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1996년 11월 25일을 인쇄일로 탄생된 詩集입니다.

역시 인쇄 출판에 관련된 판권은
증인출판사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序詩는 '겨울, 그리고 동면'이며
'구름같은 이야기'에 30편,
'달 닮은 이야기'에 31편,
'살아가는 이야기'는 '세월 하나(10편)',
'세월 둘(10편)',
세월 셋(11편)'으로 나누어 목차를 정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보자면
총 93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하게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힘들었던 시기이기에
세파에 시달려 생활고에 찌달리는 일상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우며 도전하던
그 시절의 여러가지 직업을 대변하는 詩들이
많이 실려 있는 詩集입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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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장산에서 *



시작노트

" 우장산에서 " 詩作 note

‘우장산’은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산으로서, 발산동과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예전 기우제를 지내던 산으로, 기우제를 마치는 날에는 반드시 비가 와서 모두 우장을 준비하였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특히 제주가 세 번째 기우제를 지내는 날에는 반드시 비가 쏟아져서 모두 우장을 갖추고 이 산을 올라갔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였으며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고 한다. 검덕산과 원당산 사이에 ‘강서구민회관’이 위치하며, 남쪽 원당산에는 ‘한국폴리텍1대학’이 위치하고 있다. 1985년 ‘우장산시민공원’이 조성되었으며 주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검덕산 정상에는 ‘새마을지도자탑’이 있고 산허리에는 쪽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실상 고도가 99미터 정도이니 산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구릉 쪽에 가깝다.

예전 필자가 입시학원의 강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마침 근처에 위치한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날 때 마다 즐겨 찾았던 추억이 있다. 지친 심신을 걸치고 앉아, 건너다보이는 산동네의 등불을 바라보며 나름 고단했던 시절의 피곤함을 곱씹던 기억이 아삼삼하다.

마음 붙일 데가 없어, 홀로 높이 걸어올라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억울하고 갑갑한 심사에 스스로 위로를 심던 그 시절의 아픔이 되살아남이 별로 유쾌하지는 않지만, 오랜 기억을 더듬어 회한에 잠겨보는 건 상처 자체만으로도 아련하여 아름답다. 그 추억 있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높을수록 더 넓은 세상이 보이지만, 그래서 구석구석 잘 보이지는 않는다. 요즘도 그 때와 다를 바 없어 들리는 소식이라곤 인상, 인상, 인상 쓸 소식뿐이다. 정말 인상 쓰게 만드는 세상이라면 때로는 높은 세상에 올라가 가슴이라도 씻어내고 싶어진다. 미상불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은 만큼, 세상 여러 가지들이 보기 싫어질 때는 눈만 감으면 되는 걸, 안보면 되는 걸, 구태여 눈 크게 뜨고 인상 쓸 일이 무에 있을까? 무작정 떠남이 상책일지니.

기왕지사 멀리 떠나지 못할 바에는 가까운 어딘가에라도 혼자만의 피난처나 안식처를 마련해놓고, 게다가 정을 붙이면서 세월의 심술을 흘리다보면, 그럭저럭 삶이 그렇게 모질기만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됨이 현명한 처사요, 그런 게 또한 인지상정이리라. 그리곤 그렇게 쌓여진 추억의 자락들을 엮어가면서 나이 먹어가는 것이 바로 삶의 순리인 것을.

사실 과거에는 여행이라는 단어 앞에는 필수적으로 단체나 집단이라는 말이 따라붙어야 제 격이라고 여겨왔었다. 여럿이서 떠들고 어울리며 여행을 해야 맛이 나지, 혼자서야 어디 쓸쓸해서 재미가 나겠는가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여행 관련한 각종 게나 모임이 도처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패키지나 단체 관광을 가는 게 당연한 여행의 정석이었다. 그래서 예정도 없이 준비도 없이 혼자 여기저기 흘러다니는 필자같은 부류들에게는 역마살 운운하면서, 손가락질 하고 뒷말로 수근대곤 했었음을 익히 안다.

그런데 시절이 변하면서 여행의 풍속도 많이들 바뀌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도,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주류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면 어떠랴. 자유로움을 최대한 누리고, 아무런 방해 없이 사색에 잠겨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그 어떤 여행보다도 유익할 테니까.

‘나홀로 여행’을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은 혼자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의 증가에 기인한다. 평소에도 혼자 살아가는 방식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여행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연합은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혼자 떠나고, 혼자 돌아오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길을 걷는 나홀로 여행에서는, 풍경이 가만히 말을 건다. 시간이 말을 건다. 여행 자체가 동행을 한다. 스스로가 여행이 된다. 그렇게 해서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필자의 혼자만의 작품여행은, 그 역사와 횟수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간혹, 소재 선정이나 전개의 방향 설정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눈을 감고 가만히 예전 어딘가 낯선 곳에서의 소회들을 되새김한다. 당시의 절실함을 다시 떠올리려 애를 쓴다. 그리곤 이내 실마리를 잡는다.

어찌보면 인생은 긴 여행과 다를 바 없다. 태어나서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까지가 한 마디로 길고 긴 여정이다. 어떤 이는 인생을 기차여행과 같다고 했다. 역들이 있고, 경로도 바뀌고, 사고도 발생한다. 우리는 예외 없이 태어날 때 이 기차에 타게 되며, 차표를 끊어주는 분은 부모님이다. 우리는 부모님들이 항상 우리와 함께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부모님들은 우리를 남겨두고 어느 역에선가는 내려버린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승객들이 기차에 오르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 친구들, 자녀들, 그리고 우리가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이들이 여행 중에 하차하여 우리 인생에 영원한 공허를 남긴다. 많은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사라지기에, 우리는 그들이 언제 기차에서 내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 기차여행은 기쁨과 슬픔, 환상, 기대, 만남과 인연과 이별로 가득 차 있다. 좋은 여행이란,
우리와 동행하는 승객들을 돕고 사랑하며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여행이 편안하도록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다. 이 멋진 여행의 미스테리는 우리가 어느 역에서 내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이견을 조정하고, 잊기도 하고, 용서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최상의 것들을 이웃에게 주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기차에서 내려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인생이라는 기차를 타고 계속 여행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고 가는 기차에 함께 탄 소중한 승객 중 한 명이 되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내가 내려야 할 역이 어딘지 모르지만 고맙다는 한 마디를 전하는 상생의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참다운 우리 삶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기차여행이 운치 있으려면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수 준비물인 건 당연지사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로 시작하는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 우연히라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가 들릴 때면, 지친 마음에 조금은 위로를 받게 되고, 언제나 기차여행을 떠나고 싶게 된다.

사실 춘천 가는 기차여행이 좋았던 건 ‘덜컹 덜컹’ 느리게 달리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북한강변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경춘선이 복선전철화 되면서 쾌적하고 편리해졌지만, 아쉽게도 예전의 기차 길과는 다른 풍경의 길을 달려가게 되었다. 이렇게 전철이 앗아간(?) 경춘선만의 운치는 아쉽지만, 지금도 아직 운치와 추억을 보장할 많은 기차여행 코스는 전국 도처에 산재해 있다. 언제든 날을 잡아 길을 나서보자. 동행을 구할 필요도 없다 혼자, 홀로 외롭고 쓸슬하게 떠나보자. 그리고 여행과 대화하면서 여행을 하자. 혼자 삶을 살아가듯이....

그러면 보일 것이다. 그리하면 알게 될 것이다. 삶이 여행이라면, 삶을 사는 인간의 마음가짐은 여행자의 마음이면 되는 것을. 많은 짐을 꾸릴 일도, 여러 개의 보따리를 준비할 일도 없이 그저 단촐하고 정결한 빈 마음이면 된다는 것을, 혼자 떠나면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냥 몇 가지의 마음가짐만 점검하여 주머니에 오롯이 담으면 그걸로 되는 거다. 그럼 어떤 마음들을 지녀야 할까? 우선적으로 지녀야 할 마음인 향기로운 마음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다. 나비에게, 벌에게, 바람에게, 자기의 달콤함을 내주는 꽃처럼,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베풀어 주는 마음이다.

다음으로 지닐 여유로운 마음은 풍요로움이 선사하는 평화이다. 바람과 구름이 평화롭게 머물도록 끝없이 드넓어 넉넉한 하늘처럼, 비어 있어 가득 채울 수 있는 자유이다. 그리고 지닐 사랑하는 마음은 존재에 대한 나와의 약속이다. 끊어지지 않는 믿음의 날실에 이해라는 구슬을 꿰어놓은 염주처럼, 바라봐주고 마음을 쏟아야 하는 관심이다.

또한 간직할 마음인 정성된 마음은 자기를 아끼지 않는 헌신이다. 뜨거움을 참아내며 맑은 녹빛으로 은은한 향과 맛을 건네주는 차처럼,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실천이다. 그 다음의 마음인 참는 마음은 나를 바라보는 선이다. 절제의 바다를 그어서 올곧게 자라며 부드럽게 마음을 비우는 대나무처럼, 나와 세상 이치를 바로 깨닫게 하는 수행이다.

또 지녀야 할 마음인 노력하는 마음은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투자이다. 깨우침을 위해 세상의 유혹을 떨치고 머리칼을 자르며 공부하는 스님처럼, 꾸준하게 한 길을 걷는 집념이다. 그리고 간직할 강직한 마음은 자기를 지키는 용기이다. 깊게 뿌리내려 흔들림 없이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한결같은 믿음이다.

마지막으로 지닐 선정된 마음은 나를 바라보게 하는 고요함의 마음이다. 싹을 틔우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며 보람의 열매를 맺게 하는 햇살처럼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을 환하게 하는 지혜이다. 이러한 몇 가지의 마음들이 조화를 이루어 여행길의 동반자로 자리매김 된다면 그 여행의 가치는 실로 가늠키 어려운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행지의 끝이 어디인지, 언제 끝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가는 거다. 갈 데까지 가는 거다. 아마도 그게 인생길의 참된 의미이리라.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우습다/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설악무산 스님’의 시 ‘아지랑이’의 전문이다. 설악무산 스님은 ‘신흥사’ 조실이면서 세간에는 시조시인 ‘조오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조계종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어느 해 겨울인가 작품여행길에 강원도 인제를 지나 백담사에 찾아가기 전 ‘만해마을 심우장’에서 스님을 뵌 적이 있다. 스님께서 필자를 맞으며 “멀찍하게 앉아라. 숨 막히지 않게. 팔순 늙은이가 죽지는 않고 여기 앉아서 낮을 다 보네. 팔순이라는 꼭대기에 선 거야. 끝없는 낭떠러지야. 돌아갈 곳도 없어. 쳐다봐도 허공이야.”라고 말씀하셨을 때 필자는 이미 이 시를 단박에 떠올렸다.

그리곤 스님께서는 더 말씀을 않으셨지만 저 자탄의 말씀 뒤에는 “백척간두 진일보하라.”는 말씀이 숨겨져 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백척간두 진일보’라. 한 걸음을 더 떼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절벽에 섰다는 것일까? 수행자의 처지가 절벽에 선 것과 같다는 뜻일 것이니, 그만큼 목숨을 내걸고 용맹하게 정진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아마도 중생의 처지가 절벽에 선 것과 같으니, 중생구제가 그만큼 절박하고 급하다는 뜻일 것이다.

설악무산 스님은 필자에게 “그거 하지 마라.”며 스님의 법문을 받아 적는 일을 극구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스님의 말씀은 돌을 쪼개듯 또렷하게 이어졌다. “괜히 해보는 소리지만 국화는 국화 향기가 있고, 야생화는 그대로 향기가 있는 거야. 좋다 나쁘다 라는 것은 자기 생각이야. 그냥 다를 뿐이야. 옳고 그른 것은 각자 생각이야. 본디 못난 놈도 없고 잘난 놈도 없어.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어.”

불교 경전의 한 비유가 생각났다. 가령 바싹 마른 풀을 구해서 불을 지피든지, 바싹 마른 무화과나무를 구해서 불을 지피든지, 불이 곧바로 일어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또 그렇게 다른 땔감에서 불은 피어나지만, 그 피어난 불의 열기와 빛은 차이가 없다. 스님의 말씀이나 경전의 이 비유가 뜻하는 것은, 모든 생명 있는 것이 가진 고유한 성품과 존엄에는 차등이 없다는 것이니, 그 고유한 성품과 존엄은 어떤 종자, 불성(佛性)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설악무산 스님의 말씀은 대공(大空)을 활강하는 매처럼 매섭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천진하고 미소가 가득 고인 그곳에서 흘러나왔다. “잘못되었다고 생각 마라. 잘못된 게 오히려 복이야. 섭섭한 생각을 마라. 일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거야. 이 세상 사는 것은 남 비위 맞추는 것이야. 그걸 제일로 잘한 분이 부처님이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인생은 이와 같고 저와 같은 것이야.”

이 말씀에 심중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이와 같고 저와 같다고 생각하면 무엇에든 무착(無着)할 것이다. 고착도 막힘도 없이 능란하고 자유자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눈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착은 얼마나 큰 은산철벽인가? 집착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 해로움과 괴로움과 불편함을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얼마나 뚫고 무너뜨리기 어려운가? 천둥과 벼락으로도 깨기 어려운 것 아닌가? 오욕락(五慾樂)이라는 것, 재물과 이성과 음식과 명예와 수면이라는 이 다섯 도둑에게 훔침을 당하기만 하는 필자의 초라한 형편이 부끄럽고 위중(危重)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치졸함만 가득 안고 돌아서 나왔던 그 여행길은, 두고 두고 필자의 가르침과 깨우침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불자는 아닐망정 존중과 경외의 심정으로 스님께 삼배로 하직을 아뢰고, 그날의 종착지였던 백담사로 서둘러 길을 나섰었다. 그날 백담사로 가는 길은 하늘도 땅도 꽝꽝 얼었었다. 계곡의 큰 반석은 큰 눈에 덮여 흰 이마를 드러냈고, 하늘을 날아가는 새 한 마리도 없는 폐색(閉塞)의 공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오롯하게 차단되었었으며, 얼얼한 한기(寒氣)만이 끝없이 중중(重重)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요하고 차가운 적막에 걷잡을 수 없는 희열이,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언가를 넘겨주는 게 느껴졌었다.

아래, 위, 왼쪽, 오른쪽, 모두가 한 칸의 선방처럼 느껴졌었다. 곡기를 끊고 오직 깨달음만을 구하는 선사의 수행 공간처럼 느껴졌었다. 거대한 백담계곡 전체가, 처참하리만큼 앙상하게 뼈를 드러낸 채 낮밤을 잊고 고행하는 수행자처럼 느껴졌었다. 필자는 한참 동안을 숨이 막혀서, 분위기에 압도당해 망연자실 서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 겨울은 줄곧 그런 기분으로 살았었다. 그 뒤로 하많은 세월이, 시간의 이름 달고 무수히 흘러갔다.

이제 며칠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오늘도 꽃잎은 떨어진다. 솜털 같은 이것들, 켜켜이 쌓이니 가슴 짓누르는 무게가 바위보다 묵직하다. 계절의 흐름이란 이런 거다. 화사한 풍경으로 마냥 눈멀게 했다가, 느닷없는 낙화(洛花)로 순식간에 가슴 먹먹하게 만드는 것. 속절없다.

사람 사는 일도 매한가지라 또 속절없다. 맑고 맑은 산사(山寺)에 들어 연등 하나 불 밝히면 이 먹먹함 풀어질까 모르겠다. 자신을 추스르지도, 억제하지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불쑥 다시금 길을 떠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어차피 길 떠나는 여행이라면 평생 쌓여진 숙제 하나 쯤은 해결하는, 마음으로 절절히 위로받는 힐링의 여행길이 된다면 참 좋겠다.

조그만 해답이라도 발견한다면 그 끝자락이라도 흔들면서 흔쾌히 소리라도 지를 수 있으련만. 보란 듯이 세상에 자랑질하면서, 남겨진 삶을 조금은 멋드러지게, 다시금 기갈나게 살아내보련만. 조바심에 종종걸음치며 오늘 아침도 여행 채비 주섬주섬 갖추고있는 필자의 자화상이 석양인 듯 여겨져 조금은 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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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자락 너끈히 깔고 앉아
질척이듯 어둠 깔리고
개나리 봇짐 위론
서러운 눈물색깔의 비 마저
주룩 주룩 -

본래부터 거기 얹혀 있었던
한숨 소리인 양
무겁게 추적여 오롯한 산길
아직 어렸을 적
떠나간 누이의
한서린 입맞춤으로
되살아난 두견이 하나
핏발 세워 절규하는 어스름 계곡숲,

돛배라도 한 척 띄워
저승사자 펄럭이며
가로 질러 먼 길
달려올 듯 하고,
소름 돋는 전설 여남은개
옻 오른 옷섶으로 스물대는데
초이레 우중충한 묏둥지 밑자락
어디서 살아나온 반디
꽁지 밝히우고
어둠으로 빛속으로 날아오르다.

하늘로 사라져가
되돌지 않는 누이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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