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64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2집. 일년이면 삼백예순 날을  


  "2집. 일년이면 삼백예순 날을"
시기적으로는 1집 보다 빠른
1992년 3월3일에 처음으로 인쇄되었는데
교정본 상태로 한동안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2집으로 보시면 됩니다.

훗날 증인출판사에 의해서 재출판되었으며
'내 마음의 의자 위에 살며시 다가앉은
당신을 위한 사랑의 노래'라는
긴 부제를 갖고 있습니다.

'믿음'을 序詩로 하였으며
총 10개의 章에 5편씩,
각 章마다의 내용 순서로는
'사랑하는 이의 밀어', '여러 각도의 밤의 얼굴',
'생활 속의 동심 향기', '변화를 추구하는 일상',
'자학으로 성숙하는 영혼'으로 편집하여
총 51편의 詩로 엮어져 있으며
추가로 8편의 꽁트모음,
그리고 단편소설 '해바라기의 겨울 계곡'을
뒷부분에 같이 실었습니다.

분량 상으로는 많지 않지만
그 구성된 내용 상으로는
종합 쟝르의 選集 성격을 띄고 있는
詩集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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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림삼 (林森) *



시작노트

" 림삼 (林森) " 詩作 note

지금이라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프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냥 가벼운 차림으로 훌쩍 가까운 데 어디라도 나서고 싶다.
남녀가 따로 없고, 노소의 구분도 할 필요가 없다.
가끔은 그렇게 일탈을 꿈꾸는 것이 현대인의 로망이다.
우리에게 그마저도 없다면 정말로 숨이 막히고 무척이나 답답할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봄이 아니던가 ?
겨울의 긴 질곡에 시달리며 추위에 떨어야 했던 산천초목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상큼해진 바람과 푸르른 하늘이 우리에게 저처럼 애교스러운 손짓을 보내오고 있는데, 감정을 품고 있는 우리네 속내가 어찌 이 지경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실은 애석하게도 그런 떠남의 행보가 그리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은 절대 아니다.
정녕 안타깝게도 우리를 얽매고 있는 현실이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막상 어디론가 하루만이라도 다녀올라치면 왜 그리도 챙겨야 할 게 많고, 걸리는 게 많은지 도무지 갈피를 잡기가 수월치 않다.
도통 정리가 안된다.
평소에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우리 자신을 그토록 단단하게 옥죄는 굴레라는 것을 절실하게 실감하지 못하면서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이어왔었는데, 정작 그 중에 딱 하루를 빌리자고 작심하는 순간부터 웬 속박과 동앗줄이 그리도 많이 앞다투어 손을 내미는지, 정신을 차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니 훌쩍 떠난다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봄이면 새 옷으로 갈아입은 산과 들의 정경을 TV나 사진들을 통해 구경하면서, 직접 가지는 못하더라도 간접적으로 봄의 기운을 맛볼 수 있으니, 지난 겨울과 비견해 볼 때 무언가 색다른 느낌이 들기는 한다.
비록 삭막한 도시에 갇혀서 매연과 공해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언젠가의 그 봄이 기억 속에 생생히 각인되어 있으니 조금씩 꺼내어 되새김질 하면서 상상 속의 봄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금 기회가 되면 그 봄으로 힘차게 달려나가면 될 거라는 희망과 기대로, 버거운 오늘들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봄이란 생명과 활력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정녕 봄이 아름다운 이유는 새 생명이 솟아올라 생동하고, 햇살이 따사로와 새 힘을 북돋아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봄의 진실한 의미는 ‘씨를 뿌리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사계절 중에서도 반드시 봄에만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기쁨이 바로 씨를 뿌리는 기쁨일 것이다.
여름은 여름대로 초목이 꽃을 피우며 잎이 무성해지고, 가을에는 알곡과 열매가 익어 가을걷이를 할 수 있고, 겨울에는 또 겨울대로 평온의 운치와 안락한 휴식이 우리를 기쁘게 하지만, 봄은 그 모든 것을 다 살아 숨쉬게 하는 매력을 한껏 품고, 어김없이 겨울의 다음 계절로 줄 서서 우리를 찾아온다.
사실 우리나라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확실한 사 계절이 구분되어 매 년 변함없이 찾아줌으로 다양한 행복과 혜택을 만끽할 수 있으니, 한 마디로 우리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지구상의 수 많은 나라들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계절의 덕을 보면서 풍요를 누리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천혜의 자연 환경에 별다른 감흥이 없이 그냥 젖어있다 보니 어떤 때는 그 고마움을 망각하고, 의례껏 있어져야 하는 조건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계절을 향한 불평불만이 팽배해지고, 원하지 않는 기상의 변화나 재해에 맞닥뜨리면 무조건 원망과 비난으로만 얼룩지게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만일 봄이 없이 여름이 온다면, 아니면 여름이 안오고 바로 가을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
갑자기 계절이 뒤죽박죽이 되어지면서 순서가 마구 뒤섞여져, 예측할 수 없이 바뀐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필자는 예전에 NGO 단체에 속해 있으면서 필리핀의 해변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40도가 넘는 기온에, 햇볕이 작열하는 해변가의 모래사장에 잠깐 맨발로 나갔다가 순식간에 화상을 입어 오랫동안 걷지도 못하고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퉁퉁 부은 발을 부여잡고 우리나라의 봄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미처 발이 낫기도 전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해, 절룩거리며 텐트를 걷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자연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인가를 절실하게 경험했던 그 시절의 일들이 생생하게 교차된다.
비록 석유나 가스, 또는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경제적인 혜택은 받지 못하지만, 대신에 지리적인 여건이 양호하고 단단한 암반 위에 건국된 나라라서 지진이나 화산, 해일 등의 초자연적 피해를 별로 입지 않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기치 못한 천재지변으로 온 나라가 망국의 지경에까지 이르는 지구촌의 이곳저곳들을 보고들으면서, 그나마 태풍은 여름에만, 눈사태는 겨울에만 경험하는 우리나라의 사정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상황인 것인가 하고 한숨을 돌리게 된다.

지난 겨울에 엄청난 눈폭탄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은 강원도 동해안 지방으로 얼마전 동료들과 잠시 여행을 다녀왔었다.
무너지고 파손된 비닐하우스나 농가의 창고 등이 아직도 대부분 복구되지 못하여 피해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봄의 기운이 한껏 살아오르는 들판으로 새로운 소망이 씨를 뿌리고 있는 풍경들이, 시름에 겨운 이재민들을 달래는 듯 하여 보기에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논밭에 뿌려지는 저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돌아오는 가을에 풍성한 결실로 농부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불어넣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저 들 만 변함없이 우리에게 있어준다면 봄은 또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주는 우리의 벗이요 가족같은 존재인 것이다.
문득 저항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속으로 웅얼거리면서 사잇길을 잠시 맨발로 걸었다.
물론 여기서 시인이 지칭하는 봄이 단순하게 계절적인 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계절적인 봄을 말한다면 그 의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시적 자아의 눈에 비치는 들판의 모습은 전통적인 삶의 터전이요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로 가득차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그것들에 대한 시적 자아의 극진한 애정 또한 느낄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이 땅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기에, 아름다운 들판을 걸어가면서 자기가 현재 빼앗긴 들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환기하게 된다.
시인은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도 자기의 영혼을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이라고 자조 섞인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이 고백은 실제로 시적 자아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시점을 모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질문으로 인한 혼돈의 표현일 것이다.
그 혼돈에 휩싸여 시인은 계속 이 들판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시인의 소재인 봄과 들은 예컨대 우리나라의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계절의 맛을, 가슴으로 토해내는 절절한 애국의 노래였던 것이다.

성서 ‘마가복음’에 보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씌여져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데,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어버리고, 돌무더기에 떨어진 씨는 뿌리가 없어서 해가 돋자 말라버린다.
그리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싹이 자라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또 다른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다.
아무리 씨를 뿌리기 좋은 계절 봄이라 해도, 씨를 뿌리는 장소와 여건이나 상황 선택이 올바라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어떤 결실을 수확할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는 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거짓의 씨앗을 뿌리면 거짓의 결과가 만들어지고, 진실의 씨앗으로 시작된 농사는 종국에 진실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결실로 맺어질 것이다.

일전에 일본에서 이른바 ‘만능세포’를 만들었다고 떠들썩하게 했던 여성 과학자가 불과 몇 달만에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 일본에서는 사기극으로 판명된 거짓 유명 인사의 사례가 퍽이나 잦다.
어떠한 세포로도 변할 수 있는 이른바 만능세포를 만들었다고 ‘네이처’지에 논문을 발표한 ‘오보카타’연구원, 상식을 뒤집는 성과라 하여 30살 여성 과학자는 일약 국민적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논문 내용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더니, 급기야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이미 발표한 사진을 다른 설명을 붙여 재사용한 ‘조작의 물증’이 발견됐다.
게다가 이미 지난 박사학위 논문도 각종 홈페이지와 다른 사람 논문 등을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이 추가로 나왔다.
IPS세포를 이용해 처음으로 인간 이식에 성공했다고 한 연구자는, 이식은 커녕 전문가도 아니었고, 현대판 ‘베토벤’이라고 했던 사람은 귀도 들리면서 천재인 양 행세하다 들통나자 단정한 모습으로 사죄했다.
여기에 젊은 기대주마저 가짜일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사기극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과학계가 호들갑을 떨면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던 모양새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주도한 ‘알츠하이머’병 연구 프로젝트의 데이터 조작 의혹이 다시 제기됐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지난해 8월 미국 학회지에 발표된 ‘알츠하이머병’ 연구 논문 ‘제이-아드니(J-ADNI)’ 임상연구 데이터 14%의 결과가 조작되는 등 부적절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사실은 논문 저자 중 한 사람인 ‘스기시타 모리히로’ 전 도쿄대 교수의 폭로로 드러났다.
일본 치매 연구의 1인자로 꼽히는 그는 공동 필자 12명에게 데이터 조작 가능성을 지적하며 논문을 철회하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스기시타’ 교수가 논문 발표 후 새로운 자료를 입수해 검증한 결과, 논문 임상연구 데이터로 인용된 환자 274명 중 39명이 ①기억력을 측정하는 면담 검사에서 국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 검사 시간을 조작 ②피험자의 동의를 얻지 않음 ③피험자의 연령이 기준을 벗어남 등으로 부적절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사용할 수 없는 자료가 10% 이상이면 논문으로서의 가치가 없고, 철회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드러난 것만 이 정도이니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의혹의 과제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
한 마디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논평하기에는 치졸하고도 가소로운 작태라고 생각한다.
“거짓말로 소수의 사람을 오랫동안 속이거나 다수의 사람을 잠깐동안 속일 수는 있지만, 다수의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일본 사람들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다 바보라고 믿고있는가 보다.
그러기에 그런 거짓의 씨앗을 뿌려놓고, 뻔뻔하게 진실의 열매가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씨뿌림에 관한 의견은 이 쯤 해두고, 떠나고 싶은 봄이라서 시작한 화두인 만큼 말꼬리를 다시 여행으로 돌려보자.
여행이라는 단어의 뜻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그런데 왠지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다.
여행은 설레고 가슴 들뜨는 무언가가 분명히 숨겨진, 비밀스러운 어떤 것을 속에 감춘 선물상자같은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생을 여행에 빗대어 견주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인생이란 보이지 않는 승차권 하나 손에 쥐고 떠나는 기차 여행과 같다.
어차피 연습의 기회도 없고, 한 번 승차하면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가고, 뒤돌리지 못하고 절대 중도에 하차할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가다 보면 강아지풀이 손 흔드는 오솔길이며, 푸르른 숲으로 둘러진 산과 들이며, 금빛 모래사장으로 눈부신 바다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밝은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 속에서도, 때로는 어둠이 가득찬 추운 터널과 눈보라가 휘날리는 매서운 길이거나, 때로는 뜨겁게 숨 막힐 듯한 험한 길을 지나갈 때를 체험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 고통과 막막함이 느껴지는 곳을 지난다고 해서, 우리의 손에 쥐어진 승차권을 내팽개쳐버리거나 없애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지금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목적지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승차권을 찢어버리고 중도하차 하려는 인생이라면 단연코 어리석다 할 수 있다.
무조건 인내하며 가야 한다.
어두운 겨울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지금보다 더욱 더 아름다운 봄의 햇살이 나의 머리맡에 따스하게 비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말이다.
촉촉히 내리는 빗방울 가운데서도, 소복히 내리는 눈 가운데서도 우리는 갈 길을 찾곤 한다.
지정된 목적은 없지만, 우리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끝없이 달리는 것이다.
가끔은 원하지 않던 쓴 잔을 마시면서 비틀거리기도 하고, 때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환희를 느끼게 될 때도 있다.
아직은 다 이루지 못한 일들 때문에 허우적거리면서도 내일을 기약하면서, 오늘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작은 것에 감동을 받는 그런 것이, 우리가 지금 달리고 있는 인생 여행의 단면이 아닐까 ?
기왕지사 떠나는 인생 여행길이라면,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과,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넉넉함이 채워지는 시간, 혼자서 가는 것 보다는 더불어 손잡고 가는 여행이 한 층 더 재미있고 멋지지 않을까 싶어진다.
더불어 길 떠나는 동행을 향하여 살며시 내밀 수 있는 손에서, 행복과 기쁨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묻어날 것이다.
행복된 여행 길에 함께하는 기쁨을 전하며, 봄의 품 안으로 마음껏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 마음을 모두와 같이 나누고 싶은 봄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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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길 떠나는 날에는
森林(삼림) 더욱 푸르다.

잘라도
잘라도
잘려지지 않는
綠蔭(녹음)의 덩어리가
굽이길로 정서 홀리우고,
둥지 사수하는
할미새의 비명이
감미론 음악되어
심금에 표창질 하면
시계 멈춘 채
움직일 줄 모르니,

이름 모를 들풀마져
천상의 색으로 피어나고
바위에도
물 속에도
무한으로 우거진
森林(삼림) 살아나와
오염된 나를 지배해버리다.

누가 있어 이 세계를
娑婆(사바)라 칭하리요 !
나무는 낙엽과,
돌은 이끼와,
다람쥐는 뱀과,
살아가는 모든 이웃끼리
더불어 한 몸인 것을.

깊어지다
인적 끊겨 한참인
하늘 아래 첫 동네,
신선의 이름 지어
스스로를 담금질 할
태백의 줄기에 여울
숨결의 증인 되어
골짝마다 흐르고,

올챙이떼가
숨죽여 모여 사는 구비 구비에
물이 발 되고
발은 물 되어져
온 몸으로 적셔지는
泡起(포기)의 정기,
森林(삼림)의 호르몬.

내가
길 떠나는 날에는
林森(림삼) 더욱 푸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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