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암팡진 가을 끝자락이
몽니궂게 찬 비 뿌리는데
객젓게 소매자락 흩날리며
하릴없이 건들거리는 꼴
볼썽사나운 허재비 하나,

홑저고리 스산한 입성으로
뒷꼭지 소슬바람 드누나

영근 곡에 쭉정이조차
씨알톨 말라버려 휑한 누리 가득
온갖 축생 발길 돌려
비인 논들녘인데
할 일 다 마쳤거늘
다만 홀로이 남겨져
허섭검불 나부랭이
목덜미에 동여매고
생뚱맞은 온 몸으로
하늘담 뒷가을 무서리
파수 보는 양,

고즈넉한 허허벌판에
목청 드높여
씽 씽 씽 소리도 요란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느니
버려져 날랑 닮이 된
매꼬모자 허재비야

내 손 잡거라
이리로 오거라
발길 채여진 처지끼리
기꺼이 볼 맞부벼
세상골 구석쟁이일 망정
다정스레 누워서
매운 바람 칼바람
웅얼웅얼 안주 삼아
겨울나기 해보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