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깊은 심연
그보다 더 깊은 고뇌의 연못

그토록 높은 허공
그보다 더 높은 근심의 탑

그토록 넓은 벌판
그보다 더 넓은 시름의 광야

그토록 긴 강줄기
그보다 더 긴 망각의 여울

그토록 가파른 질곡
그보다 더 가파른 방황의 절벽

그 속에 갇힌 영육, 아!
숱한 세월 오도 가도 못하고

계절이 품 벌려 날 안아주니 이윽고
봄이라는 이름 걸고
다시금 꽃 피어나네

피안의 품에서 소망이 싹 트고
평온의 품에서 사랑 잎 자랄 제

괴랄한 한설 시달리다가
세상이라는 인큐베이터에
떨구어진 이른둥이의 삶

낭탁한 짓거리 소실된 허망에
애먼 세상 들쑤셔 탓해도
세월은 그 안온한 품
한결같이 벌리고 서서

노을은 너무 짧아,
그래서 더 안타까운 거지

너무나 애절해서 차라리 찬란한
어느날 바람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자! 이젠 날개 접고 내 품에서 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