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미개오(轉迷開悟) 성찰 " 詩作 note

필자는 연초에 지면을 통해서, 갑오년(甲午年) 새 해를 맞이해 한국 대학 교수들이 희망메세지로 선정한 사자성어(四字聖語) ‘전미개오(轉迷開悟)’에 관하여 화두를 던지면서, 사견을 피력했던 적이 있었다.

‘미망(迷妄)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으로서, 이는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佛敎)의 용어(用語)이며, ‘국민을 얕보지 않도록 국민 스스로 성숙하기 위해 노력하고, 거짓과 진실의 혼돈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거짓과 허황됨에 속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온통 허점 투성이요, 허무맹랑한 성적표였다. 허둥지둥 한 해를 살아오긴 했는데 도무지 어떻게 살았는지 조리있게 말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으니 난감할 따름이다. 미상불 하늘 보기가 부끄럽고,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머리통을 처박고 싶은 심정이다.

역사상 가장 큰 참사로 기록된 올 해 세월호의 사건 이후, 대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방법론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보여준 계층 간, 국민 간에 골 깊은 갈등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적나라하게 대변하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오래된 격언으로 ‘무(無)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원인을 계속 좇다보면 무한소급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잘났든 못났든 변명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변명과 탓으로만 일관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낀 실망과 분노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흔적으로 남겨졌다.

이미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전미개오’에 대하여 가타부타 따지고 싶지는 않다.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우리 사는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위정자들이나 사회지도층의 인사들에게 종주먹을 들이대고픈 마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돌이켜볼 것은 두 눈 크게 뜨고 철저하게 돌아봄으로써,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거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되겠기에 부득이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올 해 완전히 실패했다. 도덕으로부터 외면당했고, 윤리로부터 내몰렸으며, 정의에게서 소외당했다. 한 마디로 비참한 성적을 거두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한숨과 탄식소리가 넘쳐흐른다. 그러고나니 스스로 거울을 봐도 꼴이 말이 아니다.

곧 올 해가 저물고 새 해를 맞을 것이다. 새 해의 의미는 특별하다. 새 달력을 보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의 경계선에 선다. 지난 한 해를 과거로 돌리고 싶어 하고, 새 해는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세상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겐 현재가 없다. 미래가 꿈이다.

닭이 운다고 새벽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새 달력은 힘차게 울어주는 닭과 같다. 그만큼 달력은 사람들에겐 매력 있는 시간의 척도이다. 따라서 한 해를 힘들게 보낸 사람일수록 새 해의 시작은 각별하다. 여러가지 면에서 올 한 해가 특히 힘들었다고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도 지금은 각별한 새 해를 준비해야 한다.

정부도 보신각의 타종 행사에 몰입하기 보다는, 타종 소리 하나하나에 국민 통합을 위한 실천 계획을 국민 앞에 고해야 한다. 정치에 왕도는 없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정의 리더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국민의 미래, 자신의 가문과 혈통이 아니라 국가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위정자의 길이고 도덕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하는 이유는 풍자의 의미도 있겠으나 반성과 교훈의 시간을 갖자는 취지인데, 더 이상 진전 없는 우리 사회의 현 사태가 너무나도 안타깝다. 후진국적 안전사고의 답습, 국민과의 소통 부재, 퇴행적 정책인사 등이 답답했던 과거로의 시계바늘을 돌려놓은 듯 ‘도행역시’하고 있다.

교수신문은 정초에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사자성어도 짚었었다. ‘차례(次例)를 거꾸로 시행(施行)한다’는 의미로, 곧 ‘도리(道理)에 순종(順從)하지 않고 일을 행(行)하며, 상도(常道)를 벗어나서 일을 억지로 함’을 뜻하는 표현이다.

중국의 사기 ‘오자서열전’에서 유래하는 말인데 친구인 ‘신포서’에게 한 말이 그 근원이다. 어떠한 일을 다급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설 때, 흔히 사람들은 순리를 거스르고 거꾸로 행하는 우를 저지르게 된다.

올 해 벌어졌던 각종 사건사고들과, 불미스러웠던 제반 정치적, 경제적 사안들이 급하게 마무리되어지는 과정 중에 우리가 자주 겪었던 형태를 보면, 정말 목불인견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장난 같은 결과들이 비일비재하게 돌출되어졌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어트’가 연작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새 싹의 움틈을 고통으로 비유하였다지만 우리에게 4월은 눈 덮인 마을에서 푸르름이 솟아나는 평화로운 아지랑이의 시기였다. 2014년 4월 16일의, 있어서는 안될 참혹한 사건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는 사라져야 할 안전 불감증, 탁상 행정, 관피아라는 단어들을 더 이상 듣지 않으면 좋으련만 매스컴을 채우는 키워드는 아직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악취들 뿐이다. 이쯤 되면 국민들은 안 좋은 소식은 회피하려고 만사에 무관심하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책 결정자는 총명(聰明)해야 한다. 독단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360도 듣는 ‘귀밝을 총(聰)’이 앞만 보는 ‘눈밝을 명(明)’보다 앞에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올 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누리꾼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각종 차트에서 집계한 것을 보면 전 분야에서 1위를 석권한 책은 미디어셀러로 재인기를 얻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었다. 이는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인데 기자와 PD로 오랜 세월 일해 온 작가의 늦깎이 데뷔작인 이 소설은, 1905년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살아온 백 년의 세월을 코믹하고도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다.

우리는 살다 보면 도망이 아니더라도, 창문을 넘어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적인 이유를 에둘러대며, 이상을 꿈꾼 자신을 향해 헛헛한 웃음을 지어 볼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찾아온 100세의 노인 '알란 칼손'은 용감하게도 창문을 넘어 현실로부터 과감하게 도망쳤다.

그 결과 시골뜨기로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생을 살게 된다. 그저 ‘검둥이’를 한 번 보고 싶어 고향을 떠난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장군’의 목숨을 구하는가 하면, 미국 과학자들에게 핵폭탄 제조의 결정적 단서를 주고, ‘마오쩌둥’의 아내를 위기에서 건져 내고, ‘스탈린’에게 밉보여 블라디보스토크로 노역을 갔다가 북한으로 탈출해 ‘김일성’과 어린 ‘김정일’을 만나기도 한다.

급변하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 주인공의 활약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계속되는 우연과 과장스러운 설정이 때로는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 속에서도 어느새 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 종교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게 되는, 가볍게 읽히지만 여운은 묵직한 작품이다.

예컨대 답답하고 꽉 막힌 현실의 굴레 속에서 직접 탈출하지는 못하지만 일탈과 변화를 꿈꾸는, 불쌍하고 처량한 현대인들의 대리만족을 장쾌하게 그려낸 상상의 세계라서 인기를 끈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오늘도 어제처럼 별다른 소망이나 큰 기대가 없더라도, 웃으면서 만족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갑갑한 굴레의 생활일지라도, 그런대로 적응하면서, 또 다른 내일의 내일을 기다리며 소박한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현실이라고 믿는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 자신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며,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라고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내가 빛이 나면 내 인생은 화려하고, 내가 사랑하면 내 인생은 행복이 넘치며, 내가 유쾌하면 내 인생엔 웃음꽃이 필 것이라고 믿는다.

매일 똑같이 원망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면, 내 인생은 지옥이 될 것이다.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바로 내 인생이 있고, 내 행복이 있다. “화내도 하루” “웃어도 하루”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 하루”이니 기왕이면 불평 대신에 감사를, 부정 대신에 긍정을 영원한 삶의 지표로 삼고 그렇게 산다.

12월 저무는 달, 올해 마지막 남은 날들 위에 건강과 행운이 모두에게 가득하길 바라면서, 그리고 그런 바람으로 새해도 맞이할 수 있기를 절실하게 염원하면서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