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1996년 11월 25일을 인쇄일로 탄생된 詩集입니다.

역시 인쇄 출판에 관련된 판권은
증인출판사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序詩는 '겨울, 그리고 동면'이며
'구름같은 이야기'에 30편,
'달 닮은 이야기'에 31편,
'살아가는 이야기'는 '세월 하나(10편)',
'세월 둘(10편)',
세월 셋(11편)'으로 나누어 목차를 정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보자면
총 93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하게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힘들었던 시기이기에
세파에 시달려 생활고에 찌달리는 일상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우며 도전하던
그 시절의 여러가지 직업을 대변하는 詩들이
많이 실려 있는 詩集입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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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과 사람과 *



시작노트

" 산과 사람과 " 詩作 note

제법 사람들을 지루하고 괴롭게 만들던 겨울의 가뭄 끝에, 지쳐버린 인심 보기가 민망했을까? 계절의 갈림길에 서더니 봄을 재촉하는 비가 그런대로 두루, 그럭저럭 자주, 내려주고 있다. 필자가 거주하는 강원도 영서지방은 올 겨울 유독 극심한 가뭄에 시달려왔다. 그래서 이즈막에 하늘이 기분을 맞춰주는 통에 비로소 살 맛이 난다. 비단 직접 농사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어차피 시골에서 밥숟가락을 얹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해갈의 염원에 목이 말랐다. 이렇게 몇 차례만 더 이어서 비를 내려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초목의 싹 틔움과 잎 자람이 은근히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니, 미상불 대자연의 조화가 시끄럽고 부산타. 퍽 보기 좋은 모양새다. 바야흐로 봄이 온 거다. 이제는 주변 누리 뿐만 아니라 필자의 마음 속까지도 봄 기운이 그득하다. 과시 봄을 살아갈 차비를 점검하며 봄마중을 되돌아 볼 때다. 겨울의 시린 질곡도, 한설과 북풍도 이젠 다 뒤로 숨기고, 솟아나는 파르란 새 순에 소망을 얹을 때다. 자! 봄이다.

벌써 예순 번도 넘게 맞이해온 봄인데, 어째서 시방 이다지도 첫사랑의 순간처럼 설레고 가슴 뛰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늘상 봄이면 희망과 꿈이 무럭무럭 솟아나다가도, 몇 달 못가 어느새 슬그머니 날개 접고, 다음 계절에 대충 적응하며 덧없는 다른 나날들 보내는 게 습관처럼 익어버렸건만, 그래도 참 굳세게 봄마다 가슴 뛰는 걸 보니, 아직은 청춘의 부스러기가 깊은 속내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똬리를 틀고, 넉장거리로 주저앉아 있을 성 싶다.

그렇게 지금 느끼는 이 봄도, 올 해의 새 봄도, 바라예는 필자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해서 망설임도 없이 성큼 문을 열고 한 발자국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고민한다. 올 봄은 어떻게 살아갈까? 필자에게 주어진 삶의 페이지는 어떤 내용으로 꽉 채울까? 비록 허접하고 잡다한 일상들의 모듬에서 그칠지 모르지만, 그래도 작은 씨앗 하나라도 심는 봄의 날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필자는 오늘도 고민한다. 딴에는 심각하게 숙고한다. 신중하게, 차분하게.

잘살든 못살든 그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자신이 행동하고 생각한대로 삶의 질과 수준이 결정되어지고, 그 결과도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원인의 크기만큼 결과가 만들어 지니, 세상사가 진리의 틀 안에서 굴러가는 건 역시 부인하지 못함이 세상 이치이며 인지상정이다. 어떻게 삶의 씨앗은 잘못 심어 놓고, 열매가 부실하다 하여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탓할 수 있을까?

학자요, 정치가요, 목사며, 주한 미국대사(1993-1997)였던 ‘제임스 레이니’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에모리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하던 어느 날, 길에서 쓸쓸하게 혼자 앉아있는 노인을 만났다. 레이니 교수는 노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말벗이 되어주었다. 그 후 그는 시간이 날 때 마다 외로워 보이는 노인을 찿아가 잔디를 깎아 주거나,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2년여 동안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서 노인을 만나지 못하자 그는 노인의 집을 방문하였고, 이내 노인이 전날 돌아 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 바로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면서 노인이 바로 ‘코카콜라’의 회장을 역임한 사람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때 교수를 유심히 살펴보던 한 유족이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라며 봉투를 건넸다. 유서의 내용을 본 그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2년여의 긴 시간을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 벗이 되어 주고, 우리 집 뜰의 잔디도 함께 깎아 주며 커피도 함께 마셨던 나의 친구 레이니, 정말 고마웠어요!! 나는 당신에게 25억 달러 (2조 7천억원)와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너무 뜻밖의 유산을 받은 레이니 교수는 세계적인 부자가 그렇게 검소하게 살았다는 것과, 자신이 코카콜라 회장 이었음에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잠시 친절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큰 돈을 물려주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레이니 교수는 받은 유산을 에모리 대학의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다. 레이니 교수가 평소 노인에게 베푼 따뜻한 마음으로 인해 엄청난 부가 굴러들어 왔지만 그는 그 부에 도취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부를 학생과 학교를 위한 기금으로 내 놓았을 때 그에게는 에모리 대학의 총장이라는 명예가 주어졌다. 전설같은 이야기지만 겨우 몇십년 전에 일어난 실제 이야기며,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인물이 겪은 꿈같은 실화라 더욱 실감이 간다. 작은 친절, 작은 배려, 작은 도움 하나 하나가 사회를 윤택하게 하고, 서로간의 우의와 신뢰를 돈독하게 한다는 사실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어떤 확실한 목적이나 필요한 목표의 상황 때문에 마음을 다잡아 친절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베풀게 되는 진심어린 친절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비록 당장 특별히 보여지는 결과나 보람은 없을지언정, 우리의 삶에서 먼 훗날이라도 언젠가는 필경 받게 될 축복과 보은이 있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실천하고 행하는 친절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지성으로 인정받고 있는 ‘안하림’ 작가는 삶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자세와 덕목을 고심하면서,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을 “인문학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경영(經營)’이라는 말은 기업이나 사업 따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능력에 제한시켜 이해한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는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걸 말한다.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가정을 경영하고, 기업을 경영하며, 관계를 경영하면서, 나아가 국가까지 경영할 수 있는 것이다. ‘선비 정신’이란 경영, 즉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며, 옛 선비들은 인문학을 통해 경영 능력을 키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포기하면서도 인문학을 도강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법을 깨달았듯이, 자수성가로 세계적인 기업인이 된 이들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하나같이 인문학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고 통찰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젊은 나이로 갑부가 된 ‘주커버그’는 얼마 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딸 ‘맥스’의 탄생을 전하면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했다. “네가 우리의 미래에 줄 희망에 대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부모처럼 우리는 네가,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길 바란다.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고, 네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살았던 때보다 더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이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돕고 평등을 장려해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맥스를 사랑해서이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한 도덕적 의무이기에 우리 역할을 하겠다고 전했다. 전 세계 5억명이 사용하고 있는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주커버그는 ‘실리콘밸리의 혁명가’로 불린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페이스북의 무료 인터넷 보급 프로젝트 ‘인터넷오알지(internet.org)’는 전 세계 산업체와 정부가 인터넷을 통해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아퀼라’라는 드론을 구름보다 높은 곳에 띄워,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운 지역에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또 미국 학생들이 학교에서 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2,000만 달러(약 230억원)를 기부했다. 일본 저널리스트 ‘구와바라 데루야’는 자신의 책을 통해, 주커버그는 컴퓨터 밖에 모르는 괴짜 천재가 아니라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인문학 마니아’라며, 특히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심리학을 복수전공한 것이 페이스북의 탄생 배경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주커버그는 자신이 보유한 페이스북 지분 중 99%를 살아 있을 때 자선사업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재 시가로 450억 달러(약 52조원)에 해당한다. 31세의 젊은 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는데, 그보다 더 오래 산 우리들은 아직도 가야할 깨달음의 길이 먼 것 같다. 인문학이 세상을 바꾸고 자신을 바꾸고 있다. 언제까지 세상 탓 하고 내 탓 하면서, 나는 죽어도 바꾸지 않겠다고 할 것인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은 보지 못하고 떠나 갈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갖고 있는 달란트가 따로 있다. 모든 일을 잘 하고, 모든 것에 능통한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아예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여건이나 환경, 또한 여러 가지 복합적 요건들이 어우러져 결과치를 만들어내고, 성공과 실패의 추를 조율하면서 사람의 처지를 결정지을 따름이다.

적재적소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사람은 인정받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설사 지식과 능력이 차고 넘쳐도, 걸맞지 않은 일이나 환경에 자리매김된 사람은 결과적으로 패배자나 낙오자가 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삶을 쉽게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한 번 뒤쳐졌다고 해도, 삶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뒤집을 수도 있는 가능성의 게임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삶을 어렵게만 여길 수 없는 까닭이다.

필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업을 천직으로 부여받았다. 그래서 평생 동안 직간접적으로 이 분야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가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든 짧든 글을 쓰고 읽는 행위를 습관처럼 이어가는 생활의 궤에서 살고 있다. 작가나 시인같은 전문가나 직업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짧은 글일 망정 글을 완전히 외면하고는 살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어떤 식이든 글을 써야 하는 문제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망설여야 할 경우도 많다. 싫다고 안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이 가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필자는 주저없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인을 사랑하듯이 글 쓰기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이야기들이 스스로 밖으로 나오게 된다. 특히 사람들, 저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야기를 비추는 거울처럼, 그들의 삶이 많은 모티브를 제공한다. 그들이 하는 말들과 표정, 제스처를 관찰하고, 거짓이나 진실을 말할 때의 눈빛 등 인간이 가진 다양한 성격들이 글의 소재가 되고, 캐릭터로서의 독창성을 가진다.

물론 문장력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작의 핵심은 스토리 구성 능력이고, 스토리라는 것은 결국 상상력에서 나온다. 국문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을 보면 단어의 사용 능력이나 조사, 그러니까 ‘은는이가’는 잘 사용하지만, 스토리 구성 능력이 떨어지고 상상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창작을, 틀에 끼워 맞추는 데서 오는 부자유함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생각 속에서,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제 멋대로 사유할 때 오히려 좋은 글이나 낯선 이야기들이 태어난다. 독서도 중요하지만 글쓰기를 가르치는 학원이나 선생들은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글이란 두 말 할 나위도 없이 여백 위에 나열하는 누군가의 인생이다. 그러므로 글의 핵심은 가능한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다.

그 중에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현실로 이어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세상을 바꾸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보편적인 글을 쓰면서도 꿈꾸는 것이 있어야 한다. 옛날 조선의 선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방에서 소금장수가 백년 묵은 여우에게 홀린 이야기라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공간을 만들어 이야기꾼들과 날밤을 새우고 싶다는 진솔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인생은 가고 이야기만 남는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준비된 작가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모두가 능수능란한 전문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냥 작은 소재라도, 짧은 이야기라도, 진솔하게 성심을 모아 적어나가는 것이, 삶을 또한 그렇게 살아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동일한 의미다.

자신의 살아가는 여정이 곧 자신의 이야기 소재가 되고, 자신의 보여지는 모습이 곧 자신의 글의 주제가 되는 것이니 만큼,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언행이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본분이고 뿌리인 것이다. 옛날 한 작은 외딴 마을에 천 개의 거울이 있는 집이 있었다. 늘 행복한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그 집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한 번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에 다다른 녀석은 즐거운 마음으로 집 앞 계단을 올라가 문 앞에 섰다.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들면서 문 사이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안에는 천 마리의 다른 강아지들이 녀석을 쳐다보면서 귀를 세우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녀석은 너무나 즐거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천 마리의 강아지도 따뜻하고 친근한 웃음을 지었다. 강아지는 그 집을 떠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멋진 곳이야. 자주 놀러와야겠다.”

같은 마을에 또 다른 강아지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이 녀석은 앞의 녀석과는 달리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녀석도 그 집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천천히 그 집 계단을 올라가 문을 빼꼼히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천 마리 강아지들이 불쾌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녀석이 으르렁거리자, 천 마리의 강아지들도 녀석에게 으르렁거렸다. 그 집을 나오면서 녀석은 툴툴거렸다. “뭐가 이렇게 무서운 곳이 다 있담.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다.”

세상의 모든 얼굴들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당신은 당신이 오늘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어떤 모습을 보고 있는가? 실은 이 글을 쓰면서 웬지 가슴이 뜨끔 따끔하다. 언젠가도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필자는 전형적인 OX형 인간이다. 매일 매일 천 개의 거울을 바라보면서, 하루는 기뻤다가 하루는 툴툴거렸다가 하곤 한다. 잠시 호흡 한 번 고르면 될 일을, 자주 후회를 하면서도 급하게 결정을 내리고, 성급하게 처신을 한다.

아무래도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긴 시간 동안 도를 닦아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뜬금없지만 제안 하나 하련다. 오늘은 당신이 밖에서 생활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신중하게 살피도록 해보자. 그렇게 보여지는 그 표정이야 말로 바로 자신의 표정임을 잊지 말자. 당신에게 보여지는 당신의 당신이 지금 얼마나 잘 웃고 있는가? 그걸 알아보자. 그리곤 내일도 다시 알아보자. 다음 날도. 당신을 보고 웃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결국은 당신이 웃는 횟수가 먼저 늘어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당신의 웃음과 하나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당신에게 웃음을 보내주고 있다. 당신에게 웃을 일이 있어서 당신이 웃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웃기에 당신에게는 웃을 일이 생겨나는 것이며, 그 웃음이 당신의 이웃에게 웃음으로 전달되어 그들이 웃음짓게 되는 것이며, 그 웃음들이 다시 돌아와 당신 자신의 웃음으로 스며들 것이다. 웃음의 윤회는 바로 그런 것이다. 웃음의 인연이란 본래 그렇게 이어져가는 것이다.

살다보면 만나지는 인연 중에참 닮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비슷하다 싶은 그런 사람이 있다. 한 번을 보면 다 알아버리는 그 사람의 속 마음과, 감추려하는 아픔과, 숨기려하는 절망까지 다 보여지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전생에 자신과 무언가 하나로 엮여진 게 틀림이 없어 보이는 그런 사람이 있다.

깜짝 깜짝 놀랍기도 하고, 화들짝 반갑기도 하고, 어렴풋이 가슴이 메이기도 한, 그런 인연이 살다가 보면 만나지나 보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 보다도 속내가 더 닮은,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더 마음이 아린 그런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기는 두렵고, 그리워 하기에도 목이 메이고, 모른 척 지나치기엔 서로에게 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마냥 지켜보기에도 그가 너무 안쓰럽고, 보듬어 주기엔 서로가 상처받을 것 같고, 그런 하나 하나에 마음을 둬야 하는 사람, 그렇게 닮아버린 사람을 살다가 보면 우연히라도 만나지나 보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게 인연이지 싶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인연은 진정 소중한 것이다.

오늘도 비가 내렸다. 마치 봄이라는 만남을 인연처럼 뒤에 두르고 부드러운 깃털처럼 대지를 쓰다듬으며 비가 왔다. 포근한 요람같이 떨리는 감수성으로 얼굴 붉히며 비가 찾아주었다. 멀리로 보여지는 산자락이, 산등성이가, 산봉우리가 비에 젖어 싱그럽다. 문득 비가 되어 산으로 달려간다. 언뜻 산이 되어 비를 맞이한다. 어느새 필자는 자연이 된다. 계절이 된다. 봄이 된다. 필자의 오늘은 봄이다. 필자가 곧 봄이다. 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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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시는데,
산은 저어기 서 있고
산 보는 난 예 서 있고

다음날
산은 저어기 그냥 서 있고
산 그리운 난 예 서 있고

다음 다음날
산은 저어기 그저 서 있고
산 닮은 난 예 서 있고

다음 여러날
산은 예 서고
난 산 되어져 저어기 서고

비는 오시는데
안즉도 오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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