을 출판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초롱불 출판사 ]

위로 이동

* 제비꽃 마담 *



시작노트

" 제비꽃 마담 " 詩作 note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표정관리 때문에 애를 먹는 경우가 참 빈번하다.
화가 나도 아닌 척 하면서 미소를 띠어야 할 때도 있고, 웃고 싶으면서도 주변의 여건이나 분위기로 봐서 억지로 참아야 할 때도 있다.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 할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때로는 속마음을 들켜서 곤란을 당한 경험이 있을테고, 혹은 겉다르고 속다른 행동이 알려지면서 질타를 받은 적도 있을 수 있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척 하지 않고 살기란 것이 참 쉽고도 어려운 처세술의 하나라는 말이다.
직업상 늘 웃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나 감정노동자들의 애환을 우리는 종종 매스컴을 통해서 보고 듣는다.
허기사 일상에서도 자주 접하는 예이니까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상황에 따라서, 혹은 상대에 따라서 조절을 해야 하는 본능과 감성의 문제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필자가 언젠가 세미나를 하기 위해서 타지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운전을 할 때는 편한 차림이 좋은지라 간편 복장에 운동화를 신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도 양복은 챙겨서 옷걸이에 걸고 급하게 지방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던 듯 하다.
첫 타임에 시작되는 강의인지라,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준비사항을 점검하다보니 실수로 구두를 챙기지 못한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쌈 직한 것으로라도 한 켤레 구입하려고 인근에 있는 백화점으로 갔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기에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마침내 백화점의 개장시간이 되었다.
입구 쪽에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필자도 떠밀리듯이 대열에 함께 섞여서 우르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안 쪽에 있던 백화점의 전 직원이 두 줄로 나란히 도열하여, 일제히 구십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수십여 명의 여직원들이 정결한 유니폼 차림으로, 구호소리도 낭랑하고 크게 인사를 하는 터라 적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송한 마음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급히 가까운 구두매장으로 향하다가 우연히 허리를 굽히고 있는 직원들의 숙인 얼굴을 보게 되었다.
순식간에 여러 명의 얼굴을 동시다발로 스치듯 보던 필자는 그만 아연실색 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얼굴에 웃음끼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다른 생기조차도 상실한, 한 마디로 완전히 무표정한 인형의 얼굴들이었다.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에게 감사하며 반가워하는 것도,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자부심이 있는 것도, 그리고 일의 보수를 지급하고 있는 점주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시키니까 억지로 하는 인사였다.
필자는 사실 그 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들어간 구두 매장에서 짧은 시간에 점원이 골라주는대로, 흥정도 못한 채 그냥 즉석에서 사갖고 나왔다.
혹여 바로 사지 않고 미적거리다가는 된통 욕을 먹거나, 아침부터 재수 없다고 화풀이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서 부랴부랴 쇼핑을 끝냈다.
참으로 씁쓰레한 경험이었다.
그 뒤로 사람들을 대할 때면 남에게 보이지 않는 얼굴표정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으로 바라보는 좋지 않은 습관이 생겨났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원치 않는 표정을 지어야 할 상황도 있다.
그러나 속 마음을 숨기고 또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 관하여 연민의 마음이 드는 건 숨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에 직장이나 삶의 터전으로 나가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똑같은 아침 인사를 서로 나누게 되지만, 전날 밤에 각자가 지고 있던 삶의 무게가 어떠했는지, 건강 상황이나 심신의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사람들의 표정은 천태만상이다.
본인만 모르는 표정의 전시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것이 아침의 풍경이다.
웃고는 있지만 누가 봐도 어색한 미소로 건네는 아침인사는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가식적인 표정으로 숨길 수 있는 게 있고, 감추지 못하는 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너라는 이름으로, 에티켓이라는 주제로, 처세술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짐과 스트레스를 스스로 누르면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고등학생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지인의 부탁으로, 소위 조금은 문제아의 반열에 오른 학생이었다.
같이 식사를 했고, 이어진 스낵 코너에서의 대화 도중 그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한 일이 두 가지나 벌어지고 있어서 놀랍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할아버지 같은 어른과 대화가 잘 통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인데도 전혀 가식적이지 않아서 놀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면 기성세대는 모두 대화의 상대가 안되고, 어른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쟁이라는 건가?
그러고보니 그 학생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문제는 그 학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문제아로 규정짓고 있는 어른들에게 있는 셈이었다.
서로 간에 대화의 단절이 불러온 괴리라면 바로 대화의 재개로써 풀 수 있는 것이다.
비단 세대 차이에서 유발된 대화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식이 아닌 진실과 진솔의 대화야말로, 척 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과제 중의 하나이다.
가족 간에도, 사회생활에서도, 연인이나 사제지간에까지, 모두 가식의 옷을 벗고 안으로 충만한 진심을 먼저 회복한 후에 마주하면 진정한 대화의 통로가 열리게 될 것이고,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덕목 중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은 밖으로 부자가 되는 일에 못지 않게 인생의 중요한 몫이다.
인간은 늘 안으로 충만해 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 잡념 없이 기도를 올릴 때 자연히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때는 삶의 고민 같은 것이 끼어들지 않는다.
마음이 넉넉하고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잘사는 것 같아도 정신적으로는 초라하고 궁핍하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을 잃어버렸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바로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에 있다.
필자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통해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삶의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산길을 가다가 무심히 피어 있는 한 송이 제비꽃 앞에서도 얼마든지 필자는 행복할 수 있다.
그 꽃을 통해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전화 한 통을 통해서도 필자는 행복해진다.
행복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데 있는 것이지 크고 많은 데 있지 않다.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행복하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함 속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충만의 화신이다.
또한 진정으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의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살 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모자람이 아니고 가득 참이다.
내면에 진실로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흔히들 ‘난 그래도 조금 낫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난 왜 맨 날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 우리의 내면 속에 간직되어진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을텐데 말이다.
남이 갖지 못하는 것, 본인만이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아도 그 가득한 것들을 찾는다는 게 조금은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나 보다.
우리 안에 가득한 행복을 조금씩 찾아가고 그 행복에 충만된 하루 하루가 되길 바래본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다.
준수한 외모에 시원시원한 성격, 섬세한 배려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하지만 농촌을 좋아하는 여자가 없어서 청년은 결혼을 못했다.
청년은 어느 날부터 컴퓨터를 장만하고 인터넷을 하면서 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카페에서 활동을 하다가 어느 여자와 E-Mail을 주고받게 되었다.
청년은 '바다'라는 닉네임을 가졌고 여자는 '초록물고기'였다.
청년이 느끼기에 여자는 박학다식하면서도 검소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보였으며, 농촌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를 하고 있어 보였다.
여자와 주고받는 메일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청년의 가슴 속에는 여자를 향한 분홍빛으로 사랑이 싹틈을 느낄 수가 있었다.
메일을 1,000여 통이나 주고받으면서 두 사람이 무척 가까워졌을 때 청년은 뜨거운 마음을 담아 프로포즈의 사연을 보냈다.
그러나 그가 가까워지고자 할수록 여자는 점점 움츠려들며 멀어져갔다.
마치 눈덩어리에 입김을 불어 넣어서 따뜻한 온기를 넣어주고 싶어 하지만, 그 온기에 눈물로 녹아지는 눈덩이처럼 여자는 자꾸만 작아졌다.
청년이 사랑을 고백하기 전에는 하루에 열 통씩 오가던 메일이, 사랑을 고백하고 나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답장이 오곤 했다.
그마저도 답장은 늘 한 두 줄의 짧은 답이었다.
청년은 절망을 했다.
그토록 믿어왔던, 또 믿고 싶었던 늦게 찾아온 사랑에 더욱 더 절망을 했다.
“누구도 시골은 싫은가 보구나. 그래, 다 이상일 뿐이야.
나처럼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농촌을 지키고자 하는 내가 바보지.
누가 봐도 이건 바보짓이야.”
그렇다.
청년은 대학을 나와서 다른 친구들이 좋은 직장으로 취직을 하고자 할 때, 우루과이라운드로 농촌이 신음을 할 때, 농촌을 지키고자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농촌에 정착을 했지만, 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청년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여자의 닉네임이 '초록물고기'란 것 밖엔,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 이렇게 빠져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던 자신이 이제는 초록물고기가 사라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한 달 째 메일 수신 확인이 안 되었다.
의도적으로 피하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청년은 다시 절실하게 여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초록물고기님,
너무나 절실해서 가슴으로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남들은 쉽게 잠이 드는 밤에 술기운을 빌려서 잠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맨 정신으로 잘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이유를.
비오는 밤 사람이 그리워서 여기저기 수첩을 뒤적여도 맘 편하게 전화할 사람이 없어서 전화기를 들지 못할 정도로 서글퍼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느끼는 소외감을.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걷는 거리를 바쁘고도 무거운 걸음으로 혼자서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왜 무거워 하는지를.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늘 깨질 것처럼, 바람 불면 날아갈듯 위태하게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기댈 사람이 없어 늘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쓸 데없는 생각의 깊이, 여기에 질식되어 죽을 것 같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가슴으로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지를.
사랑하는 이가 그리워도 보지 못하는 아픔을 견뎌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를.
그 속이 타서 얼마나 쓰린지를.”

한 달 후 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초록물고기에게서 답신 메일이 왔다.
“바다님 !
나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 하고 많은 시간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 적부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소아마비를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얼굴도 어릴 적 덴 화상으로 흉터가 많이 져 있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은 커녕 집안에서 어두운 커튼으로 햇살을 가리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가진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몸마저 이래서 누구 하나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동안 사이버 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랑을 주고 싶었지만 다들 저를 보면 그만 돌아섰습니다.
그 이후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 저에게 호감을 주는 남자가 있다면 먼저 돌아서곤 했습니다.
사랑을 하기도 전에 버림을 받는 제 자신이 너무 가여워서지요.
바다님에게 메일을 받은 순간 기쁘고 설레었으나 바다님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는 다시 아픔을 줄 수가 없어서 바다님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자신을 합니까?”

청년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자의 소식이었지만 여자의 결점을 알고 나니 혼란이 생겼다.
부모님의 실망하시는 모습을 떠올리자 청년은 너무 괴로웠다.
육체보다는 영혼이 중요하다고 자부하던 청년이었기에 더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은 위선자가 되는 것이다.
남의 일에는 정신을 중요시하면서 자신의 일은 껍데기를 더욱 중요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청년은 여자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다.
“초록물고기님 !
사랑하는... 이제 당신에게 정식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내 단 한 사람, 초록물고기님 당신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건강한 몸을 가진 내가, 또한 저에게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말한 당신의 결점은 오히려 나에겐 기쁨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위 틈에 조용히 피어나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는 제비꽃처럼 저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록물고기가 바다의 품에서 마음대로 헤엄치는 날, 나는 비로소 내 스스로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초록물고기가 넓은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칠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서로 만나기로 하였다.
청년은 여자의 불편한 몸이 걱정이 되어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였지만 사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여자의 부탁으로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여자는 그녀의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3월 29일 학교에서 가장 큰 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3월 29일, 청년은 여자가 혹 못 찾을까봐 한 시간 반이나 먼저 나가서 여자를 기다렸다.
여자는 남자의 애간장을 다 태우고 20분이나 늦게 도착을 했다.
교문에서부터 웬 날씬한 여자가 목발을 짚고 머리엔 노란 스카프를 두른 채 뚜벅뚜벅거리며 청년의 눈에 점점 크게 다가왔다.
“혹 초록물고기님이시나요?”
“그럼, 바다님 맞나요?”
여자는 부끄러운 듯이 살며시 고개를 숙이면서 “이제 저를 보여 드리겠어요.”하더니 안경을 벗고 스카프를 벗어서 나뭇가지에 걸었다.
그 순간 남자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자는 얼굴에 흉터 하나 없는 우유빛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목발을 내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 밑 벤치에 앉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놀랐나요? 처음부터 속이려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바다에서 헤엄쳐도 될까요?”
청년은 물기 어린 눈빛으로 와락 여자를 껴안았다.
멀리 바라보는 보리밭 위로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나고 있었다.
보라 제비가 한 떨기 소담스레 모여앉아 수런거리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아름다운 결말을 위한 속임수가 있을 수도 있기에 세상은, 삶은 아직도 그냥 삭막하기만 한 건 아니구나.
이런 속임수라면 백번이라도, 천번이라도 용서해줄 수 있겠구나.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용서란, 제비꽃이 자신을 밟은 사람의 뒤꿈치에서 부서지며 풍기는 향기이다.”


" 제비꽃 마담 " 詩作 note 닫기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외자락 바람결에도 가슴 떠는
보라 제비 한 떨기
너는 이미
나의 꽃은 아니었네.

그 누군가를 위해
수줍게 몽오리 져
보랏빛 환희로
꽃엽 피어나곤
석양 노을 붉은 하늘
한껏 어우러진

세월 거슬러 피어난 연정

계절이 속절 몰라
강물처럼 흐르다가
잎 지고 흔적 쇠한
너의 자죽 쓸어가고
무심한 빗줄기
다른 풀잎 키워낼 제

스러진 이슬인 양
애잔스레 빛 바래면
누구라서 기억하여
너의 얼굴 보듬으랴.

망자의 정분일랑
허망키 이를 데 없어
일분에 십리를
바람인 듯 간다 하나
맺지 못해 시린 가슴
너의 영상 살아남아
바람 새로 영 영
잊힐리야 있을 겐가.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