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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1997년 10월 8일 인쇄된 詩集입니다.

다른 부제는 정하지 않고 그냥 분류만
22편씩 3개의 章과
14편 1개의 章으로 하였으며,
합계 80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클래식음악 감상문'이 7편 실려있습니다.

감상적인 내용의 詩가 가장 많이 포함된 詩集인데
이 詩集만 보아서는 평소의 林森의 詩風과는
다소 상이한 면모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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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송 전 상서 - 1 *



시작노트

" 일송 전 상서 - 1 " 詩作 note

‘스승의 날’이 지났다. 사실은 5월 ‘가정의 달’에 특별한 의미도 없이 슬쩍 끼어있는 이름이다. 거창한 기념식이나 기억할 만한 어떤 행사도 벌어지지 않는, 그저 이름 뿐인 날이다. 적어도 예전에는 이렇지는 않았는데. 언제부터인지 너무도 초라하고 부끄러운 우리네 유행과 관습에 희생된 제목이라서 가슴이 아리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스승이라는 직업이, 계급이, 처지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뒤웅박 신세 같아서 한스럽다. 돌이킬 수 없이 흘러버린, 그래서 무슨 색바랜 달력 속의 전통처럼 되어버린 우스꽝스러운 날을 올 해도 소리 소문 없이 우리는 그렇게 지내버렸다.

‘스승’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다. 영어 표기로는 ‘teacher’ 혹은 ‘mentor’라고도 한다. 조금 더 조사해보니 ‘원불교대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선생과 유사한 말. 엄격히 구분하자면 선생이 학교에서 문자나 학문을 주로 가르친다면, 스승은 도덕가나 종교가에서 인간의 도리나 도(道)의 이치와 원리를 주로 가르치는 분이라 할 수 있다.’ 더 볼 것도 없다. 이른바 스승이라는 존재에 관해서 우리는 함부로 정의하지 못할 만큼 수많은 진리의 표현들을 알고 있다. 그냥 알고 있을 뿐이다. 그저 알고만 있을 뿐인 것이다.

“꿈을 꾸는 이에게 미래가 있고 스승이 있는 이에게 먼 미래는 가까운 길이 됩니다. 스승이 없다면 짧은 인생에서 큰 것을 이루기엔 너무나 시간이 부족합니다. 스승의 큰 고마움은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통하여 꿈을 이루는 데 시간을 단축시켜준다는 데 있습니다.” 어느 종교인의 편지에서 인용한 글이다. 스승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소중한 개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잊고 산다. 우리가 외면하고 살아간다. 예컨대 서글픈 단상이다. 정녕 있어서는 안되는 참담한 자화상이다.

‘군사부일체(君師夫一體)’라는 성어가 있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같다.’라고 하는 뜻이다. 이는 세 존재는 소중하니 똑같이 중하게 섬겨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속담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스승을 공경하고 예우하라.’는 뜻으로 우리 선조들이 지켜 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과연 어떠한가? 이 시대에 대관절 스승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

구태여 교사나 선생이라는 직업에 속해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모두 스승이라고 지칭할 수는 물론 없다. 그 중에는 스승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 힘들 인품이나 인격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부류도 있을 수 있고, 아무 희망이나 의지도 없이 그냥 밥벌이 수단으로 또는 임시방편으로 그 직업에 속해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그 많은 다수의 스승의 모습을 대신할 수는 없다.

투철한 사명감과 천직의식으로 불철주야 ‘청출어람(靑出於藍)’이나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구현에 최선을 다하여 온 정성과 열의를 기울이는 진정한 스승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대학 시절에 사범학과를 졸업하여 젊은 날 한 때 잠깐이나마 교직에 몸을 담았던 필자인지라,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서, 좀 억울하기도 해서, 목하 쓴 소리 잠시 하는 참이다.

친인들 중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교직에 속해있거나, 평생을 봉사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나서 지금도 후학의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바야흐로 스승의 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가치평가의 문제는 비단 스승의 날에 국한하여 생각을 되짚어보고 마무리할 간단한 과제는 아니다. 아울러 교육이라는 논제도 소수의 의견을 규합하여 즉각 체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정책으로 입안할 수 있는 단순한 주제는 절대 아니다.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을 많이 한다. 대부분 ‘백년을 바라보는 큰 계획’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보수적인 사람들은 교육 정책이 자주 바뀌는 것에 대해 비판할 때 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정치인들은 정책을 바꾸는 것에 대한 근거로 주로 사용한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데, 점쟁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백년 앞을 내다보는, 혹은 백년 동안 변하지 않을 안정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역사에서 얻는 가장 분명한 교훈은 백년 동안 쌓여왔던 문제를 두고서는 아무리 큰 그림을 그린다 해도 실효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정권들끼리도 협력해야 하는, 보다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제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는 수많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교육 문제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 필자가 고른 이 시는 필자의 영원한 스승이신 ‘고 박일송 선생님’을 기리는 추모시다. 아마도 적은지 스무 해도 넘음직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필자에게 소위 ‘시’의 세계를 보여주시면서 손을 잡아 끌어주시기 시작하신 선생님은 등단과 동인 활동에도 영향을 주셨으며, 그 후 필자가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떠돌다가도 여건만 되면 찾아뵙고 기꺼이 꾸지람을 청했던 스승님이다.

우리나라 문단에 한 획을 그으실 정도로 많은 시를 양산해내시고, 국내외의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소개될 정도로 대단한 필력을 지니고 계셨지만, 낙향하신 후로는 줄곧 시골에 묻혀 후학양성에만 신경을 쓰셨던 선생님은, 후일 노인성 질환에 걸리셔서 수차례 가출을 거듭하신 끝에 결국은 아무도 모르게 길에서 횡사하셨다.

연고자가 찾아지지 않아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제대로 된 장례절차도 진행치 못하고, 허무하게 보내드린 가족과 제자들이 뒤늦게 알고 찾아가 난리들을 쳤지만, 한 번 떠나가신 선생님이 다시 찾아주시지는 않으셨기에 길거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던 옛 기억이다. 선생님 가신지 이미 강산이 세 번 남짓 바뀌었지만 아직도 선생님께서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옷을 벗고는 길에서 아이들을 줄세우고 맨 앞에서 손나팔을 불며 행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대충 오락가락 정신줄을 놓으신 가운데에서도, 이 불민한 제자를 발견하시고는 눈동자에 촛점이 잡혀 얼른 반갑게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빨리 와서 줄 뒤에 서서 따라오라고 하시던 짓궂은 너스레의 추억도 너무너무 정겹다. 그 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이제 자신도 할아버지가 되어지도록 긴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교육도 진행하면서 한 평생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과연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 진정한 스승의 반열에 초입일망정 들어섰다고 감히 자찬할 수 있는가? 절대 아니다. 아니, 다른 사람을 계도하는 스승은 커녕 자기 자신의 인격도야조차도 시도하지 못한, 보잘 것 없는 필부에 불과한 모습을 바라보는 거울 앞의 필자의 처연함에 저절로 한숨만 나온다.

오늘 제법 긴 이 시를 새삼 읽으면서 필자는 통렬하게 반성한다. 그렇지만 그냥 일방적인 후회로 엉절거리며 주저앉아 있지 않고, 늦었지만 다시 도전하고자 한다. 불과 얼마 남아있지 않은 여생일지언정 진실한 스승의 모습을 소망하며, 그렇게 되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다시금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내디뎌 앞으로 나아가는 삶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그리하여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는 기회를 한 번쯤은 더 찾아보고자 한다. 그런 노력의 다짐으로 오늘 아침도 다시 숨 쉰다.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에 ‘채프먼’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한 번은 그의 아들 ‘윌버’가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주는 ‘탄넬’ 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탄넬 아저씨! 그동안 저에게 용돈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 마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많아요. 저는 아저씨가 준 3달러로 새끼돼지를 사서 키우고 싶어요. 이 돼지를 팔아 한센병 환자 가족들을 도와야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아저씨처럼 누군가를 돕고 싶어요.”

이후 윌버는 돼지 새끼를 사서 열심히 키웠고, 마을의 또래 아이들도 덩달아 돼지를 키웠다. 윌버의 새끼돼지는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돼지를 팔아 한센병 환자 가족을 도왔다. 이 사실이 신문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전해져 나갔다. 많은 사람은 소년 윌버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고자, 돼지는 아니지만, 돼지 모양의 저금통을 만들어 이웃을 돕기 시작했다. 바로 돼지저금통이 만들어지게 된 유래다.

‘근주자적근묵자흑(近朱者赤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물들고,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게 물든다는 뜻이다. 착한 사람과 사귀면 착해지고, 악한 사람과 사귀면 악해짐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 좋은 습관과 유행이 번지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행동과 시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거창한 계획이나 대단한 정책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탈무드’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두 천사가 여행 중에 어느 부잣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거만한 부잣집 사람들은 저택에 있는 수많은 객실 대신 차가운 지하실의 비좁은 공간을 내주었다. 딱딱한 마룻바닥에 누워 잠자리에 들 무렵, 늙은 천사가 벽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고는 애써서 그 구멍을 메워주었다. 젊은 천사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우리에게 이렇게 대우하는 자에게 선의를 베풀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자 늙은 천사는 대답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다음 날 밤 두 천사는 몹시 가난한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농부인 그 집의 남편과 아내는 그들을 아주 따뜻이 맞아주었다. 자신들이 먹기에도 부족한 음식을 함께 나누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침대를 내주어 두 천사가 편히 잠잘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농부 내외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유는 그들이 우유를 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하나밖에 없는 암소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천사가 화가 나서 늙은 천사에게 따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 둘 수 있습니까? 부잣집 사람들은 모든 걸 가졌는데도 도와주었으면서, 궁핍한 살림에도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나누려 했던 이들의 귀중한 암소를 어떻게 죽게 놔둘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늙은 천사가 대답했다. “우리가 부잣집 저택 지하실에서 잘 때, 난 벽 속에 금덩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 나는 벽에 난 구멍을 봉해서 그가 금을 찾지 못하게 한 것일세. 어젯밤 우리가 농부의 침대에서 잘 때는 죽음의 천사가 그의 아내를 데려가려고 왔었네. 그래서 내가 대신 암소를 데려가라고 했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어쩌면 우리도 살다 보면 이해할 수도 없고 도저히 이성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기도 한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날 선 칼이 되어 자신과 주변을 상처 입히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 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은 못보곤 한다.”라고 한 ‘헬렌 켈러’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면 진정한 가르침과 학습의 의미는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치와 본질의 진실한 정의가 삶의 기준으로 설정될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는 지표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한 남자가 디지털카메라를 사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몇 년 동안의 상품테스트 결과를 모조리 뒤졌고, 사용 후기도 철저히 검토했다.

가능한 선택지를 모조리 떠올렸고 그 결과 무엇을 살지 결정을 했다. 고민부터 결정까지 꼬박 몇 달이 걸렸다. 드디어 한 회사의 상품을 결정한 그는 너무 기뻤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문제로 그 상품을 구매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그 물건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혹시 고민에 고민을 통해 제때 선택을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인생에서 신중히 처리하고 검증해봐야 할 상황도 있다. 인생의 절반은 우리가 서둘러 아끼려던 시간과 관계된 무엇인가를 찾는 데 쓰인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어두울 때가 있으면 햇빛이 비칠 때가 있고, 바람이 불 때가 있으면 잔잔할 때가 있으며, 수고할 때가 있으면 쉴 때도 있다. 그러니 오늘의 괴로움을 영원할 거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밤이 깊었다면 곧 새벽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서,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참외 한 통을 사시면... 수박 한 통을 덤으로 드립니다!” 과일가게 아저씨의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글귀다. 동네 어귀에 있는 과일가게인데 가까이 가서 보니 조그만 글씨로 “참외 한 통에 10,000원”이라고 써놓고 수박 위에 참외를 올려놓은 모양이 눈에 띈다. 팍팍한 삶 속에서 미소 한 스푼 얻어지는 애교 아닐까? 최근 일자리가 늘었다지만, 알고 보면 늘어난 일자리 절반이 자영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고군분투 중인 우리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장님들을 응원한다.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이 무진장 많다. 곳곳에서 이런 저런 건의와 희망사항들이 산처럼 쌓여간다. 분위기도 좋고 예감도 좋다.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는 예상이 무려 80%가 넘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온다. 필경 좋은 조짐이다. 이제는 정말 상처도 흔적도 다 보듬어 쓰다듬어주고 새 살이 솟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변할 수는 없다. 당장 모든 사항들이 저절로 풀려지지는 않는다.

충분한 기다림과 참음이 수반되어야 그 후에 진정한 행복과 번영의 순서가 이어지게 된다. 그 때까지는 아직도 많은 인내의 날과 마음 추운 밤을 지새워야 한다. 그리고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 누구도 우리의 의무와 책임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한 걸음 먼저 나서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손 내밀고, 자라나는 어린 자녀들의 밝은 내일을 위한 투자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음이다. 그것이 오래된 진리다. 변하지 않는 고금동서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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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스승님 박일송 선생님께 -

인생은 단판 승부가 아녀.
조급허니 서둘지 말고 맘을 넓게 가져.
눈 들어 머얼리 보고 -

작은 걸 얻으려다 모두 다를 잃는
소탐대실의 경우가 허다함을 명심해.
인생은 소중한 것이여.

해질 무렵이면 늘 聖者는 쓰레기더미를 뒤진다.
집집마다 푸짐하게 쌓인 쓰레기 시체 속에서
聖者는 진리를 찾아내어 그걸 먹고 살아간다.

서양에 소크라테스가 있었다면
한국엔 박일송 선생님 계시지.

늦바래 꼬까옷 입기 좋아하시는 이가
차라리 발가벗고 섰다.
혹자는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며 지나간다.
혹자는 정신병자라고 침을 뱉는다.
혹자는 불쌍해 하며 혀를 찬다.

피리를 불며, 아코디언을 켜며,
선생님은 동구밖으로
힘 찬 행진을 시작하시고,
난 기꺼이 병졸이 되어져
빵모자 눌러 쓴 채
싸리빗자루라도 걸쳐 메고
선생님을 호위하리라.

걸어가시는 걸음 걸음
그 길 뒤를 지켜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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