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1996년 11월 25일을 인쇄일로 탄생된 詩集입니다.

역시 인쇄 출판에 관련된 판권은
증인출판사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序詩는 '겨울, 그리고 동면'이며
'구름같은 이야기'에 30편,
'달 닮은 이야기'에 31편,
'살아가는 이야기'는 '세월 하나(10편)',
'세월 둘(10편)',
세월 셋(11편)'으로 나누어 목차를 정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보자면
총 93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하게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힘들었던 시기이기에
세파에 시달려 생활고에 찌달리는 일상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우며 도전하던
그 시절의 여러가지 직업을 대변하는 詩들이
많이 실려 있는 詩集입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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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꿈 *



시작노트

" 비 꿈 " 詩作 note

일곱 번째 시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에 실렸던 해묵은 시다. 보아하니 비와 샤머니즘의 조화다. 절묘한 시적 영감을 크로스시키려 애 쓴 흔적이 엿보인다. 아무튼 주제는 비다. 비를 바라는 염원을 꿈으로 형상화한 수상쩍은 감성이 푹 녹아 있다.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읽으면서 비의 그 질퍽한 속성을 마음껏 느끼라고 독자들에게 종용하고 있는 듯 하다. 한 마디로 음습한 우리네 속내가 흠씬 묻어난다.

입추절기가 지났다. 그런데 웬 일인가? 이 무지막지한 더위는?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의 모든 기록들을 다 갈아치웠다. 그리고도 모자라 계속 기록을 경신하며 밤낮으로 신기록을 이어가는 이 파렴치한 날씨가, 절기가 무색한 여름의 뒤끝이라는 거머리같은 제목을 아직도 이마빡에 턱하니 붙이고, 지겹도록 우리들의 사지육신을 붙잡고 늘어진다. 도대체 이러다가 우리 삶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겐지, 생각할수록 불안하고 짜증스럽기만 하다.

이런 날에는 그저 더도 덜도 말고 소나기라도 한소끔 후다닥 쏟아져서, 용광로처럼 달궈진 거리를 잠시나마 식혀주기라도 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송곳처럼 찌르는 햇볕의 열만 만발하여 약을 올리는 터라, 사람 완전 열 받게 만든다. 예측컨대 얼마 안 있으면 우리나라도 아열대 기후군에 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상학자들의 의견에 선뜻 공감이 가기도 한다. 사계절이 뚜렷하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하가 근본적으로 생물도감의 분포도의 형태를 바꾸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봄과 가을은 실종되고 두 계절만 이어진다면 그 후에 우리는 어떤 생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아찔하다. 특별한 대책이 없이 몰아닥칠 미래의 얼굴에 얼핏 소름이 돋는다. 물론 사람은 모름지기 적응의 아이콘이라고 했으니 맥없이 죽어 나자빠질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내일의 모습이 더없이 어둡고 칙칙하여 자못 불안한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이나 안목에 따라서 평가나 판단의 기준도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편하고 안락한 평화가 행복의 첩경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 사실이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역사가 있었기에 인류의 문명은 발전되어왔고, 모름지기 살기 좋은 유토피아 건설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진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을 상비한 금수강산이다. 그게 우리의 표상이며 자랑이었다. 그래서라도 필자는 간절히 바란다. 제발 더 이상 괴물같은 계절의 이상현상은 이어지지 않기를 말이다.

용 빼는 재주도 없는 소시민 입장에야 그저 자연현상이라도 부조를 좀 해줘야 그럭저럭 세상 살 맛 날 것 아니겠는가? 세상 돌아가는 자체에서 낙을 삼으려 드는 것까지도 욕심이라면, 어떻게 숨 붙이고 이 땅에 머무를 재간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가을을 재촉하는 비라도 물컹, 선물로 좀 오셨으면 참으로 참으로 감지덕지겠다. 정히 오늘은 바빠서 못오시겠거들랑 내일이라도, 아님 그 뒷날이라도 제발! 비야, 어서 오시라. 이 메마른 대지에, 이 뜨거운 세상에 생명으로 뿌려주시라.

허기사 새삼 하늘을 원망하고 기상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세상만사는 순리대로 귀결되는 것이 진리이거늘. 인간들의 욕망과 오만이 부른 자연의 재앙이 이제 서서히 그 결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장엄한 실체를 보여주기 시작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자기가 만든 새끼줄로 자기 자신을 묶는다, 그러니까 자기의 마음 씀씀이나 행동으로 인해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표현은 긍정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업자득(自業自得)’과 비슷하다. 우리 속담 가운데 ‘곤장 메고 매 맞으러 간다.’는 표현이 있는데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뜻으로는 비슷하다. 좀 더 이어가보자. 자기 스스로를 옭아 묶음으로써 자신의 언행 때문에 자기가 속박당해 괴로움을 겪는 것이므로 ‘자박(自縛)’이라고 줄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자기가 만든 법에 자신이 해를 입는다는 뜻의 ‘작법자폐(作法自斃)’와도 비슷한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주장한 의견이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자신의 자유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근원을 보니 ‘한서(漢書)’의 ‘유협전(遊俠傳)’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내용인즉, 시장에서 ‘원섭(原涉)’의 노비가 백정과 말다툼을 한 뒤 어떤 연유로 죽이게 되자, ‘무릉(茂陵)’의 태수 ‘윤공(尹公)’이 노비의 주인인 원섭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협객들이 서둘러 원섭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섭의 종이 법을 어긴 것은 부덕한 탓이다[原巨先奴犯法不德]. 그에게 웃옷을 벗고 스스로 옭아묶어[使肉袒自縛] 화살로 귀를 뚫고 법정에 나가서 사죄하게 하면[箭貫耳 詣廷門謝罪] 당신의 위엄도 유지될 것이다[於君威亦足矣].” 원래는 궁지에 몰려서 항복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묶고 관용을 청하는 것이다. 스스로 번뇌를 일으켜 괴로워하거나 자기가 잘못함으로써 스스로 불행을 초래하는데 비유한 고사성어가 바로 자승자박이다.

옛날 어느 서당에서 학동들이 글을 읽고 있었다. 춘삼월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한자를 읽다 보니 학동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랑이 같은 훈장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네 이놈들! 어디 신성한 서당에서 공자님의 말씀을 읽다 말고 졸고 있느냐? 회초리를 들기 전에 썩 눈을 뜨지 못할까!” 하지만 호통을 친 훈장님도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에 그만 깜박 잠들어버렸다.

훈장님은 무안했는지 학동들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잠든 것이 아니라 너희를 더 잘 가르칠 방법을 여쭈러 공자님께 다녀온 것이다.” 이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춘곤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학동에게 훈장님이 불호령을 내렸다. 하지만 학동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훈장님. 저도 공자님을 만나 뵈러 잠시 다녀온 것입니다. 그런데 훈장님께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지 물었는데, 훈장님은 오신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말 할 수 있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야단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가르침이다. 자신의 잘못에 쉽게 변명부터 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품성을 가졌다. 자신에게 관대한 편협한 변명은 결국 자신의 발을 잡아채는 자승자박이 될 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요즘 정치판에서 심심찮게 통용되는 ‘내로남불’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용어도 실은 그 의미가 자못 깊다. 때때로 남을 위한 변명은 해도 좋지만, 그러나 결코 자신을 위한 변명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겸양의 자세로 남을 대하는 사랑의 마음가짐이 있다면, 작은 일에 손해를 보는 듯 하다가도 큰 결실로 보람을 맺을 수 있다는 진리도 새겨보아야 한다. 실력은 훌륭하지만,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고 있던 한 성악가가 모처럼 무대에 설 기회를 가졌다. 작은 마을에서 하는 조촐한 무대였지만 성악가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데 문제는 무대의상이었다. 턱시도가 한 벌 있었지만, 너무 낡고 치수도 작았다. 하지만 가난한 처지에 새로 의상을 준비할 여력이 없던 성악가는 그 작고 낡은 턱시도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드디어 관객을 앞에 둔 성악가는 열창했다. 그의 노래에 사람들은 감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며 성악가가 힘차게 양 팔을 내뻗는 순간 턱시도가 찢어져서 안에 입은 셔츠가 환히 보이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노래에 감동하던 관객들은 뜻밖의 모습에 몇몇 사람들이 웃기 시작해서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한 곡의 노래가 끝나, 다음 노래가 이어져야 하는데 성악가는 다시 노래를 부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쩔쩔 매고만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악가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자신의 정장 상의를 성악가에게 입혀주었고 그 모습에 관객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해졌으며, 다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성악가의 아름다운 노래가 이어졌다.

곤란에 빠진 사람을, 힘든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배려할 수만 있다면 사실 다른 일들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처음으로 먼저 배려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바로 누구보다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이다. 비록 지금 견디기 힘든 무더위와 극도로 상승한 불쾌지수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이웃과 타인을 위한 배려가 전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에는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도 믿어야 한다.

“지금 이 글 속에 나도 있고, 이 글을 읽는 그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 그대는 꽃이 되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됩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나무가 되고, 나는 그대를 휘감는 바람이 됩니다. 글 속에서 그대는 그리움이 되고,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는 기다림이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느끼고, 그대의 가슴 속에 담아둘 수 있다면 난 그대의 시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이 순간 만이라도 그대와 나는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대를 사랑해서 인연이라 말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움 하나 만들어 갈 뿐 입니다. 글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그리워 하고, 보고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허락한 인연이 아니라면 만남 또한 없을 겁니다. 만약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정한 인연이라 한다면 내 영혼을 불 사른다 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난한 사랑이라 해도 좋은 그런 사랑이라면 우린 글 속에서 행복해 할 테니까요. 글 속에서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라도 마음 하나만은 언제든 그대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글 속에서 그대를 그리워 하며 그대 사랑을 가슴으로 느껴도 될런지요? 아무도 모르게 소리없는 미련이지만 글 속에서 그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글 속에서는 그대와 나 함께 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인연이라 말하며, 이 글을 읽는 동안이라도 나의 그대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언제나 그리워 할 그런 님이 되어주시기를...”

이게 무슨 뜬금없는 연애편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잠시 동안 어리둥절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 사람들 누구나 살아오면서 마음으로의 연서를 이렇듯 표현해 보고파 한 적이 적어도 한두 번씩은 있었을 거다. 글이란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인류가 발전해 오면서 무언가 기록하게 되고, 남기고 싶을 때 아마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 글이 아닐까 싶다. 전달 매체로는 말 보다 중요한 것이 글인지라, 막강한 힘을 가진 총칼로는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없지만 펜대 하나로 전 세계를 정복했다는 말도 있다.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 등을 표현하며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고, 읽는 사람의 느낌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도 있기에 더욱 어렵게 생각되는가 보다. 평소에 신문이나 책을 자주 본다고 해서 무조건 실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글을 읽고 거기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덧붙일 줄 알아야 사고력과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아닐까? 저절로 소양이 쌓이고 실력이 늘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좋은 글을 쓴다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체 사는 데 글을 쓰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고, 성공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로서도 물론 즉답을 하기는 어렵다. 단지 우리의 삶이 삭막하고 임시방편적으로, 또는 임기응변의 상황으로 처리하는 인스턴트가 아니라면, 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되짚어 곱씹을만한 추억거리라던가, 아니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의 비망록 하나 쯤은 곱게 간직하고, 가슴에 접어 넣는 자신만의 작업이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생각 외로 멋진 일이지 않을까?

우리는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죽는 날까지 긴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 레일 위를 달리는 인생 열차에 내 삶을 맡기고 세월 속을 달리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간이역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좋건 싫건 세월 속을 달리는 인생 열차를 타야 한다. 하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슬픔의 레일을 달리는 인생 열차에 내 삶을 맡겼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간이역이 없는 인생 열차, 기쁨의 레일을 달리는 열차에 실려 인생을 노래하고 싶지만 자칫, 이탈하기 쉬운 레일 위를 우리는 달리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의 레일을 달리는 인생 열차에 실려가는 삶,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울까? 인생 열차는 간이역이 없는데... 삶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즐거움이 없으면 그곳에는 삶이 정착되지 않는다. 즐거움은 밖에서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은 인생관을 지니고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을 거치면서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부분적인 자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자기일 때, 순간순간 생기와 탄력과 삶의 건강함이 배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홀로 사는 즐거움이 움튼다. 우리의 삶 자체가 여행이고 인생길 가는 열차 속이라고 생각을 하게 만들듯이 때로는 함께, 때론 혼자서 이런 시간 속에 우리의 희망과 꿈을 하나둘 이루어 나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빈틈없는 논리가 당신을 지키지 않는다. 많이 가진 부유가 당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똑똑한 처신이 당신의 권위가 되지 않는다.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좋아하고, 특출한 체 하기 보다는 물러나 있기를 좋아하고, 단칼에 자르기 보다는 함께 가기를 좋아하는 그 넉넉한 삶, 비록 소득이 없어도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으로도 힘을 얻고, 사랑을 받지 못해도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재산 되는 그 광활한 넉넉함이 온 세상을 안아준다.

예전에 베스트셀러였던 책이 한 권 있었다. 제목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할 일이 많은 것은 희망이고 축복이지만 가끔은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다’ 라든가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은 많다’ 의 경우가 그렇다. 할 일이 많아서 정신 없고 힘들고 지치는 사람들을 위해 ‘탈무드’에 들어있는 우화 하나를 골라본다. 이 짧은 우화는 일 보따리를 내팽개치고 싶을 때 기운을 차리게 해준다.

지혜롭기로 유명한 랍비가 있었다. 여러 번 그에게 도움을 청해 어려움을 해결한 황제가 다시 그를 찾아왔다. “아! 많은 신하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소.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 하소연을 들은 랍비는 아무 말 없이 배추밭으로 갔다. 가서는 배추 한 포기를 뽑아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그는 배추를 갖다 놓고서는 다시 밭으로 가서 한 포기를 더 뽑아왔다. 그렇게 랍비는 배추를 한 포기 한 포기씩 뽑아왔다.

그러기를 수 차례, 어느 새 배추밭에는 배추 뽑혀 나간 자리가 훤해졌다. 현명한 황제는 랍비의 행동을 보고 그 뜻을 알아차렸다. 즉, 많은 신하들과 한꺼번에 맞서려 하지 말고 한 사람씩 차례로 각개격파하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차례로 차근차근 일을 풀어나가다 보면 어느 새 골치 아픈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 있으리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이 동시다발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일 때 탈무드의 이 배추밭 이야기는 시원한 샘물처럼 다가온다.

어떻게 골치 아픈 일들을 헤쳐나가야 하는지 힌트를 준다.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한꺼번에 매다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언제 저 많은 일을 다 해치우나?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한숨만 나오고 지친 느낌이 든다. 그럴 땐 가까운 곳에 있는 만만해 보이는 배추 포기부터 공략하는 것이다. 포기가 작은 배추는 뽑기도 쉬울 뿐 아니라 옮겨놓기도 쉽다. 사람은 쉽게 일을 해낼 땐 일하는 피로도 느끼지 않고, 성취감 덕분에 더 힘과 의욕을 불태우게 된다. 해야 할 일이 많을 땐 우선 쉬운 일부터, 빨리 해 낼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가는 게 일 잘하는 요령이 된다.

아름다운 경치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을 보면서, 한 편에서는 “우와! 정말 예쁘다!”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쪽에서는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무표정한 사람도 있다. 왜 무표정 할까? 이유는 사랑을 거부하거나 마음이 굳어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선물해주는 미소에 미소를 돌려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랑에도 미소를 돌려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기분 좋음이나 기쁨, 행복을 만끽할 기회가 늘어난다.

조금만 시험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햇님의 따뜻함에 “아, 따뜻해!” 하고 중얼거리면 따뜻함은 뭉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다. 꽃의 아름다움에 “정말 예뻐!” 하고 중얼거리면 아름다움은 더욱 더 선명하게 빛난다. 중얼거림에는 느끼고 있음을 의식시키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얼거리면 중얼거릴수록 자신에게 지금 쏟아지고 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행복한 자신을 자각할 수 있다.

중얼거림은 햇님이나 꽃에 대해 “느끼고 있어요!” 하고 말을 거는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오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서로 오가는 것이야 말로 기쁨을 자꾸만 부풀어 오르게 하는 지름길이다. 맑고 파란 하늘을 쳐다보면 무척 기분이 좋다. 높은 하늘에서 뿌려주는 사랑은 올려보기만 해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우와! 기분 좋은 하늘이야!” 라고 간단한 감탄의 말을 쏟아내면 기쁨을 몇 배로 늘려 받게 된다. 동시에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서로 주고 받을 수가 있다면 그렇게 멋진 일은 없다.

푸른 하늘에서 받은 사랑은 말이 된다. “오늘은 정말 상쾌한 하늘입니다. 기분 좋습니다.” 하는 말을 받아서 “정말 그래요, 정말 멋진 하늘이네요,” 하고 대화 하나가 더 늘어난다. 그건 그대로 수없이 많은 사랑을 엮어간다는 뜻이다. 마음을 열어도 되겠다는, 누군가를 받아들여도 괜찮겠다고 생각되는 사랑에는 확실하게 미소를 지어 보여주자. 그런 작은 시도를 잊지 않고 있는 것 만으로도 당신의 마음은 더욱 더 부드러워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 마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와아~ 기분 좋은 밤이다. 밤하늘이 정말 곱다. 그런데, 뭐라고? 당신이 지금 뭐라고 대답했는가? 더 크게, 잘 안 들리는 것 같다. 아~ 끄덕 끄덕. 당신도 그렇게 느낀다고? 맞다. 작은 일부터 감동하자. 그리고 표현하자. 좋은 말은 함께 하는 시간을, 그리고 하루를, 생을 아름답게 한다. 기쁨 넘치는 내일, 많이 웃는 내일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웃음의 씨를 심자. 행복의 싹을 틔우자. 그리고 사랑의 뿌리를 힘있게 박아나가자.

짜증내면 무엇하나? 원망하고 탓하고, 불평불만을 일삼는다고 달라질 것 있는가? 어차피 제아무리 기승을 부리는 이 폭염도 때가 되면 물러나게 되는 것을. 높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단풍으로 우리를 찾아줄 가을이 그 뒤에 줄 서서 우리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이 고비만 넘기자. 웃으면서, 마음으로 느끼면서, 사랑, 말로 더욱 많이 하자. 여름의 끝자락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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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안개 물기 듬뿍 머금고선
빗발 넌지시 감추고 있는 어스름녘이지, 아마

질척이는 토담길 헤집고
햇발 찾으러 떠나는 성긴 가죽신,
징그러운 발자욱 그리고 그림자

괜시리 팔뚝엔 소름이 돋고
죄짓고 숨어든 놈 가슴패기인듯
염통은 어찌 방망이질로 심히 요동치는가?
이 비 그치고 나면 엄청스레 선선해지겠지

알록달록 정성들인 치장에
찌렁한 울림 소리로 굿판 준비하고 선,
점례할머닌 불과 일곱살 어린 나이에
신이 내렸다고 하더라

추적 추적 모듬비가 처녀귀신 머리털마냥
질기게 이어지던 초저녁나절 이랬던가?

해서 그런진 몰라도
비만 내리면 신명 올리는
늙은 무당 할미 주문 구절이
힘빠진 몸뚱아릴 들었다 놨다 하대

악몽에서 퍼뜩 깨어나얄텐데,
이 음습한 지옥에서
얼른 벗어나얄텐데

아님
저 지겨운 검정빛깔 검댕이덩어리
비안개라도 조금만 걷혀주던가 말이지

난 꿈 꾸면 꿈 속에선
구름이었고,
흩어져 흘러내리기만
자꾸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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