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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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기야의 기도 *



시작노트

" 히스기야의 기도 " 詩作 note

여간해서는 안올 것 같던 봄이 하마 요 앞으로 와섰다. 조금은 부끄러운 몸짓으로, 자리에 없는 척, 온 게 아닌 척, 슬며시 그 자태를 드러낸다. 방방곡곡 도처에서 어쩐지 야릇한 냄새를 풍기면서 우리를 손짓한다, 봄이.

그렇구나, 봄이로구나, 봄. 생명 갖고 있는 삼라만상이라면 누구나 환희로워지는 계절 봄. 모든 것이 생동하고 상큼한 꿈으로 피어나는 신록의 계절 봄이 바야흐로 흐드러지기 시작이다. 어둡던 몸과 마음에 새 빛을 흠씬 심어주면서, 봄은 우리 깊은 속으로 슬그머니 똬리를 틀 채비 갖추고 들어왔다.

사실 올 겨울은 예년에 비해 그리 큰 추위 없이 지난 듯 하다. 지방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폭설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겨울 가뭄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다보니 갈라지는 강바닥을 전국에 분포하면서 메마른 바람만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다보니 소대한에도 변변한 엄동설한을 느끼지 못했고, 급기야 이즈음에 와서는 별다른 꽃샘 추위도 맛볼 새가 없이 봄을 맞은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아주 조금 남은 겨울 부스러기가 별리가 못내 아쉬운 듯, 그 마지막 기운을 모두어 짐짓 힘깨나 쓰려고 진저리를 치고는 있다. 그래봤자 이렇게 잠깐만 ‘밀당’을 하다보면 놈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 말이다.

살짝 덜 익은 봄, 그 속살을 보여줄 듯 말 듯 애태우는 ‘밀당’, 남녀가 연애를 하는 중에, 혹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벌어지는 심리전, ‘밀고 당기기’ 기술이 ‘밀당’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상대를 흔들기 위해 잠시 연락을 끊는다거나, 만나자고 하면 마음은 굴뚝이어도 일부러 거절한다거나, 여러 방식으로 상대의 애를 태워서 주도권을 키우는 연애신공을 말한다. 사람과 밀당을 한다 해도 어렵다만, 하물며 자연과의 밀당이라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 밀당을 계절끼리 하고 있다. 우리가 알 바 없다.

옛사람들은 “삼한사온(三寒四溫)이면 풍년, 이상난동(異常暖冬)이면 흉년”이라며 겨울 추위로 이듬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한다. 또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야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풍년이 든다는 말은 일종의 상식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히려 서민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던 춥지 않은 겨울이 도리어 농사에는 우려를 심어줄 수도 있으니, 세상사는 역시 반대급부적인 양면의 대립과 상대성 이론의 존재이유가 확실하게 설명되는 것 같다.

겨울 추위 외에도 농사의 풍흉을 알리는 지표로 손꼽히는 것이 겨울의 끝무렵에 피어나는 풍년화이다. 봄이 오기 전, 마른 껍질을 뚫고 가지 겨드랑이마다 가늘고 길게 갈래진 노란 꽃잎을 가득 피워내는 풍년화는, 무채색의 계절에 가장 반가운 손님 중 하나이다. 게다가 풍년화가 만개하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까지 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눈이 많이 내려 비교적 기온이 따뜻해지면, 그만큼 겨우내 마른 땅에 물이 풍부해져 가지에 꽃잎이 풍성하게 매달릴 테니, 풍년화로 풍흉을 점치는 것도 과히 틀린 방법은 아닌 듯 하다.
사실 풍년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풍년화는 일본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지난 1923년 ‘서울임업시험장’에 처음 시집을 왔다고 한다. 언어와 문화권이 다르면 같은 꽃이어도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서도 풍년화를 풍작을 의미하는 ‘만사쿠(作)’로 부른다고 한다. 농경문화권인 양국 사람들이 풍년화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가지를 가득 채운 노란 꽃잎을 바라보면 절로 풍년이 들 것 같은 예감이 드니 말이다. 또한 풍년화의 수피(樹皮)와 잎에서 추출한 성분은 천연 항균 재료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풍년화보다 ‘위치하젤(Witch Hazel)’이라고 부르면 조금 익숙하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우리 주변의 물티슈에서 많이 본 기억이 있다.

겨울의 긴 질곡을 거슬러 올해는 유난히 풍년화 개화 소식이 많이 들려왔었다. 봄을 알리는 많은 꽃들 중에서도 유난히 반가운 풍년화의 노란 꽃잎을 작은 횃불로 삼아 우리는 함께 매서운 겨울을 건너왔다. 그래서 선뜻 다가선 이 봄은 더 따뜻하고 밝은 거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행복과 꿈을 간절하도록 기다리는 서민들이니까.

필자가 즐겨 찾는 치악산의 입산코스 중 하나인 ‘황골’ 루트에서 비로봉인 ‘시루봉’ 쪽으로 약간의 경사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입석사’라는 절을 만나게 된다. 경내에 서서 바라볼 때 허락되는 시야만으로 올려다보이는 산은, 기존의 치악산과는 별개의 산인 양 조금은 다른 얼굴로 그 위용을 자랑한다. 산 정상 주변이 온통 뾰족뾰족한 바위 봉우리로 덮인 산이다. 바위기둥들이 왕관의 모양을 닮았다 해서 근동의 사람들에게 일명 ‘왕산’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이다.

가을이면 정상 능선으로 펼쳐진 억새 무리가 장관을 이뤄 산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 산 북서쪽 자락에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울창하게 우거진 사철 푸른 동백나무숲이 숨어서 등산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운이 좋은 산행객들은 조금만 걷다보면 힘들이지 않고, 왼쪽으로 움푹 꺼진 골짜기에 가득 들어찬 동백나무 무리를 바로 만날 수 있다. 이곳 동백꽃의 본격 개화 시기는 다른 지역보다 늦은 3~4월이지만, 이미 몇몇 나무들은 2월 초순부터 빨간 꽃봉오리를 열고 탐방객을 맞아준다.

지난 주말 아침, 큰 맘 먹고 찾은 필자에게 이 동백숲은 밤새 흩뿌린 눈에 덮여 흑백 풍경화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일부 꽃잎을 연 동백은 흰 눈을 뒤집어쓴 채 추위를 견디는 모습이었다. 비록 활짝 핀 동백꽃 무리를 만날 수는 없지만, 짙푸르게 반짝이는 동백나무 잎들과 함께 살포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붉은 꽃송이들에서, 실질적이며 본격적인 봄이 머지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다리를 풀면서 슬슬 필자의 봄을 맞을 준비를 해봤다. 싱그러운 동백나무 숲을 거닐고, 이내 다다른 정상에서 유려한 운해 굽어보면, 폐부에 각인된 겨울 흔적들이 하나둘 떨어진다. 빈 자리는 상쾌한 봄바람, 천연한 산바람으로 채운다. 치악산 자락에서라면 너끈히 이렇게 할 수 있다. 천천히 계절이 교차하는 그 땅의 풍경이 참 고즈넉했다.

머쟎아 진면목을 드러낼, 필경 봄 풍경 예사롭지 않은 곳이 여기다. 온갖 나무들마다 새순 돋고, 여린 이파리마다 빛 조각들 오글거리면, 그 모습 어찌나 화사한지, 그 때 되면 이 절은 속세가 아닌 선계의 풍경이 된다. 이제 눈이 호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때를 위해 이 절은 꼭 기억해 둔다.

봄은 눈부시게 화려하고, 겨울 끝자락은 헛헛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가슴 먹먹하지 않은, 기분 좋은 공허였다. 텅 비었지만, 마음 꽉 채워주는 풍경은 이 무렵 산사가 주는 선물이다. 여기서는 빈 틈 없이 황홀한 추억의 시가 줄줄이 만들어진다. 이거 느끼려면 사위 한갓진 지금, 미리 산사 한두 군데 쯤은 마음으로 예약해두어야 한다.

입석사는 시내의 흔적이 묻어나는 상가 단지가 끝난 즈음부터 걸으면서 재보면 실제 거리는 불과 3km 남짓, 쉬엄쉬엄 걸어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한 거리 두고 번갈아 나타나니 길은 지루할 틈이 없다. 길 따라 중간에는 소나무 숲이 참 울창하다.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이도 장관이다.

사람들, 봄 되면 꽃에 환장한다. 이름난 꽃밭은 그래서 늘 북적인다. 이럴 때 차라리 나무 보러 가는 것이 낫다. 볕 고우면 나무들, 꽃 못지않게 싱그럽다. 바람결 따라 휘어진 이곳 나무들 자태가 기이하고 또 아름답다. 바람이 나무를 조각했다. 물론 꽃이 그 배경으로 깔려야 깔끔한 제 맛은 한결 더해진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어김없이 피어나서 그 모습을 보여주는 꽃은 왠지 다른 계절의 꽃보다도 더 아름다워 보인다. 며칠 후면 차도에 한가득 필 노란 개나리도, 산책로에 팝콘처럼 필 벚꽃도 왠지 “나, 살아있었어.”라는 나무의 외침 같다. 어쩜 봄만 되면 일제히 꽃이 필까? 분명 봄과 가을은 기온이 비슷한데, 유독 봄이 온 걸 어떻게 알아내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봄과 가을에 피는 꽃은 분명 다르다. 개나리, 벚꽃나무,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 같은 과실수는 봄에 꽃을 피운다. 코스모스, 국화, 분꽃은 가을에 핀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고,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을 때 꽃을 피우는 정교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식물 연구자들에게 개화 메커니즘은 오래 전부터 큰 관심거리였다.

겨울 내내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던 나무들이 사실 꾸준히 주변을 살피고, 수많은 물질들을 만들며 개화를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면 새삼 생명활동의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물론 오늘날에는 충분히 발전된 생명공학의 수준으로, 개화에 관여하는 분자 수준의 축적된 연구 결과들로, 개화시기를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나 장기적인 기후 변화로 인해 적절한 개화시기를 놓칠 경우, 뒤따르는 작물 생산 피해를 줄이는 데에 효과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올 해도 기상청에서는 봄꽃 개화 시기를 발표했지만, 발표보다 열흘 이상 빨리 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한 고온 현상으로 봄과 가을이 짧아져 봄꽃 개화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설레는 마음에 야외로 소풍가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생긴다면, 판에 박은 예측이나 과학적 근거를 분석하여 봄꽃을 바라보는 기계적인 마인드와 시선은 걷어치워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면 옷차림새를 제법 단촐하게 바꿔입고, 신선하고 상큼한 봄을 맛보면서 소풍길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솔솔 피어나게 됨은 억누르기 힘든 유혹일 것이다. 그렇게 조금쯤은 잠시동안의 일탈에라도 젖어들고 싶은 심정이 생겨나는 것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서 느낄 수 있는 인지상정이리라.

허기사 무작정 걷기에 이만한 계절이 있을까? 천천히 걷다보면 만물이 생동하는 내음이 절로 다가온다. 눈을 크게 뜨지 않고 코를 벌름거리지 않아도, 시각과 후각을 일깨우는 풍경이 지천이다. 걸으며 보고, 잠시 머물다 배를 채우고 놀만 한, 생기 충만한 곳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예가 금수강산 아닌가?

어느 시인은 봄은 고양이 같다고 했다. 고양이처럼 경쾌하고 눈부신 봄에라면 걷기 좋은 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보면 어떨까? 때로는 경쾌하게 콧노래를 부르며 걷거나, 삶에 대한 사색을 하며 천천히 걸어도 좋다. 그러다 보면 길의 역사가 보이고, 삶의 길이 보일 테니까.

봄을 맞이하면서 들뜨고 설레기는 비단 우리나라 만의 일은 아니다. 전 세계의 봄은 모두가 화사하고 찬란하며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아마도 그게 가장 대표적인 봄의 매력일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봄바람은 봄바람을 부르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중국에서는 최대 명절인 ‘춘절’ 연휴(4일~3월16일까지)를 맞이하여 바야흐로 귀성인파로 붐비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고, 미국 곳곳에서는 다람쥣과인 마멋을 통해 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아보는 '그라운드 호그데이' 행사가 이미 화려하게 열렸으며, 일본에서는 ‘마메마키(콩뿌리기)’ 행사가 열려 복을 받으려는 많은 시민들이 신사에 몰렸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봄을 시샘하는 겨울여왕은 아직 곳곳에서 눈을 뿌렸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시카고’는 2월 적설량으로는 가장 많은 48cm이상의 폭설이 내려 ‘오헤어 공항’의 통제로 미국 전역에서 3천 편 이상의 항공기가 결항되는 등 여전히 겨울속에 머물러 있다.

한편 미시간 주 ‘워렌’에 본사를 둔 가구 체인 ‘아트 밴 퍼니쳐’(Art Van Furniture)가 '2월 첫날 눈이 오면 공짜'라는 프로모션을 걸었다가 가구값과 배송료 등 240만 달러(약 27억 원)를 고객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게 돼 행사에 참여한 고객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이처럼 봄이라서 벌어지는 각종 해프닝과 축제들이 도처에서 성황리에 이어지고 있고, 예상치 못했던 기후 이상으로 인해 울고 웃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것이, 지금 이 계절에 보고 들을 수 있는 진풍경이다.

미상불 지금 우리에게는 2015년의 봄이 찾아왔다. 점, 선, 면 의 3차원의 우리들은 공간인 4차원의 세계는 알지를 못한다. 또한 알아서도 안될 것이다. 영원히 감추어져 있어야만, 내일을 위해 작은 희망을 안고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때로는 좌절도, 때로는 성취감도 맛보며 깨달아가야 할 것이다. 어차피 삶이란 깨달음인 것을 진리로 곱씹으면서 말이다.

이제는 목하 완연한 봄이거늘 이 봄에는 자신을 사랑하자.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우리를 사랑하겠는가. 그리고는 타인을 사랑하자. 그들은 우리와 같이 귀한 사람들이다. 또한 어른을 공경하자. 우리도 머지않아 우주의 법칙에 따라 멸할테니까 방심하지 말자. 누구도 늙어지고 사라지는 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어른을 설득시키려 하지 말자. 잘 이해를 시켜드리자. 그래도 끝내 이해를 못한다면 어른의 깨달음의 부족이겠지만 말이다.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거늘.... 그 살아온 삶이 쉽게 바뀌어 지지 않을 테니까 그럼 할 수 없다. 계속 고집을 부린다는 것은 마치 검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어리석음이다.

타인이 아프다고 가볍게 여기거나 혐오하지 말자. 우리도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되고 장애가 올 수 있다. 이렇듯 타인을 혐오하면 우리와 우리의 가족은 그 업보로, 반드시 그와 같은 일을 겪어야만 한다는 걸 명심하자. 가진 것이 없다고 무시하지 말자. 혹 아는가? 어느날 그들에게도 엄청난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잖는가? 우리는 누구든지 공평하게, 올 때도 빈손이요, 갈 때도 빈손인 것을...

위만 바라보지 말자.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편리할 뿐이다. 오히려 그 댓가는 빨리 멸한다는 거다. 그곳에는 욕심과 오만, 권위, 이기심만 가득하다. 웃음과 기쁨, 성취는 낮은 데(없음에)서 이루어진다. 성내지 말자. 웃고 살기에도 부족한 삶이다. 잘 해야 100년은 살까? 살면서 미운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혹여 보게 되면 우리의 마음만 괴로울테니까.

2015년에 찾아온 이 봄에 우리가 꼭 지니고 가야할 것은, 건강한 몸, 사랑하는 마음, 넘치는 웃음, 내일의 희망, 정겨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소중한 우리의 꿈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가진 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다.

창 가에 비추는 따스한 태양.... 우리의 것이다. 산야에 싹트는 푸르른 초목.... 우리의 것이다.
저 푸른 창공.... 우리의 것이다. 푸른 물결, 춤추는 바다.... 우리의 것이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 우리의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숨쉬는 공기....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느낄 수 있는 마음 뿐이다. 우리가 이런 것을 소유하면서 지불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우리가 이런 것을 지켜야할 의무는 있다. 우리 생을 사는 동안 빌려 쓰는 것이니 훗날 돌려줘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곱게 물려줘야 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이며 책임이다.

맞다. 2015년의 봄은 밝고 순수한 마음과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우리들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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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등걸 화르르 피어난
매화,
단아하고 조신한 자태
매화향 가득한 어느날엔
뒤틀린 늙은 몸에서 토해낸
등불,

묵은 계절 뎁히우는 알싸한 바람속
한줄기 따뜻한
봄 내,

살갗 간질이니
들판 논두렁 햇쑥 돋아나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그러고보니 아직은
하늘에서 슬며시 내리쬐는
겨울,

햇살,
그래도 제법 따사로워진 날,
히스기야의 기도 올리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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