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9집. 돼지 껍데기  


  "9집. 돼지 껍데기"
1998년 6월17일의 이 詩集을 끝으로 하여
더 이상은 詩集을 출판하지 않았으니
현재까지의 마지막 詩集인 셈입니다.

52편의 일반詩와
童詩集 '자라는 나무가 되어'에서
비교적 성장한 수준의 어린이들에게
권장할 만한 내용으로 사료되어 발췌한
39편의 童詩를 선별,
'童詩모음 코너'를 뒷부분에 덧붙여 편집한 詩集입니다.

특별한 독자층을 확정하지 않았기에
詩集의 성격이 약간은 애매모호한 관계로
독자들에게 '무리수를 두었다'는 비판과 아울러
그리 좋은 작품평을 듣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긴 시간이 흐르도록
더 이상의 詩集을 출판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초롱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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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대길 *



시작노트

" 입춘대길 " 詩作 note

고유한 시의 틀 중 하나인 정형시 형식으로 지은 시다. 필자의 예전 시에는 이런 유형의 운율적인 시나 시조들도 꽤나 많이 있다. 나름 함축의 묘를 살리기 위해 짧게 짧게 쓰려고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작 인생의 중반기를 넘어서면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감상이나 평가에 별 관심을 갖지 않게 되고, 독자의 눈높이나 취향을 배려하지 않는, 그야말로 고집스럽고 독특한 시의 세계를 추구하게 되면서, 필자의 시는 그저 음습하고 우울한 영혼의 탈출구가 되어졌지만 말이다.

어떤 주제이든 한 번 심취하게 되면 깊게 파헤치면서 그 속살까지 완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좀 더 심오한, 그리고 좀 더 원색적인 시어를 찾아 갈구하는 자세로 쓰는 필자의 시가 독자들에게 환대를 받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한 번 굳어진 시풍은 다른 방식과의 타협을 일절 거부한다. 그래서일까? 어떤 평론가는 지면을 통해 이런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림삼의 시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 무슨 한이 그리도 깊게 맺혔는지...”

이제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으니, 그리고 이 정도 오랜 기간 시를 써왔으니, 날카로운 궤도 어느 면으로는 두루뭉실 유해질 때도 되었건만, 조금 쯤은 독자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예쁘고 고운 시를 쓰려고 노력할 만도 하건만, 여전히 안하무인에 구제불능인 림삼은 오늘도 아프고 시린 소재들을 찾아서 해부를 하려고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 그런 시를 도대체 누가 읽어줄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거야 원, 애처롭고도 불쌍타.

이제 세 밤만 지나면 ‘입춘’이다. 혹한의 기세가 아직도 갈무리되지 못했고, 아직도 꽃샘추위를 비롯해서 이름 붙일 칼바람들이 몇 차례는 더 우리를 괴롭히겠지만 그래도 굳은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의 생명의 소리를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겨울의 숙명인데, 그리고나면 온 산천이 파릇파릇한 풀내음으로 젖어들게 되는 것이 또한 계절의 진실인데, 그렇게 온 누리에 감도는 기운을 따라서 더욱 생동감 넘치는 활기로 솟아오르게 되는 것이 세월을 사는 우리네 진리이거늘, 어찌 그 유수한 세월의 흐름을 무시하고 고집불통으로 제 가는 길만 고집하고 있는지?

허나, 그러니 어쩌겠는가? 애시당초 태어나길 그러하게 태어난 것을. 지금도 이 땅에 진정한 시인은 저 하나여도 좋다고 목소리 높이면서 외통수 길일망정 마다하지 않고 가는 그 갈짓자 걸음걸이에, 팔자소관이라 간주하고 박수라도 쳐줘야 하는 게 바라보는 이들의 도리요, 인지상정의 방편일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인가 문득, 정녕 바람직한 어떤 사잇길 하나 찾을지도 모르고, 그 때 비로소 림삼의 이름으로 제대로 된 시 한 수 빚어내는 기적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시절은 하마 입춘지절이라 과거의 그 많던 삿된 운명의 부스러기들은 한 줌 햇살에 모조리 스러지고, 목하 양광의 기운이 천하에 그득 차면서 모든 사람들이 운수대통할 조짐이 스물거리거늘, 이제사 림삼도 버젓이 두 눈 뜨고 세상 옳게 바라볼 일만 남았으렷다. 이 봄이 피었다 저물기 전에 불후의 명작 한 편 구상해 봐야겠다. 소시적에 때 묻지 않았던 시심 고스란히 되살려 착하고 차분한 싯귀절 떠올리며, 세상 향한 향기를 그리워해 봐야겠다. 바야흐로 봄이 피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면 우선은 제대로 된 사랑을 배워야 할 게다. 먼저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주위의 가족과 이웃 친지들을 보듬을 줄 알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가치를 인정하며, 세상 많은 사람들의 존재 이유를 깨닫는 사랑의 방정식을 제대로 풀어나갈 줄 알아야 할 게다. 그러면서 이해와 배려의 마음은 조금씩이라도 그 지경을 넓혀가며, 차츰 차츰 더 향기로운 시를 지을 줄 아는 마음으로 거듭나야 할 게다.

고슴도치 한 마리에 보통 5천 개의 가시가 있다고 한다. 이 많은 가시를 가지고도 고슴도치는 서로 사랑을 하고, 새끼를 낳고 어울린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조심조심 바늘과 바늘 사이, 가시와 가시 사이를 잘 연결해서 서로 찔리지 않게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많은 가시가 있다. 그리고 그 가시로 서로를 찌르고 상처를 준다. 정말, 우리는 가까이 갈수록 더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가시가 있더라도 서로 사랑하며 안아줄 수 있을까?

조심조심 서로를 살피고 아끼고 이해하며, 아프지 않게 말하고 양보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아픔을 안고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친절한 척 하지 말고 진짜 친절하기, 따뜻한 척 하지 말고 진짜 따뜻하기, 잘한 척 하지 말고 진짜 잘하기, 노력한 척 하지 말고 진짜 노력하기, 고마운 척 하지 말고 진짜 고마워하기, 친한 척 하지 말고 진짜 친하기, 웃는 척 하지 말고 진짜 웃기, 착한 척 하지 말고 진짜 착하기, 성실한 척 하지 말고 진짜 성실하기, 사랑한 척 하지 말고 진짜 사랑하기, 이런 마음이라면, 이렇게 진실한 마음이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말처럼 그렇게 쉽고 단순하지는 않다. 생각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막상 실천으로 옮기자면 한없이 멀고도 지난한 길이다. 때로는 엄청난 인내와 참을성을 요구하기도 하고, 또는 모멸감과 분노를 스스로 억제하는 극기의 자세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또 그리 어렵고 복잡한 일도 아니다. 요는, 세상만사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멋진 삶을 위해 나쁜 습관이나 버릇을 고치는 것만큼 훌륭한 시작은 없다. 즐겨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해가 되는 그런 나쁜 습관을 포기하겠다고 다짐해보자. 그리고 그 다짐을 지키고, 또 스스로를 의지력이 강하고 단호한 사람으로 재정립하자. 나쁜 습관이나 버릇은 오래가면 갈수록 고치기 힘들다. 한 번에 고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조금씩, 천천히,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처음부터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아직 단단하게 굳어버린 운명이 아니라면 늦지 않았으니 더 지체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해가 되는 그릇된 습관이나 악행을 끊으면 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보자. 그리고 좀 새삼스럽지만 좋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그러면 정말 누구의 마음에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게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한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마음, 아끼는 마음으로 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준다면 수천 수만명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사람이 되는 일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은 하루하루가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그들에게도 좋아하는 팬 만큼의 안티들이 있고, 더 나아가 각종 수단을 동원해서 괴롭히고 명예를 실추시키려 음모를 꾸미는 적이나 스토커들이 수두룩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가 더 많이 행복해 지는 것도 아니다. 진짜 행복은 모든 사람에게 주목받기 보다는, 일부지만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 하루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고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하루였으면 참 좋겠다.

사람의 마음은 두 곳에서 지배를 받고 있다. 젊게 살고 싶어도 나이가 들어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그 마음은 움추러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높은 산에 무서움을 모르고 올라 갔었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몸으로 인하여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육체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지배를 받고, 그 마음에 그대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은 무상하고 슬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영혼의 지배를 받으면 된다. 이치의 무상함을 따라 사는 인생들에게 신은 영혼이라는 선물을 주어, 쓸쓸하고 슬퍼지는 인생들의 마음을 영혼에서 공급받는 힘으로 세월의 나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육체는 그 몸이 쇠하여 마음에 슬픔을 가져다 주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혼은 그 마음에 늘 새로움을 주는 것이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 그러나 영혼은 세월을 초월하기 때문에 비록 육체가 쇠하여 할 수 없을지라도, 마음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더 멀리 더 높이 여행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영혼의 힘을 믿는 마음이 있어서 아마도 필자는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것도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냥 육신의 상황으로 느끼는 체감 정도 보다는 훨씬 더 섬세하고 순결한 감동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감동이 시를 쓰는 첫걸음이다. 그러므로 그 감동이 있어 이 봄에도 행복한 시를 쓰려고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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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감이 서러운가 고개마루 산가마귀
날개짓 풀무질로 겨울비늘 털어내고

눈꽃 흘린 눈물자욱 바람발목 부여잡아
상큼한 축제의 날 꽃잎열어 맺혔나니

立春大吉 建陽多慶, 萬事如意亨通이라 -

맑디맑은 계곡울음 섬섬옥수 거품 걷어
멀고도 먼 산메아리 귓전까지 다다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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