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1997년 10월 8일 인쇄된 詩集입니다.

다른 부제는 정하지 않고 그냥 분류만
22편씩 3개의 章과
14편 1개의 章으로 하였으며,
합계 80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클래식음악 감상문'이 7편 실려있습니다.

감상적인 내용의 詩가 가장 많이 포함된 詩集인데
이 詩集만 보아서는 평소의 林森의 詩風과는
다소 상이한 면모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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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추절 讚歌 아니고 送歌 *



시작노트

" 중추절 讚歌 아니고 送歌 " 詩作 note

오늘은 아예 작심하고 질러보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이 축복의 계절에, 뜬금없는 푸념으로 김 빠지게 할 일 있느냐고 모두들 떼거리로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현실을 바라보는 필자의 심사는 지금 꽤나 고약하다. 그렇게 배배 꼬이다보니, 왠지 모르게 세상에 대놓고 포악질깨나 부려보고 싶고, 하늘에 종주먹 들이대며 고개 꼿꼿이 세워 모진 심술이라도 풀어놓고 싶은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해서 대책 없는 이런 시를 적었는가보다. 중추절에 즈음한 넋두리 쯤으로 간주될 가치 없는 시. 물론 이리한다고 해서 풀어질 매듭이 아니고, 달라질 심사가 아님은 진즉에 미리 안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개인적인 문제가 갑자기 대두된 것도 아니다. 그냥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만만치를 않고, 마음 먹은대로 진행되지 않다보니 만사가 귀찮고 따분하다. 예컨대 병이 퍽도 심하게 들은 것 같다. 이른바 이건 울화증이라는 병이다.

목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바로 코앞이다. 적어도 이맘 때면 힘들고 지친 심신을 달래고 스스로 원기를 불어넣어주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고단한 삶에 한 줄기 빛 같은 휴식과 풍요를 바라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그냥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이웃과 정을 나누고픈 평안과 축복의 인사라도, 입에서 저절로 나오게 됨이 마땅하고 당연하다.

추석이니까. 삼라만상이 수확의 기쁨에 젖어도 무방한 감사의 계절이니까. 배부르고 마음 넉넉한 천고마비의 세월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정녕 우리의 지금 이 계절이 오롯이 축복과 풍요의 계절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모든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이야기 하고 행복을 공유할, 선택받은 세월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는 걸까?

소외된 이웃 하나 없고, 뒤쳐진 이웃도 전혀 없는, 그래서 오로지 밝은 내일을 향해 이웃과 손 마주잡고 더불어 나아가게 되는, 찬란한 환희와 가슴 설레는 꿈의 미래를 기약하는 오늘이라고, 활짝 웃으면서 덕담을 주고받을 상황이 맞긴 맞는가? 만일 그렇다면 필자는 욕 먹어도 싸다. 세상 물정 모르는 불평분자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할 말 없다.

모두들 하나같이 ‘중추절 찬가’를 부르는 이 때, 궁상맞게 뒷전에서 ‘중추절 송가’ 따위나 읊조리는 회색분자라고, 덜 떨어진 팔푼이라고 조롱을 해도 다 감수하련다. 필자만 빼고 다들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필자의 하릴없는 아우성 따위야 무에 그리 중하겠는가? 그저 누구나 마음 넉넉한 지금이라는데, 명색이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인 걸.

그런데 왜 필자에게는 이럴 때일수록 어둡고 구석진 골목만 더 선명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대관절 음습하고 비참한 구석의 한숨소리만 왜 더 크게 들려나는지 모르겠다. 어찌하여 그 구석의 한숨 속에 섞여있는 눈물과 좌절의 아픔만, 이리도 가슴시린 상처처럼 만져지는 건지 모르겠다. 야속하다. 한탄스럽다. 봐도 못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필자의 예민함이 딱하고, 필자의 오지랖이 원망스럽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필자의 얕은 능력이 무책임이라 원망스럽고, 누구에게 목청 높여서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지도 못하는 필자의 소심함이 무관심이라 원망스럽고, 언제까지라도 지속될 뒤쳐진 이들의 일상을 방치해야 하는 필자의 행태가 무대책이라서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오직 가진 건 마음 뿐이라 그네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건 다만 빈 주먹이고, 그네들의 비루한 속을 들여다보면서도 나눌 수 있는 건 단지 공염불이니, 괜스레 하늘 보기가 민망하고 계면쩍다. 바라기에는 우리 사회가, 우리 나라가, 우리 국민들 모두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관심과 성의를 기울이면서,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에게 이 계절만이라도 진심어린 나눔과 진솔한 구호의 손길을 보내준다면 참 좋겠다.

주제넘은 제언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필자라고해서 왜 중추절의 축복이 기쁘지 않으며, 나아가 무조건 비판과 지적질이나 할 만큼 불평으로 꽉 막힌 부류이고 싶겠는가? 햅쌀로 빚은 새하얀 송편과, 무르익은 오곡백과 여물었으니 먹거리는 지천이고, 하늘 높이 구름 떠가는 고향의 냄새가 이리도 상큼하거늘,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바라는 심사 누구보다도 더욱 간절하다.

추석에는 헤어졌던 가족이나 일가친척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정보따리를 풀어놓고, 웃음으로 각자의 사연을 즐겁게 나누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아울러 그동안의 궁금했던 소식이나 보고 싶었던 흔적 등은 대화를 통해서 그 궁금증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미래의 계획이나 포부를 서로 밝히면서 격려와 충고도 기꺼이 주고받는 것이 우리네 오래된 풍습인 건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일가친척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다 보면, 무심결에 던진 말 한 마디가 상대에게 비수가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백 번을 지적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계속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니 묵과할 수는 없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과 구직자 1786명을 대상으로 ‘추석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조사한 결과, 직장인(1012명)은 ‘사귀는 사람은 있니? 결혼은 언제 하려고?’(28.3%)를 1위로 꼽았다.

경제적인 이유, 혹은 싱글의 삶을 즐기고자 하는 생각에 결혼을 늦추는 경우도 많지만, 무작정 결혼을 종용하는 듯한 주위의 발언에 부담을 느끼는 직장인들이 참 많았다. 뒤이어 ‘연봉은 얼마나 받니? 먹고 살만해?’(16.5%), ‘돈은 얼마나 모았니?’(9.6%)와 같은 경제 상황과 관련된 말이 상위에 올랐다.

실제 사람인의 다른 조사에서, 직장인 절반 이상(51.7%)이 월급고개를 겪고 있을 만큼, 월급은 그대로지만 생활비는 올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이들에게 연봉이나 저축상태 등의 민감한 질문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다. 계속해서 ‘몸 관리도 좀 해야지’(9.5%), ‘아직도 그 회사 다니니? 이직 안 해?’(4.6%), ‘네가 몇 살이지?’(3.9%),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은 있니?’(3.9%), ‘그러다 애는 언제 가지려고?’(3.9%)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

구직자(774명)들이 선택한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는 ‘아직도 취업 못했니?’(17.1%)였다. 취업이 조급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아 불안함을 느끼는 구직자들에게 취업을 재촉하는 듯한 말은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이어 ‘결혼은 언제 하려고?’가 9.2%로 2위에 올랐고, 3위는 ‘네가 몇 살이지?’(8.8%)였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연애와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는 3포, 5포 세대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는 가운데, 나이나 결혼 등을 묻는 말은 직접적으로 꺼려하고 있었다.

이밖에 ‘누구는 어디 들어갔다던데’(8.5%), ‘다 거기서 거기다. 아무 곳에나 들어가’(8.4%), ‘언제까지 취업 준비만 하려고?’(6.2%), ‘건강 관리도 좀 해야지’(4.7%), ‘자리 한 번 알아봐줘?’(4.1%),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니?’(4.1%), ‘사귀는 사람은 있니?’(2.8%) 등의 답변이 있었다. 한편, 듣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직장인과 구직자 모두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다’(각각 37.2%, 34.2%)라고 응답했다.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얼마 전 필자에게 카운셀링을 받던 어느 60대 여인이 보내온 편지가 있다.

“저는 아들 딸 남매를 두고 있는데 그 아이들은 현재 모두 집을 떠나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4남매의 장남입니다. 시동생 하나, 시누이 둘이 서울 시내, 멀지 않은 곳에 살고들 있지요. 우리와 마찬가지로 각각 남매를 두고 있는데, 그 아이들도 모두 30대에 접어들었네요. 쏜살같은 세월을 절감하는 때가 바로 아이들 나이를 손꼽아 볼 때입니다.

코 훌쩍이며 개구지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어느새 서른 살, 그중에서도 제일 맏이인 우리 아들은 벌써 서른 중반 고개를 넘었으니… 뿌듯한 마음이 현실적인 고민으로 바뀌는 게 바로 그 대목에서입니다. 삼십대 중반인 아들이 아직 제대로 자리를 못 잡고 있습니다. 공부한다고 십년 가까운 세월 낭비하다가 뒤늦게 선배가 경영하는 중소기업으로 들어갔는데, 그마저 부도가 나고 말았다네요.

그 회사 다닌다고 지방에 방까지 얻어서 갔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결혼도 아직 못했습니다. 이십대에는 그래도 끊이지 않고 연애도 하고 소개도 받는 듯 하더니, 최근에는 그런 기미도 전혀 안보입니다. 자존심을 굽히고 저라도 주위에 아가씨를 물색해보지만, 직장이 번듯하지 않으니 말 꺼내기도 힘이 듭니다.

딸아이 상황도 속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은 확실한데, 서른네 살 미혼입니다. 요즘 세상에 서른넷은 많은 나이도 아니라고들 하지만, 엄마 마음에는 하루하루가 속이 탑니다. 화려한 싱글로 즐기고 다니는 거라면, 까짓것 시집 안 가도 그만이라고 배짱을 부릴 수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딸아이는 그저 회사와 집만 시계추처럼 오갑니다. 젊은 애가 사는 게 지루해 보이고 자꾸 뒤처지는 느낌이 드네요.

사실, 요즘 평균적인 아가씨들에 비해 체격이 큽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우울하니까 더 안 움직이고 먹어서 푸는 거 같고, 그래서 더 살이 찌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잔소리가 늘 수밖에 없었지요. 딸아이 말이, 운동하라는 잔소리는 견디겠는데, 집에 있지 말고 나가라, 누구든 만나라 하는 소리가 참 힘들었다네요.

결국엔 집을 떠났습니다. 회사 근처에서 마음 맞는 선배 언니와 함께 지내겠다고요. 아이들이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은 집. 텅 빈 느낌이네요. 이제 곧 추석 명절입니다. 시동생 내외가 명절 쇠러 오고, 시누이 내외도 다녀갑니다. 조카들도 돌아가며 인사를 오고요. 오랜만에 집이 북적댈텐데, 제 마음은 연중 그 어느 때 보다도 씁쓸합니다. 손님으로 북적이는 집에 우리 애들은 발을 못 붙이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집에 못 오겠다고 하더군요.

뭐라고 핑계는 만들어 붙입디다만, 그건 그야말로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를 식구는 없습니다. 괜히 왔다가 어른들한테 이런저런 곤란한 질문이나 듣게 되는 것도 싫고, 목 빼고 앉아 있는 모습을 엄마 아버지한테 보이기도 면목 없겠지요. 게다가 승승장구 잘나가는 사촌들하고 자연히 비교가 될테니 더욱 내키지가 않는 겁니다.

동서네 두 아이는 요 몇 년 사이에 결혼했고, 더구나 큰 녀석은 아들까지 낳아, 이번에 안고 올 모양입니다. 시누이 아이들은 아직 싱글이지만 어려서부터 특출나더니 지금은 비교도 안될 만큼 잘 되어 있습니다. 워낙에 자기 자랑이 심한 시누이가 또 얼마나 자식 자랑을 늘어놓을지 안봐도 뻔합니다. 조카도 반 자식이라 잘 되기를 바라지만, 내 자식 마음에 흠집이 가는 상황은 저도 반갑지가 않네요.

하기야 잘나가는 조카들이 무슨 죄인가요. 어른들 앞에 당당히 나타나지도 못하는 못난 내 자식들이 문제이고, 자식농사 그렇게밖에 못 지은 나 자신을 탓해야겠지요. 그러나 아이들 심정이 이해가 전혀 안가는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시동생, 동서, 시누이가 조금만 아이들 입장을 배려해줬어도 올해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겁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주기만 했어도 좋았을 것을, 니 나이가 벌써 마흔 바라본다. 직장이 안 잡히면 장가라도 먼저 가고 봐라. 직장 없다고 왜 결혼을 못 해, 그러게 왜 허송세월을 해. 넌 운동 좀 해야겠다. 요새는 얼굴보다 몸매고 몸매보다 나이란다. 여자는 시집만 잘 가도 막판 역전승이다. 그나저나 누굴 닮아 살이 찔까?

민망하고 곤란한 질문들, 어떻게 보면 모질기까지 한 말들에 제가 다 속이 상했습니다. 그냥 웃으며 들어넘기는 우리 애들이 용해 보일 정도였지요. 올해는 명절에 못 오겠다는 아들 딸 말에 제가 야단을 못 치는 이유입니다. 못난 내 새끼들 객지에서 찬밥 먹게 두고 시동생, 시누이에 잘난 조카들 상 차려낼 생각을 하니 속이 부대끼네요. 올해 마음먹고 한번 당부를 해볼까도 합니다. 자식 자랑은 딴 데 가서 하고, 못난 우리 애들 기분도 좀 생각해서 말들 하라고요. 그런 말 하면 제가 또 한 번 못난 짓 하는 셈인가요?”

그러고보니 우리네 사연도 참 가지가지다. 모두가 멍에를 하나씩 지고 살아가는, 그래서 고해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쉬운 삶은 어디에도 없는 듯 하다. 자기만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무게가 천 근이고, 풀어내는 사연일랑 구구절절 많기도 하다. 허기사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지나고나면 곧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고, 그렇게 이어지면서 내일의 설계로 다시 싹트는 것이라서 윤회라는 말이 생겨났겠지만, 끊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나름 구성지다 못해 애달프다.

아무튼 각자의 행복 기준은 다 다르고 세상 보는 눈은 제각각이지만, 우리의 염원인 풍성함의 바람 속에 우리의 최대 명절이 목전에 다가왔다. 함께 하지 못했던 반가운 마음과 설레이는 마음들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지겠거니 하면 뿌듯하다. 여건 상 잠시 잠깐 만날 수도 있고, 조금은 긴 시간 함께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마냥 행복한 미소를 간직할 수 있는 게 이런 날이 아닐까?

한 해의 풍성함이 제일 많은 날, 가족과 친지들과 그동안 쌓였던 회포도 풀고 이제껏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꽃도 피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나름 소소한 행복 아닐까 싶다. 지금쯤 일찍 도착한 귀성객들은 열심히 송편을 만들면서 못다한 이야기 속에 정겨운 술 한 잔 오가겠지만, 주부들은 분주한 음식 준비에 고단한 몸이 되겠고, 현재 열심히 고향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도 안전 운전 속에 무사히 그리운 고향 향기 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피치 못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화기를 들고, 잠시지만 지난 이야기와, 못 찾아뵙는 죄송함을 대신 실어보내고 있으리라. 이렇게 각자의 생활 속에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기왕이면 조금은 여유와 풍성함이 더 많이 다가왔으면 한다. 유난히 비가 적어 가물었던 지난 시간들이 명절의 기쁨에 작은 상처가 되는 일이 없도록, 작은 것 하나에도 큰 기쁨이 되는 추석들이 되길 빌어본다.

늘 함께 있어야 소중한 것만은 아니다. 때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처럼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고, 안전하고 사랑 가득함 속에 추석 명절 잘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길 바란다. 힘들고 지칠 아내를 위해, 함께 해주는 남편을 위해, 그리고 풍성함을 더욱 값지게 채워주시는 부모님의 노고와 사랑에 더욱 감사하는 그런 날들로 만들고 돌아가길 바란다. 우리가 머무는 자리는 거기가 어디이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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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폭염과 대적질로 맞붙기 한판
승부 벌이던 기개 세파에 호달구키고
개기월식으로 깃털만 남은 초라한 달빛
마지못해 배설하고 섰던 허룩한 하늘가

귀향길에 지친 구름, 빛뿌리는 달사이로
빨뿌리 물어 너저분히 옷섶 풀어헤치었고
부대끼던 이웃들 모다 승천한 모래사장엔
적막한 축복 싣답게 흘러 괴괴하니 소름돋는데

구겨진 휴지쪼가리 세상사
그래도 자존심은 남았는가?
계절 거꾸로 버티려 챙겨입은
실버덩 모시적삼차림새

머리털 성긴 똥강아지 두어마리
그 무슨 승전곡입네 목 쉰 소리 드높여
제깐엔 맹렬히 짖어대거든
이빨 빠진 채 잇몸부역으로 육포 질겅이는

깐깐한 우리네 명절, 장하다 한가위 마당!

붉으죽죽한 삿빠에 넓적다리 된통 걸려
지랄병 발작인 양 버둥거릴 즈음
어떤 식으로든지 방책 모색코져
설 설 기는 모양새 우습기 짝이 없고

쭉쨍이만 남은 알곡에선
걷어먹일 식솔들 한숨소리 맞춰
희멀건 겉물 죽 죽 흐르고 있고나

세상이 어찌되려고 이 모양인지
믿는 구석 하나 없이 모진 삭풍으로 도배질하는
나의 중추절 送歌라니,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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