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1997년 10월 8일 인쇄된 詩集입니다.

다른 부제는 정하지 않고 그냥 분류만
22편씩 3개의 章과
14편 1개의 章으로 하였으며,
합계 80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클래식음악 감상문'이 7편 실려있습니다.

감상적인 내용의 詩가 가장 많이 포함된 詩集인데
이 詩集만 보아서는 평소의 林森의 詩風과는
다소 상이한 면모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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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잎 *



시작노트

" 풀잎 " 詩作 note

어느덧 4월이다. 지난 주만 하더라도 이따금 꽃샘추위의 흔적이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물컹 봄이 무르익었다. 이런 거다. 바로 이렇게 정신없이 빠르기만 한 게 계절이며 세월이며 시절이다. 문득 뒤돌아서서 잠시 옛 일 생각하며 고개 주억거리다보니 눈 깜짝할 새에 겨울이 갔고, 푸르른 색으로 들판 물드는 흥취에 젖어 숨 한 번 몰아쉬다보면 훌쩍 봄은 갈 거다.

그리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이내 여름도 갈테고, 가을 또한 속절없이 내닫겠지. 이 삶의 무게에 젖어, 미처 살아가는 모양새 추스르기도 전에 또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그리 유성처럼 나이 먹어가다가 어느날 약속인 듯 스러져가겠지. 어차피 그게 인생인 것을, 그게 주어진 운명인 것을 새삼 되새기면 무얼 하고, 돌아보니 어쩔 겐가? 그저 하루 하루 후회없는 날들이 되길 염원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컨대 진실한 삶의 과제일 것이다.

필자가 오늘 부르는 이 봄노래가 길지 않은 올 봄으로만 그치지 않고, 다시 찾아올 봄날에도 언제까지나 흥겹게 부를 수 있는 봄노래가 분명하다면, 필경 잊지 않고 외워두었다가 언젠가 또 봄햇살이 푸르른 날에 목청껏 부를 수 있을진대, 어쩌자고 조급해하고 안달을 하며 이 봄의 흐름에 조바심을 얹는 추태를 보이리요? 모두, 전부 다 자연에 맡기면 될 것을.

대자연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개체 중에서 어떤 특정한 식물이나 동물을 골라 대표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종족을 번성시키고, 유지해가면서 영속적인 대자연을 이루어온 것이 바로 역사다. 개중에는 거대한 생명체도 있고 아주 미세한 종류도 있다. 화려하거나 고운 모양을 지니고 있는 종족이 있는가 하면 그 생김새가 아주 흉악하거나 살벌한 개체도 있다.

이런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대자연의 질서와 생존의 원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풀잎’ 만을 놓고 본다면 사실 그다지 아름답거나 특별한 신선함이 느껴지지도 않는 지극히 평범한, 그리고 지천에 깔려있는 흔한 풀의 잎 자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면 다른 어떤 찬란한 것에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 질긴 생명력과 다양한 분포도를 형성하고 있는 우수한 식물이 바로 풀잎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새 봄에 새 싹으로 대면하는 어린 풀잎은 우리에게 새 생명과 참 소망을 상징하는 출발과 시작의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의미에서, 다른 어떤 계절꽃이나 나무에 뒤지지 않는 확실한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로부터 풀잎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들이 창작의 세계에 많이 등장하여 세간에 선을 보여왔다. 필자도 나름 풀잎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파생시킨 시를 여러 편 지었다.

우리 문학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소설가 ‘이효석’이 1942년 ‘풀잎’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유명한 소설가와 과거 좋지 않은 사연을 가진 음악가가 세상의 소문과 비판을 이겨내고 사랑을 지켜나가는 내용의 소설이다. 시인 ‘강은교’는 1974년 민음사에서 발간한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을 ‘풀잎’으로 했다. 시인의 초기 시 경향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 좋은 시집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대표적인 풀잎은 1855년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Leaves of Grass]’이다. 이 시집의 중심 사상은 일종의 신비주의를 기조로 한 인간의 생명을 찬미한 노래로서 그 중에 수록된 ‘나 자신의 노래’는 형식면에서도 종래의 전통을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기성관념에 반하여 육체와 생명을 대담하게 노래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어린이 한 명이 손에 풀을 잔뜩 뜯어 쥐고서 나에게 물었다. ‘풀이란 무엇인가?’ 하고····. 그러나, 나도 또한 어린이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풀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이란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한없이 풀을 좋아하고 또 사랑한다. 풀을 볼 때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은 마치 초록색 희망 덩어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그 어린이를 향하여 ‘풀은 희망의 초록색 천으로 짠 것으로서, 내 느낌의 깃발이란다.’ 하고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기보다도 풀은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떨어뜨린 손수건일지도 모른다. 또한 풀은 식물이 낳아 놓은 갓난애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또한 어쩌면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지구상 구석구석마다 뿌려 놓고서 모든 인종들을 차별 없이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풀은 공동묘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의 무릎을 떠난 사람들일 것인지, 그보다 어머니의 무덤 그 자체일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시의 일부를 의역한 구절이다. 세상에! 풀잎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어찌 이리도 신랄하고 경이로울 수 있는가? 그냥 단조로운 풀잎의 형태나 속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풀잎에서 시작하여 모든 우주의 섭리까지, 인간 본연의 역사까지, 삼라만상의 태동까지 이어가는 시인의 관점과 통찰력은 보는 사람들에게 소름이 끼치게 한다.

무릇 봄의 풀잎은 살아있다. 살아나는 삶의 표상이 곧 풀잎이다. 그래서 봄에는 유독 풀잎에서 삶의 애착과 미련을 강렬하게 느낀다. 저 이름 없는 풀잎처럼, 아무도 보아주지도, 귀히 여기지도 않는 후미진 구석일 망정,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한을 살아내는 인동초의 삶으로 피어올려보리라는 다짐을 해보는 봄의 하루다.

택도 없이 분주하고, 겅중거리는 일상에 쫓기듯 살지 않은 날, 언제 제대로 한 번 있었을까만, 개인적으로 유난히 번잡하고 버거운 일들이 줄 지어 심신을 괴롭히는 이즈막이다. 도무지 일의 말미를 예측하기도 힘들고, 갈피를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삶의 색깔을 종잡을 수 없는 어지러운 나날들이다. 사람의 능력이 어디까지일지 필자를 상대로 시험을 치르는 형국이라, 부족한 수면과 휴식에 반 쯤은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서 스스로 바라보기에도 여간 딱하지 않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뉘라서 편하고 풍부한 삶의 여유를 거부할까만, 막연한 평안과 안락을 그저 동경하고 있느니, 미처 장만해놓지 못한 노후준비를 실감하며 직접 몸으로 부딪쳐 하루들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 무거운 현실의 얼굴이다. 그러니 기꺼이 소매 걷어부치고, 오늘도 필자는 앞장서서 고단한 삶의 부역에 나서는 거다. 허기사 어차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니 일을 고르는 데 망설일 이유도 없고, 또한 일을 가릴 처지도 아니다.

나이는 먹는 게 아니라 거듭나는 거라고 한다. 나이는 칠을 더할 때마다 빛을 더해가는 옻과 같다. 어떻게 하면 나이를 멋있게 먹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는 한 해, 두 해 세월이 거듭될수록 매력이 더해지는 사람과, 세월이 거듭될수록 매력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치는 사람일수록, 세월이 지나갈 때마다 매력의 빛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결코 단순한 마이너스가 아니다. 한 번 두 번 칠을 거듭할 때마다 점점 더 빛과 윤기를 더해가는 옻칠과 같은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기회가 적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나이를 거듭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기쁨이 또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 않는가? 나이를 거듭하는 기쁨! 그 기쁨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멋진 삶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라는 걸 명심하자.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이 없게 하려 함이며,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란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 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핑 하고 돌아버릴 거라고 한다. 즉,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이면 된다. 가끔 힘들면 한숨 한 번 쉬고 하늘을 보자.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다.

살다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구에게나 회한의 시간이 찾아온다.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것인지 고뇌하는 사람들은 매우 탁월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거울 인식능력이 없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살지만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도덕적인 것, 혹은 윤리적인 것으로 여겨지면 지키지 않아도 양심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나온 삶의 행위들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들이 있다면, 그 고통이 본인들 스스로의 역부족에서 생겨났다 해도 그건 본인이 지은 죄다. 또한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어 그가 가진 걸 내 것으로 만든 것들도, 따지고 보면 그는 잃어버린 아픔을 겪었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역시 내가 지은 죄다.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소한 것들의 죄까지 다 돌이켜보자면, 어찌 모두를 나열할 수나 있을까?

그걸 깨닫기까지 필자는 물경 60여년이나 걸렸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는 50년이 되어서야 회한이 찾아왔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어느날 갑자기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밀려오며,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 것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들게 된다. 그것은 곧 뉘우치고 한탄하는 것으로 폭풍처럼 몰아치며 스스로를 오열하게 만든다.

자기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과거에 대한 깊은 회한에 빠진 톨스토이는 자신의 삶이 너무 나쁜 삶이었다고 통렬하게 반성하며 오열한다. “내가 왜 이런 삶을 살았단 말인가?”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끝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참회록’이다. 정신적 고뇌와 방황, 숱한 자살 충동을 이겨내고 쓴 그의 작품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공포와 혐오와 아픔을 느끼지 않고는 나는 그 시절을 회상할 수가 없다. 나는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죽이기 위해서 남에게 결투도 신청했다. 노름 때문에 돈을 크게 탕진한적도 있다. 농부들이 땀 흘려 수확한 것으로 무위도식하면서도 그들을 저버렸다. 간음도 했고, 거짓말도 했다. 돌이켜보니 기만, 절도, 폭행, 만취, 살인 등등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악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이 반성을 토대로 거듭났으며,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들이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들에게도 죽기 5분 전이라도 반드시 이런 회한이 한 번 이상은 찾아 올 것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인생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아는 것이고, 지난 세월 속에서 본의 아니게, 알면서도 혹은 모르면서 지은 죄들을 참회해야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그랬듯이 그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거듭난 사람들은 비로소 인류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되는 존재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과의 경쟁에서 순리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낸 사람이라야 마침내 남들과의 원만한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만일 이러한 근본적인 과정을 생략하였거나 대충 건너뛰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한 상태로 누군가의 손을 잡기 시작하였다면, 그 관계는 불안정과 의혹으로 인해 전혀 만족할 수도 없고, 언제나 서로를 견제하며 경계하는 모래성같은 불신의 인간관계로 이어져갈 확률이 높다.

마음이 옳고 깨끗한 사람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그 마음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얼굴은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과 신뢰를 주기 때문에 원만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감출 수도 없고, 숨기지도 못하는 것이 표정이다. 아무리 자신의 속내를 은폐하려고 해도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웃음 띤 얼굴 속에 숨은 간교한 계책은 자신 보다도 남이 먼저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명심해야 할 덕목이다.

“相好不如身好(얼굴 좋은 것이 몸 건강한 것만 못하고) 身好不如心好(몸 건강한 것이 마음 착한 것만 못하고) 心好不如德好(마음이 착한 것이 덕성이 훌륭한 것만 못하다)” 중국 당나라의 ‘마의선인’이 쓴 ‘마의상서(일종의 관상학’)에 나오는 유명한 내용이다.

마의선인이 하루는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나무를 하러 가는 머슴을 만나 그의 관상을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마의선인은 머슴에게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으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머슴이 그 말을 듣고 낙심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을 할 때, 산 계곡물에 떠내려 오는 나무껍질 속에서 수많은 개미떼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보였다.

그 머슴은 자신의 신세와 같은 개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나무껍질을 물에서 건져 개미떼들을 모두 살려주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은 그 머슴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마의선인은 그 젊은 머슴이 개미를 구해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마의상서 마지막 장에 남긴 말이 바로 위의 글귀다.

‘아브라함 링컨’도 “사람 얼굴은 뱃속에서 나올 때 부모가 만들어 준 것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공자’도 “나이 사십이면(不惑)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다. 마음이 곱고 심성이 착하며 남에게 배려하고 베풀어 덕성을 쌓으면 사람의 관상은 은은하고 편안하게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선하게 살면 해맑은 얼굴로 꽃피고, 세상을 불편하게 살면 어두운 얼굴로 그늘이 진다. 마음의 거울이 바로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얼굴의 표정을 돌아볼 일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기본적인 소양을 닦은 연후에는 다음 단계인 심성의 덕을 추구하면 된다.어느날 한 스승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모두들 어깨를 최대한 앞을 향해 흔들어 보아라. 그 다음엔 다시 최대한 뒤로 흔들어 보아라.” 스승은 시범을 보이며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부터 매일 이렇게 300번을 하라. 모두들 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하는 것인데 뭐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라며 웃었다. 이에 스승은 말했다. “웃지 말아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가장 쉬운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일이다. 한 가지 일이라도 지속적으로 잘해내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한 달 후 스승은 제자들에게 다시 물었다. “매일 어깨를 300번 씩 흔들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제자들 가운데 90%가 자랑스러운 듯 손을 들었다. 다시 한 달이 지나 스승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80% 정도가 손을 들었다. 일 년이 지나 스승은 제자들에게 다시 물었다. “가장 쉬운 어깨 흔들기 운동을 아직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질문한 것이다.

이 때 단 한 사람만이 손을 들었다. 그는 바로 훗날 그리스의 대철학자가 된 ‘플라톤’이었다. 그리고 그의 스승은 ‘소크라테스’였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가장 쉬운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또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위대한 일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돌아볼 수 있는, 모든 성공자들이 걸어온 길은 한 때의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쉬운 일의 반복이었던 것이 더 많다. 진정한 전문가는 엄청난 기술이나 학식을 보유한 뛰어난 소질의 사람이 아니라, 작고 쉬운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성취한 적당한 소양의 사람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아무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특별한 조건이나 자격을 가진, 남보다 뛰어난 인격과 소양을 닦은, 그래서 우선적으로 앞설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보통 사람,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풀잎같은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이든, 이 세상을 희망과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데 앞장 설 수 있는 전문가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은 또 말했다. “풀 가운데는 암록색이 감도는 것도 있다. 그가 지닌 피부의 색깔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젊어서 죽은 사람이든지, 또한 어른이 된 사람이든지, 그리고 어머니의 무릎을 일찍 떠난 사람이든지 간에, 그 사람들은 모두가 어디에선가 힘차게 살고 있는 것이다.

조그마한 어린 풀은 이 세상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린 풀은 전진을 계속할 뿐, 죽음을 기다리려고는 하지 않는다. 사멸과 더불어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 때문인 것이다. 모든 것은 전진을 계속하고 있을 수가 없다. 죽음이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죽음이란 새 보다도 유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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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들풀처럼 나
이름 석자 잃어버려
피고 지는 세월 속에
풀꽃인 양 살지언정

단아한 새악시 옷고름
봄 하늘 높아지니
우러를 수 있음이면
생명이요, 호흡이요, 숨결이어라

그 어느 산자락 길 옆에 숨어
혼자만의 사랑에 목 말라 하며
누군가의 손길 보듬어
햇살인 듯 기다릴 제

봄 하늘 뒤켠으론
노을이 지고
나 기어이 풀피리 되어져
필릴리- 필릴리-

봄 노래 소리 하며
하늘로 하늘로
노을 따라 질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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