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5집. 비 내리는 날 오후  


  "5집. 비 내리는 날 오후"
수록된 序詩의 제목은 '사랑의 서시'이며
목차에서는 '봄 ! 초록빛 생명이 움트는 새 날'에 11편,
'여름 ! 푸른 바다 파도위 갈매기의 사연'에 11편,
'가을 ! 낙엽쌓인 포도의 회색 하늘 정취'에 11편,
'겨울 ! 백설의 광야에 홀로 선 소나무'에 11편,
그리고 '뒷풀이 한마당 -
멍석깔고, 재주넘고, 행복찾는 짓거리'에 16편,
합계 61편의 詩와 後記로 편집된 詩集입니다.

1995년 11월6일 인쇄되었으며
이 詩集에는 비교적 서사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닌 詩가
다른 詩集에 비해서
더 많이 실려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초롱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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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비 *



시작노트

" 낙엽비 " 詩作 note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잠을 깨자마자 주섬주섬 차비를 갖추고, 여명을 걸어 산행길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십수년 째 반복되는 일과다.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거의 매일 필자는 새벽산행을 즐긴다. 아니, 즐긴다기 보다는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과목인 셈이다. 이미 16년 전에 당뇨병 진단을 받아 지금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약의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라, 끼니처럼 약 챙기기가 여간 성가신 노릇이 아니다.

‘약물요법’ 못지 않게 중요한 ‘식이요법’과 ‘정신요법’,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운동요법’까지 끔찍히도 신경을 써야 하는 처지이고 보니 웬만해서는, 이나마 아침 식전으로 흘리는 한시간반 정도의 땀이 건강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오래 지병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합병 증세나 기타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제법 잘 버티면서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어찌 보면 퍽이나 대견스럽고 흐뭇한 스스로의 처세다.

바라기에는 앞으로도 쭈욱 지치지 말고 이어졌으면 하는, 하루의 시작 즈음에 배당되는 몸부림이다. 아무튼 그렇게 오늘 새벽에 나선 산행길도 특별한 감정이나 생각 없이 시작되었던 일상의 버릇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사단이 나면서 충격적인 감성의 향연으로 이어지는 통에 격동하는 심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아 한참을 눈 감아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야, 겨우겨우 늘어진 몸을 추스릴 수 있었음이다.

무심코 사색에 잠겨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데 갑자기 스산한 바람이 불더니 와글와글 주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을 뒤덮은 높은 나뭇가지에서 수백, 수천의 낙엽들이 일제히 우우 소리를 지르며, 목하 추락 비행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일부는 이미 황홀한 군무를 추며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바람에 시달리면서도 떨어지기 싫은 몸부림으로 파다닥 파다닥 몸살을 앓으며, 일부는 그악스럽게 빨판을 가지에 박고 최후의 항쟁을 하고 있었다.

그건 한 마디로 처절한 공중전이 벌어져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싸움터였다. 회오리바람 따라 낙엽들은 폭격기 소리를 내며 허공을 부유하다가, 필자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낙엽의 무차별 공습에 갑자기 겁에 질린 필자는 제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나무 밑둥을 부여잡은 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견디지 못해 슬그머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던 것이다. 이게 오늘 사건의 내막이다. 그렇게 시작도 끝도 없는 낙엽의 선전포고가 있었다. 온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순간적인 공격이.

잠깐 동안이지만 그렇게 많은 낙엽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 시각이 지나고 혼자 가만히 돌이켜보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바보스러운 생각이었지만 순간적으로는 정말 무서웠었다. 엄살을 좀 섞자면, 마치 낙엽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류 최초의 피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그들이 할 일 없다고 구태여 필자에게 살의를 느꼈겠는가?

열심히 한 시절을 살다가 흙으로 회귀하는 거룩한 몸부림인 것을. 침묵의 시간을 넘어 또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움트기 위한 조용한 갈무리인 것을. 진리와 참된 자연의 목소리에 화답하며 순응의 역사를 실천하는 찬란한 소멸인 것을. 어줍잖은 사고방식으로 잣대를 들이대는 필자의 우매함에 실소를 금치 못하며,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탁탁 털면서 뉘 볼세라 급히 걸음을 서둘렀던 새벽길이다.

시절이 하도 수상해서 그런 건지, 모든 것이 다 투쟁으로 보이고, 공격으로 느껴지며, 살의로 여겨지다니, 어이없는 노릇이다. 나무 보기에 부끄럽고, 낙엽 대하기가 미안스러워서 한동안 산에도 못오를 지 모른다는 우려에, 짐짓 하산길조차 쭈뼛거리게 된다. 대저 낙엽보다도 못한 위인이라 한참을 더 배워야 할 터수다. 이제부터라도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여기고, 기쁨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감사함을 감사하게 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참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는 건 대관절 어떻게 살아야만 받을 수 있는 인정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무릇 사람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또한 필자 스스로는 그 범주에 들어갈 수는 있을까? 아침부터 시작된 의문이 밤 늦은 시간까지 답을 못찾고 이어진다. 어찌해야 사람스러운 삶을 살게 될까? 어떤 삶이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서 사람을 사랑하는 삶으로 되어질 수 있는가? 답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맨다.

중국 고대 ‘춘추전국 시대’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초라하고 더러운 옷을 입은 젊은이가 ‘조나라’의 사상가인 ‘공손룡’을 찾아가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공손룡은 젊은이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떤 재주를 가지고 있는가?” 그러자 젊은이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누구보다도 목청이 좋아 큰소리로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제자들이 비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손룡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 중 이 사람보다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공손룡은 그 젊은이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 후 얼마 뒤 공손룡은 사절단을 이끌고 이웃 ‘연나라’로 가게 되었다. 공손룡 일행이 큰 강 앞에 이르렀을 때다. 건너 나루에는 배가 있었는데, 이쪽 나루에는 배가 없었다. 공손룡의 일행들은 건너 나루를 향해 큰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해는 넘어가는데 일행은 다급해졌다.

이를 지켜보던 목소리 큰 제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건너 나루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여보시오! 사공!”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공은 바로 알아듣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공손룡은 목소리가 큰 제자 덕분에 제 시간에 강을 건너 중요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데 나에겐 재능이 없다며 절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숨은 재능은 반드시 자신 안에 있다.

변변찮은 재주지만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그들의 삶에 작은 지침이라도 줄 수 있는 언변이 필자에게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상담과 제언을 업으로 삼아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격려라도 해줄 수 있는 셈이니, 이 또한 하늘이 정해준 재주라 할 수 있겠다. 혹시 잘하는 것을 모르겠다면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하며 노력한다면
반드시 자기 안의 재능을 발견하고, 꿈을 성취하는 날이 올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감추지 마라. 재능은 쓰라고 주어진 것이다. 그늘 속의 해시계가 무슨 소용이랴.” 라고 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기억하도록 하자. 작은 재주들이 모여서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며, 그 재주들이 서로 협력하여 세상의 질서와 법도를 형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사람다운 삶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은, 아마도 서로가 갖고 있는 재주들을 아낌없이 내놓고, 스스럼없이 합치는 과정으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성공하는 삶을 살기 위한 삶의 덕목 중 빼놓을수 없는 또 하나는 감사의 마음이다. ‘미국’의 20대 대통령 ‘제임스 A. 가필드’의 취임식 날이었다. 그는 가난을 딛고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 유명하다. 취임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통령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경과된 후에 대통령이 한 노인을 부축하며 취임식장으로 모시고 나왔다. 그 노인은 다름 아닌 가필드 대통령의 어머니였다.

그는 연단 옆에 계시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취임사를 시작한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저를 대통령이 되도록 이끌어준 어머님을 모시고 나왔습니다. 이 영광은 제 어머니께서 꼭 받으셔야 합니다. 물론 많은 위대한 선구자들과 존경하는 내빈들께서 자리를 메워주셨지만, 저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분이 바로 어머니이십니다. 그래서 기꺼이 이 자리의 가장 윗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 곁에는 언제나 자신을 위해 희생하며 끊임없이 응원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이고, 그 가족들을 똑바로 인지하여 무한히 신뢰하고 사랑하며 그들의 몫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기 자신이 바로 그 두 번째이다. 이 공식으로 세상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삶이 가장 사람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어느 작은 마을에 엄마와 딸이 살고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딸은 실업계 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가 멀어 날마다 한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어느 날, 딸은 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바쁘게 옷을 입고 나가려는데, 스타킹을 찾아보니 몇 개 안 되는 스타킹이 하나같이 구멍 나 있었다. 딸은 스타킹을 들고 다짜고짜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 이거 다 왜 이래?” “저런, 내가 빨다가 그랬나 보다. 이놈의 손이 갈퀴 같아서... 이를 어쩌나.” “다시는 내 스타킹에 손대지 마. 이제부터 내가 빨 테니까.”

엄마는 그 후론 딸의 스타킹에 정말 손도 대지 않았다. 방학이 되어 딸이 집에 있을 때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우리 엄마 지문이 닳았다고요?” 엄마의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문이 닳아서 등록이 잘 안 되니 잠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딸은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왜, 스타킹을 못 쓰게 만들 정도로 거칠어진 엄마의 손을 한 번도 잡아드리지 못했을까?’

딸은 밭으로 엄마를 찾아갔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기역으로 굽은 등... 평생을 그렇게 논 매고 밭 매며 억새처럼 살아온 엄마였다. 딸은 말없이 다가가 엄마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이고, 우리 딸이 웬 일로 밭에 다 오고...” 영문도 모른 채 엄마는 딸을 감싸 안았다. 엄마의 손은 비록 땡볕에 그을리고 패이고, 흙 묻은 손이었지만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이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지 못해 늘 안타까운 사람.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 손이 다 닳아 없어져도 마다치 않을 사람. 고향 집의 아랫목처럼 언제나 그립고 따뜻한 사람. 듣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름, 그 이름은 엄마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엄마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 한 일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 잃어버려 그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필가 ‘피천득’의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되새겨 볼 말이다.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이들은 그를 ‘이티(E.T.) 할아버지’라 불렀다. ‘이미 타버린 사람’을 줄인 말이기도 하고, 정말 온 몸이 주름져 있는 외계인처럼 생겨 붙은 별명이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훈훈한 외모에 똑똑하고 신념이 굳은 청년이었다. 길거리 또는 천막 교회 한 쪽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자며 공부해서 ‘서울시립대학교 수의학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국내 대학을 졸업한 후 ‘덴마크’와 ‘인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학계와 국가에서 거는 기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그의 날개는 하루아침에 꺾여버리고 말았다. 교통사고로 차가 불길에 휩싸여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화상으로 귀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고, 손은 오리발처럼 붙어버렸으며, 얼굴은 일그러졌다. 눈 하나는 의안을 해야 했고, 남은 눈마저도 실명 위기였다.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딱 한 마디 하셨다. “아들아, 수고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남몰래 피눈물을 쏟아 내셨다.

그는 눈물샘이 타버려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그저 가슴으로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는 모진 고통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청십자 의료조합’ 일을 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한벗회’와 ‘사랑의 장기 기증본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좋아했던 그는 경기도 ‘가평’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워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과 벗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채규철 선생(1937~2006)’ 이야기다.

“삶에는 두 개의 F가 필요합니다. ‘Forget(잊어버려라)’과 ‘Forgive(용서해라)’입니다. 만약 사고가 난 뒤 그 고통을 잊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만약 자신을 괴물처럼 보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교육자의 삶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불태운 그의 인생은 아직도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소나기 30분’이라는 속담이 있다. 인생의 소나기 먹구름 뒤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태양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항상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바로 사람다운 사람인 것이다.

요즘처럼 황금만능주의가 되어 모든 가치가 재물의 유무로 측정되는 세상에서라면 우리가 자칫 범하기 쉬운 실수가 있다. 마치 권력이나 부의 많고 적음이 사람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근본이라고 믿기 쉽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내재해 있는 본연의 인간성보다는 보여지는 외형적인 실체로서의 가치에만 급급하여, 정작 중요한 심성은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것이 실수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어느 마을에 돈 밖에 모르는 한 부자가 죄를 지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관은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 세 가지 벌을 제시하고, 부자에게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하였다. 첫 번째 벌은 벌금으로 은 50량을 내는 것이고, 두 번째 벌은 채찍 50대를 맞는 것, 세 번째 벌은 생마늘 50통을 먹는 것이었다. 부자는 많은 돈을 가졌어도 단 한 푼의 돈을 내는 것은 아까워했다. 그리고 채찍 맞는 것도 무서워했다.

차라리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세 번째 벌을 선택했다. 부자는 생마늘을 까먹기 시작했다. 생마늘을 먹기가 제일 쉽다고 생각하였으나 먹으면 먹을수록 오장육부가 타오르는 것 같았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침내 부자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쳤다. “마늘을 못 먹겠습니다. 차라리 채찍 50대를 맞겠습니다.” 집행관이 부자의 옷을 벗기고 긴 의자에 엎드려 누이고 채찍으로 등을 때리자 부자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결국 부자는 아파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나으리, 잘못했습니다. 저를 불쌍하게 봐주시고 차라리 은 50량을 내게 해주세요.”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그런데 가끔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돈의 최고 가치는 바로 우리가, 돈의 가치가 과대평가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헨리 루이스 멩켄’의 명언이다.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무덤 밖으로 빼놓고 묻어주게.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 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네.”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많은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스무살 나이에 왕이 되어 세계를 정복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으니 나는 이제 심심해서 어떡하나!” 그는 ‘인도’를 정복하려고 공략하던 중 열병으로 사망했다.

10년 넘게 계속된 원정 생활에서 오는 피로와 병사들의 반란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33세에 불과했다. 한 철학자가 그의 죽음 앞에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온 세상도 그에게 부족했으나 오늘은 두 평의 땅으로도 충분하네. 어제까지는 그가 흙을 밟고 다녔으나 오늘부터는 흙이 그를 덮고 있네.” 신하들은 알렉산더의 병세가 악화되자 세계를 정복한 대왕답게 거창한 유언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죽을 때는 자신도 예외 없이 빈 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후세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세상을 살다가 죽을 때는 모두가 빈 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누구나 오직 빈 손, 오직 바람만이 손아귀에서 부딪혔다가 빠져나갈 뿐, 모든 것이 빈손으로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오늘 새벽 산행길에서 만난 바람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낙엽을 흙으로 돌려보내면서 바람은 필자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세상을 깨우는 요란한 소리로 산자락을 휘감으면서 바람은 필자에게 이처럼 약조를 했다. “바람처럼 살아라. 바람으로 살아라. 아무것에도 연연하지 말고, 집착하지도 말며, 움켜쥐려 하지도 말아라. 그저 허허롭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다 비우고, 그리 살아라. 바람인 듯... 그것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는 길이니, 낙엽의 길을 따라, 낙엽의 꿈을 깨달아, 낙엽의 삶으로 소중하게, 소중하게... 그리하면 필경 진실한 낙엽의 진실을 너에게 들려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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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낙엽비가 내리는 걸 보았는가 ?
바람 불 적 마다
온 몸 던져 혼을 사르듯 지는
낙엽의 군무를

다른 아무 것도 원치 않는,
낙엽만을 쓸어모아
겹겹이 만든 자리에 누워
어느새 이불되어 덮어지는
낙엽비에 흠뻑 젖어
그대,
가을 편지 읊어본 적 있는가 ?
그대,
낙엽의 찬가 노래해 본 적 있는가 ?

'낙엽비가 떨어지네.
부슬 부슬 부슬 떨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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