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3집. 당신은 나의, 나는 당신의  


  "3집. 당신은 나의, 나는 당신의"
1995년 3월 23일에 출판된 詩集입니다.

詩人이 직접 '책 머리에'라는 인사글을 썼고
총 4개의 章으로 나뉘어져있는데
'방황하는 자아'에 15편,
'현실을 찾아서'에 15편,
'해묵은 운명'에 15편,
'살며 사랑하며'에 15편,
합계 60편의 詩가 실려있습니다.

유난히 連作詩가 많아서 총 60편이지만
훨씬 많은 量의 詩를 감상하시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 도서출판 가람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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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기 (行記) 8편 *



시작노트

" 행기 (行記) 8편 " 詩作 note

지난 시첩을 뒤적이다가 문득 눈에 띄었는데, 중간에 ‘사십대 중년 남자’라는 주어가 등장하는 걸 보니 스무 해도 넘긴 시임은 분명하고, 다시 한 번 차근히 돌이켜보니 ‘림삼 제 3시집’인 ‘당신은 나의, 나는 당신의’에 실려있는 시였다. 아마도 특정한 목표지나 예정도 없이 정신없이 돌아치며 시를 쓰던 시절의 한 자락일 게다. 전라남도 여수에 위치한 철 지난 해수욕장을 홀로 지나다 잠시 들러 술 한 잔 하다가, 언뜻 얼치기 시심이 들어서 지은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정말 무던히도 돌아쳤다. 무작정의 방랑도 아니고, 떠도는 것도 아닐진대 어찌 특별한 일도 없이 사방팔방을 헤매고 다녔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을 찾아 헤매었는지, 그래서 과연 조금이나마 찾고자 하는 걸 발견은 하였던 건지 그마저도 확실치 않다. 다만 어딘가에는 있을지 모르는 피안과 종착을 그리며 길고도 먼 여행을 거듭했었던 듯 하다.

여비라도 넉넉하였겠는가? 필자의 방랑벽은 이보다도 훨씬 전인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었다. 교통편이 원활하지도 않았고, 길 사정이 녹록치도 않았는데, 차 길이 이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허우적대면서 때로는 걷고 뛰면서, 차도 얻어 타고 농기구 신세를 지기도 하면서, 몇 날 며칠씩 필자의 여정은 이어졌었다. 춥지 않을 때는 산등성이에서 노숙을 하기도 여러 번, 겨우 얻어 들어간 남의 집 헛간에서 가마니를 깔고 별을 보며 잠 든 적도 숱하게 많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시절에는 그것이 고생이거나 난관으로 여겨지지가 않았었다.

허기사 그런 심사이니 그 짓거리를 이어갔을테지, 남들이 억지로 시킨다면 행여나 한 두 번이라도 따라서 했을까나? 아무튼 그렇게 필자는 전국을 들쑥날쑥 돌며 소위 ‘行記 시리즈’를 적어나갔었다. 그리고 몇 번에 나누어서 ‘림삼 시집’에 수록했었던 것이다. 결국 아무 것도 찾지는 못했고,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는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이따금씩 새롭게 오롯이 생각난다. 당시에 만났던 무수한 인연들, 당시에 찾았던 엄청난 풍경들이 이제는 흐릿한 필자의 머리 속 어딘가에 머물러있다.

‘무전여행’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조금은 낭만적이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 감히 일탈을 감행하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하나의 로망으로 여겨지던 과감한 시도에 부러워하기도 했던 시기, 그 시기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는 글로벌 시대가 되었다. 바야흐로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국제적으로 교류하며 넘나드는 시대가 되었다. 세상 어느 구석 못 가볼 데가 없고 머물지 못할 장소가 없다. 물론 ‘여행 금지 구역’ 이나 ‘여행 제한 국가’ 등으로 정해진 일부 나라의 한시적인 통제는 감안한다는 전제다.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 중에 ‘베그패커’라는 말이 있다, 소위 ‘구걸 배낭객들’을 칭함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떠돌며 무대책의 여행을 감행하는 부류를 일컫는 말이다. 근래에는 우리 한국에도 상륙하여 거리의 행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행 경비가 떨어졌어요.” “세계 일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여러분이 제 여행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몇 시간씩 프리허그를 하거나 아마추어 수준의 음악을 연주하며 여행경비를 도와달라는 외국인 배낭객들, 국내에서도 제법 보이는 이들, 바로 베그페커다.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베그패커(begpacker)’란 ‘구걸하다’는 뜻의 영어 ‘beg’와 ‘배낭여행객’을 뜻하는 ‘backpaker’의 합성어로 ‘구걸을 통해 여행비를 버는 사람’을 말한다. 서울에서는 홍대입구나 인사동, 명동을 비롯해 지역도시 관광지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놓고 구걸을 하는 이들을 비롯해,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나 자신이 만들었다는 액세서리 등을 팔기도 한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하면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들 베그패커들은 대부분 유럽, 북미 등 서양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여행지는 주로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권이다. 최근엔 이들의 여행지 타깃으로 한국도 포함된 것이다. 베그패커는 사실 1~2년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베그패커로 여행하는 모습 등을 올리며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이 배그페커들이 늘면서 문제점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작년 초에는 30대 독일남성이 동남아 국가 이곳저곳에서 구걸로 돈을 모아 술집에서 탕진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는 한 쪽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희소병으로 현지인들의 동정을 샀다. 고향에 돌아가게 도와 달라며 구걸한 후 마구 쓴 사실이 드러나 태국에서 강제 추방당하기도 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것은 위법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베트남에서는 관광객이 돈을 구걸하는 것은 ‘길거리 구걸 금지 법’을 위반하는 행동이다.

작년 ‘베트남 외교부’는 베그페커들을 적발해 해당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동남아 관광국으로 유명한 나라들 뿐 아니라 서구의 언론들도 이런 일부 몰지각한 행태의 베그페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다. 구걸을 하거나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하는 것이지 여행하기 위해 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베그페커들은 수치심도 없냐?”며 비난하기도 한다.

이들 서양인들이 동남아 국가들을 찾아 베그페커로 활동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동양인들이 전형적으로 백인들에게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동양인, 혹은 흑인보다 백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는 사실을 악용하는 사례다. 적은 돈으로 해외를 여행한다는 것은 낭만이나 패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베그페커 현상’은 일부일지라도 한국인, 더 넓게는 동양인을 만만하게 보고 이용하는 몰지각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베그페커, 당신이라면 어떤 시선을 보낼 건가?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진 풍속도, 그리고 그 범위나 규모가 훨씬 커졌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철저한 여행 계획이나 경비의 준비도 없이 무작정 떠난다는 의미에서는 우리 시대의 무전여행과 조금은 닮은꼴이 아닌가 하는 지레짐작에 괜시리 뜨끔해지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필자의 이른바 ‘詩作 여행’이 이들처럼 무모하거나 막무가내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은근히 자위를 해본다. 게다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확고한 목표도 있지 않았었는가? 조금은 민망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까 기분은 후련하고 상큼하다.

지난 주말경에 필자의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대구에 다녀왔다. 늘 움직이는 동선이 틀에 박혀 있어,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만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모처럼의 타지 출타에 다소간 설렘이 담겨있었다. 게다가 여행수단으로 열차를 골라, 오랜만에 타보는 KTX이니 만큼 그 호감도는 더 높았다. 출타의 목적이나 일정은 차치하고라도, 조금은 낯 선 곳에서 색다른 메뉴로 홀로 끼니를 해결하고, 지리도 잘 모르는 목적지를 찾아보면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곁들여진, 혼자만의 울렁증이었다.

물론 예전의 그 완행열차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밤 새도록 덜컹거리며 숨 차 헉헉대던 그 기차는 아니었지만, 모처럼의 열차 여행이라니 그래도 조금은 근사한 일상의 보너스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서울역에서, 그러나 필자의 순박한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져내리고, 소박한 꿈은 순식간에 짓밟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이면 그날부터 ‘철도노조’의 파업이 시작되어서 열차의 운행은 평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텅 비워지고, 때 마침 금요일이었던 관계로 주말의 이동 인파까지 겹쳐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부랴부랴 창구에 사정을 해서, 입석으로라도 예정된 시간 안에 도착을 할 수 있게 하행선은 해결이 되었지만, 일정을 마치고 여유롭게 상경하리라던 당초의 귀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상행 열차는 겨우 밤 늦은 시간에, 그것도 대기로 가능하다는 통보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예약을 마치고, 역사 내의 푸드코너에서 입맛 없는 점심을 시적시적 늦장 부리면서 해결하였다. 본래는 대구에 도착해서 근사한 메뉴를 고를 예정이었는데 초장부터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일정이 꼬인 셈이다. 저녁 시간의 상황은 한 술 더 떴다.

애초의 일정대로라면 저녁 6시 이전에 업무를 종료하고 대구의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려던 것인데, 다 포기하고 일단은 급하게 역으로 가야 했다. 수시로 창구에 문의를 하면서 열차편을 조율하는 한 편, 다른 어딘가로 떠날 수도 없기에 역사 내의 분식점에서 대충 식사를 해결하곤, 근처의 서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면서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밤 10시 직전에 열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어차피 밤 시간에 차창 밖의 경치를 볼 일은 없었지만, 여행의 감흥이나 흥취는 이미 천리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럭저럭 구입한 책을 보면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실상의 압권은 그 때부터였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에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들의 줄은 끝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겨우 40여분 만에 순서가 되어 택시를 타고, 서울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참 재미 없는 여행이었다. 괜시리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 것 같고, 이용을 당한 것 같아 입안이 씁쓸해지고 화가 치솟았다. 필자는 정치는 모른다. 이념의 대립이나 의식의 투쟁도 할 줄 모른다. 그저 몇 줄 글이나 쓰는 글쟁이일 뿐이다. 그래서 누가 옳고, 어느 편이 정의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서민이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고, 지도자들이 서로 웃으면서 덕담을 나누는, 화목한 사회가 되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따름이다.

필자가 모처럼 큰 맘 먹고 타지에 출타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약속된 교통편을 유지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에, 파업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노조 측이 잘못된 처사인지, 아니면 그들이 그렇게 처신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하고 나 몰라라 뒷짐 지고 있는 상대편의 인사들이 부정한 건지는 정말이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저 단순하고 소심한 입장에서 부탁 하나 하자. 제발 다투지 좀 말고, 자신들만 옳다는 아집을 버리고,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참다운 정의를 실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어찌 자신들만 다 잘 하고, 상대편은 무조건 잘못 되었다는 이기주의적인 집착과 오판에서 헤어나지를 못할까? 소위 잘 나고 많이 배웠다는 지도자들이. 한심하고 개탄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한 번에 다 쓸어버리고 바꾸었으면 좋겠다. 가장 윗 선부터 아래까지... 이러다가 또 큰 코 다칠라, 뜨거운 맛 보게 될지 몰라, 필자는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서민이다. 그저 시키는대로 잘 하는 착한 백성이다. 그래서 불평불만도 없고, 별다른 이견도 없다. 그래서 여기서 그치련다. 이 쯤에서 그만 하련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작고 소소한 소망만 남겨두고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자. 미국에 사는 한국인 부부가 있었다. 남자는 26살인데 운동선수다. 재능은 있지만,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상태이고, 팔꿈치 수술을 받는 등 안 좋은 일만 가득한 상황이다. 게다가 아이를 포함해 4식구이지만 월급이 100만 원 수준이라, 같은 팀의 세 선수가 함께 월세를 살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힘들다. 결국 가족이 겪는 고통을 더는 볼 수 없었던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 돌아가자. 이젠 더 견디기가 힘들 것 같아.”

그러자 아내는 단호한 얼굴로 이렇게 응수한다. “나랑 애들 신경 쓰지 말고, 여기서 당신이 할 거 해. 당신이 처음 가졌던 꿈을 이루라고. 여기에 꿈을 이루려고 온 거잖아? 당신에게 방해된다면, 우리는 한국 가면 되니까. 당신은 꿈을 포기하지 마!” 당시 아내는 건강도 안 좋은 상태였다. 한 쪽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고, 시력을 잃을 수도 있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꿈을 지지했고, 그가 꿈을 이룰 것이라 강력하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7년 동안 연봉 1,370억 원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하고는 오랫동안 눈부신 성적을 이어오고 있으며, 곧 다시 FA 시장에서 몸값을 재평가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대선수 ‘추신수’다.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다. 물론 세금을 공제해야겠지만, 주급으로 따지면 3억 원이 넘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어떤 남자와 여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저런 남편 만나면 누구든 최고로 내조할 수 있죠. 천억을 벌어오는 남편인데, 뭘 못하겠어요!” “저런 부인을 만나야 성공할 수 있지. 평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추신수를 저렇게 위대한 선수로 만든 내조의 힘을 나도 받고 싶다!”

많은 남자가 추신수 아내 같은 여자를, 많은 여자는 추신수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은 자신이 가진 강력한 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본인이 성공하지 못하는 게 애인이나 부인을 잘 만나지 못한 탓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정말 미련한 사람이다. 아마 많은 남편이 추신수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아내에게 내조를 좀 잘 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곤 아내에게 대부분 이런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뭐든 다 할게, 그럼 당신도 추신수처럼 천억 벌어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면, 상대에 대한 100%의 믿음이 없는 사이라고 보면 된다. 추신수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그는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이제 다 왔다. 너 고생한 거 보상받아야지.”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보상받으려고 고생하나?” 진짜 믿음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노력이 가능하다.

-방 한 칸에서 생활해야 했던 그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이 잠을 깨지 않고 잘 수 있게, 2시간마다 젖 달라고 우는 아기를 아파트 복도로 나가 젖을 먹였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는 남편이 원정 중이라 혼자서 병원 가서 출산하고 큰아이를 돌보기 위해 출산 다음 날 둘째 아기를 가랑이 사이에 껴서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을 위해서 스포츠 마사지사 자격증까지 따 만삭의 몸일 때도 남편을 위해 마사지를 해줬다.

그녀는 내조의 여왕이 아니라, 믿음의 왕이었다. 본질은 믿음이다. 상대의 열정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만드는 힘은 상대가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 열정이 피라면, 믿음은 핏줄이다. 믿음은 열정을 흐르게 만들어 꿈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통로다. 실제로 그녀의 믿음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열정만 가진 실패의 아이콘이었다. 그녀의 믿음을 통해 추신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짜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의사도, 아무리 좋은 운동 시설도 최고의 선수를 만들 수 없다.

거기에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빠진 기술은 껍데기일 뿐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이루어지게 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죽어도 믿을 수 없는 부분까지 죽을 만큼 믿으면 된다. 사랑한다면, 믿어라. 함께 일하는 직원을, 함께 지내는 가족을 믿어라. 당신의 믿음이 상대의 마음에 닿을 정도로 강력하게! 그러면 머지않아 그들은 당신이 믿은 만큼 성장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보다도 훨씬 더 큰 결과로 믿음에 보답할 것이다.

대나무 중에 최고로 치는 ‘모죽’은 씨를 뿌린 후 5년 동안 아무리 물을 주고 가꿔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어느 날 손가락만 한 죽순이 돋아나 주 성장기인 4월이 되면 갑자기 하루에 80cm씩 쑥쑥 자라기 시작해서 30m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5년이란 세월 동안 자라지 않았던 것일까? 의문에 의문을 가진 학자들이 땅을 파 보았더니 대나무의 뿌리가 땅속 깊이 사방으로 수 십 미터나 넓게 뻗어나가 자리잡고 있더란다.

5년 동안 숨죽인 듯이 옆으로 옆으로 뿌리를 뻗으며 견고하게 내실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5년이 경과한 후에야 당당하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치 물이 끓기까지 변화 없는 모습을 계속 유지하다가 갑자기 끓기 시작하는 것처럼, 모든 사물에는 임계점이 존재하며 여기에 도달하면 가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포기를 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포기를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게는 실패와 고생을 거듭해도 분명 성공할 날이 올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로 차곡차곡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의 시간이 미래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고 확신을 한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발전은 없고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라고 생각하여 포기하고 싶을 때, 모죽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무섭게 자라기 시작하기 전의 5년과, 100℃ 물이 끓기 전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이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다면 언젠가는 모죽처럼 쑥쑥 자라고, 100℃의 물처럼 펄펄 끓기 시작할 날이 올 것이다.

필자가 젊은 시절 천지사방을 헤매 다니며 찾으려고 했던 삶의 진리는 어딘가에 은밀히 숨어 있었던 건 아니다. 그건 긴 세월 동안 묵히고 쌓인 경험과 삶의 더께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해답이며 지표였던 거다. 그렇기에 젊은 혈기와 활력의 눈으로는 찾을 수 없었고, 단기간에 결론을 맺으려고 서두는 행보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숨겨진 보물이었던 것이다. 이제야 필자는 어렴풋이 안다. 다니고 다니다가, 가고 또 가다가, 우리가 알게 되는 어떤 것, 그건 우리 삶의 속살이다. 구태여 찾으려 들지 않아도 알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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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드리워진 철로를 따라
꿈 잃은 바닷새가 끼룩 소리 힘겨웁게
손짓하는데
육지의 남쪽 끝 기차 달린다.

뼈저린 헤어짐 구슬픈 사연
얼마나 많이 싣고 숨 저리 찬지,
넘실대는 청파에 던지워져서
이 내 몸 미련 없이
수장된다 한들
너 나 힘껏 불러줄 축복의 노래

사철 파란 이끼마다
바다 안개 자욱한 수평선 너머
집 터 삼은 어선들이
나 부르는데

사십대 중년 남자 흐려진 눈물
하나 남은 니힐리즘 아껴 먹다가
주머니 속 감춰놓은
로맨티즘 근성아 !

만성포 흑사장 검정 냄새 분분하여
콧구멍 벌름이며 안주 삼으니
털어 부운 한잔 소주
목줄기 타고
창자마져 짜르르르
감동 심는다.

[ 만성리 해수욕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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