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1997년 10월 8일 인쇄된 詩集입니다.

다른 부제는 정하지 않고 그냥 분류만
22편씩 3개의 章과
14편 1개의 章으로 하였으며,
합계 80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클래식음악 감상문'이 7편 실려있습니다.

감상적인 내용의 詩가 가장 많이 포함된 詩集인데
이 詩集만 보아서는 평소의 林森의 詩風과는
다소 상이한 면모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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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바람 부는 날 떠나리라 *



시작노트

" 차라리 바람 부는 날 떠나리라 " 詩作 note

참 오래 전에 적은 시이다. 그러고보니 하마 족히 이십여년은 된 시절의 소산인가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게 세월이라고는 하지만, 문득 예전의 어떤 시는, 우연히 대하노라면 아직도 절절하고 생생한 당시의 소회들로 가슴을 헤집는다. 물론 지나놓고 보면, 상처나 흔적들이 다 고마고마해서 그냥 옛 추억의 편린들이려니, 단순하게 치부할 수도 있고, 가슴 저리던 기억들조차 도긴개긴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픔의 크기가 다 똑같지는 않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아니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욱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생각들 때문에 밤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는 경험들, 아마 뉘라도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게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를 않아서 좋은 일만, 행복한 경험만 늘어놓아주지를 않고, 때로는 정녕 있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만큼 아픈 상흔을 깊이 심어놓는다. 원하고 바라는 소망만 가져다주지를 않고, 낙심과 절망의 심술을 맵차게 뿌려댄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라 하지 않았겠는가?

이 시를 지을 그 시절은, 곱씹어보건대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서러운 페이지를 적어나가던 시절 중의 한 단면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나름 애절한 비감의 시절이었던 듯 하다. 허기사 반추하건대 필자의 삶이 어느 한 때 넉넉하고 순탄한 적이 있었겠냐만, 특히 청춘의 힘 넘치던 젊은 이 시기에는, 그 혈기보다도 더욱 왕성한 고난과 시험으로 시달렸었다.

언뜻 하루를 살기도 버거웠던 쓰라린 추억이 되짚어져 파노라마로 점철되어지는 통에, 새삼스럽지만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여 쓴 웃음 머금어지면서 속으로 눈물짓게 된다.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 삶의 오래된 주제라고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섧다. 때로는 무뎌질 법도 한데 영 그렇지가 않다. 언제나 이별은 새롭고, 그래서 때마다 시마다 살점 저민다. 이별 없는 세상이라면, 헤어짐이 없는 인연이라면, 인생은 과연 얼마나 멋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것이 삶의 버릇이라니, 우리는 이제는 이별 앞에서 당당해질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이제쯤이라면 이별 몇 개 정도는 까짓 것! 하면서 대수롭쟎게 여길 여유도 좀 배워야 하는 건 아닐까?

이별이라 일상에서 숨쉬는 것 만큼이나 다반사인, 떠나고 남겨지는 사람의 그렇고 그런 일이라- 그렇다면 이별 앞에서 무너지는 초라함 따위는 내밀하게 숨기고, 좀더 큰 호흡으로, 여유로워 하는 슬픔의 표정연습이라도 차분하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별에 제목이 따로 있을 이유는 없지만, 그냥 헤어져서 각자의 삶의 방향으로 행로를 변경하는 단순한 이별 말고, 삶과 죽음의 영원한 헤어짐, 가정의 분리를 표방할 수 밖에 없는 결별인 이혼, 일방적으로 한 나라를 떠나는 이민 등등 정말로 맺고 있던 인연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이별이라면 그 크기나 의미는 자못 다르다.

그런 종류의 갈라섬 앞에서도 언제쯤 우리는 무덤덤하게, 남의 일 보듯이 바라볼 인격을 갖게 될 수 있을까? 대관절 그게 가능하긴 할까? 이런 이야기는 어떨지 모르겠다. 필자가 겪은 어느 여성의 상담 기록이다. 제목은 ‘이혼일기’라고 하자.

텔레비전 드라마가 이혼을 풀어가는 방식은 두 가지다. ‘사랑과 전쟁’ 처럼 불륜과 돈 문제로 헤어지는 막장이거나, 이혼 남녀가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로맨틱코미디물이다. 이 극단의 설정에는 이혼의 실상보다 판타지가 더 많이 녹아 있다. 갈등을 겪던 부부가 협의와 준비를 거쳐 헤어짐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이혼기이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들은 마치 이혼을 드라마 쯤으로 가볍게 여기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제 조건은 아니지만, 예컨대 이혼은 세상의 수많은 이별 가운데도 가장 서글픈 한 종류이다.

‘우리 이혼은 이러했다. 헤어짐을 앞두고 등산화와 니트 원피스를 이별 선물로 주고받았다. 서울 근교로 이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각자의 집에 가져갈 그릇과 가구를 나눴다. 치솟은 전세가 때문에 이 부동산에서 저 부동산으로 집을 알아보는 나를 따라다니며, 남편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찐 꽃게에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혼을 하기 전 약 한 달간의 시간, 우린 가끔 싸웠지만 그건 이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는 한탄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 다른 가족이 들어오고, 각자의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약속한 그날이 우리의 이혼일이었다.

이렇게 헤어지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서로에게 미쳐 사랑했고, 전쟁 같은 결혼생활을 끝내기로 결론을 내린 이상 헤어지는 과정마저 잔인하게 상대를 할퀴고 싶진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이 동시에 이혼에 합의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한 쪽이 원했고, 다른 한 쪽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의 지독한 반복, 지울 수 없는 상처의 주고받음을 신물나게 겪은 그와 나는 적어도 이별을 치욕스럽게 맞고 싶진 않았다. 함께한 5년 가운데 고통스러운 시간을 제외해도 그 끝엔 아름다운 청춘이 있고, 그 청춘에 안녕을 말하고 싶었다.

이별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혼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상대에게 새로운 이성이 생긴 건지 의심스러워했고, 청춘을 바친 억울함이 분노와 좌절감으로 드러나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상대의 이메일과 은행계좌, 휴대전화를 뒤져보았다. 조그마한 재산을 나누는 과정에서도 못미더워했으며, 앞으로 살아갈 경제적 고민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의 바닥, 어둡고 차가운 끝과 끝을 확인했다. 악착같은 나날을 지나 헤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받아들였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른스럽지 못해서, 지혜롭지 못해서 상처를 주고받았는데, 포기 상태가 되어서야 너도 참 아팠겠구나 싶었다. 이별여행으로 간 파주에서 무릎을 꿇고 꺽꺽거리고 우는 그 남자의 등을 두드려주다 오래도록 그 남자의 설움을 외면해온 나 자신이 싫어졌다.

가을과 겨울 사이 추운 어느 날, 이혼을 하루 앞둔 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이사 준비를 하며 라면 상자에 공유하던 물건을 각자 담았다. “에어컨은 더위 못 참는 내가 쓸게.” “그래. 나는 땀 잘 안 흘리니까.” “비데는 니가 해.” “넌 비데 있어도 진짜 안 쓰더라.” “난 비데를 왜 써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책상은 나 주면 안 돼?” “그건 나도 필요한데.” 지극히 실용적인 대화들이 오갔다.

좋은 그릇을 싸게 구입해 보겠다고 도매시장까지 가서 샀던 것들과 손님상을 치르느라 급하게 장만했던 접시와 컵들을 상자에 담다가, 아직 포장을 뜯지도 않은 일본풍 나무젓가락을 발견했다. “이거 예쁘다. 나 가지면 안 돼?” “이건 안 돼. 나중에 혹시, 만약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 젓가락으로 같이 밥 먹자.”

그날 밤, 헤어짐을 몇 시간 앞두고 우리는 동네 술집에 마주 앉았다. 연인과 부부로 5년간 일상을 함께 한 우리가 내일이면 타인이 된다는 사실 앞에서 슬프고 안타깝기보다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맥주 한 잔을 나누는 것으로 우리는 이별 행사를 치렀다.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살고 있는 거였잖아.” “우리가 그랬었나….” 술집에서 집으로 밤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옆에 누운 그 남자도 눈으로 마음으로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우리는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오고, 예약해둔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집에 찾아왔다. 우리는 이사 가는 부부인 척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왜 한 아파트에 있는 물건이 두 장소로 나뉘어 옮겨지는지 물었지만, 남편은 대충 얼버무렸다. 남편은 내가 살 집에 찾아와 가스레인지에 불은 잘 들어오는지, 창은 안전한지 이것저것 보았다.

그 남자는 우리가 함께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 나머지 짐을 쌌고, 자신만의 집으로 떠났다. 우리의 공식적인 이혼이었다. 이혼도 이별의 한 종류일 뿐인데 세상에 설명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이혼했다”는 말을 “이별했다”는 말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불륜, 소송, 돈 문제, 성적으로 맞지 않음…. 이혼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미 각인돼 있었다.

인공호흡기를 대고 법률적 사망선고를 유예한 채 생명을 유지하느니,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부부라는 관계를 안락사시켰다. 열렬히 사랑했으나 증발한 사랑 앞에 무력했다. 세상의 모든 여자와 남자의 이별처럼 기혼 남녀의 헤어짐도 아프고 아련하다.

그렇지만 치욕스러운 이별의 얼굴은 싫었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그래서 선물 주고받고 여행 다녀오고, 각자 그릇과 가구를 나눴다. 어차피 증발한 사랑 앞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력했다. 아련한 기혼남녀의 헤어짐, “죽을 때까지 안 나타날게” 이렇게 마지막 전화통화를 했다. 이게 우리의 이혼이었다. 이별이었다.’

이런 색깔의 이별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때야 한다는 공식은 없다. 서로 미움이 더 쌓이기 전에 결단을 내린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었는지, 다른 각도로 볼 때 노력이 부족한 비겁하고 무능력한 포기였는지, 이도 저도 아닌 가치 없는 남의 일이니 무관심한 편이 심사 편한 노릇이라고 단정짓는 게 옳은 일인지, 누구도 꼭 집어 정의할 수는 없다.

아무튼 우리의 모든 이별들은 우리를 그냥 슬프게 하지만은 않는다. 이별의 조건 뒤에는 감추어진 추억이나 회상이나 감상이 오롯이 담겨져 있고, 내일에 대한 또 하나의 기로가 선택의 관점으로 등장해서 미지의 만남에 조금은 다시 설레게 한다.

알지 못하는 미래의 이야기들이 다른 만남을 예비하고 서서 우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다른 만남은 지나간 이별을 먹고 자란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이별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만남도 애틋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거다.

우리가 무한한 존재라면 이 삶이 이렇게 소중하지도 않을 거다. 우린 무지개를 찾아 길을 떠나지도 않을테고, 누군가를 다시 만났을 때 더욱 아름다워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을 거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열심히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눈물과 고통을 감사하는 것은 모든 것이 유한하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까 이별은 차가운 게 아니다. 사랑이 다만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지난 연말 극장가에서는 영화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가 상영되어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주인공 노부부는 지난 2011년 KBS 인간극장에서 ‘백발의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다. ‘76년 일생의 연인 우리 참 잘 살았죠?’라는 부제가 특히 가슴에 와 닿는 아릿한 이야기이다.

‘강원도 횡성의 산골마을에는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한 노부부가 산다. 98세인 남편 조병만 씨와 89세인 강계열 씨 부부. 동화 속의 나무꾼처럼 튼튼하던 남편도 어느덧 기력이 약해지고 밤새 기침에 시달리는 날이 많아진다. 부인은 집 앞의 강가에 앉아 말없이 강물을 쳐다보는 일이 잦아진다. 남편과 수시로 건너오고 건너가는 저 강이, 남편이 자신을 홀로 두고 먼저 건너게 되는 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이들은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이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엔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는 매일이 신혼같은 백발의 노부부.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꼬마를 묻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할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 가는데, 비가 내리는 마당, 점점 더 잦아지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를 듣던 할머니는,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강아지를 바라보며 머지 않아 다가올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한다.’

2012년 9월부터 2013년 11월까지의 실제 모습이 영화에 담겼다고 하며, 2013년 11월에 별세하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슴을 잔잔한 감동의 물결로 뒤덮이게 하는 이별의 모습은 어떻게 바라보면 되는가?

갖은 이별 후에 어떤 깨우침이나 가르침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또한 이별을 통해서 아픈 만큼 성장해야 하는 것이 필수 전제는 아니다. 비단 의미 없는 이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별할 때, 이별이라는 단어 자체만 가지고도 이별의 아픔을 충분히 느끼게 되는 것이므로, 그것만으로도 이별의 의미가 아름다워지기를 바랄 이유는, 필요는 충분하다.

두어달 전 쯤 세상을 떠난 탤런트 김자옥은 ‘공주’였다. ‘공주는 외로워’란 앨범이 60만장이나 팔리면서 얻게 된 별명이다. 노래 가사는 이런 식이다. “거울 속에 보이는 아름다운 내 모습 나조차 눈을 뗄 수 없어. 세상에 어떤 예쁜 꽃들이 나보다 더 고울까.” 엄청난 ‘자뻑’이다. 그런데 밉지가 않다. 오히려 귀엽다.

그건 ‘내가 잘났다고 해도 미워하지는 말아줘’라는 애교와 능청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네가 소중한 만큼 나도 소중해. 내가 소중하니 너도 소중하게 대해줄게.’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너와 내가 다같이 존중받는 것이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김자옥은 ‘짐꾼’ 이승기를 결코 부려먹지 않는다. 오히려 이승기에게 “너는 내 아들 같아. 승기를 보면 우리 아들이 생각난다”고 다감하게 대한다. 이승기가 식당에서 선글라스를 놓고 나오자 이를 살뜰하게 챙겨준 이도 김자옥이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김자옥을 떠나보내며 “엄마 같고 누나 같고 친구 같은 공주”라고 애도했다. 하지만 이런 심성은 김자옥이 ‘짝퉁 공주’였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진짜 공주’들은 많이 다르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갑질 공주’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같은 부류들 말이다.

김자옥의 앨범에는 “어느날 여고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변치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라는 가사의 ‘여고시절’이 실려있다. “너희들 나보고 공주라 하지만 빛좋은 개살구라는 옛말이 있듯이 자옥이는 외로워”라는 ‘세상의 모든 딸들’도 있다. ‘자옥이는 외로워’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불러보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다시 세상을 향해 겸허한 자세와 베푸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모름지기 이 이별은 온 국민의 가슴에 슬픔과 애도만을 주고 떠난 이별이 아니었다. 되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정녕 진솔하고 아름다운 가르침을 심어놓고 떠난 우아한 이별의 모습이었다.

때 아닌 겨울비가 추적거리고 있다. 아직은 제법 추워서 동동거리고 있을 혹한의 계절이건만 어째서 하마 이 겨울이 이별 준비를 하고 있는 겐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1월 하순에 비라니.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러운 사람 사이의 연분을 창밖으로 바라보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적시는 비가 되어본다.

아마도 이별하는 자의 아픔은 저럴 것이다. 빗방울에 빗방울이 포개지고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듯이 이별하는 자의 아픔은 저럴 것이다. 필자는 오늘 가슴의 한복판에서 자신과 싸워야 할 것을 예감한다. 수천 개의 추억이 떨어져 내리고 뇌우 속에 선 것처럼
필자의 마음은 미친 듯이 젖어간다.

기억이 젖어가고 자신이 젖어가고 눈물 속에 눈물이 젖어간다. 차차리 필자의 목숨이 비라면 이렇게 절실하지도 않을 것이다. 빗방울 위에, 쓰면 금 새 지워져버릴 편지를 쓴다. 말갛게 말갛게 부서지며 소리없이 스러져 가는 마음의 편지를 쓴다.

마음이 허허롭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먼 방황의 유혹이, 언뜻 비 속에서 손짓한다. 왠지 모르게 이렇게 흘러가는 삶이 서글프다. 겨울비 오는 날, 서글픔은 하나의 숙명처럼 이 가슴 안에 자리잡을 것이다. 이별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깨달음을 선물로 주면서....


" 차라리 바람 부는 날 떠나리라 " 詩作 note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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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메마른 그 미망인이
절름거리며 찾는 날은 바람 부는 날,
아주 떠나버리기엔 안성맞춤인 날.

이미 살아버린 날들을
가슴시리게 반추하느니
남아있는 날들을 헤아리마고 -
이름모를 나비처럼 겨울 나그네
스쳐 지나간 벌판에
미련만 담뿍 실린
바람조각 서성거리고,

완전한 삶 꿈꾸어,
사랑은 모든 것들의 꼭지점이라
절실히 갈망턴 믿음의 꽃이 지면
난화로 분분히 겨울여행 떠나는 날
서러운 아침 나절 언저리에서 기웃대던
그래,
그건 바로
바람 울음소리였었지.

돌무덤이,
흙부스러기가,
목소리 높여
도둑맞은 진실에 통곡하고
밤의 그윽스런 향기를 좇아
놀 따라서 등불이듯이
사랑으로 남고 싶었던,

그래서 선뜻 이별여행 따라나선
그 겨울 그 매서운 바람은
몇 올의 메마른 영혼에조차
눈길 구걸하고 섰으니,

이렇게 바람 부는 날은
차라리 떠나리라,
그냥
떠나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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