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1996년 11월 25일을 인쇄일로 탄생된 詩集입니다.

역시 인쇄 출판에 관련된 판권은
증인출판사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序詩는 '겨울, 그리고 동면'이며
'구름같은 이야기'에 30편,
'달 닮은 이야기'에 31편,
'살아가는 이야기'는 '세월 하나(10편)',
'세월 둘(10편)',
세월 셋(11편)'으로 나누어 목차를 정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보자면
총 93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하게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힘들었던 시기이기에
세파에 시달려 생활고에 찌달리는 일상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우며 도전하던
그 시절의 여러가지 직업을 대변하는 詩들이
많이 실려 있는 詩集입니다.
[ 증인 출판사 ]

위로 이동

* 쉰 아홉의 여름은 가고 *



시작노트

" 쉰 아홉의 여름은 가고 " 詩作 note

바람 불면 가슴이 시려오고, 비라도 내릴라 치면 눈시울이 먼저 젖어 오느니 가을을 부르는 계절의 스산한 바람에 온몸은 소름으로 퍼져가고, 푸른빛 하늘에 솜털구름 떠다니는 날엔 하던 일 접어두고 홀연히 어디엔가로 무작정 떠나고 싶은 간절함이 문득 강렬한 충동으로 다가서는 간절기이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려는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새삼스러운 떨림으로 삶의 느낌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무심히 밟고 지나던 길도, 노점상의 주름진 할머니 얼굴도 이젠 예사롭지가 않다.
오십대를 황홀한 나이라 하기에 예전에는 그 나이 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었다.
젊은 날 내 안의 격렬한 파도 그 출렁거림을 잠재우고 싶었기에....
오십대만 되면 더 이상 감정의 소모 따위에 휘청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리라 믿었기에 하루 빨리 오십대 되기를 무턱대고 기다려 왔었다.
허기사 더 젊었었던 지난 날엔 진정 사십대가 불혹임을 철석같이 믿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세월을 더 많이 맞이하여 오십대가 훨씬 지나더니 어언 후반부도 턱에 걸려있는 나이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무엇이 불혹인지 지천명인지, 삶의 무엇에 대한 황홀함인지도 도무지 모르면서 갈수록 내 안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킨다,
처참히 부서져 깨어질 줄을 경험으로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여전히 파도의 유혹엔 더 없이 무력하기만 한데 그래도 굳이 지난날의 불혹을 다시 믿으라 한다면 아마도 그건 잘 훈련 되어진 삶의 자세일 뿐일 것 같다.
쉰이 넘어서야 어떤 유혹에든 가장 약한 나이가 오히려 오십대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도, 더없이 푸른 하늘도, 회색 빛 낮은 구름도,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코 끝의 코스모스 향기도 그 모두가 다 미혹을 벗어나지 못하는 유혹임을 깨닫고 있다.
창가에 서서 홀로 즐겨 마시던 커피도 이젠 곁에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늘 외롭게 즐겨 듣던 음악도 지금은 누군가와 함께 듣고 싶어진다.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을 만나고픈 그런 나이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싶다.
그렇지만 어설프지도 곰삭지도 않은 적당히 잘 성숙된 그런 나이이기에 어쩌면 한껏 멋스러울 수 있는 멋을 낼 수 있는 나이가 진정 오십대 후반이 아닌가도 싶다.
그래서인지 오십대란 황홀함의 영속이 아니라 가을 바람에 실버들처럼 살랑살랑 한들한들 휘날리며 떨어지는 한잎 낙엽이며 황홀한 꿈속으로 사라지는 가을 단풍인가 보다 .

가을을 준비하며 고운 햇살을 가득히 창에 담아 아침을 여는 오늘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하루이다.
영혼 가득히 하늘의 축복으로 눈을 뜨고 새 날, 오늘을 보며 누릴 수 있는 이 햇살을 선물로 받음은 아마도 내가 복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보다.
어제의 고단함은 상큼하게 열려진 오늘에 죄다 맡겨보리라.
세롭게 맞이한 오늘은 나의 용기만큼 힘이 있어서 넘지 못할 슬픔이 없으며 이기지 못할 어려움도 없을 것으로 믿고 싶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다고 생각되면 벌써 해가 중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 하루가 너무 짧다고 생각되면 아직 서쪽까진 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오늘을 내게 맞추는 지혜이다.
오늘을 사랑해보자.
기왕이면 열렬히 사랑해보자.
아마도 사랑한 만큼 오늘을 믿고 일어설 용기가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오늘에 대해 자신이 있는 만큼 내일에는 더욱 밝은 희망이 보여질 것이다.
나 자신은 소중하다.
나와 함께하는 가족은 더 소중하다.
더불어 사는 나의 이웃도 역시 소중하다.
그러나 이 모든 소중함들은 내가 맞이한 오늘을 소중히 여길 때 가능하다.
그리고 아직은 무한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내일이 줄서서 열릴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기에 나의 앞 날 역시 소중하게 여길 가치가 있다.
어느날 메뚜기와 하루살이가 여행을 떠났다.
낯선 곳에서 언덕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며 붉게 타는 노을에서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감성을 느끼고 있었다.
정신없이 석양을 바라보는 하루살이를 향해 메뚜기가 말한다.
“이제 그만 보고 내려가서 좀 쉬자.
내일 더 좋은 경치를 충분히 감상하면 되니까 더 이상 피곤하게 무리하지 말자.”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것을 메뚜기는 모른다.
오늘이 마지막날이라는 것을 아는 것 만큼 허무하고 괴로운 일이 있을까 ?
비록 완벽하게 보장되지는 않지만 기대감과 더불어 꿈 꿀 수 있는 내일이 있기에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행복을 가질 수 있다.

스위스의 철학자 ‘오스카 클라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원한 시간의 가장 중심에 있다.”
어쩌면 막연한 내일을 기다리며 꿈에 잠겨있는 것 보다는, 지나간 과거를 한탄하며 좌절하는 것 보다는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 하루를 의미있고 보람찬 나날들로 만들어나가는 정진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바다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고 오르막 길이 있으면 반드시 정상과 더불어 내리막 길이 이어져있기 마련이다.
우리 인생의 모습도 이와 흡사하여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불행한 운명만 닥쳐오는 것도 아니다.
옛날 중국의 한 황제는 막강한 권력과 재물, 그리고 넘치는 욕심으로 불로초를 구해오게 하여 복용하였으나 결국 수은중독에 걸려 40대에 요절하였다.
어느 갑부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젊은 피를 과하게 수혈받았으나 결국 그 부작용으로 인하여 혈액암에 걸려서 일찍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동화되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에는 넘치는 학식의 습득이나 수준 높은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을 해치지 않고 남보다는 자기자신을 먼저 망가뜨리는 과욕을 없애겠다는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는 ‘히말라야’에 있는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산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는 이보다 더 깊은 필리핀 인근의 ‘마리아나화구’로서 무려 11,034m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다만 우리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측정치이다 보니 실감이 잘 안나지만 아무튼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더 높은 수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눈에 보이는 어떤 조건이나 자격으로 상황을 섣불리 속단해서도 안되고 개인적인 생각이나 기준으로 조급하게 판단하는 것도 금물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때론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처신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결과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예단할 수는 없더라도 침착하게 심사숙고하여 일처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심지어는 너무 느린 진행에 스스로도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경거망동을 하여 경솔하고 성급하게 처리를 하다가 실수를 하는 편 보다는 한결 나을 듯 싶어 새롭게 버릇들인 처세를 고집하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말 한마디라도 혹여 남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모욕을 주게 되는 건 아닐까 하여 한번 더 생각하고 난 후에 말을 하곤 한다.
‘말은 입안에 들어 있는 한 사람의 종이지만 한번 밖으로 나오면 그 사람의 상전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종을 부리는 사람을 상전이라고 한다.
상전은 종에 대해 절대적 권리가 있다.
죽이든, 살리든, 팔아먹든, 내다 버리든 상관이 없이 상전 마음대로 처분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는 말이 내 입 안에 들어 있어서 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때의 말에 제한된다.
그러나 한번 말이 입 밖으로 나와버리면, 나는 내가 말한 그대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말이 내 상전이 되고 나는 말의 종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조심해서 말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끄덕 끄덕 한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글이구나.”하고 속으로 되뇌어보게 된다.
사실 필자는 성격적으로 좀 즉흥적인 데가 있다.
거기다 다혈질이기까지 하다.
성질 급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던가 ?
때로 스스로의 형편을 헤아려 보기도 전에 말을 던지고 나면 아주 난감할 때가 많다.
말이란 것이 일단 입밖으로 나오면 자신과만의 약속이 아닌 타인과 또 어떤 집단과의 약속이 되어버린다.
물론 누군가 동조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한 말이 나의 족쇄가 되고 마는 경우를 왕왕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 타인으로 부터 '나!!' 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신뢰도와 인지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어우러져 살아야만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인간이 지니고 있는 숙명이다.
그래서 필자도 가능하면 늘 말이 빠르지 않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지만 타고난 품성을 때론 참 어쩌지를 못하는 것 같다.
결국 말이란 것은 내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내 말을 내가 다스릴 수 없어서는 안될 것 같다.
내가 한 말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노예가 된다면 나의 행위에서 기쁨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
그건 내가 스스로 앞서가는 것이 아니고 말에 내가 끌려가는 것이므로 가능하다면 그런 상황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제 절기상으로 막바지 여름의 더위가 안간 힘을 쓰고는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서 문득 소슬한 가을을 느끼게 되었다.
쉰 아홉의 가을이 목하 막을 열고 있다.
이 가을에는 더 한층 아름다운 삶의 노래를 부르면서 화려한 가을산의 절경에 어울리는 하루하루를 영위해보고 싶다.
가슴 시리도록 짙은 가을의 향기를 그득히 담은 가을비가 생각나는 오늘 아침,
무드음악의 대명사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폴모리아 악단’의 리더 ‘폴모리아’가 사망했던 몇 년 전의 그 가을을 기억하고는 잠시지만 갑자기 왜 그리도 마음이 허전했던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언젠가 성황리에 내한 공연을 가졌었고, 다시금 한국을 방문하여 올림픽 공원 내에서 내한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던 ‘폴모리아’는 결국 어느 가을 아침에 영원한 세상으로 이별을 하고 말았었지만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나자리노’, ‘이사도라’, ‘러브이스 블루’ 등의 명곡을 남기며, 이 시대를 사는 동서양의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언제나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경음악으로 우리의 가을을 다시 한번 낭만의 바다로 이끌어간다.
이 기억을 떠올리기 전부터 실은 '인생을 노래하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문득 기억을 접하고는 더욱 더 가슴속에 불쑥 다가선 가을의 슬픈 감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니 노래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 속에서 늘 같이 숨쉬며 살아왔다.
슬플 때도 흥겨울 때도 어김없이 노래는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고된 삶에는 힘이 되었으며, 잔치를 할 때는 한층 더 흥을 돋구어 주었다.
그런데 요즘에 많은 사람들은 노래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가끔씩 특별한 계기나 여건이 되었을 때 노래방 등을 찾아 마치 한풀이 하듯 밀린 노래를 다 쏟아내고는 목이 쉬는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보통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마치 대단한 금기인 양 멀리 하고 있다.
그만큼 살기가 각박하고 힘들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
지금이라도 우리는 인생을 노래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랑을 노래하고 기쁨을 노래하고, 심지어 슬픔도 노래하는 건 어떨까 ?
길을 걸을 때도 노래하고, 일 할 때도 노래하고, 몸이 아파 몸져 누웠을 때 조차도 여유를 찾아 노래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또 어떨까 ?
노래는 자칫 경직되고 삭막해지기 쉬운 우리 마음을 포근한 행복으로, 또 즐거움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가을날의 새벽에 ‘폴모리아’ 악단의 ‘나자리노’를 들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묶여있던 감성을 살려 가을바람을 몸으로 느끼면서 길을 걸어보자.
아마도 평생에 남을 추억이 되지 않을까 ?
아침이면 가을이 노래를 지닌 채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를 살짝 간질여 깨워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커튼 너머 아침 햇살이 넘쳐나고 있음을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침이면 가을 노래를 머금은 채 가장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우리의 삶이었으면 좋겠다.
별다른 얘기거리는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눈 비비며 들었으면 좋겠다 .
또 날마다 그런 재미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으면 좋겠다.
아침이면 아름다운 가을 노래를 부르면서 가장 먼저 햇살 앞에 서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음악이 내 하루의 처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종일토록 음악이 내 안에 있어 내가 호흡처럼 노래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침이면 가을 노래와 더불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과 환희로 근사하게 나이 먹어가는 쉰 아홉의 가을을 푸근한 미소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그런 바램으로 쉰 아홉의 여름을 보낸다.


" 쉰 아홉의 여름은 가고 " 詩作 note 닫기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진한 향기로
삶의 페이소스
인영시킨 채
찬란한 내 쉰 아홉의 여름,
무더운 기억만
미덥사리 흘리고
그렇게 평화로 저물다

채근된 계절
줄 이어 서서
갉힌 낙엽 사이로
못다한 어떤 사연
속 비추이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쉰 아홉의 세월이 요철되어지고 -

부는 바람마져 차라리
아픔으로 승화되어,
밤열차 떠난 자리에
못박힌 듯 서있는 계절 위로
초록의 꿈만
덩그라니 남아
다시 올 여름 그리다

그대,
다시 오라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내 쉰 아홉의 인생 살이
모두어 담고
추억으로 윤회된 인연 마다
귀히 여기리니,
속절 없는 여름이여 !
가버린 내 여름이여 !
그대여, 다시금 오라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