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64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2집. 일년이면 삼백예순 날을  


  "2집. 일년이면 삼백예순 날을"
시기적으로는 1집 보다 빠른
1992년 3월3일에 처음으로 인쇄되었는데
교정본 상태로 한동안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2집으로 보시면 됩니다.

훗날 증인출판사에 의해서 재출판되었으며
'내 마음의 의자 위에 살며시 다가앉은
당신을 위한 사랑의 노래'라는
긴 부제를 갖고 있습니다.

'믿음'을 序詩로 하였으며
총 10개의 章에 5편씩,
각 章마다의 내용 순서로는
'사랑하는 이의 밀어', '여러 각도의 밤의 얼굴',
'생활 속의 동심 향기', '변화를 추구하는 일상',
'자학으로 성숙하는 영혼'으로 편집하여
총 51편의 詩로 엮어져 있으며
추가로 8편의 꽁트모음,
그리고 단편소설 '해바라기의 겨울 계곡'을
뒷부분에 같이 실었습니다.

분량 상으로는 많지 않지만
그 구성된 내용 상으로는
종합 쟝르의 選集 성격을 띄고 있는
詩集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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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귀환 *



시작노트

" 세월의 귀환 " 詩作 note

온 나라가 아우성이다.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다. 혼돈의 극치다. 나라 꼴이 왜 이 모양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탈출구도 비상구도 없다. 사방이 꽉 막힌 미로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 노정객의 말 마따나 이러다가는 한 마디로 나라 꼴이 절딴나겠다. 그 똑똑하던 높은 양반들이 잘난 머리통 좀 짜내어 한시 바삐 이 난국을 잠 재워주기만을 학수고대할 뿐이다.

우리같이 힘 없고 빽 없는 민초들이야 무슨 선택권이 있고 어떤 기득권이 있겠는가? 그저 하라는 대로 순종한 죄 밖에 없거늘, 지금에 이르러서 돌아보니 모든 피해는 일반 백성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야 경제는 곤두박질 치는 것이 당연지사요, 사회 혼란이 극에 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모아놓은 재산 많은 높은 분들은 적당히 소비 좀 줄여가면서 페이스 조절하면 되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서민들이나 오갈 데 없는 실업자들은 한 끼니조차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정말 큰 일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 사정은 잘 모르겠다. 여소야대나, 대통령 탄핵이나, 국정 농단이나, 일괄 사퇴 등의 용어들이 난무하는 뉴스판에도 일절 관심이 없다. 단지 배 부르고 등 따시면 국민들은 그게 최상이다. 물가 안정되고 치안 잘 유지되는 사회에서 불안감 없이 살 수 있다면, 설령 좀 부족하고 넉넉지 못하다 하더라도 아무런 불평이나 불만이 없다. 모든 일상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마음은 이미 한참 전에 준비해 놓았다.

어떤 조건이나 단서도 붙이지 않는다. 제발 더 이상 싸움질 좀 하지 말고, 그 힘과 노력을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기울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붉은 무리의 준동도 방비하고, 이제나 저제나 우리 나라를 주워먹으려고 침 흘리고 있는 인근의 강대국들에게도 힘을 보여주고, 못사는 후진국들에게는 품 넓은 아량을 한껏 베풀어주는 의젓한 국력을 보유한 중견국가로서의 위상을 드러낼 수 있게 되기를 또 바랄 뿐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절이 바뀐다 하여도 진리는 변치 않는다. 돌고 도는 세월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진실과 정의의 기운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다. 세월의 귀환 앞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선조들의 꿋꿋하고 깨끗한 기상과 절대적인 지조다. 이걸 망각해서는 결코 안된다. 선조들의 얼과 넋을 잊고서는 어떤 발전이나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의 기대도 가당치 않다. 우리의 숙제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가가 정말 중요한 과제다. 부화뇌동하여 무조건적인 다수의 횡포에 편승해서도 안되고, 고집스럽게 자아를 외치면서 홀로 독선의 길을 걸어가서도 안된다. 중용과 타협과 소통의 마음으로 자신과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수용하고, 양보와 협력과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여 대중들의 나아갈 방향을 똑바로 직시하여 처신하는 자세가 바야흐로 바람직한 처세술이다.

물론 예민한 감정과 개인적인 성향을 천성으로 지닌 사람으로서,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때로는 알면서도 행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미처 자각하지도 못한 사이에 그릇된 행동이 앞서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실수에도 관대하게 대처하는 아량이 필요한 덕목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라 하여 무조건 틀리다고 매도해서도 안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로 모든 문제들을 바라보는 진중함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지금의 이런 상황일수록 가장 절실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완벽한 공식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 최상의 삶의 질이라는 것이, 어떻게 살아야 도달할 수 있는지도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노력하고 또 노력할 뿐이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될 수 있는 공식과 해답을 찾아내기 위한 무한의 여정을,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끝나는 삶의 길일지라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그래서 우리의 길은 시작점은 보이지만 끝은 예단할 수 없는 영원으로 이어진다.

신작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맷 브라운’이 감독하고 ‘데브 파텔’과 ‘제레미 아이언스’가 출연한 2015년 영국의 개봉 영화다. 제목은 ‘무한대를 본 남자 (The Man Who Knew Infinity)’다. 하늘이 내린 수학의 천재와 그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기적을 증명한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영화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수많은 공식들을 세상 밖으로 펼치고 싶었던 인도 빈민가의 수학 천재 ‘라마누잔’과,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영국 왕립협회의 괴짜 수학자 ‘하디 교수’가 주연이다.

엄격한 학교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디교수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라마누잔을 불러들인다. 성격도 가치관도 신앙심도 다르지만 수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 한 두 사람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여긴 위대한 공식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무한대로의 여정을 떠나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역사상 가장 지적인 브로맨스가 이렇게 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을 읽으면서 흐름을 따라가면 영화가 한결 더 흥미롭다.

또한 천대받으며 영국에서 활약하려다가 비운의 죽음을 맞는 주인공의 천재성을 보면서, 영재교육에 대한 정보의 바다를 비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현재 인류는 그가 만든 수학공식으로 블랙홀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역시 천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계급이 있는 나라인 인도, 해외를 나갈 수 없는 신분, 암담한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서 종이 한 장 없이 바닥에 분필을 그려가며 그가 만든 수학적 공식들이, 마치 현대 사회의 얽히고 설킨 미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드는 이유는 뭘까?

물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보여지는 실상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다. 미국의 전설적인 농구 선수 ‘매직 존슨’은 선천적으로 매우 순수하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이러한 기질은 팀이 시합에서 질 때 더 잘 발휘되었다고 한다. 시합에서 지면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패인을 분석하다 보면 선수들끼리 서로 감정적이 되기도 쉽다. 그러면 팀 내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결국엔 다음 번 시합에서도 지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알면서도 고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러나 매직 존슨은 달랐다. 그는 팀이 경기에서 지면 오히려 더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며 팀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막았다. 덕분에 그의 팀은 많은 시합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우울한 마음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까? 아니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까? 훌륭한 리더는 긍정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다.

인생에서 실패의 순간을 맞이할 때에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흐름을 만들어 그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보자. 생각보다 감정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순간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 순간의 에너지가 모든 경계를 넘어 퍼져나갈 것이다.”라고 한 ‘코리타 켄트’의 말을 되새겨 볼 일이다. 비록 음습하고 보기에 따라서 어떤 음모의 냄새까지 짙게 배어나는 오늘의 현실이지만, 우리가 이 상황을 밝고 맑은 가슴으로 열어야 할 또 하나의 까닭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양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호통을 쳤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어르신 잡숫는 물을 왜 흐리고 있느냐?” 그러자 어린 양은 눈을 껌뻑이며 대답했다. “저는 어르신보다 더 아래 있는데 어떻게 물을 흐린단 말씀입니까?” 할 말이 없어진 늑대는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호통을 쳤다. “지금 보니 작년에 날 욕하고 도망간 녀석이 바로 너였구나!”

그러자 이번에도 어린 양은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또 할 말이 없어진 늑대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그렇다면 날 욕한 놈은 네 형이겠구나. 네 놈의 형이 날 욕한 대가로 널 잡아먹을 테니 원망하지 말아라!” 결국, 늑대는 말 같지도 않은 황당한 소리로 어린 양을 잡아 먹어버리고 말았다. ‘라퐁텐’ 우화 ‘늑대와 어린 양’에 나오는 이야기다.

돈, 명예, 권력을 등에 업고 약한 자들을 짓밟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억울하게 잡아먹힌 어린 양들이 많은 세상이다. 무책임한 언론들이 앞장서서 마녀사냥을 조장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선량하고 우매한 국민들은 이러한 선동에 쉽게 휘말린다. 그래서 요즘 세상엔 용자(勇者)가 필요하다. 말 같지 않은 이유로 늑대가 어린 양을 잡아먹으려고 할 때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비교적 정의로운 세상이 되어지지 않을까?

서로 눈치나 보면서, 다른 사람이 나서줄 때만을 기다린다면, 자신은 지금 당장은 움직일 명분도 자신감도 없다고 여기면서, 적당한 타협과 포기를 합리화하는 처세에 물들어 있다면,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비록 작은 힘일망정 지금 나서자. 얼마 안되는 능력이라도 모으고 합력하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전진해보자. 꿈은 절대 너무 멀리에 있는 건 아니다.

‘톨스토이’ 단편선 ‘세 가지 질문’의 이야기다. 내용은, 한 왕이 인생에서 풀지 못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첫 번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두 번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 번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왕은 이 세 가지 질문 때문에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늘 자신이 없었다. 많은 학자와 신하들이 갖가지 해답을 제시하였으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답은 없었다.

급기야 왕은 지혜롭다고 널리 알려진 한 성자를 찾아갔다. 마침 밭을 일구고 있는 그 성자에게 다가가서 이 세 가지 질문을 말했지만 성자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숲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청년이 성자의 집으로 찾아왔다. 왕은 다친 그를 외면할 수 없어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왕에게 가족들이 죽임을 당해 복수하고자 왕을 시해하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궁으로 쳐들어갔다가 병사들에게 걸려 다친 것이었다. 모든 사정을 들은 왕은 그를 용서했다. 왕은 궁으로 돌아가기 전, 성자에게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성자는 이미 답은 나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나에게 중요한 때가 언제인지, 사람은 누구인지, 일은 무엇인지 이제는 고민하지 말자. 바로 지금 하는 일이며, 옆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제 더는 당신이 원했던 것들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시작하자.”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이 우리에게 미소와 행복을 심어주기보다는, 짜증나고 화를 돋구는 일들만 많다는 것도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설사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꽉 막힌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빛나는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소망과 보람으로 빚어진 결실이 주렁주렁 열리는 아람목으로 전개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속단도 금물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스승이 제자와 함께 강으로 산책을 갔는데, 강 둑에 있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자가 금목걸이를 분실했는데, 남자가 질책하자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왜 소리를 지를까요?” 스승이 말했다.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소리를 질러야만 멀어진 상대방에게 자기 말이 가 닿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화가 많이 날수록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두 사람의 가슴은 더 멀어진다.” 스승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남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화를 내며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면 두 사람의 가슴은 더욱 멀어져서, 마침내는 서로에게 죽은 가슴이 된다. 죽은 가슴에겐 아무리 소리쳐 말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더욱 더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이다.”

스승이 이어서 말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랑을 하면 부드럽게 속삭인다. 두 사람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에 큰 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랑이 깊으면 두 가슴의 거리가 사라져 속삭임도 필요 없는 순간이 온다. 두 가슴이 완전히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 없이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를 때와 사랑할 때 일어나는 차이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갈등의 10%는 의견 차이에서 오며, 나머지 90%는 적절치 못한 목소리 억양에서 온다는 통계가 있다. 당신이 1분 동안 화를 내면 60초 동안의 행복을 잃는 것이다. 소리를 지르는 관계는 가슴이 멀어진 관계다. 그래서 자기 말이 들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살면서 한 번쯤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시도도 해보지 않고 그냥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와 함께 자기 합리화에 급급하다. 그러나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어차피 답이 없는 문제란 있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공학의 거장 ‘나폴레온 힐’의 생일날에 있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제자들이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두툼한 사전을 선물하자, 그는 주머니 속에서 펜을 꺼낸 뒤 학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여러분, 이 멋진 선물을 받게 돼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이 사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전 속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불가능’이라는 말을 찾아내서 펜으로 그 부분을 지워버렸다. 그리고나서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자, 이제 이 사전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이 실려 있을 때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까지 불가능이라고 일컬어지던 것들이 실은 불가능하지 않았던 예들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가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수없이 많은 난관과 역경에 부딪치게 된다. 예기치 않았던 고난이나 험난한 인생길에서 좌절이나 포기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순간을 넘기고 도전하면 언젠가 그 당시와는 다른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런 극적인 반전이 있기에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느 백화점의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 고객들의 불평이 컸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느린 게 아니라 본래부터 그렇게 느렸으나, 고객들은 다른 엘리베이터의 빠른 속도에 익숙했기에 불평하는 것이었다. 고객들의 불평이 너무 심해지자 백화점 지배인은 이 문제를 엔지니어인 자문위원회에 문의했고, 자문위원회는 6명의 기술자를 동원해서 분석하고 연구해서 속도 증가에 필요한 대책을 한 달 만에 내놓았다.

그러나 이 보고서를 받은 지배인은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문제는 새로운 장치, 새로운 디자인을 하는데 엄청난 예산이 드는 것이었다. 이 지배인과 친하게 지내며 이 백화점에서 오랫동안 청소일을 해온 한 아주머니가 이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는 지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단 돈 5만원만 주시면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지배인은 좀 어이가 없었지만 워낙 오랫동안 일을 해온 성실한 아주머니셨기에 속는 셈치고 5만원을 주었다.

아주머니는 바로 근처 마트에 가서는 큰 거울을 사다가 엘리베이터 안에 떡 걸었다.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그 꽉 막힌 상자 속에 들어가서 무료하게 서 있노라니까 지루하게 느꼈는데, 거울이 있으니 고객들은 얼굴을 비춰보고, 넥타이를 고쳐 매고, 머리도 다시 만지고, 어떤 여자는 루즈도 바르고, 또 어떤 사람은 얼굴로 웃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고객들은 “벌써 다 왔네.”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제는 아무도 불평하는 고객이 없었고 오히려 너무 빨리 도착해서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느린데도 청소 아주머니의 지혜로 고객들의 불평이 사라진 것이다. 지혜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사람의 행복이나 삶의 가치는 돈이나 재물이나 권력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잘못 사용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에 악용함으로 해서 파멸이나 추락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오늘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도, 가지고 있는 권력과 금전의 남용이나 오용으로 인하여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자에게 많은 돈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 물질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 정신적인 것, 내면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진짜 가치 있는 것은 감춰져 있다.

지혜는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이 지혜만 있으면 모든 것이 따라온다. 부귀영화가 따라오고 장수하는 복을 받는다. 또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겁게 산다. 비록 가진 게 많지 않고 항상 부족한 가운데 궁핍한 생활을 영위할지라도 지혜가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평안을 누린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진솔한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위에 서려고도 하지 말고, 더 많이 가지려고도 하지 말며,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햇살이 솜털처럼 부드러운 어느 날이었다. 화원에 한 소녀가 찾아왔다. 길가에 내 놓은 화분들 앞에서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있던 소녀는 화분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저씨, 이 꽃은 얼마예요?” “팬지 말이냐?” “아뇨, 그 뒤에 있는 작은 거요.” 소녀가 가리킨 것은 작고 밉고 굵은 줄기에 꽃도 피우지 못한 봉숭아화분이었다. “이건 파는 게 아니란다. 어차피 죽으면 버리려던 거니까 네가 그냥 가져가겠니?”

“정말요? 와아....” 소녀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그 못난이 화분을 받아들고 좋아라 하며 돌아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날, 화원으로 작은 소포 하나가 배달됐다. “소포가 왔네요, 여기 놓고 갑니다.” 집배원이 놓고 간 것은 작은 상자와 편지가 담긴 소포였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제게 봉숭아화분을 주셨죠? 그날은 엄마가 아파서 입원을 하신 날이었어요.”

또박또박 눌러 쓴 편지의 내용은 그랬다. 아픈 엄마를 위해 선물을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던 소녀는 그 화분을 엄마의 병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놓아두고 날마다 정성스레 물을 줬다. 그러자 볼품없던 화분에서 마침내 꽃이 피었고, 꽃을 바라보는 엄마의 볼에도 차츰 봉숭아 꽃물 같은 생기가 돌았다. 소녀는 그 씨앗을 받아 병원 앞 뜰에 뿌리고 또 뿌렸다. 꽃이 만발하던 여름 어느 날, 엄마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퇴원을 하게 됐다.

소녀는 엄마의 완치가 봉숭아화분 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소녀가 보낸 상자 안에는 까맣고 통통한 봉숭아 씨앗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온 세상을 봉숭아 빛으로 물들이고도 남을 만큼 말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꽃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이 있다. 미움에 젖은 마음, 절망에 찌들은 마음, 슬픔에 잠긴 마음으로 바라보는 꽃은 절대 아름다울 리가 없다.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 속에서 비로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흐른다 하여도 바뀌지 않는 진리가 있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세월이 아주 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사연을 담고 세월은 다시 우리를 찾아온다. 이른바 ‘세월의 귀환’이다. 세월의 귀환 앞에 우리는 오늘 엄숙한 약속을 한다. 오늘 찾아온 이 세월들, 그리고 다시금 부단히 이어질 앞으로의 세월들의 끈에 수많은 인연들이 줄줄이 엮여 피어날 것이다. 그 영원한 세월의 흐름처럼, 초연하고 창대한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럼 없는 삶이 되어질 것을, 필자는 저 세월 앞에서 굳게 맹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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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뿜는 연통에
대가리 쳐박고
그렇게
세월은 죽어있다.

길다란 구들에 배 깔고서
길다랗게 엎드려
이가 갈리도록
세월을 씹으면
금새
몸뚱이엔 터럭 자라나
혓바닥이 다시금
칼날을 물고
선지피 떨구지만

시뻘겋게
연통이 제아무리
핏빛을 삭인들
세월을 다
잡아먹기야 하는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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