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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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페 디엠 *



시작노트

" 카르페 디엠 " 詩作 note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우리말로는 ‘현재를 잡아라. (영어로는 Seize the day 또는 Pluck the day)’로 번역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이 말을 외치면서 더욱 유명해진 용어로, 영화에서는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청소년들의 자유 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키팅 선생은 영화에서 이 말을 통해 미래 (대학입시, 좋은 직장)라는 미명하에 현재의 삶 (학창 시절)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확실하며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주었다. 이 말은 본래는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단어 그대로 ‘카르페 (Carpe)’는 ‘뽑다’를 의미하는 ‘카르포 (Carpo)’의 명령형이었으나, 오비디우스는 ‘즐기다, 잡다, 사용하다, 이용하다’ 라는 뜻의 단어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디엠 (Diem)’은 ‘날’을 의미하는 ‘디에스 (dies)’의 목적격이다.

복잡한 설명은 이 쯤 해두고, 현실적으로 다시 주석을 달아보자. 사람은 누구나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보다 나은 내일의 꿈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미래지향의 꿈이 없다면 현재의 삶에도 충실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하는 자세가 성실과 노력으로 힘 모아질 때 비로소 바라는 내일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과도하게 지나친 미래의 꿈은 현실의 삶에 부적응하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커다란 괴리감을 유발시켜 보편적인 삶으로부터 도태되게 만들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과 좌절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삶을 얼마나 충실하고 근면하게 살아가느냐 하는 데 기인한다.

그래서 오늘 필자는 귀하고도 소중한 현실의 삶을 예찬하는 노래로 시작노트를 이어가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번 주어진 삶은 중요하고 신비로운 기적이라 할 수 있으며, 세상 그 어떤 문명이나 과학으로도 모방할 길 없는 오묘한 신의 섭리임이 분명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삶의 궤적은 제각각이지만,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고 일괄적인 생애의 주기라는 순리를 체험하게 된다.

선택받은 사람들일지라도 제한된 목숨줄을 억지로 더 이을 수가 없고, 아등바등하며 두 손아귀에 거머쥔 재물과 명예 등 가진 바 모든 것들을 저 세상으로 옮겨갈 재간도 없다. 그저 잠시 잠깐 머무는 이 세상에의 삶에서 소비하고 지불하다가 그치고 말 재화이니, 오직 겸허한 마음으로 근원적인 존재의 의미를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 겸손하고 또 겸손하게 오늘을 살 일이다.

남에게 양보하고 스스로 낮아지려는 자세와, 항상 게으르지 않고 삶의 이치를 배우겠다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 썩지 않는 씨앗이 꽃을 피울 수 없듯이, 자존심의 포기 없이는 삶의 꽃봉오리를 맺을 수 없다. 분명 이 세상은, 자존심도 지키고 목적도 달성하는 그런 어리석은 공간이 아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낮과 밤을 동시에 보낼 수 없으며, 봄과 가을을 동시에 즐길 수 없다.

밤의 어둠을 지나야 아침의 찬란함이 찾아오고, 여름의 장마를 지나야 가을의 들판으로 나설 수 있다. 부디 자신 안에 있는 자존심을 꺾으면서 이웃을 바라보도록 노력하자. 자존심만 포기하면, 흙과 태양과 비와 바람이 저절로 원하는 꽃을 가꾸어 갈 것이다. 그러니 옳고 그름이 분명할 때도 부디 침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똑똑함보다, 옳고 그른 것 모두를 포용하는 어리석음이 오히려 훌륭한 거름이 된다.

내 잘못도 내 탓이고, 당신 잘못도 내 탓이며, 세상 잘못도 내 탓으로 돌리도록 해보자. 진심으로 자존심을 포기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주변의 사람들을 행복의 좁은 길로 초대할 수 있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가는 사람들,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는 사람들, 사랑을 할 때도 애인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애인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 되는 사람들, 항상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느끼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항상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판단이 아닌 타인의 필요와 감정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적으로 이런 천사파 사람들은 ‘도덕적 자학증 (moral masochism)’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내면에는 ‘나 아니면 안 돼.’라는 과대 자기와 함께, 자신에 대한 강한 죄책감이 있는 경우가 많다. 만일 당신이 직장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있다면 생각해 보자. 혹시 사랑의 거래로 희생을 택한 것은 아닌지.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한 희생은 사랑을 대가로 자기를 내주는 모양이 되고 만다. 즉, 자기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사랑을 얻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무엇보다 당신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타인을 얻을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 언젠가 당신은 희생에서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 결과 만성적 공허와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진심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희생이 아니라면, 이제부터 그만해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구속당하는 걸 싫어해서 혼자 있으려고 애를 쓴다.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비밀공간을 갖고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공통적인 생각일 텐데, 자기 세계에만 너무 빠지면 자칫 공동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혼자와 함께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의도적으로 벗어나려 했다면 벌써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니, 쉽지는 않겠지만 돌아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행복을 얻는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인 것이다. 다들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았던가?

간섭하는 것 같고, 구속 당하는 것 같지만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그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세상, 가뜩이나 마음 둘 곳도 없을 텐데 조금 거슬린다고 굳이 울타리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자. 힘들 때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아껴주며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잔소리하던 바로 그들이며, 그들과 어울려서 부대끼며 뒹구는 오늘이 바로 가장 소중한 당신의 삶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자.

“이 세상에서 가능한 가장 영적인 행위는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 바로 즐겁게 웃고 지내는 것이고요. 더 영적이 되고자 괜히 걱정하고 애쓰지 말아요. 우리는 이미 더할 수 없이 영적이예요. 우리는 지금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완벽합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축하 파티를 열어요!”

‘아니타 무르자니’의 ‘나로 살아가는 기쁨’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늘 우리는 주어진 삶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보자. 그렇게 우리의 카르페 디엠을 실천해보자. 그렇게 오늘 삶의 파티를 열어보자. 웃음으로, 춤으로, 윙크로, 따뜻한 말들로, 진한 커피로, 풍성한 일거리로, 맛난 밥으로, 조용한 음악으로... 그 무엇으로도 우리는 파티를 벌일 수 있다. 오감이 깨어 있는 파티의 순간, 그 때가 살아있음과 연결되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남이 모르는 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가? 간직하고 있는 것이 크고 소중한 것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힘을 얻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복권을 사서 간직한다. 물론 당첨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것을 간직함으로서 삶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가 당신에게 약속을 했다고 치자. “네가 5년만 참고 일하라, 그러면 내가 사업체를 하나 주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면 당신은 현재가 조금 힘이 들어도 즐거움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약속이 믿어지면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이다. 그러나 약속이 믿어지지가 않으면 마음에 기쁨이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과 정혼을 하고 결혼식 날짜를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시간이 꿈같이 행복할 것이다.

마음의 기쁨! 이 기쁨이야 말로 사랑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그 사랑이 깨진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결코 마음에 기쁨이 있을 수 없다. 마음에 간직한 사랑은 먹고 마시는 음식의 풍성함보다 더 클 것이다. 마음에 기쁨을 간직하고 살아가자. 마음에 기쁨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 행복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믿으며 “카르페 디엠!” 힘차게 외치면서 오늘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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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 없던 이별은
본디
손톱세워 호벼파듯 그리 오는 걸,
떠나는 이나
남겨진 나나
크낙한 돌덩이 하나
가슴에 올려놓은 양
그저
먹먹할 뿐, 먹먹하기만 해서

달빛 올려다보며
태연한 척 너스레만으로도
처연한 내 가슴
마구마구 헤집어대느니

허나
우린 이미 다 알고 있었잖아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무례함,
그 이름이 바로
운명이라는 녀석인 것을

카르페 디엠,
충실하지 못했던 여백 속으로
강물 흘러들고
이별이 돛을 달아 먼 길 떠날 제면
남겨진 난
여지없이 흐르는 눈물 빚어
달 보듬는구나

이윽고
밤이 새벽까지 넘나드는
운명의 시계추가
이별조차 사랑할 준비 마치면
조용히 눈 감아 묵상을,
고요히 손 모아 기도를,

그리곤
다시 듣는 신새벽 거친 숨소리
욜로가 날 부르는 소리

아직도
내게 남겨진 이별은
이만큼이나 절절한 이야기로
가슴팍 헤집어대면서
먼저 떠난 이별
종종걸음 뒤쫓고 있구나,
물컹
솟아난 눈물 가슴어림 흐를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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