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잊혀진 시절들의 꿈  


  "* 잊혀진 시절들의 꿈"
詩集으로 출판되지 않은
未發表詩들을 모아놓은 코너입니다.
그러므로 향후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거라면
첫번째 묶음집의 가상 제목인 셈입니다.

시기적으로는 1998년부터 2008년 중반까지
약 10여년 동안에 씌여진 詩가 대부분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처절한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인지라
詩作활동은 상대적으로 약간은 침체되어 있던 기간입니다.

일상에 쫓기다보니 多作을 할 여건이 안되어
기간에 비해 詩의 數는 많지 않은 대신,

이 코너에는 특별히
마지막 남은 로맨티스트를 표방하는 스토리텔러
林森 본인에게 애착이 가는
詩들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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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배의 잔을 가을이라는 이름 위에 *



시작노트

" 축배의 잔을 가을이라는 이름 위에 " 詩作 note

여름의 뒷 끝에 시달리면서도, 밤으로 슬금 기어든 바람에 긴가민가 했더니 어느새 불쑥 가을이 지천이다. 참으로 야속할 정도로 빠른 게 세월이다. 이러다가는 올 가을도 그냥 겅중거리다가, 변변한 추억 하나도 마련치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말 게다. 큰 일 났다. 영락없이 늙은 회한 하나가 인생 일기장에 밑줄을 더할 듯 싶다.

나이 먹은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빠른 게 세월이라더니, 이즈막에는 쏜 살같다는 말의 어렴풋한 의미를 깨달아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어찌해야 이 속절없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는 건가? 성현들의 가르침이나 조상님들의 은덕이라도 빌어서, 세월 앞에 장사없다는 속설과 맞바꾸고 싶은 심사 간절타.

허기사 이렇게 몸부림을 쳐봤자 그저 나이 먹은 초로의 필부가 하릴없이 부르짖는 빈 소리이겠거늘 할지니, 맥없이 짓게 되는 실소 또한 범상찮다. 그냥 물 흐르듯이 진리의 궤적 따라 순리대로 살다 가는 것이 삶인데, 새삼 근본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어리석음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랴?

하루를 살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모범은 되지 못할 망정, 손가락질을 받거나 핍박을 받을 언행은 삼가면서, 나이에 걸맞는 처신으로 자식들 욕 먹이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네 황혼줄의 바람직한 삶의 색깔이려니 하면서도, 이 아침은 여전히 색다른 소망 하나 쯤 적선받고 싶어 이 악다물어 옹송그려본다.

폐일언하고, 오늘은 작심하고 사람의 도리 몇 가지를 제언코자 한다. 어차피 넋두리로 세상 살 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 사는 방도가 딱히 정해져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두겁을 쓰고 태어나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이른바 사람이라면 해야 할 도리와 금해야 할 금기의 구분은 뚜렷하다. 그래서 우선 고전의 가르침에서 발췌한 ‘아홉 가지의 몸 가짐’을 살펴보기로 한다.

처음으로 우리는 ‘두용직(頭容直)’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머리를 곧게 세우라는 말이다.지금 우리 주변엔 고개를 떨어뜨린 사람이 너무 많다. 세상사가 만만치 않아서 지난한 세파가 너무나도 버거워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끝인 듯 보이는 거기가 바로 새 출발점이다.

다음으로 ‘목용단(目容端)’의 삶이다. 눈은 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눈매나 눈빛은 그 어떤 인상 보다도 중요한 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눈매는 힘써 안정시켜서, 흘겨보거나 곁눈질 하지 말며, 어떤 경우에라도 남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이 ‘기용숙(氣容肅)’의 삶이다. 기운을 엄숙히 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세상 속에서 기 싸움을 하고 있다. 기 싸움은 무조건 기운을 뻗친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내보이고 감출 때를 적절하게 운용하면서 기를 소중히 여기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다음은 ‘구용지(口容止)’의 삶이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뜻이다. 물고기가 입을 잘못놀려 미끼에 걸리듯 사람도 입을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하는 법이다. 결코 가볍게 보아넘기지 말고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입구(口)자’가 세 개가 모이면 ‘품(品)자’가 된다. 자고로 입을 잘 단속하는 것이 품격의 기본이다.

다섯 번째로 ‘성용정(聲容靜)’이다. 소리는 조용하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말할 때는 시끄럽게 해서는 안되며, 바른 형상과 기운으로 조용한 말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요즘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세상이라는 그릇된 말을 맹신하고 아무 때나 목청을 높이는 우매한 짓을 삼가야 한다.

다음은 ‘색용장(色容莊)’의 삶이다. 얼굴빛은 씩씩하게 하라는 말이다. 힘든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의 얼굴빛이 어둡다. 그렇지만 어렵다고 찡그리지 말고, 애써 얼굴을 펴고 웃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긍정과 낙관이 부정과 비판을 이기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다음은 ‘수용공(手容恭)’의 삶이다. 손은 공손하게 가져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손길 하나가 사람의 삶을 좌우하는 경우도 우리 주변에서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직업에 따라서 중하고 심각한 손길인 경우가 있다. 또한 손을 사용할 때가 아니면 마땅히 단정히 손을 맞잡고 공수(拱手)해야 한다.

다음으로 ‘족용중(足容重)’을 명심해야 한다. 발은 무겁게 가져야 한다는 뜻, 즉 처신을 가볍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는 발을 디뎌야 할 곳과 디디지 말아야 할 곳을 구별할 줄 알라는 말이다. 아무데나 돌아치며 일을 벌이는 삶은 자신만 고단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기 십상이다.

끝으로 ‘입용덕(立容德)’의 삶이다. 서있는 모습은 의젓하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중심을 잡고 바른 자세로 서서, 덕이 있는 기상을 지녀야 한다. 고로 서있을 자리와 물러설 자리를 구별해 아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수히 이어지는 인연의 인과, 즉대인 관계를 형성해가는 근본 자세를 지적하는 충언이다.

이 몇 가지의 삶의 철학을 쌓았다고 해서 물론 가장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다거나 완벽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외에도 수많은 덕목과, 우리가 배워야 할 수행의 과제가 무수히 널려있다. 성현의 가르침처럼, 그러하기에 우리는 목숨을 다해 죽을 때까지 부단하게 배우고, 자신을 깎는 ‘절차탁마’의 자세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아울러 이 중에서도 특히 더 유의해야 할 것은 입 조심을 하라는 말이다. 검은 콩 한 말과 흰 콩 한 말을 섞는 데는 한 순간이지만, 다시 원래대로 고르려면 한 나절이 걸려도 부족하다. 마찬가지로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 수많은 말을 한다. 말은 주의해서 다루지 않으면, 서로에게 깊은 상흔을 남길 수 있다.

특히 화가 나서 상대방의 마음을 해치지 않도록, 요리사가 칼을 대하듯 주의해야 한다. 우리 마음의 그릇에 좋은 마음과 좋은 생각을 담는다면, 말로써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밖으로 뱉은 말은 결국 자신의 삶을 이끄는 견인차가 된다. 자신이 한 말에 따라서 책임져야 할 삶의 숙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한 편, 위에서 제시한 삶의 교훈 중에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늘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삶의 화두는 단연 ‘사랑’ 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사랑의 마음이 들어있기에 정과 행복과 기쁨들을 공유하고, 슬픔과 아픔들을 나눌 수 있다. 모름지기 사랑은 단어로 형상화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고, 말로 표현해낼 수 있는 설명 대상이 아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사람의 연결고리가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역사이며 내일을 만드는 근원이다. 사람의 삶에서 사랑을 빼면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이 써내려가는 기적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다가올 소망을 제시해준다. 그래서 사랑은 절대의 덕목이며 최상의 지표이다.

의술을 통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사랑의 기적을 몸소 겪었던 그 지인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지인이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고 한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 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지인은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지인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Electrocardiogram,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 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면서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보통 이러한 ECG의 곡선이 나타난 이후 10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지인은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나 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 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지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다른 환자를 보고 잠시 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지인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지인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어지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 병원 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둥 마는둥 그날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지인은 왠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 보았다.

물론 지금 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였지만, 웬지 그의 생각이 머리 속에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선 순간 지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 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도 그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지인은 무언가를 느꼈다. 웬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아마도 지인은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지인은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 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지인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 역시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어쩌면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젊은이의 애인인 둣 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지인은 한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그리고 급하게 그의 손을 감싸쥐었다. 바로 그 순간.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 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 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 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 때 멈춘 것이었다. 지인의 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웬지 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지인은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지인에게는 그녀가 그의 삶을 오늘까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한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중이었다는 것이었다. 놀라움과 더불어 마음 속 깊숙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지인은 그 순간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지인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랜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긴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시지라고, 그것은 바로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물을 바라보며, 지인은 두려움과 함께 어떠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그 뒤 지인은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고 한다.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 역시 직접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영혼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의사의 길에 들어서는 후배들에게 지인은 요즘도 이 이야기를 자주 해주고는 한다는 이야기였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할 거란다.

오늘은 지인의 경험담을 길게 소개하다보니, 시작노트에 다른 말을 할 여지가 줄었다. 하지만 어차피 언제 어디서나 사랑의 힘과 사랑의 역할을 피력하는 일을 애써 노력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이 경험담이 두고 두고 가슴을 울리는 메아리가 되어 신선한 충격을 일깨워주기에, 장황하지만 예화로 인용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끊임 없는 만남으로 살아가지만, 만나고 싶은 만남과 만나고 싶지 않은 만남이 있다. 그리고, 만나서는 안되는 만남이 있고,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만나야 하는 만남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여러 만남을 통해서 인생이 우리 뜻과 같지 않음을 배울 수 있는데, 아마도 사랑하면서도 헤어져야 하고, 미워하면서도 만나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삶의 이유인가 싶다. 그래서 모든 만남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나보다.

‘만난다’는 말은 ‘맛이 난다’는 말과 같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만남’은 곧 ‘맛남’이라는 거다. 그러고보니 체감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기치 않게 들이닥치는 불행한 만남도 너무나 많다. 바라기에는 우리의 모든 만남이 기쁨으로 만나 기쁨으로 헤어지고, 사랑으로 만나 사랑으로 헤어지고, 믿음으로 만나 믿음으로 헤어지고, 소망으로 만나면 소망으로 헤어지는, 그런 행복한 만남을 가지고 싶다.

우리의 만남이 서로에게 기쁨과 감격과 감사가 되고, 삶의 보람이 되는 멋진 만남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우리의 만남을 단순하게 끝낼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는 보장되어 있고 성취되어질 사랑과 행복의 영원한 만남이 지금도 ing 중이며, 훗날 언젠가 완전한 모습으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가을에도 가을이라는 그 이름 위에 축배의 잔을 건넨다. 올 가을에는 더 크고 더 행복한 사랑으로 가득한,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행운과 축복이 아로새겨지는,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충만한 계절이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온 누리에 사랑이 가득 가득 차고 넘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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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선혈빛 자지러지는 수목 아래에 서보면,
우린 가을 그 한 잔 만으로도
슬픈 과거 죄다 잊어지어
홀씨로 흩날리던 고통 따윈 충분하게 묻히어 보낸다

가을 그 한 잔 속엔
새론 날들의 시작과 은근한 햇살의 약속
모두어 담겨져 있다

가을 그 한 잔이라면
사랑이, 웃음이, 평화로운 정분과 삶이
유혹으로 솟아난다

행복과 기쁨의 나날들이
또 다른 가을 그 한 잔으로 윙크하며 넘쳐나고 있거늘,
친구여 !
이젠 잔을 들어라

가을이라는 이름 그 위에
익어가는 축배의 잔 부딪치려거든
한갖 시름은 거두고 잔을 비운 채로 높이 들어라

넘쳐나는 가을을 눌러 담게시리....

(2007년 9월 9일 북한산 자락의 가을 초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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