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3집. 당신은 나의, 나는 당신의  


  "3집. 당신은 나의, 나는 당신의"
1995년 3월 23일에 출판된 詩集입니다.

詩人이 직접 '책 머리에'라는 인사글을 썼고
총 4개의 章으로 나뉘어져있는데
'방황하는 자아'에 15편,
'현실을 찾아서'에 15편,
'해묵은 운명'에 15편,
'살며 사랑하며'에 15편,
합계 60편의 詩가 실려있습니다.

유난히 連作詩가 많아서 총 60편이지만
훨씬 많은 量의 詩를 감상하시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 도서출판 가람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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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호 안개 속에서 *



시작노트

" 충주호 안개 속에서 " 詩作 note

지축을 흔들던 민족의 대이동이 끝나고, 몸살을 앓던 전국의 도로들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 이제 한숨 돌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터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귀성과 귀경의 이름으로 분주했던 추석연휴도 지났으니 지금부터 본격적인 가을을 맞아 차분하게 갈무리를 시작할 때다. 언제나 이맘 때면 너나 할 것 없이 추수와 결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비단 농사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며 거둠의 절기이다.

그러기에 이 계절에는 비교적 다른 철에 비하여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갖게 되고, 소외된 이웃과 뒤쳐진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기가 한결 쉬워진다. 애써서 장만하지 않아도 조금은 여유로운 주머니 덕에, 훈훈한 온정을 베풀기에도 그다지 망설여지지 않는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언제나 예외는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때로는 예외가 본질보다도 우선하거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분배의 아이러니도 다반사다.

그러니 가진 게 얼마나 많고 적으냐를 따지지 말고, 그냥 마음이라도 풍요롭게 지녀서 나눔의 미덕에 동참할 수 있는 스스로가 되어짐이, 계절의 축복에 순응하는 방도라고 여기는 게 편치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객적은 소리는 이 쯤 하고, 우선은 필자부터 다잡아서 마음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애써보아야겠다. 그리고 진정한 부가 갖는 만족과 행복을 충분히 경험한 후에, 소감 삼아 다시 본격적으로 나눔을 논해보기로 하자.

지난 연휴기간을 이용해서 필자는 멀지 않은 몇 군데를 여행하였다. 남들처럼 해외로 나가거나 먼 휴양지를 찾아 떠날 만큼의 여유나 짬은 없었기에, 그저 소일 삼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시간 되면 자주 찾던 곳 중의 하나인 충주호의 새벽을, 다시 한 번 작심하고 찾은 데도 딱히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움직이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에, 비교적 익숙한 호숫가에 무의식 중에 다다랐다고 표현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새벽의 물안개를 바라보며 크게 기지개를 한 번 켜다가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그동안 심심찮게 보아오던 정경이었거늘, 그 날따라 보여지는 모든 것이 그토록 낯설게 느껴지다니! 마치 신선의 선계에 이른 것 같은 착각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뽀오얀 안개 사이에서 어렴풋이 피어나는 빛무리, 그건 마치 찬연한 기적을 품은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의 충격이었다.

어둡고 거친 밤이 물러가고, 바야흐로 광명과 영광의 찬란한 태양이 내일을 여는 풍경은 어떤 말이나 글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내일의 희망과 꿈이 열리는 역사적인 정경이었다. 그렇게 그런 신화가 거기 있었다. 벅찬 환희와 감격이 거기 있었다. 온 누리에 퍼지는 햇살의 위대함. 온 세상을 바꾸는 태양의 거대한 용틀임이 필자의 작은 가슴으로 터지도록 넘쳐 흘러들어왔다. 그래서 필자는 거기서 새로 태어났다. 충주호의 안개 속에서, 충주호의 일출을 통해 거듭난 필자의 삶은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우리네 삶이지만, 지금 이후로 단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는 삶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작은 선행이라도 베풀고, 기꺼이 나설 수 있는 배려와 봉사의 삶으로, 다시 주어진 삶의 얼굴을 만들어가야겠다. 구태여 드러내려 힘쓰지 말고, 생색이나 공치사에 연연하지 말고,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게, 희생과 양보의 미덕을 배워가야겠다. 그렇게 남은 날들을 살아가야겠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명확하게 답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묻고 또 물어서라도 차근차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며, 그대로 실천하려 애써야겠다. 바람부는 날 밖으로 나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바람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실오라기 하나에도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말한다. 그대로 해봐야겠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풀잎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거친 시련에도 굴하지 말고 꿋꿋이 홀로 서라 말한다. 시키는대로 해봐야겠다.고개를 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늘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창공을 난다고 말한다. 그것도 따라 해봐야겠다. 조용히 눈을 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번엔 자신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할 게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럴 듯한 말이니 실천해야겠다.유달리 행복해 보이는 노인분에게 물었다. “어르신은 정말 행복해 보이십니다. 어떻게 살아야 어르신처럼 걱정도 근심도 없이 항상 웃을 수 있는 겁니까?” 그러자 그분이 대답했다. “저 물 위에 평화롭게 둥둥 떠다니는 오리들이 보이십니까? 보기엔 아무 염려 없어 보이지만 저 오리들도 물 아래서 얼마나 열심히 두 발을 움직여야 하는지 아십니까?” 그렇구나. 또 새로 배웠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음으로 행복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영원한 진리를 다시 자각했다.올 때는 순서가 있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세상에 태어난 행복한 우리네 인생. 소풍 마치고 떠나는 날 참 잘살았다고, 참 괜찮은 삶이었다고 자신에게 칭찬받는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라고 한 ‘존 러스킨’의 명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칸 영화제’에서 ‘아카데미 단편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한 ‘애덤 데이비슨’감독의 ‘The Lunch Date’에 나오는 내용이다. 백인 귀부인이 붐비는 기차역에서 흑인과 부딪쳐 쇼핑백을 떨어뜨린다. 쏟아져 나온 물건을 주워 담느라 기차를 놓친다. 할 수 없이 주변 음식점에 가서 샐러드 한 접시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은 그녀는 포크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알고 포크를 가지러 간다. 그 사이 허름해 보이는 흑인이 자신의 테이블에 앉아 샐러드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만다. 귀부인은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샐러드를 같이 먹는다.

귀부인 한 번, 흑인 한 번, 교대로 음식을 먹는다. 다 먹은 후 흑인이 커피를 두 잔 가져와 하나를 귀부인에게 건넸고, 커피를 마신 귀부인은 기차를 타러 나간다. 순간 쇼핑백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나 급히 음식점으로 뛰어가지만 흑인도 쇼핑백도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귀부인이 음식점 여기저기를 훑어보는데, 아까 그 옆 테이블에 샐러드 한 접시가 놓여있고 쇼핑백도 있었다.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착각한 귀부인이 흑인의 음식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빼앗아 먹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흑인은 귀부인과 기꺼이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커피까지 대접했던 것이다. 참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 또한 여유와 넉넉함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점점 조급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생각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착각했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 내 자리에서 내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인생을 살아가며 이 나이를 먹고 보니, 비로소 필자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열린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이다. 그렇게 열린 마음에서 모든 소통과 관계가 시작되어진다.

필자가 아는 대학생 봉사동호회가 하나 있다. ‘봉즐’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다. 자원봉사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봉사동호회인데 ‘봉사가 즐겁다’는 의미의 봉즐은 나눔의 보람과 즐거움을 인생의 큰 가치로 두고 사는 열혈 청년들의 모임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 어려운 일을 하며 땀을 흘려야 이웃들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봉즐의 젊은 봉사자들. 그동안 벽화, 농촌 일손 돕기, 문화재 보호 운동 등 다양하게 봉사를 해왔다.

특히 올 해에는 ‘희귀 난치 아동 돕기 바자회’를 열었고, 얼마 전에는 ‘청년 등불 봉사단’과 함께 ‘희망 대행진’을 통해 난치병을 앓고 있는 ‘다온이’를 돕는 등 꾸준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대한민국 국토 최전방을 걸으며 오로지 다온이를 생각했다는 봉즐의 젊은 봉사자들. 그들은 천릿길을 걸으며 때론 발이 까지고 너무 더워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모두 함께 걸어서 다온이를 돕자는 생각 하나로 완주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제 봉즐은 더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리고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앞으로도 벽화 나눔, 장애인 체육대회 등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행사에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겠다고 다짐한다. 나눔으로 세상 온도를 높이고 싶다는 봉즐의 멋진 비전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욱 따뜻해지길 바란다. 아울러 그런 단체에 직접 속해있거나 직간접적인 일원으로 나서지 않는다 해도, 얼마든지 우리의 이웃을 돌아볼 기회는 많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눔은 가진 것이 많아야 실천할 수 있는 업적이 아니다. 봉사는 남는 시간에 진행하는 계획된 일정이 아니다. 배려는 심심해서 쏟아붓는 여유의 대명사가 아니다. 양보는 다음 기회를 노리는 한 발의 후퇴가 아니다. 작은 마음으로, 짦은 시간으로, 부족한 능력으로, 자신을 보듯이 남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이다. 손길이다. 마음씀이다.

그런 마음을 지니게 되는 첫 번 째 키워드는 언제나 강조하듯이 ‘사랑’이다. 제일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범위를 차츰 확대해 나가다 보면, 사랑의 위대함은 끝이 없이 무한하다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얼마 전에 SNS를 달궜던 ‘MBC 여성시대’에 투고된 사연이 있다.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가슴 저린 이야기다.

- 작은 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딸 아이가 둘이 있습니다. 웃 어른들께 배우고 학교의 가르침대로, 나의 역할은 남편을 출세시키고 아이들이 공부 잘하여 좋은 대학에 다니게 하는 현모양처이고, 실제 그렇게 했습니다. 엉덩이를 제대로 땅에 붙여볼 시간 없이 바쁘게 살아온 기억 밖에는 없으니까요. 이제 가족들은 잘 되었는데 쉰 살 후반인 제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남편은 새파랗게 놀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아이들은 매 시간마다 웁니다.

한 가족임을 실감합니다. 몸은 견딜 수가 없도록 아프지만 나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마음의 행복은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거기까지... 두 달 석 달이 지나면서 남편의 얼굴에서 지친 모습을 봅니다. 때론 짜증스런 표정도 보입니다. 아이들도 자기생활이 바쁘다며 종일 혼자 있어야 할 때도 있어지네요. 이제 8개월 째, 남편의 귀가시간은 점점 늦어집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자신에 대하여 처음으로 어리석음을 느낍니다.

이제 혼자입니다. 다 들 자기들의 일과 앞날을 위하여 여전히 부지런히 살고는 있지만, 여기에 나는 혼자입니다. 남편이 잘못한다는 게 아니고, 아이들이 나쁘다는 얘긴 더욱 아닙니다. 다만 내가 나의 삶이 싫어지고, 사람이 미워지고, 허무해졌다는 겁니다. 마음 속에서 배신감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누구를 위해 사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것을요.

한번 뿐인 인생인데, 이게 아닌데, 이제 세상 다른 누구를 위해서 살지 말라고요. 나를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한 인생을 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면서 삽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습니다... -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자신을 위해 건강 잘 챙기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서야 다음 단계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게 삶의 철학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가? 두 아이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두번의 수술을 받았다. 25차례의 방사선 치료와 39번의 끔찍한 화학요법을 견뎌냈지만 죽음은 끝내 그녀를 앗아갔다.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샬럿 키틀리’는 죽기 직전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남겼다.

“살고 싶은 날이 참 많은데 저한테 허락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가 되어 함께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딸 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를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 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누리고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요? 그거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 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 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우리의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우리는 가슴 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 건지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세상의 어떤 일 보다도 귀하고 당연하다는 걸 우리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그 후에 가족을 바라보자. 나를 사랑하듯이 온 몸과 마음을 기울여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과정이며 당연한 의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남은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겐 항상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 우리의 인생에서 그 시간들을 빼면 바로 우리에게 남은,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된다. 현재 나이가 53세라면, 평균 수명을 85세라 치고, 그럼 남은 시간은 32년이 된다.

그 중에서 일하는 시간이 10년, 자는 시간이 9년 11개월, TV 및 스마트 폰 보는 시간이 4년 2개월, 그 외 혼자 보내는 시간이 무려 7년 2개월이다. 결국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불과 9개월이라는 산술적인 수치가 나온다. 그러면 정작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생각해보면 아찔해진다. 이런 대략적인 수치 계산 결과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여보, 나 오늘도 늦어.” “엄마,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못 내려가요.” “안돼, 나 주말에 친구 만나기로 했어.” 우리는 언제나 함께 하는 시간을 미루며 말하곤 한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음으로 미루기엔 우리에게 남은,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얼마나 될까? 기억하자. 우리에게 남은,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지금, 가족 시간 계산기로 확인해 보자. 결코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충주호의 안개 속에서 필자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진실한 사랑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절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되새기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배웠다. 가족의 의미를 진심으로 가슴에 새기고, 결코 사랑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필자는, 피나게 그리운 사랑이야 말로 커다란 어떤 것의 역사가 아니고, 아주 작은 실천이라는 것을 가슴 속에, 머리 속에, 깊이 각인하면서 짧은 여행의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진솔하게 감사한다. 다시 시작되는 오늘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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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울음 황홀히 피어나는 어두움 속
자신의 발소리에 으시시 놀라
뒤돌아 보면 문득
느껴지는 숨결 그건 차라리
촉촉하니 비의 얼굴

내 벗은 종아리에
호반의 너른 품이 물기 축여주고
너무도 자욱한 그림자로 안개의 역사가
새벽 네시의 수면 위에
고귀한 손짓으로 뿌린다
모락 모락 -

아마도 오래 전 여기에서
시간의 촛점이 시작되었을 터이고
빛이라 이름지어진
전부의 빛이 명멸하였어도
마지막 하나 남겨진 저 수은등 처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태고의 버릇이 잉태 되었으리

안개 풀어 헤쳐
신명나게 떠들어제끼던
끈질긴 친구들도 모두 잠들고
먼 골에서 날아든
밤새 한 마리 파드득 깃 털면
어쩐지홀로 남은 외롬에 목 메어
밤안개 호반 가로 미로 여행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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