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동시집. 자라는 나무가 되어  


  "* 동시집. 자라는 나무가 되어"
林森의 유일한 童詩集입니다.
사실상 내용이나 수준으로 판단해보건대
童詩集이라기 보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엮은 準 成人詩集에 가까운 편입니다.

1997년 4월 5일에 인쇄된 詩集입니다.

林森의 기존 詩風으로 미루어
쉽사리 만들어진 詩集이라고는 할 수 없고
총 55편의 청소년詩로 엮은 詩集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童詩集을 출판하고
더 이상의 童詩集은 시도하지 않았으니
林森의 詩의 世界에서는 희소가치가 있는
귀한 詩集인 셈입니다.
[ 도서출판 명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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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톱 *



시작노트

" 모래톱 " 詩作 note

사람들의 영원한 그리움은 밖으로 향하는 그리움이 아니고 회귀의 본능에서 유발되는 되돌이표 그리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이나 ‘향수’ 그리고 ‘동심’ 등의 단어는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그리움의 단어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고향을 떠올리면 선한 마음과 아련한 동경의 심정에 젖어들곤 한다.
아마도 그건 사람이라면 의례껏 갖는 가장 근원적인 로망일 것이다.
그래서 ‘꿈’이라는 표현도 따지고 보면 다분히 미래지향적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그리움의 표상일 수 있겠지만 과거의 추억과 예전의 그리움으로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세상 만사는 마음 먹기 달렸고 세상의 모든 진리는 양면성이 있어서 서로 상극의 본질들이 수평과 균형을 이루면서 삼라만상과 우주 만물을 형성하고 있다.
음과 양이 있고, 밤과 낮이 있으며, 하늘과 땅이 있고, 산과 바다가 있다.
안과 밖이 있고 고향과 타향이 존재하며 늙은이와 어린아이가 함께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전쟁과 평화, 강함과 약함의 개념과 더불어 높고 낮음과 넓고 좁음, 길고 짧음과 크고 작음 등도 함께 어우러져 조화 속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으니 바로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일을 해도 행복과 불행이 나뉘고 성공과 실패가 교차한다.
그러다보니 웃음과 울음은 바로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결과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나와 남은 상생을 할 수도, 상극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깨닫기만 해도 철학이 되고 시가 되고 낭만이 가득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거창한 어떤 계기나 전환점을 발견하기 위하여 속절없이 애를 쓸 필요는 없다.
삶 자체가 자연스러운 시간의 연속성에 실려 있는 여정과 같은 것이다.
요는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볼 일이다.
버스를 타더라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앞만 보면서 추월과 속도의 불안에 떨지 말고 적당한 뒷자리에 앉아서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자.
기차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정면으로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쳐지나가는 창 밖의 풍경은 어디나 고향과 같고 게다가 어둠이 내리면 지워지는 풍경 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은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
조급한 심사를 갖고 연명하는 목숨들에게 언제나 가파른 죽음은 바로 앞에 있는 것이고 평화로운 삶은 바로 그 옆에 있는 것이다.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를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탓하거나 그들에게 돌을 던질 필요는 없다.
앞만 주시하는 삶이라면 은연중에 누군가 등 뒤에서 뒤통수를 후려칠지도 모르니 앞서는 사람에게 미혹되지도 말고 뒤에 오는 사람을 무시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른 선택이 없이 일로매진만 추구하는 길에는 피로만 쌓이고 결국 자주 코피가 쏟아져 궁극적으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을 해치게 되지만 휘휘 둘러보며 가는 길엔 여유가 피어나 들꽃들이 길을 향기롭게 하는 아름다운 정경도 볼 수가 있다.
평화의 걸음걸이는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지만 오로지 앞만 보다가는 서로 오해가 쌓여 화를 내고, 싸움을 하고, 마침내 전쟁이 터지게 된다.
더불어 손잡고 발밑의 개미 한 마리, 풀꽃 한 송이를 살펴보며 가는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며 평화의 길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천 걸음보다 더불어 손을 잡고 가는 모두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니 예컨대 앞만 보지 말고 바로 그 옆을 보는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일상에 찌들고 삶에 지친 우리도 가끔 미소를 지을 때는 있다.
캄캄한 것 같은 우리의 삶이 어느 날 갑자기 환하게 밝아질 때도 있다.
삶이 힘겹고 고달프기만 하지 않은 것은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는 세상의 향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삭막하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은 눈을 닫고 마음을 닫아왔기 때문이었던 거다.
하룻 길의 아침에 집을 나서는 아빠에게 손 흔드는 아가의 해맑은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
귀가 길에 지는 석양을 제대로 본 적이나 있는가 ?
그 아름다운 세상의 향기가 진정 우리의 삶의 버팀목임을 새로운 눈길로, 새로운 마음으로 확인해 보는 나날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그냥 그런 기분들을 모아서 소박한 행복의 날들을 만들면 된다.
한 곳에 머물며 고향을 갖는다는 기분, 꽃들과 나무, 흙, 샘물과 친해진다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사랑을 느낀다는 기분, 몇 그루의 나무와 몇 포기의 화초, 그런 고향의 모습을 그리는 기분이 행복의 기분인 것이다.
행복은 아침 저녁으로 울타리를 넘어 정원으로 찾아드는 새들처럼 온다.
꽃나무를 심어야 꽃을 볼 수 있다.
가족이라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 혹은 무지하게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행복으로 여길 줄 아는 마음이 바로 꽃의 마음이다.
한 평의 텃밭, 강가의 산책길 같은 우리 마음의 정원에다 꽃을 가꾸어야 한다.
꽃들은 무심히 피었다가 지기도 하겠지만 어느 때인가는 우리가 가꾸어 놓은 정원에 파랑새가 날아와 오랫동안 지저귀게 될 것이다.
그 기다림만으로도 우리의 정원에서 지금 행복하면 되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쉬움이라는 후회와 미련을 반반씩 섞어놓은 무형의 올가미에 갇혀 살 때가 많이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좋은 음악을 듣다가 그 음악이 끝나기 전에 집을 나서야 할 때 우리 마음에는 선율의 아쉬움이 맴돌아 발을 뗄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를 같이 보낸 뒤에 가로등 불빛 아래 집 앞에서 손을 놓고 헤어져야 할 때 우리 마음에는 또 하나의 아쉬움이 꽃잎처럼 떨어져 쌓인다.
좋은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약속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때 우리 마음에는 아쉬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혹여 시골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이 고향으로 돌아가시기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멀어져 갈 때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때론 손수건을 적신다.
긴긴 시간 동안 한 자 한 자 마음 속 이야기를 담아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는데 그제서야 사랑의 마음을 더 간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글귀가 떠오를 때 우리는 아쉬움에 몇 번이고 우체통을 다시 바라본다.
열심히 공부한 뒤 시험을 치르고 답안지를 낼 때마다 성적의 결과를 떠나 늘 '아차'라고 후회하는 아쉬움만 정답으로 남는다.
이 세상은 아쉬움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좋은 것에는 아쉬움이 있고 부족함, 안타까움이 그 사람을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고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 낸다.
그러고 보니 아쉬움과 후회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후회는 잘못된 일에 대한 뉘우침이지만 아쉬움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깨우침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순전히 필자의 일방적인 해석이긴 하다.
후회를 개선하는 방법은 모든 것을 백지화하여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아쉬움은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으로 개선해 나갈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본다면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언제 이리 시간이 갔나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한 해의 절반을 어찌 살아왔나 되돌아 보면 후회가 되는 일도 또 아쉬운 일들도 많다.
그러나 후회는 마음 속에 접고 아쉬움은 아직 남은 다른 하나의 절반, 이 해의 마지막까지 채워나갈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그렇다면 이 계절 한여름에 은근한 욕심 몇 가지는 품어도 죄가 되지는 않을 듯 싶다.
지금쯤이라면 불현듯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오면 좋겠다.
늘 그리워하는 그 사람이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더라도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이라도 한번 들려주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불쑥 편지를 한 통 받았으면 좋겠다.
편지 같은 건 상상도 못하는 친구로부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라도 담긴 편지를 받는다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는 선물을 고르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예쁘게 포장하고는 내 주소를 적은 뒤 망설임도 없이 득달같이 우체국으로 달려가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좋겠다.
귀에 익은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와 나를 달콤한 추억의 한 순간으로 데려가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누군가가 내 생각만 하고 있으면 좋겠다.
나의 좋은 점, 나의 멋있는 모습만 마음에 그리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참 좋겠다.
지금쯤이라면 상큼한 여름의 바람이 내 고향 들녘을 지나가면 좋겠다.
비온 뒤, 이렇게 맑은 여름 햇살이 내 고향 들판에 쏟아질 때 모든 곡식들이 천천히 살쪄가면 참 좋겠다.
그런데 '지금쯤....' 하고 기다리지만 아무 것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나서야겠다.
내가 먼저 전화하고, 편지를 보내고, 선물을 준비하고 음악을 띄워야겠다.
그러면 누군가가 좋아하겠지.
그러면 나도 좋아지겠지.
이 찬란한 계절이 가기 전에 비록 오늘의 삶이 힘겨울지라도 하늘을 바라볼 때면 늘 힘이 되어주는 고향과 사랑의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풀벌레 울음 여울지는 하늘 가에 파아란 마음으로 메아리치는 늘 푸른 여름의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비 갠 하늘이 너무 파래 눈물이 날 때면 사랑이 가득한 메세지로 늘 힘이 되어주는 지란지교 참사랑처럼, 언제나 반겨주는 한송이 푸르른 들꽃 잎새처럼, 행복이 가득한 사랑이고향의 그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담뿍 담겨있으면 좋겠다.
이 여름이라면 계절 속에서 닮아온 화사함과 신선한 오솔길을 전하며 누구에게나 푸근한 고향의 느낌을 선물하는 여름 단상의 작품 여나믄이라도 써진다면 참말 좋겠다.

얼마 전 약속이 있어서 호텔로비에 앉아 있었다.
필자는 사람 구경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어서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외국의 여행객들이 참 많았다.
큰 여행 가방에 많은 짐을 넣고 온 그들은 아주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가 문득 필자는 거대한 유레카의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그렇다, 비결은 바로 바퀴였던 거다 !
그것을 일일이 손에 들고 다닌다면 얼마나 끙끙대며 힘들 것인가 ?
그러나 ‘바퀴 하나’가 그 무거운 짐을 날렵하게, 거뜬하게 움직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지고 다녀야 할 업무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갖가지 멍에들, 그것은 바로 피해갈 수 없는 우리의 짐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미련스럽게 하나하나 붙들고 고통스러워 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잿빛의 무덤일까 ?
이제부터는 우리 인생에도 바퀴를 달면 된다.
그렇다면 인생의 바퀴는 무엇으로 만들어야 할까 ?
그것은 적극적이며 낙천적인 성격일 것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
뭐든지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햇빛 마음 !
불경기가 이어지다 보니 필자가 아는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이 퇴출을 당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아주 즐겁게 살고 있는데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이 끝났다고 단정하고 비관적인 삶에 빠져들고 말았다.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하고 시도했으나 결국 그것마저 실패하고 아직도 깊은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바퀴를 만들지 못한 사람과 바퀴를 만든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엄청나다.
이 지구상에는 현재 이 순간에도 숱한 성공과 실패가 존재한다.
그러나 낙천적인 사람은 반드시 뜻한 바를 이루고야 만다.
왜냐하면 인생은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옛날 우화 하나를 읽어보면 낙천주의자와 비관주의자가 얼마나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지 잘 표현해주고 있다.
어떤 형제가 있었다.
산타크로스가 선물을 했다.
형에게는 롤러스케이트, 동생에게는 말발굽을 선물하였다.
그러자 비관주의자 형은 고민에 휩싸였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지면 어쩌나 ?
이제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지 ?
내가 가고 싶은 고향 뒷산, 저 언덕에 부는 바람도 이젠 마지막이구나 !’
형은 끝없이 이어지는 비관적인 상상에 뒤덮여 선물의 기쁨을 누리기는 커녕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반대로 동생은 낙천주의자였다.
지금 그의 손에 있는 건 말발굽뿐이었지만 그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다.
‘이제 곧 어디선가 말이 달려올 거야.
황금 갈기를 날리며 나를 향해 달려오겠지 ?
나는 그 말을 타고 꼭 가보고 싶었던 푸른 들판을 마음껏 달려볼테야 !’
그렇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렸고 내 생각에 달렸다.
처해진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이 세상에 사는 어느 누구도 인생의 짐이 가벼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다만 그것을 무겁게 끙끙대며 ‘짊어지고’ 가는 사람과, 바퀴를 달아 날렵하게 ‘굴리고’ 가는 사람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당장 마음 속의 비관적인 생각을 털어버리고, 삶에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잿빛 생각들일랑은 저 하늘 높이 훨훨 날려보내자.
그냥 마음 먹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바퀴 하나만 튼튼하게 장만해보자.
그리고 버겁고 고된 삶의 길 위에다 고향이라는 행복의 바퀴를 매달아놓고 신나게 굴려보자.
우리의 고향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우리의 바퀴가 되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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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톱에 파도 물결
남실 왔다가
바다의 이름 두고
되돌아 가면
선명한 흔적 마다
퍼지는 햇살
고향 꿈이 산산이
흩어져 가네

소라껍질 귀에 대면
고향의 노래
동구밖 뛰며 돌며
부르던 노래
그리워 눈을 들어
먼 하늘 보면
바람에 실려오는
고향의 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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