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인연은 바람과 같아서
스스로 머물기 전에는
붙잡을 수 없다고들 하더이다

제 아무리
기다림이 만남을 전제로
하는 거라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는 만남이란
얼마나 무서운 아픔인지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된
그 해 이른 봄날

계절은 문득
겨울을 떠나보내고 있었기에
양지녘 잔설 녹아
물기 그득히 머금는데,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래도 거기
새순 내음 듬뿍 실려있었더이다

어느새 밤 찾아주니,
어김없이 또 달은 떠올라
찌그러진 곳 하나
찾아낼 수 없는,
부풀어 터질 듯 팽팽히
알을 밴 만월의 얼굴로 솟아

사각거리며
인연과 기다림의 방정식
너른 하늘에 풀어헤치는 소리,
그렇게 그 봄의 그 밤은
속절도 없이 단숨에
여물어버리더이다

내 아픈 가슴 따위
아예 관심조차 없었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