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9집. 돼지 껍데기  


  "9집. 돼지 껍데기"
1998년 6월17일의 이 詩集을 끝으로 하여
더 이상은 詩集을 출판하지 않았으니
현재까지의 마지막 詩集인 셈입니다.

52편의 일반詩와
童詩集 '자라는 나무가 되어'에서
비교적 성장한 수준의 어린이들에게
권장할 만한 내용으로 사료되어 발췌한
39편의 童詩를 선별,
'童詩모음 코너'를 뒷부분에 덧붙여 편집한 詩集입니다.

특별한 독자층을 확정하지 않았기에
詩集의 성격이 약간은 애매모호한 관계로
독자들에게 '무리수를 두었다'는 비판과 아울러
그리 좋은 작품평을 듣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긴 시간이 흐르도록
더 이상의 詩集을 출판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초롱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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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하 (初夏)의 거리 *



시작노트

" 초하 (初夏)의 거리 " 詩作 note

- 1918년 제 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즈.
그 해 여름, 80세의 외모를 가진 아기가 태어난다.
그 이름 ‘벤자민 버튼’.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가 벤자민을 낳다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분노와 아이의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 외모에 경악한 벤자민의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를 놀란 하우스 양로원 현관 앞에 버린다.
놀란 하우스에서 일하는 퀴니에게 발견된 벤자민.
퀴니를 엄마로, 그곳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친구로 살아가는 벤자민은 해가 갈수록 젊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 12살이 되어 60대 외형을 가지게 된 벤자민은 어느 날, 할머니를 찾아온 6살 나이 그대로의 어린 데이지를 만난다.
그리고 데이지의 푸른 눈동자를 영원히 잊을 수 없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 제법 중년의 모습이 된 벤자민은 바다를 항해하며 세상을 알아가고 데이지는 뉴욕 무용단에 합류해 인생의 절정을 보내며 열정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끝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끝에 벤자민과 데이지는 마침내 서로 함께 하는 ‘스윗 스팟(Sweet Spot)’의 시기를 맞는다.
서로의 나이가 엇비슷해진 짧은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던 벤자민과 데이지는 불같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2009년 상반기에 전 세계를 황홀한 경험에 빠져들게 했던 미국의 판타지 로맨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전개 과정에 관한 해설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미국의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인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이 원작이다.
그 해 2월에 우리 나라에서도 개봉된 바 있는 이 영화를 두고 사람들의 평은 엇갈렸다.
‘소름 끼치도록 사랑스러운 영화’ 또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스토리’ 등의 호평도 있었지만 ‘감동은 커녕 복합적인 상실감만 남겨주는 흥미 본위의 헐리우드 물’ 혹은 ‘벤자민이 시간은 거꾸로 흘러 지냈을 망정 불행하지도 또는 행복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삶을 살았다는 어정쩡한 이야기’ 등의 비판적인 감상평도 더러 있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젊어지고 싶고 한번쯤 자유롭게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으며 운명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보통의 사람들이 평소 꿈꿔오던 이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데에서 아무 가치 없이 단순한 오락영화에 그치는 것 만은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
필자는 오늘 모처럼 작심하고 조금은 딱딱하며 머리 아픈 논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우선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통해 통속적(通俗的) 시간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통속적(영어: ordinary, 독일어: vulgr) 시간이란 우리가 시계 속에서 만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에로 등속도로 흐르는 ‘지금’의 무한한 연속이다.
이런 시간을 정초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런 시간은 우리가 시계 속에서 시계 바늘을 따라 세어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이렇게 우리가 시계 바늘에 따라 시간을 세어 보는 것조차 실존론적으로는 시간성에 근거함을 밝히고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해석이다.
시계 속에서 ‘지금’은 금방 달아난다.
또 아직 오지 않은 ‘지금’은 금방 다가온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은 이미 아님’의 지평을 보유하면서 ‘지금은 아직 아님’의 지평을 예기하면서, ‘지금’ 바늘의 위치를 현전화하면서 세어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을 통하여 '시간'(Zeit)에 관해 논의하고 있는데 '초월적 감성학'의 ‘시간표 상’에 관한 논증은 '공간'의 경우와 그 구조와 내용에서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개념들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간’의 정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상대성 원리에서 시간은 중력에 의해 공간이 지배받고 그 공간 속을 빛이 흐르는데, 바로 빛의 흐름이 곧 시간이 된다.
상대성 원리란 짧게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 개념이지만 간략히 간추리면 보는 사람의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한 사건이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다는 즉, 상대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다를 수 있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빛의 속도는 어떠한 경우에서든 동일하다는 대원칙 하에 등식이 성립키 위해서 변해야 하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에 나온 가설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이 나오는 것이며 이렇게 나온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합쳐서 '시공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자.
‘시간’은 단순 명료하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바로 ‘크로노스(χρνο, 물리적 시간)’ 와 ‘카이로스(καιρ, 논리적 시간)’이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헬라어(그리스어)이다.
크로노스는 그리이스의 철학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 이름 자체가 시간이라는 뜻이며,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신(太初神)’ 중의 하나이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자연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며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결정되는 시간을 말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다.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며 계산이 가능한 시간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시간 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격하게 따져서 크로노스의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 관리한다거나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신’의 아들이며 ‘기회의 신’이라 불리었다.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어떤 사람이 느끼는 24시간의 속도와 다른 사람이 느끼는 24시간의 속도는 각각 틀리다.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한 시간과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이의 한시간의 느낌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든,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든 그 일상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벗어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순간,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되는 것이다.
상황적 시간, 즉 특정한 때의 개념이며 순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고유한 시간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관리할 수 없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저 맹목적이며 피상적인 ‘크로노스의 시간 삶’을 살다 말 것인가 아니면 천편일률적인 삶의 얼굴이 아닌 자신만의 특별한 ‘카이로스의 시간 삶’을 개척할 것인가가 바로 오늘 주지해야 할 화두이다.

필자는 어제 밤에 뜬금없이 나비 꿈을 꾸었다.
꿈 속의 그곳 하늘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곳보다 푸르진 않았다.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이곳의 푸른 하늘과 빨간 꽃들에 대한 그리움이 늘상 아릿하게 존재해 있거늘 꿈 속 그곳의 그리움과 설레임이 감히 현실의 이곳에 비하겠는가만은 그래도 퍽이나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던 듯 하다.
나비의 꿈은 하루하루의 일상에 충실하자고 이야기한다.
매일매일 지속되는 일상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 속에서 꿈을 발견하고 그걸 위해 실천할 의지가 없다면 우리가 현실의 시간을 살아갈 이유는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이름은 매일매일 지속되는 지금까지의 일상의 시간들을 훌륭히 견디어냈으며 그렇기에 우리의 이름은 곧 시간 속에서 꿈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이름이 소중하듯 우리의 평범할지도 모를 그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가 학문의 즐거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 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 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필자도 머리가 별로 좋지 않고 체계적인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아 주로 시간에 의존하여 일을 해결하는 편에 속한다.
글을 쓰고 다듬을 때도 남보다 시간을 더 들인다.
그러다보면 차츰 혼란이 질서로, 복잡이 단순으로, 무의미가 의미로 정리되어 간다.
어떤 일이라도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그 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머리를 탓할 필요가 없다.
머리가 안 되면 시간을 쓰면 되니까 말이다.
시간은 힘과 지혜와 용기가 있어서 그것을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꼭 그 만큼의 기쁨과 충만을 안겨준다.
필자가 처음 태그를 접했을 때의 생각을 해본다.
컴퓨터 세대가 아닌 필자가 사업상 컴퓨터를 접하면서 유통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열기 시작한 컴퓨터, 그리고 유통 상품을 다루는 홈페이지에서 처음 만난 태그는 그야말로 미답보의 아마존 밀림이었다.
완전 맨땅에 헤딩하기로 좌충우돌하며 실수 연발이었지만 무작정 복사 붙여넣기 만으로도 의기 충천해 과감하게 미니 홈피를 오픈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말 그대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무모함이었지만 많은 시행 착오와, 넘어지고 깨지면서 얻어진 지금의 태그 지식이 쌓여졌으며 태그에 관한 한 이젠 나름 두려움이 없다.
또 그 자신감으로 인해 어설프지만 블로그를 개설하고 수많은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와 시간에의 도전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가치있는 물건을 사려면 그 만큼의 물질이 있어야 하듯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시간과 노력과 아픔과 눈물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의 가치는 물질의 가치로 환산이 되어질 수 없는 더 귀한 것이라 생각한다.


1년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다.
한 달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를 찾아가고,
한 주의 가치는 신문 편집자들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한 시간의 가치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1분의 가치는 열차를 놓친 사람에게, 1초의 가치는 아찔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1000분의 1초의 소중함은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육상선수에게 물어보라고도 했다.
운동선수의 1초를 생각한다면, 기차를 놓친 사람의 1분을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 보내는 이 시간들도 누군가가 놓친 1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허송세월 하면서 여유롭게 빈둥거리며 낮잠으로나 보내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고단하던 말던 마냥 방치한 채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보내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간을 내 인생의 교착점으로 삼아 설레임의 시간, 두근거림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으로 만들고 진정 의미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살아나가야 할테니까 말이다.
시간이란 잃어보기 전에는 그 가치를 알기가 쉽지 않다.
소중한 1분 1초가, 귀한 1시간이,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매사에 열심인 일주일이, 또한 한 달이, 봄을 보내고 또다른 계절이 시작되는 초하(初夏)의 이즈음이 잠시 찰라까지도 한 치의 헛됨으로 후회스럽지 않도록, 보잘 것 없다 생각되는 것들에 조차 정성을 다하며 열렬한 사랑의 시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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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느냐 ?
이 계절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를

너는 보느냐 ?
상실이 버릇되어 정작
안개로 깔리어져
스산턴 이 도시에도

포획 당한 햇살 지금은
사랑의 빛 뿌리는 걸

들큼한 초하의 뒷모습이어든

나서자, 사랑을 하러,
절실한 가슴 아리도록 아주 절절한
사랑 하나쯤
우리네 심장에 붙들어 매려거든

초하의 오늘 거리
주저말고 길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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