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6집. 인생 복사기  


  "6집. 인생 복사기"
1996년 3월 28일 인쇄된 詩集입니다.

목차는 크게 넷으로 분류되며
'날궂이 굿 - 자연예찬'에 21편,
'씻김이 굿 - 인간지정'에 21편,
'내림이 굿 - 영혼고백'에 21편,
'살풀이 굿 - 세상백태'에 21편,
합계 84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章의 분류에서 알 수 있듯이
서경시, 서정시, 고백시, 서사시로 규정지을 수 있는
각 章마다에 완전히 다른 성격의 詩들이 실려있으며
그 詩風을 비교 분석하면서
감상하실 수 있는 詩集입니다.
[ 도서출판 가람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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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기 전에 얼른 - 1 *



시작노트

" 봄이 오기 전에 얼른 - 1 " 詩作 note

엊그제 입춘이 지났다. 한 해 24절기 중 가장 첫 번 째 절기인 입춘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소망을 선물하는 상큼한 계절의 전령이다. 물론 아직도 몇 차례 살을 에는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겠지만, 그래봤자 꽃샘추위라는 이름으로 밖에는 불리지 못하는 몸부림일 터, 우리의 봄은 이미 저만큼 성큼 다가섰음이다. 더불어 우리네 삶에 빨판을 박고 겨우내 지겹도록 우리를 괴롭혔던 현실의 겨울도 이제는 대충 갈무리하고, 우리는 목하 새 봄을 맞이할 때다.

봄이 되면 얼어붙었던 동토에 새 싹이 돋고, 메말랐던 산하에 초록의 숨결이 방울져오를 것이기에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균등하게 부여되는 기회라는 제목의 문제지가 대자연의 너른 품안에서 펼쳐질 게고, 그것을 하나씩 풀어가는 우리들은 차근차근 답안지를 메꾸면서 다가올 삶의 반전을 몸으로, 마음으로 만끽하게 될 거다. 올 봄에도 필경 그토록 바라던 기회가 선물처럼 펄펄 내려올 거다.

겨울 얼음나라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심장에 봄의 햇살처럼 따스한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면, 온 누리에 퍼져나갈 우아한 향기와 달콤한 소리들로 세상은 활짝 피어날 거다. 그게 바로 우리의 봄이다.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마다 다시 돌아와 우리를 보듬어주는, 그렇게 잠자던 우리의 소망과 꿈을 일깨워주는, 우리 모두의 봄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성큼 도달했다. 세상천지에 봄이 서서히 깔리고 있다. 지천으로.

1998년 ‘경북 안동’ 택지 개발 현장. 분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잘 보존된 유골과 함께 ‘원이 아버님께..’로 시작하는 한글 편지가 한 장 발견되었었다. 다음은 ‘원이 엄마’의 편지 내용 일부다.
① 당신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그런데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셨나요?
② “여보,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 같을까요?” 라고 당신에게 말하곤 했는데,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③ 이런 천지가 온통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있을 뿐이니 아무래도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④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말해주세요. 꿈 속에서 이 편지 보신 말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써서 넣습니다. 이 편지를 보시고 제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저는 꿈에서 당신 볼 것을 믿고 있나이다. 몰래 와 보소서. - 병술(1586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아내가 -

이 글의 남편은 어린 아들 원이와 임신한 아내를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응태’(1556~1586)로 확인되었다. 종이가 귀했던 당시 아내는 떠나는 남편에게 주려고 여백까지 빼곡하게 채워 글을 썼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애절함과 원망, 꿈에서라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아내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배어난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이 편지는 원이 엄마의 간절한 사랑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수신인은 이미 망자가 되었으니 400년 후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 이 편지는 아마도 글쓴이 외에는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것을 알면서 죽지 않을 것처럼 열심히 살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이별할 것을 알면서도 영원할 것처럼 열심히 사랑한다.

그래도 그게 더 좋다. 끝이 있다고 미래를 염려한 나머지 오늘 사랑하지 않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이다. 400년 전에 편지 한 장이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건 당시를 살아가던 그들의 사랑이 너무도 애절하고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원할 것처럼 열심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랑하자. 영원할 것처럼, 열심히, 진실하게... 이것이 필자가 봄의 목전에서 던지는 화두다. “만일 내가 사랑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당신 때문입니다.” 라는 세계적인 작가 ‘헤르만 헤세’가 우리에게 던졌던 멧세지를 얹어서.

오래전 지인에게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가 부도가 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살리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엄청난 빚만 더 생기게 되었다. 추운 겨울날, 그는 한동안 동생, 어머니와 쪽방이라는 곳에서 밤을 보내야 했고, 아버지는 가족들만 방에 재워놓고, 본인은 차디찬 지하철역에서 노숙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인력시장에 나가 밤 10시까지 일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돌아오는 기막힌 생활을 하면서도 그의 아버지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어느 날 식구들과 모여 식사하면서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어두운 터널 안에 있지만, 터널이란 것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다.” 가족들에게 다짐과 포부를 밝히면서 아버지는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냄새나고, 한심해 보이는 노숙인이었겠지만, 아버지는 지하철 콘크리트에서 신문지 깔고 잠을 주무시면서도, 가족들에게는 쪽방을 내어주시던 가장이었다. 아버지의 말처럼 청년과 가족들은 어려운 시절을 지나게 되었으며, 다시 남들처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인생은 터널이다. 조금 길고, 어둡더라도 끝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

어렵지만 오늘도 힘내자. 그러라고 봄이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장벽이 서 있는 것은 막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 거기 서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벽 그 자체는 어떤 단절이나 막힘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을 대하고 바라보는 우리가 스스로 좌절하고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자연히 결과도 따라서 그렇게 맺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인과는 인지상정이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3천 안타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운 ‘장훈’ 선수는 수많은 차별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한 일화로 유명하다. 귀화를 거부하는 장훈 선수에게 일본인들은 물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장훈 선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한국인임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장훈 선수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민족애를 가진 어머님 ‘박순분’ 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귀화 문제로 잠시 흔들리는 아들을 향해 크게 호통치셨다. “편하게 살자고 조국을 버리는 그따위 짓을 하려거든 당장 야구를 때려치우고 가족에게 돌아와라!” 일본인들은 이런 장훈 선수를 미워하고 인정해주지 않았다. 자기 뿌리에 대한 자존감을 세웠기 때문이다.

어느날 경기중 장훈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관중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센진은 돌아가라.’는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한두 사람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관중석 전체에서 울려댔고, 결국 장훈 선수는 배트를 내려놓고 다시 대기석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관중석이 잠잠해지자 다시 타석에 들어선 장훈 선수는 크게 말했다. “나는 조선인입니다. 그런데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그러고는 날아오는 공을 향해 힘차게 배트를 날렸다. 그 순간 관중석의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기막힌 장외홈런이 터진 것이다. 지금, 여러분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있는가?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응어리를 향해 시원한 장외홈런을 날려보자. 그 자리에 당당한 나 만이 남을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의 열등감에 관심이 없다. 우리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좋은 집에 사는지, 못 사는지, 우리의 직업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다.

그러니 열등감 따위는 떨쳐내고, 어느 순간에나 당당하자. 그리고 보란 듯이 세상을 향해 나를 외치자. 그들이 당신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당신이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하는가이다. 지금 주위의 여건이나 환경이 당신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금 당신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문제점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지 말자.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 이 봄을 대하기에 부끄러움 없도록,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짓밟는 폭거를 저지르지는 말자. 자기 발로 자신의 기회를 짓밟는 잔인한 삶의 태도는 절대 보여서는 안된다.

설사 불가능에 가까워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누구나 속단할지라도, 나는 해낼 수 있다는 결의로 도전하면 필경 기적과도 같은 결론을 얻어낼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리고 불변의 진리다.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우리는 기억한다. 엄마의 심부름을 갔던 초등학생 ‘알리’는 그만 여동생 ‘자라’의 하나뿐인 구두를 잃어버리고 만다. 동생은 오전반, 오빠는 오후반. 결국, 알리의 운동화 한 켤례를 번갈아 같이 신게 된 남매는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고, 학교에도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슬아슬한 달리기를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 마라톤 대회’ 3등 상품이 운동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알리는, 1등도 2등도 아닌 기필코 3등을 차지해 여동생 자라에게 새 운동화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하는데... 과연 이 남매는 새 운동화를 가질 수 있을까? 무공해 청정 남매의 가장 특별한 달리기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정화해주었던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희망과 꿈을 읽을 수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에드워드’는 그 말에서 위안을 얻었어요. 그래서 혼자 그 말을 중얼거렸죠.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빛나는 별처럼.’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빛나는 별처럼.’ 계속해서 되풀이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밝았답니다.” 이는 ‘케이트 디카밀로’가 지은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빛나는 별처럼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누군가에겐 절망 속 한 줄기의 희망이 되고 싶고, 또 누군가에겐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봄을 맞이하자. 어쩌면 그것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향한 손짓이 되고, 우리 스스로를 살아나게 만드는 생명의 손길이 되어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향해 내민 손이 자신을 되살리는 새로운 꿈으로 피어날 것이다. 알 수 없는 신비한 비밀이 봄 속에 꽉 차 있다. 그걸 하나씩 캐내는 가슴떨림으로 봄을 살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나무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성취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눈을 감고, 바로 앞에 있는 것조차도 만지지 못하면서 속단하고 간주하고 체념하는, 패배의 윤회만 반복하는 어리석음에서 얼른 벗어나자. 그저 믿음과 도전정신으로 따면 될 것을, 그 열매의 달콤하고 영양가 높은 맛을 음미만 하면 되는 것을, 어째서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그냥 버려두려 하는가?

‘아인슈타인’은 학창시절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너는 뭘 하든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비틀즈’는 처음 오디션을 봤던 레코드사로부터 “그들의 사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쇼비즈니스 업계 내에서 그들에게는 장래가 없다.” 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월트 디즈니’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없다.”는 이유로 신문사에서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 사고로, 그리고 긍정적 자신감으로 도전하였다.훗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과 같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가 되었다. 비틀즈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최고의 밴드가 되었다. 월트 디즈니는 세계적인 만화영화 제작자로 명성을 쌓았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좌절하거나 얽매이기만 했다면 그들은 그만한 성공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훗날 어떤 사람이 될지, 무엇을 해낼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물론 아무나 이룰 수 없는 것이 성공이고, 누구에게나 성취의 문이 열려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불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게 기회라는 선택의 문이다. 자신감, 희망을 위한 도전! 이에, 늦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나 이룰 수 있다.

조선 ‘정조대왕’ 시절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훌륭한 ‘법사스님’이 계셨다. 그 법사스님은 아주 핏덩이일 때 추운 겨울날 양산 통도사의 일주문 앞에, 보에 쌓여 놓여 있었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스님 한 분이 통도사로 데리고 와 절에서 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통도사 일주문 앞에 놓이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날 젊은 부인이 한 사람 찾아와 주지스님을 친견하였는데, 그 때 갓난아이를 보듬고 왔었다.

그 젊은 보살이 주지스님에게 말하기를 “스님, 제가 이 절에서 무슨 일이든지 다하겠습니다.공양주도 잘할 수 있습니다. 이 엄동설한에 우리 모자는 굶어 죽지 않으면, 눈 속에 얼어죽을 것 같으니 해동을 할 때까지 만이라도 제가 여기서 일을 하면서 이 갓난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주지스님은 ‘대중 공사(사찰에서 말하는 일종의 재판같은 회의를 말함)’를 모든 대중이 모인 데서 붙였다.

그 때의 결론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사부 대중이 많은 이 사찰에 살면서 헛소문 만들기 좋아 하는 자들로 인하여 어떤 불미스런 헛소문이 날 지를 모른다. 젊은 스님 누군가와 눈이 맞아 애를 낳았다느니, 아니면 젊다 보니 앞으로 어떤 스님과의 연분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보살은 통도사를 빠져 나오다가, 눈이 오는데 갓난아이를 일주문 옆에 두고서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다른 스님이 지나다 데리고 와서 키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신통한지, 스님들이 법문을 하실라 치면 늘 앞에 정좌하고 앉아서 요지부동, 듣는 즉시 외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이 18세에 법명을 받아 훌륭한 법사스님이 되었다. 그리고 그 스님이 법문을 하실 때면 사방 천지에서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날도 법사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을 때 법문을 듣고 있던 어떤 노보살이 혼자말로 “대체 저 법사스님의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 어떤 분이 어머니이시길래 아들을 저리도 훌륭하게 잘 키우셨을까?”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 때 옆에 앉아있던 한 보살이“예, 실은 제가 저 법사스님의 에미입니다.” 그 한 마디가 순식간에 법당 안과 도량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쫙 퍼졌다. 마침내는 법사스님도 법문을 하면서 듣게 되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법사스님이 그 어머니라는 사람에게 좀 기다리라 하고는, 모든 사부대중을 불러놓고 의논을 하였다. “지금 저기에는 내 어머니라는 보살이 와있는데, 모든 스님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제가 만나뵈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아니, 그 엄동설한에 눈까지 오는데 죽으라고 일주문 앞에 두고 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훌륭한 법사스님이 되시니까 내 아들이네 하고 자랑을 하는 것이 어디 에미된 도리입니까? 그런 사람이라면 불러서 혼을 내주고, 두 번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중공사가 그렇게 결정이 나자 법사스님이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을 들어오게 하여서 마주 앉아 하는 말, “정말 그대가 내 어머니가 맞소?” “예, 제가 예전에 일주문에다 두고 갔었지요.”
“됐오. 그러면 이제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들이라고도 하지 말고, 또 그대가 법사스님의 어머니이네 하는 말도 마시오. 죽으라고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내 아들이네 하는 것은 무슨 심보요? 그러니 앞으로는 내 법문을 들으러 오는 것은 좋으나, 절대로 어디 가서 법사스님이 내 아들이란 소리는 마시고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는 체도 마시구려.” 그러면서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그 무렵 정조대왕의 귀에도, 양산의 통도사에는 아주 훌륭한 법사스님이 있는데 그 스님이 법문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소문이 들리게 되었다. 정조대왕이 “그럼 그토록 훌륭한 법사스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있을테니 양산으로 내려가서 그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시요.” 어명을 받고 양산 통도사를 다녀온 신하들이 자초지종을 모두 고하자 정조대왕이 법사스님에게 편지 한 통을 전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여도, 그 어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만큼이나 하리오? 내가 듣기로는 그 추운 겨울에 스님을 버렸다 하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구려. 둘이 같이 다니면 얼어죽고 배고파 죽게 생겼으니, 파리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은 자식을 여기 두고 가도 분명 살려주었으면 주었지, 어찌 산 생명을 죽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하는 생각 으로 두고 간 것이지 절대로 죽으라고 버리고 간 것이 아닙니다.”

이 편지를 받아든 법사스님, 갑자기 오늘이 아니면 그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수소문 해 어머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해가 거의 질 무렵 한 마을에 이르러 한 채 뿐인 집에 들어가서 묻기를 “혹시 이러 저러한 노보살이 이 부근에 사시는지 모르시오?” 그러자 그 집 노인이 나와서 언덕 밑 집 한 채를 가리키며 “저기 저 집인데 오늘은 불이 켜 있지가 않군요. 불이 켜있으면 그 노인네가 살아있는 것이고, 불이 꺼졌다면 약방에 갔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오.”

법사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호롱불을 하나 빌려 숨이 목에 차도록 뛰어갔다. 집에 당도하니
인기척이 없어 법사스님이 주인을 불러본다. “주인장 계시오?” 대답이 없자 법사스님이 토방을 올라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분명 누군가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롱불을 들고 다가가서 이불을 젖히니 어머니가 거의 죽어가는 모습으로 누워있는데, 머리맡에는 언제 먹었던 죽 그릇인지는 몰라도,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고, 방안은 냉기가 흐르고 입에서는 입김이 솟아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법사스님이 “어머니!” 하고 부르자 가물가물 죽어가던 어머니가 희미한 정신으로 “뉘시요? 뉘시길래 나보고 어머니라 하시오? 그 호롱불로 얼굴 좀 비쳐보구려.” 그 때 법사스님이 호롱불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자 어머니가 하시는 말, “이제 되었오. 어서 양산 통도사로 빨리 가시어 더 많은 법문으로 대중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디 훌륭한 스님이 되시구려. 이제 나는 내 마지막 소원을 풀었구려. 어머니라는 그 말 한 마디 못듣고 죽을 줄 알었었는데...”

법사스님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머니를 들쳐 업고는 통도사로 뛰기 시작했다. 통도사에 도착한 법사스님이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들여 미음을 쑤고 약을 다려 그 어머니를 살렸고, 그렇게 지내던 어머니가 양산 통도사에 온지 3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뜨셨다. 그 때 법사스님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 49제를 드리는데 법문을 한 곡조 올린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귀한 부자인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궁한 가난인가?
부모님이 살았을 때 가장 귀한 부자이고, 부모님이 안 계시니 가장 궁한 가난일세.
어머님이 살았을 땐 밝은 낮과 같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해가 저문 밤과 같네.
어머님이 살았을 땐 마음 든든하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온 세상이 텅 비었네.”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도, 그 어떤 권력이나 황금도, 엄청난 명예나 이력도, 돌아보면 한 줌 스러지는 티끌이다. 사랑과 용서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허접쓰레기다. 사랑 앞에 겸손하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덧없는 감정과 지식들을 덮자. 그리고 다시 거듭나자. 저기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오기 전에 얼른 마음을 다스리자. 그리고 다시 태어나자. 내 부모를, 내 자식을, 내 가족을, 내 이웃을, 내가 속해있는 이 사회를, 이 나라를, 이 세상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나’가 되자. 그렇게 봄의 주인공이 되어보자. 바야흐로 봄이 오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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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기 전에 얼른
상큼하고 멋진 겨울 추억 하나 쯤은
장만해 놓아야겠다.

우울한 하늘 눈물로 비 뿌리고
움터 오르는 욕망
먼 나라에서 온 리포터로
낯설은 향기 주절대려 하는데,

이 짧은 겨울은
꿈 한번 제대로 심어주지도 못한 채
어찌 이리도 빨리 지나치려 하는가 ?

접동새 울어예는 느티나무 언덕 우로
분위기 있는 노래
잔잔하게 깔리어가면,

아련한듯 쓸쓸한 연가
너무나도 감동적으로 온 몸에 젖어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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