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2집. 일년이면 삼백예순 날을  


  "2집. 일년이면 삼백예순 날을"
시기적으로는 1집 보다 빠른
1992년 3월3일에 처음으로 인쇄되었는데
교정본 상태로 한동안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2집으로 보시면 됩니다.

훗날 증인출판사에 의해서 재출판되었으며
'내 마음의 의자 위에 살며시 다가앉은
당신을 위한 사랑의 노래'라는
긴 부제를 갖고 있습니다.

'믿음'을 序詩로 하였으며
총 10개의 章에 5편씩,
각 章마다의 내용 순서로는
'사랑하는 이의 밀어', '여러 각도의 밤의 얼굴',
'생활 속의 동심 향기', '변화를 추구하는 일상',
'자학으로 성숙하는 영혼'으로 편집하여
총 51편의 詩로 엮어져 있으며
추가로 8편의 꽁트모음,
그리고 단편소설 '해바라기의 겨울 계곡'을
뒷부분에 같이 실었습니다.

분량 상으로는 많지 않지만
그 구성된 내용 상으로는
종합 쟝르의 選集 성격을 띄고 있는
詩集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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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개 꿈 *



시작노트

" 고작 개 꿈 " 詩作 note

‘림삼 제 2시집’인 ‘일년이면 삼백예순 날을’ 중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얼추 사십여년은 묵은 시다. 당시라면 많이도 젊었을 적인데 하물며 어찌 개꿈 따위나 꾸면서 허송세월을 보냈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피끓는 열정과 불타는 청춘으로 세상을 정복하려 들었어야지 한낱 개꿈에나 몰두하면서 꿈속 세상을 탐닉하고 있었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허기사 그랬으니 지금도 주제비가 요 모양 요 꼴인가 보다.

게다가 아직도 꿈의 주제나 소재는 변치 않고 오늘까지도 줄창 개꿈이니, 이젠 질릴만도 한데 이 버림받은 끈기는 도무지 누구에게서 물려받은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이 먹었으니 이제라도 개는 말고 돼지나 용이나 뭐 그런 동물들을 소재로 삼는다거나, 아니면 동물성은 이 쯤에서 아예 끊어버리고, 그 재수 좋다는 똥이나, 아니면 혹여 운수대통의 조짐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망자를 만난다거나, 불 구경을 한다거나. 그렇게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주제를 꿈 속에 슬그머니 끼워놓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그저 하는 짓이 생시나 꿈이나 한결같이 따라지다.

그러면서 한 켠으로는 요행수나 바라고 있는, 감나무 밑에서 큼직한 과실이라도 떨어지지 않으려나 하면서 고개 아프도록 행운 바라예는 필자의 현실이 구차하고도 모양 빠지지만, 그러니 어쩌랴? 애시당초 이렇게 생겨 먹은 팔자인 것을. 어제 밤도 간절한 염원으로 복꿈을 꾸기를 기둘렸으나 새벽에 깜짝 놀라 깬 어스름에 느껴지는 건 뒤죽박죽된 스토리의 허망한 결론 뿐이니, 그렇다고 다시 잠 들 것도 아니고, 주섬주섬 머리맡의 자리끼만 들이켠다.

꿈에서 만나지 못한 행운이라면 오늘 생시에서 혹여 만나질지 모른다는 애매모호한 기대로 스스로에게 기합을 불어넣으며, 부적같이 감싸쥔 소망을 소중하게 품에 갈무리하면서 고단한 오늘길 나설 채비를 한다. 오늘도 무척이나 더울 거라는 예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6월 초순인데 흡사 8월 하순의, 한참 여름이 무르익었을 때의 기온을 벌써 며칠 째 기록 중이다. 폭염특보까지 내려지고 있는 실정이니 이 노릇을 또 어찌한다?

당초에 올 여름의 더위는 유난히도 길고도 극성스러울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지만, 늘 그렇듯이 또 쓸 데 없는 겁 주고 있구나 하면서 가볍게 듣고 넘겼었는데 어째 들이닥친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것이 예컨대 학자들이 경고하는 지구촌의 기상이변이라서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 분포도로 변해가는 과정인 건지, 아니면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니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다시 그런 저런 여름 기온으로 회귀할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현재 진행형인 이 엄청난 기세로 인해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 더욱 팍팍해지고 버거워졌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갑갑하고 답답해서 마스크 착용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기온이 확 높아지니, 이건 마치 입과 코를 콱 틀어막은 체감에 온갖 짜증과 분노가 솔솔 풍겨오른다. 그렇다고 지금 이토록 그 기세를 수그러뜨리지 않고 서슬퍼런 병마를 무릅쓰고서 요령을 부릴 것도 아니고, 적응과 협조라는 명제를 따르자니 어찌 우매한 인간으로서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그래도 이건 절대 준수해야 하는 거라는 건 안다. 결코 가벼이 여기거나 대충 눈속임으로 때울 기회를 엿보아서는 안 된다.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시민으로 자리매김 된 우리의 저력과 단결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각오를 다시 하여 이 무서운 질병이 사라질 때까지 노력, 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왜 생겨났는지, 어디서 왔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닥쳐왔고, 지금 곁에서 흡착판을 꽉 박은 채 악착같이 늘어붙어 있으니 긴장과 대비태세를 한시라도 늦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상 운명이라는 건 거절한다고 해서 비껴가지도, 바란다고 와주지도 않는 것이다. 그냥 시간의 흐름을 따라 되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순리대로 적응하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거부하는 몸짓도 회피하는 염원도 다 부질 없다. 사람과의 인연도, 일이나 사건과의 조우도, 이미 하늘에서 예비된 섭리대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그냥 현실에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요 대응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인생길에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난들 누구 마음에 그리도 꼭 맞을까?
그러려니 하고 둥글게 살자. 내 귀에 들리는 말들이 어찌 다 좋게만 들리겠는가? 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릴텐데, 그러려니 하고 웃고 살자. 세상이 어찌 내 마음을 꼭 맞춰 주겠는가? 혹여나 마땅찮은 일이 있어도 세상은 다 그런 거려니 하고 참으며 살아가야 한다. 사노라면 다정했던 사람들이 멀어져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온 것처럼 가는 것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자.

무엇인가 안 되는 일 있어도 결코 실망하지는 말자. 잘 되는 일도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게 현명한 거다. 더불어 사는 것이 정말 좋지만,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사람을 피하신 적도 있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범인인 우리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자.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마음쓰고 아파하지도 말자. 그냥 잊어버리자. 세상은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둥글게 살아가자.

누가 비난했다고 분노하거나, 짜증내고 서운해 하지 말자. 부족한데도 격려하고 세워주는 좋은 사람들도 주변에 가끔 있지 않던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랑하는 사람을 보냈다고 너무 안타까워 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인생은 결국 가는 것, 무엇이 영원한 것이 있겠는가? 컴컴한 날씨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고 즐겁게 살자. 더러는 좋은 햇살을 보여 줄 때가 있지 않던가? 그렇게 오늘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보자.

누가 나에게 섭섭하게 하더라도 그 동안 그가 나에게 베풀어 주었던 고마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밥을 먹다 돌이 씹혀도 “아무래도 돌보다는 밥이 많아.” 하며 껄껄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밥이 타거나 질어 아내가 미안해 할 때 “누룽지도 먹고 죽도 먹는데 뭐.” 하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는가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이 잘 사는 것을 배 아파 하지 않고, 사촌이 땅을 사도 축하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서 좋고, 날이 개면 쾌청해서 좋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의 약점을 보고 나는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남의 장점을 보고 그것을 본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루 세 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비가 새도 바람을 막을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은 비록 생활이 궁핍하다 해도 행복한 사람이다.

훌륭한 사람은 실패를 통해 지혜에 도달하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다. 우리가 대인관계를 할 때 가장 좋아하는 사이가 바로 친구사이다. 그런데 누구나 처음부터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타인으로 다가오지만 그를 친구가 되게 하느냐, 아니면 타인으로 남게 하느냐는 나에게 주어진 몫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를 만나며 그가 타인에서 벗어나 내 눈에 익으면서, 그리고 가슴으로 다가오면서 그와 서서히 친해져 가는 것이다.

한두 번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친구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리고야 말 것이다. 친구는 오래된 포도주가 시간이 흐르고 흘러야 제 맛이 나는 법이듯, 우정과 사랑도 갑작스레 만든 포도주가 아니라 오래된 향과 맛을 간직한 그런 멋스러움이 배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오래될수록 맛과 향을 내는 포도주처럼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익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인관계를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人生八味(인생 8미)’ 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고전 ‘中庸(중용)’에 나오는 말인데,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맛을 안다고 한다. 맛은 음식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맛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 번 자세히 살펴보자. 처음이 ‘飮食味(음식미)’다. 그저 배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닌, 맛을 위한 음식의 맛이다. 다음은 ‘職業味(직업미)’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는 직업의 맛이다.

세 번째는 ‘風流味(풍류미)’다. 노니까 노는 것이 아닌 즐길 줄 아는 풍류의 맛이다. 다음은 ‘關系味(관계미)’다. 어쩔 수 없어서 만나는 것이 아닌 만남의 기쁨을 위해 만나는 맛이다. 그리고 ‘奉仕味(봉사미)’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닌 봉사하는 행복의 맛이다. 다음 ‘學習味(학습미)’다. 하루하루 때우는 인생이 아닌 늘 무언가를 배우며 성장함을 느끼는 배움의 맛이다. 그리고 ‘健康味(건강미)’다.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의 건강 맛이다.

마지막으로는 ‘人間美 (인간미)’다. 자신의 존재를 깨우치고 완성해 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인간의 맛이다. ‘人莫不飮食 鮮能知味(인막불음식 선능지미)’라고 했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만 음식 맛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인생 8미는 높은 자리에 있거나 많은 재산이 있어 얻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참 맛을 느끼며 사는 미각으로서 평범한 일상에 있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오늘도 좋은 하루라는 생각으로 인생의 맛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급박하고 커다란 일도 하루가 지나면 어제로 밀려나고야 만다. 아무리 힘들었던 일도 오늘은 어제라는 바닷물에 묻히고 말았다. 은근히 찔러대는 가시같은 아픔들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커다란 문제들도, 흐르는 시냇물처럼 흘러 지나가고 어제가 되어버린다.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새하얀 도화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새벽 도화지는 새롭고 깨끗할 뿐이다. 우리는 어제 일을 다시 가져다 그리지 말아야 한다.

새로 지은 새 집에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듯 오늘이라는 새 집에는 새로운 오늘을 들여놓아야 한다. 흘려버려야 할 어제의 낡은 문제들은 미련 없이 손에서부터 놓아 버리기로 하자. 힘차게 웃으며 오늘이라는 도화지에 새롭고 신선한 고운 그림을 그리기로 하자. 오늘 당신이 만나는 사람에게 웃음을 활짝 지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고맙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훌륭하다고 칭찬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함께 원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이 당신에게 두 배로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이 오늘 나가는 일터와 하는 일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그 감사하는 마음이 일과 일터로부터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과 한 솥밥을 먹는 가족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도 손해 볼 것은 없다. “수고한다, 고생한다.” 라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그 따뜻한 웃음과 따뜻한 말이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웃음으로 시작하고 감사하는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마광’은 1천년 전 중국 ‘송나라’ 때 사람이다.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어느 고관대작 집을 갔는데 그 고관 대작의 5대 독자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장독대에 있던 큰 물독에 빠진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술래가 찾지 못하도록 몸을 숨기려다 독에 빠지게 된 독자가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는 비명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사다리를 가져와라. 밧줄을 가져와라.” 소리쳐대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물독에 빠진 어린 아이가 숨 넘어갈 지경에 도달한 것을 안 소년 사마광이 돌을 집어 들어 물독을 향해 던졌다. 독이 깨지면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사마천의 기지 덕분에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그 물독이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 것이고 몇 대를 이어온 귀한 것이며, 아주 먼 고을에 있는 옹기장이에게 주문을 해서 오랜 기간 작업을 해야 구할 수 있는 것이라느니 하며 물독 깨진 것을 아쉬워 했다.

그러자 소년 사마광이 그 어른들을 향해서 말했다. “拈一放一(염일방일)!”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른들은 사람의 생명보다 물독 값, 물을 길러 온 노동력, 관리소홀, 책임소재 등을 따지느라 정말 소중한 것을 잃고 마는 우를 곧잘 범한다. 사마천의 염일방일은 우리가 진정 귀한 것이 무엇이며, 그 귀한 것을 얻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돌로 깨부셔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소중한 하루의 날들을 헛된 개꿈으로 소비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진정 우리에게 주어진 귀하고 높은 삶의 의미를 깨달아 한 걸음씩 차근차근 전진해야 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을 곱씹으며,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 하는 욕심이나 단번에 멀리 가고자 하는 망상을 버리고 스스로 자신을 견인하는 지혜를 쌓아가야 한다. 아무리 힘겹고 벅찬 오늘이라 할지라도 하루가 지나면 어제가 된다. 그리고 다른 새 날이 밝아온다. 그 새 날의 주인공도 역시 소중한 오늘의 주인공이 나였던 것처럼,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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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초록색으로 떠 있고,
나무는 검정색으로 자라고,
길은 보라색으로 나 있고,
집은 빨간색으로 서 있고,
호수는 노란색으로 빛나는 곳

나는 늘 총 천연색 꿈을 꾼다네

내 꿈속에는 언제나
딴 세상이 있지, 뒤바뀐 세상
내 꿈속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뒤로 가고
하늘에선 개들이 날아다닌다네

슬플 땐 웃고,
즐거워 우는 세상
산 자는 눈 감았고,
죽은 자 시끄럽게 구는
내 꿈 속에선
밤낮 없이 나만 왕이지

그레서 난 밤낮 없이 잠만 잔다네
개꿈 꾸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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