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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1997년 10월 8일 인쇄된 詩集입니다.

다른 부제는 정하지 않고 그냥 분류만
22편씩 3개의 章과
14편 1개의 章으로 하였으며,
합계 80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클래식음악 감상문'이 7편 실려있습니다.

감상적인 내용의 詩가 가장 많이 포함된 詩集인데
이 詩集만 보아서는 평소의 林森의 詩風과는
다소 상이한 면모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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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의 노래 *



시작노트

" 해방의 노래 " 詩作 note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광복절은 우리나라의 최대의 국경일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광복절의 의미와 가치를 정확하게 되짚어서 가슴으로 새기면서 이 날을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냥, 한참 더운 여름의 정 가운데에 끼어있는 공휴일, 휴가시즌이 끝나가는 말미에 해수욕장이나 계곡을 찾던 인파가 정점에 도달했다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날짜 정도로 가볍게 여기면서, 이 날 하루를 허청이며 보내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지하에 계신 독립유공자나 순국선열들이 눈치채면 대성통곡할 일이다.
어떻게 해서 다시 찾은 나라인데, 얼마나 간절하게 그리던 해방의 기쁨과 감격인데,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진정성의 천분의 일도 느끼지 못하고 흥청망청 살아가고 있는 겐지, 돌아보면 실로 애통할 노릇이다.
목하 나라나 민족 보다는 개인의 성공만을 위해서 매진하는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삶의 태도나 철학이, 얼마나 가치없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할 시점이다.
성공자라는 호칭을 받을 사람들은 세계를 가슴에 품고 온 세상을 사랑하는, 모든 인류를 가슴에 담고 어떤 인종이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그 이전에 내 나라 내 민족을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라가 없이 평화가 있을 수는 없다.
나라가 망하면 가정도, 직장도, 존재할 수 없다.
나라 사랑, 고래로 동서양을 가릴 것도 없이 어떤 영웅이나 위인들을 막론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이라면 한결같이 애국자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없다.

요즈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라고 막연하게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숨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고,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의 아우성 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한답시고 대통령을 욕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욕하고, 우리 현실을 원망하는 소리로 너무나도 시끄럽다.
특히 최근에는 대형 참사나 각종 인재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원망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한 평생 헌신했던 ‘백범 김구’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할 일을 찾는 백성은 흥하고, 원망할 것을 찾는 백성은 망한다”
우리는 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은 말 보다 묵묵히 나라를 위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나라를 위한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낱 이름 없는 글쟁이 주제에 거창한 애국 애족의 계몽에 나서서, 나라 사랑 운운한다는 것이 어줍쟎은 객기로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나라의 발전과 번영에 이바지해야 할 때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먼저 나서보자.
여기에 무슨 자격이나 신분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국민이면 될 것을.

광복절 즈음이면 이따금씩 독립기념관에 가곤 한다.
지금까지 이 건물에 여남은 번은 간 듯하다.
기념관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공간이 있다.
넓은 분수 광장이 멋대가리 없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 옆 정원 속에 보기만 해도 눈길이 절로 가는 특별한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굵은 가지들은 얽히고 꼬여 마치 나무 아래가 바구니나 광주리처럼 보일 정도다.
분명 따로따로 솟은 가지였을텐데, 가지들은 하나로 붙고 다시 나뉘면서, 나무에 커다란 구멍들을 만들어놓았다.
가지들이 붙은 저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 상태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연에 개입하고, 자연을 사람 마음대로 변형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특별하고, 근사한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이 나무는 뭘까?
누가 이렇게 기묘한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충남 서산에 사는 한 소년이 있었다.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이던 소년은 어느날 마을 뒷산에서 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멋지고 근사한 나무가 아니라, 처참할 정도로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도끼와 낫으로 가지와 줄기를 거의 다 잘라버려 상처투성이가 된, 등걸만 남은 느티나무였다.
당시만 해도 모든 땔감이며, 집 짓는 재료가 나무이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가기 바빴고, 잘린 나무는 볼썽사나운 꼴로 밑동만 남아 있기 일쑤였을 것이다.
그 모습이 전혀 특별하지 않았을 텐데도 소년은 그 불쌍한 나무에 마음이 끌렸다.
근사한 나무가 아니라 다치고 버려진 나무여서 더 그랬던 모양이다.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낑낑대며 그 나무를 자기 집으로 옮겨다 심었다.
1932년의 일이었다.
소년이 버려진 나무를 자기 집에 가져다 심자고 생각했던 것은, 잘리고 부러져 상처만 남은 나무가 마치 그 때 나라 꼴을 보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무가 당한 수난이 우리 민족의 수난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수도 있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일제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생각해 보면 그럴만도 하지 않았을까?
소년은 나무를 통해 뭔가 표현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뭇가지를 얽어 모두가 힘을 합치는 모습, 서로 다른 가지들이 함께 이어져 공존하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얼기설기 가지를 이어붙였다.
가지들은 신기하게도 한 몸처럼 붙었고 굵어져 갔다.
그리고 나무와 함께 소년도 나이를 먹어갔다.
초등학교 5학년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고향 서산에서 농촌지도자로 성장했다.
나무는 점점 웅장해졌다.
어디서 들었는지 찾아와 나무를 팔라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독특한 나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 수 있겠다고 여긴 조경업자들이었다.
그래도 그는 나무를 팔지 않았다.
어느새 소년은 우리 나이로 일흔이 되었다.
잘린 나무를 가져다 키운 지 57년이 되던 해, 그는 이 나무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평생 보살핀 이 나무가 진정 있어야 할 곳은 자기 집이 아니라, 민족적인 곳인 독립기념관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소년 ‘정헌갑 선생’은 이 나무를 “조국 통일과 자주 독립을 기원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키워달라며 기증했다.
그래서 나무는 1989년 4월, 그동안 정들었던 서산을 떠나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옆 이 자리에 새로 터를 잡았다.
그리고 기증자 정헌갑 선생의 바람대로 ‘단결과 평화의 상징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느새 이 나무가 서산에서 이곳으로 온 지도 25년이 흘렀다.
독립기념관의 터줏대감이 된 이 느티나무는, 거대한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호젓한 숲길로 쉬러 온 관람객들을 반겨주고 있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을 찾아오는 이들 중에 이 나무를 만나고 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전체 동선에서 살짝 옆으로 비켜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나무는 우연히 발견한 보석처럼 더 강한 기억을 남긴다.
마치 선생의 평생의 염원과 목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우리에게 나라 사랑의 멧세지를 강렬하게 보내면서 서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아무데나 가려는 사람은 아무데도 가지 못한다”
목표가 없는 인생의 비극을 잘 표현한 말이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목표 없이 살아간다.
설령 있더라도 너무 불분명하다.
미국의 어떤 대학에서 인구 통계에 관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인구의 3%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고, 10%는 비교적 여유 있게 살고 있으며, 60%는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실정이고, 나머지 27%는 나라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근근히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게 산다는 것이었다.
이들 사이의 특징을 더 연구해보니, 공통적으로 성공자 3%는 글로 쓴 구체적인 삶의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
반면 10%의 중산층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를 글로 쓰지는 않고 마음 속에만 품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거의 목표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조사 결과 상류층과 중산층은 학력, 재능, 지능 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상류층은 중산층 그룹 보다 10배 이상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두 그룹의 차이는 단 한 가지, 자신들의 목표를 문서화 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사실 3%의 상류층이 이 사회의 모든 실권과 영향력을 쥐고 있다.
만일 상류층에 들고 싶다면 먼저 목표를 명확하게 하면 된다.
그리고는 간단하게 글로 쓰는 것이다.
막연한 목표는 막연한 결과를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목표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라면 없는 것과 같다.
다음에는 어떻게 목표를 구체화하고 도전을 습관화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
입으로 끊임 없이 되뇌이고 되뇌어야 한다.
입만 열면 스스로의 비전과 미래의 긍정적인 목표에 대해서 말하고 또 말하도록 하자.
말하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입이 보배다.
단,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입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성공자를 원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부정적인 말이 나와서는 안된다.
부정적인 말은 자신을 죽이고, 옆 사람을 죽이고, 공동체를 죽인다.

어떤 모임에서 한 남자가 술을 잔뜩 마시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옆에서 화투놀이를 하던 친구가 그를 흔들어 깨우며 비풍초 다음이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세상 모르고 골아떨어진 와중에도 똥팔삼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더란다.
한국 남자 중에 다른 것은 몰라도 비풍초 다음은 똥팔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디서 특별히 배운 건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세뇌가 되어있다.
세뇌는 정말 무서운 것이다.
이른 아침에 약수터에 가면 산모퉁이 여기저기서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야호!”하고 고함치는 소리, 운동하는 구령 소리, 발성 연습하는 소리....
그런데 어떤 사람이 “10, 6, 3, 25”라는 숫자를 수없이 외쳐대고 있었다.
그래서 대체 그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오늘 나는 10명의 가능성 있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그 중 6명을 만날 것이고, 그 6명 중에서 3건의 계약을 성사시킬 것이며, 매일 이렇게 해서 일년에 2억 5천만원을 벌어들일 것이라는 결심을 다지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설명한 후에 다시 돌아서서 큰 소리로 외쳐대는 것이었다.
입으로 끊임 없이 되뇌이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말하는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농구 선수들 중에서도 뛰어난 슛쟁이로 소문난 ‘이충희, 김현준, 허 재’ 등은 모두 남들 보다 더 탁월한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기 보다는, 남몰래 수많은 슛연습을 했기 때문에 그토록 훌륭한 재질을 발휘할 수 있게 성장한 것이다.
축구선수 ‘이영표 선수’가 ‘히딩크 감독’이 있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 입단할 때 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헛다리를 짚는 듯 하며 수비수를 속이는 현란한 발재간이 과연 유럽에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때 이영표선수가 말하기를 “내 발놀림은 단순한 것 같지만 매우 다양하다. 알면서도 속는다. 내 발놀림은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얼마나 드리블 연습을 많이 했는지 발 복사뼈 부분에 물집이 심각하게 잡힐 정도였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협곡은 마치 칼로 도려낸 것처럼 날카롭고 웅장하다.
하지만 이것은 하루 아침의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것도, 운석이 날아와 만든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 ‘콜로라도 강’의 반복된 침식 결과로 만들어진 지형이다.
작은 강이 지형을 바꾸도록 만든 힘, 이토록 무서운 것이 반복의 힘이다.

성공하려면 마음먹은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많은 사람이 결심도 잘하고, 근사한 계획도 곧잘 세운다.
도전도 제법 잘한다.
그런데 문제는 작심 3일이라는 데 있다.
끝까지 밀고 나갈 끈기와 의지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의 안전 장치, 실천의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계속해서 도전하도록 하는, 힘들어도 또다시 실천하도록 하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어떤 안전 장치가 꼭 필요한 것이다.
중국 고사에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나라 왕 ‘부차’는 부친을 죽인 월나라 왕 ‘구천’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그 밑에 온갖 인화물질을 집어넣어 둔 채 그 위에서 잠을 자며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그리고 부지런히 군사를 훈련시키며 국력을 길렀다.
부차는 결정적인 기회가 도래하였을 때 일거에 월나라로 쳐들어가 초토화시키고 구천을 사로잡아 왔다.
한 편, 포로로 잡혀온 구천은 부차가 병들었을 때, 원수인 부차의 배변을 씹어삼키는 연출을 함으로써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고국에 겨우 돌아온 그는 출입문에 커다란 곰쓸개를 매달아놓고, 그 문을 지날 때 마다 쓰디쓴 곰쓸개를 빨아먹으며 쓴 맛을 보곤 했다.
쓴 맛을 느낄 때 마다 원수의 배설물을 삼켰던 일을 상기하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모욕을 되갚아 주리라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 결과 다시 오나라로 쳐들어가 원수 부차를 한 칼에 베어버릴 수가 있었다.
이러한 부차와 구천의 끊임 없는 되뇌임과 시도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하여 결정적인 실천의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 보면, 그것만 생각하면, 스스로를 자극하여 잠시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 달려가게 하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금년 광복절에는 이것 하나만이라도 건지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비단 개인적인 성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모두가 행복하고 화기애애한 나라를 만드는 데에 작고 미미한 힘일 망정 귀하게 쓰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고 보니 큰 깨달음으로 보람을 맛보는 올 광복절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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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아로새긴 비원, 평화

절절한 기구로
눈물젖는 아침 열리어질 제
녹슨 평안 시달리다가 죽음 이르는 길떠나는
방랑자의 착잡한 매디

하늘날던 자유로운 새
혈서로 눌러쓴 장벽 부딪쳐
파드득 파드드득 깃을 떨구고,
우리 하나 되리라는 부질없는 과거약조에
망연한 소망 얹더니

실핏줄 조금쯤은 위안 얻어
그냥저냥 살아지는 투쟁의 삶속,
우리의 광복절은 오늘
맥없이 나래 접는데

너와 나 신뢰 회복되어
손 맞잡을 그 날이면
태극기 솟구친 탑에라도 올라
걸지게 목쉬도록 만세 소리하련만

- 광복절시절 즈음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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