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1996년 11월 25일을 인쇄일로 탄생된 詩集입니다.

역시 인쇄 출판에 관련된 판권은
증인출판사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序詩는 '겨울, 그리고 동면'이며
'구름같은 이야기'에 30편,
'달 닮은 이야기'에 31편,
'살아가는 이야기'는 '세월 하나(10편)',
'세월 둘(10편)',
세월 셋(11편)'으로 나누어 목차를 정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보자면
총 93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하게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힘들었던 시기이기에
세파에 시달려 생활고에 찌달리는 일상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우며 도전하던
그 시절의 여러가지 직업을 대변하는 詩들이
많이 실려 있는 詩集입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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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란 *



시작노트

" 행복이란 " 詩作 note

흔히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편을 가르는 걸 꽤나 즐긴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네 편, 내 편을 갈라서 파당을 만들고, 계보를 작성하면서, 무리지어 몰려다니는 합(合)의 본능이 인간에게는 깊이 숨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숫자의 내 편 속에 묻혀있으면 괜히 우쭐해지고, 듬직한 기분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며, 내 편의 힘을 이용하여 다른 편을 누르려고 하는 속성을 구태여 감추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어떤 경우에는 내 편이 하나도 없는 세상 구조가 퍽이나 불만스럽고, 외로움과 쓸쓸함에 사로잡혀서 삶 자체에 낙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편을 짜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고 불행하게 버림받은 것 같다는 자책에 사로잡히면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그러나 내 편이 없는 결과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한 발짝만 움직여서 내가 그들의 편이 되어주면 된다는 간단한 이치를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결국은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한 편이 되면 이내 행복하게 되는 것을.
이미 고착화된 사고와 통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결코 어디에서도 행복한 발전이나 밝은 희망은 발견할 수 없다.
이른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의식과 의지로 거듭날 때라야 비로서 참다운 내일의 꿈과 보람을 맛볼 수 있는 행복한 삶의 기반이 마련되어지는 것이다.

옛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형 만한 아우는 없다’ 라는 속담이 있다.
장자를 중시하는 유교사상에서 유래된, 판에 박은 정신문화가 엿보이는 속담이다.
형의 위치를 인정해주고 권리를 부여하는 듯 하면서, 한 편으로는 막중한 의무와 책임까지 은근하게 압력으로 떠맡기려 하는 강제적인 입장과 역할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사실 잘 살펴보면 인류의 역사상 존경받는 동서양의 위인이나 성현 중에는 장남 보다는 막내나 셋째 등의 아우들이 훨씬 많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웅인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백제의 시조 온조왕, 태종 이방원, 이율곡 선생 등의 기라성같은 위인들은 모두 셋째 아들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류의 시조 아담도 조물주가 처음에 창조했던 인류는 아니었으며, 그의 아들 중에서도 카인 대신 동생인 아벨이 선택되었고, 그 뒤의 야곱이나 요셉이나 다윗이나 모두 장자는 아니었다.
물론 형이냐 아니냐로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거나, 공식적으로 걸맞는 합리적 역할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형이 아니기 때문에 거꾸로 형 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출생 순위와 형제 관계는 커가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당면하게 되는 사회 환경이다.
아이는 이러한 환경의 중요성을 알고, 가족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한다.
아이가 경쟁을 한다는 게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귀여움을 받는 것, 가족 내에서 혜택을 받는 성(흔히 남자 아이)인 것, 가족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 부모나 형제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것 등은 가족 내에서 자리를 확보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반항하거나, 장애를 갖거나, 가치관을 다르게 갖는 것 등을 통해서 가족 내의 위치를 확보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관심을 받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기도 하며, 나쁜 아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형제 관계를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사실상 첫째 아이 즉, 맏이는 가족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귀여움을 받고 있고, 그럼으로써 가족의 가치관을 받아들여 자신의 자리를 확보한다.
그래서 대개가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게 된다.
또한 밑에 돌봐야 할 동생들이 있으므로 선천적으로 어떤 일에서나 뒷처리를 잘하지만 상대적으로 추진력이 부족하다.
여러 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둘째 아이는 흔히 반항적이다.
맏이가 관심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맏이와는 다른 것으로 관심을 끌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맏이가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자신의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래서 추진력이 강하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밑에 동생도 있기 때문에 뒷처리도 어느 정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둘째 아이가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성공한다는 설도 있으며, 상대적으로 둘째 아이가 혁명적이라고들 한다.
같은 부모에게서 낳더라도 모두의 성격이 다른 이유는 이렇듯 가족 안에서의 사회적 역할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출생 순위가 꼭 심리적인 출생 순위는 아니다.
심리적인 출생 순위란 실제 출생 순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가족 내에서 어떠한 순위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주관적인 출생 순위를 말한다.
10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형제가 있다면, 형은 맏이라기 보다는 그보다 더 확고한 독자적 의미를 많이 갖게 된다.
즉, 이 형제는 둘 다 독자의 심리적인 출생 순위를 갖고, 이에 따라 성격이 형성된다.
따라서 형이 낫다, 아우가 낫다 라는 주장은 아마 각 가정의 구조나 형제들의 관계,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순위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주어진 여건이나 환경에 얼마만큼 잘 적응하고 헤쳐나가느냐 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도리이며 행복한 삶의 자세인 것이다.
아울러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이며 원초적인 소양이 바로 삶을 바라보는 올바른 안목과 가치관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피루투스’는 “삶은 행복과 불행 사이의 여정이며, 그 사이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말했다.
행복의 참된 의미는 결과가 아니고 과정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는 그 자체가 아니고,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의 맛과 보람을 찾는 것이 올바른 행복의 가치관인 것이다.
‘행복’은 사전적 의미로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로 결론지을 수 있다.
영어 표현에서도 명사인 happiness, bliss나 형용사인 happy, blissful 모두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행복의 반대말이 무엇인지는 사전에 나와 있지 않다.
아니 이 세상에 그런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의 반대말이라고 하면서 기껏 ‘행복’의 앞에 ‘그렇지 않다’는 뜻의 ‘불(不)’이라는 글자만 덧붙였을 뿐이다.
있지도 않은 상태를 억지로 만들어놓고, 부정의 접두사를 덧대어서 파생시킨 정체불명의 단어에 속박될 필요는 없다.
그냥 우리가 염두에 두고 곱씹어야 할 단어는 오직 행복 뿐이면 되는 것이다.

어느 대학교의 논술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1. ‘고종황제’에 대해 기술하시오.
2. ‘안중근의사’에 대해 기술하시오.
3. ‘이등박문’에 대해 기술하시오.
* 삼자택일로 기술하시오.”
그런데 어떤 수험생이 문제를 보고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위의 세 사람은 알겠는데 도무지 ‘삼자택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번호 대신 특별한 표시까지 되어있는 걸로 미루어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만은 확실한데 모른다고 쓸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다가 눈치껏 답을 썼다.
추측컨대 세 사람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고, 이름이 네 글자인 걸로 미루어 아마도 일본인일 듯 싶으니 대충 어딘가에는 걸리겠지 하는 심사에서 였다.
“답 = ‘이등박문’의 사촌동생이며 ‘고종황제’의 친구이자 ‘안중근의사’의 일본어선생님인 사람으로, 겉으로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비밀스럽게는 국가의 행복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한 역사적 인물”
이렇게 해서 행복한 세기의 인물 ‘삼자택일’이 탄생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자식의 공부를 위해서 가정교사를 들였다.
누가 뭐래도 제 자식은 크게 될 인물이라 여겨 특별한 공부로 양육하기 위함이었는데, 어느날 방문 앞에서 들어보니 계속해서 반복하여 큰 소리로 읽어대고 있는 내용이 죽은 아버지를 기리는 격문이었다.
한참 후에 다시 가봐도 역시 똑같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참다 못한 이 사람이 마침내 가정교사에게, 어째서 다른 공부는 없이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는 나를 기리는 격문만을 계속해서 암기하고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그러자 가정교사가 대답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마도 자제분이 그 격문을 다 외울 때 쯤이면 그 때와 맞아떨어질 겁니다.”
그만큼 돌머리라는 의견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다.
모름지기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덕목과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습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교육에 임하는 사람에게 걸맞는 시기와 한계와 적절한 수준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거기에 비례하여 보조를 맞추는 행보가 바람직한 교육의 과정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으로 가는 과정과 직결되는 것이다.
정도를 지나쳐 어울리지도 않는 단계를 자신에게 맞춤인 것으로 착각하고는, 지나치게 집착하는 교육의 결과야 말로, 의미없는 행복의 결과처럼 실질적으로는 허무한 여정의 종착지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교육을 진행해가는 행보가 소위 진정한 행복의 구심점이며 실체가 되어진다는 점을 각별하게 명심해야 한다.

세계에서 행복감이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이다.
지난 해 9월 유엔이 조사한 ‘2013 세계 행복 보고서’의 1등은 덴마크가 차지했다.
10점 만점에 7.693점을 받았다.
뒤이어 노르웨이,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이 차지했다.
한국은 41위에 머물렀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미국이 더 높지만, 행복감은 덴마크가 더 높다.
덴마크는 지난 30년간 경제 호황과 침체를 거듭해도 행복지수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은 자전거 천국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페달을 밟는 대학생 뿐 아니라 양복 정장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나이 지긋한 노신사도 쉽게 볼 수 있다.
직장인의 35%가 자전거로 통근한다.
국회의원도 자전거를 타고 등원한다.
1970년대 자동차 사용이 늘어나 환경오염이 심각해지자 덴마크 정부는 자전거를 대중교통으로 장려하기 위해 자동차에 세금 폭탄을 부과하고, 자동차 생산을 아예 포기했다.
자동차 산업으로 돈을 벌고 일자리를 만들려고 애를 쓰는 한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원전과 4대강 사업으로 환경을 파괴해도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한국의 상당수 사람은 북유럽 국가를 말할 때마다 “그 나라들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너무 달라요.” 라고 말한다.
물론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북유럽 복지국가의 경험에서 배울 점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려는 상투적인 변명이나 합리화를 위한 핑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덴마크 사민당의 20대 청년 ‘사이몬 레더’ 국제위원장은 덴마크의 행복 비결로 ‘사회정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복지제도, 낮은 부패율, 높은 사회적 신뢰’를 꼽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정개혁을 위해 단골로 등장하는 립서비스용 의제이다.
그러나 말 뿐이 아니라 북유럽의 역사적 맥락을 잘 이해하면서도 한국적 적용의 가능성을 고민해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행복은 생각보다 작다
그러니 거창하고 큰 것에서 찾지 말자.
멀리서 힘들게 헤매지 말자.
비록 작지만 항상 우리 눈 앞에 있다.
행복은 어쩌면 이기적이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 만이 가질 수 있다.
남의 시선 따위는 무시해버리자.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울 수 없다.
행복은 끝없는 연습이다.
그냥 주어지는 행운의 복권이 아니다.
부지런히 노력하고 연습해야 얻을 수 있는 열매이다.
가는 길은 만 갈래지만 방법은 하나이다.
행복은 또한 습관이다.
아는 길이 편하고 가던 길을 또 가듯이, 행복을 아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몸과 마음에 배이는 향기이다.
하나씩 날마다 더해가는 익숙함이다.
행복은 다르게 보면 투자이다.
미래가 아닌 현실을 위해 남김없이 투자하자.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을 온전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소중한 공기이다.
때로는 바람이고 혹은 구름이다.
잡히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행복은 아름다운 선물이다.
어렵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 미소이기도 하고 소리없이 건네 줄 수 있는 믿음이기도 하다.
가장 달콤한 포옹이다.
행복은 기쁜 소망이다.
끝없이 전달하고픈 욕망이다.
하염없이 주고 싶은 열망이다.
결국엔 건네주는 축복이다.
그리고 행복은 바로 당신이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당신이다.
변함없이 사랑하는 당신이다.
이미 당신이다.

그래서 행복은 언제나 당신의 가슴 속에서 숨을 쉰다.
지금 밖으로 나서려거든 가슴에 사랑을, 지혜를, 행복을 듬뿍 가지고 나서자.
머리로 세상을 이기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가자.
그러면 세상은 행복의 천국이 될 것이다.
오늘은 가방 속에 소지품 대신 행복을 한 가방 가득 채워서 거리로 나서보자.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향수처럼 향기로운 삶이 될 거다.
당신이 꿈꾸는 세상, 그것은 행복이다.
그 행복은 바로 당신의 손 안에 있다.
오늘은 행복으로 미소짓는 날, 바로 우리가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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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
행복이란 엄청난 게 아니고
바로 요런 사소한 맛속에
아기자기 숨어있는 거구나

대단할 것도
근사할 것도 없는
그저 담담한 자기만족,
그걸 진즉 알았어야 했는데

때론 뒷산 걸어올라
동리의 에움길 내려다보며
숨 한번 크게 쉬다가 언뜻 느끼던,
혹은 깊은 잠에서 뒤척이며
창밖 빗소리 나른하게 듣다가 불쑥 눈치챈,
그리고 언제인가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냄새에
그윽히 취하면서
왼종일 굶었음도 잊고 한껏 만족해 하던,

그런 것들 모듬이 전부
행복이었더란 말 ?

해 저문 공원 벤치 홀로이 앉아
뛰노는 아이들 거뭇거뭇 쳐다보며
삶의 양면성 읊조려 이해하던
그 어느날 행복들 있어
나 숨쉬게 하느니

행복이란, 그래 !
나 살아가는 이게 바로 그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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