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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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처럼 따습고 봄 같이 보드랍기 *



시작노트

" 봄처럼 따습고 봄 같이 보드랍기 " 詩作 note

아직도 좀 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이제껏 참아낸 것 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으시는가보다. 대자연이라는 그 님은... 야속한 발걸음, 그리도 오매불망 기다리는 우리네 속물들의 염원 따위로는, 아직은 그 님의 얼어붙은 속내를 녹이기에는 한참 모자란가보다. 그러니 이렇게 차가운 심사 누리에 뿌리시며,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 칼바람 늘어놓으신 채 모르는 척, 아무 것도 아니 보이는 척, 하며 딴청을 부리시는가보다. 지금은 정녕 간절한 바램으로 봄을 그리워하는데, 따뜻한 봄볕과 보드라운 봄바람을 이렇게나 절실하게 기둘리고 있거늘 봄은, 봄이라는 그 님은...

언제쯤이면 기세가 꺾일지 모르는, 코로나19라는 낯선 질병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그래도 문득 버거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어김없이 봄은 파아란 그림으로 그 문을 열었다. 허기사 때 되었다고 열기는 열었다. 느끼기에는 왠지 생뚱맞은 계절의 입김이 우리를 행해 한 발자국 내딛는다. 이제 하루가 다르게 햇살 따사로워지리라. 그리하여 산록 짙어지며 봄내음 물씬 우리의 코를 간질이리라. 미처 우리가 인지할 새도 없이 그리 익어가리라. 야속한 봄이 우리에게 소망도 주지 않으면서 저 홀로 바삐 길 가리라. 휴!! ~~~~ 나오는 한숨에 많은 말 담아서 하늘로 보내본다. 차차리 공백으로 가득 가득 메워 피로 쓴 편지를 띄워 보낸다.

그러면서 다짐을 한다. 이런 때일수록, 이렇게 힘겹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그리하여 이웃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온정을 베풀면서 더불어 어깨 걸고 나아가는 걸음 걸으리라는, 비록 내가 가진 건 작은 것일지라도 기꺼이 이웃과 나누면서, 모아 모아 크게 싹자란 행복의 꿈을 향기로 뿜어내면서 버거운 오늘 감내하리라는, 그런 다짐을 해본다. 언젠가는 다시 올 평안과 희망의 그 날을 진솔하게 기다리면서 말이다.

꽃마다 향기가 있듯 사람도 저마다의 향기가 있다. 어떤 이는 낙엽 타는 냄새가 나고, 어떤 이는 누룽지의 구수함이 배어있고, 어떤 이는 너그러운 웃음이 배어있다. 스쳐 지나가도 꽃향기가 배인 사람, 쳐다만 봐도 호수가 느껴지고,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남 같지 않은 사람, 내 맘까지 차분하게 평화를 주는 사람... 우연한 손 내밈에 손잡을 수도 있지만, 손 내밀며 악수해도 피하고만 싶은 사람이 있다. 몇 줄의 글 만으로도 상쾌함이 전해지고, 한 마디 말 만으로도 편안함을 전해줄 수도 있다.

살면서 문득문득 사람 냄새가 그리운 날, 바둥바둥 세상살이가 그냥그냥 서러운 날, 사람 냄새가 그리워져 군중 속에 끼어본 적이 있다. 사과향에, 국화향에, 산뜻한 오렌지향에, 사람들의 좋은 향에 세상은 활기차다. 군중 속의 고독인 양 나의 향은 어디 갔을까? 소박한 일상 속의 솔직한 내 모습은 도로 옆의 먼지 앉아 볼품없는 꽃이 되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먼지 묻은 내 향기는, 행여 비가 와서 씻어주면 환한 웃음 지으며 다시 나를 찾아줄까? 다소곳이 미소 띤 채 그냥저냥 살고픈데, 소박한 들꽃 내음으로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살고 싶은데, 쉽지만은 않은 세상살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그 중에 유독 깊은 정이 드는 사람이 있다. 정이라는 건 무엇일까? 정이 들었다는 건,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지금쯤 무얼 할까? 표정은 어떨까? 정이 들었다는 건, 목소리 하나로 느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는지? 기분이 우울해 있는지? 언제 이렇게 정이 들었는지, 깊은 정이 들었다는 건, 서로를 걱정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프지는 않을까? 괴로움에 지치지는 않았을까?

깊은 정이 들었다는 건, 나보다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의 아픔이 나를 아프게 하고, 그의 슬픔이 나를 눈물짓게 하고, 언제 이렇게 깊은 정이 들었는지? 정이 든다는 건 함께 기쁘고, 함께 슬프고, 무엇이라도 나누어 가진다는 실감, 언제 어디서라도 곁에 있다는 실감, 바로 서로가 존재하는 이유다. 서로를 기대고 있는 ‘人’이라는 한자는 너무나 인간적인 아름다운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들 사이처럼.

아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아끼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인사할 때 허리를 조금 더 숙이면 보다 정중해진다. 그러나 우린 애석하게도 그걸 아낀다. 말 한 마디라도 조금 더 정중하게 하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을텐데, 그걸 아낀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하면 참 좋을텐데, 그걸 아낀다. 실례를 했으면 “죄송합니다.” 하면 참 좋을텐데, 그걸 아낀다. 오해를 했으면 “겸손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하면 좋을텐데, 그것조차도 아낀다.

칭찬의 말도 아끼고, 격려의 말은 더 아낀다. 주어서 손해볼 것도, 아까울 것도 없는데,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아낀다. 할 수 있다면 아끼지 말고 표현하는 하루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울림은 나의 입술로, 관심은 나의 눈으로, 봉사는 나의 손으로, 정직은 나의 얼굴로, 친절은 나의 목소리로, 사랑은 나의 가슴으로, 그렇게 행복한 날들이 되어진다면 정말 좋겠다.

중국 고전에 ‘白駒過隙(백구과극)’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란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 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삽시간에 지나간다.”는 말이다. 젊어서는 인생이 꽤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 들면 화살처럼 달리는 백마를 문 틈으로 얼핏 본 것처럼 인생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이든 어른들이, 세월이 빠르고 인생이 덧없다고 말하는 것은 나이든 것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사실상 인생이 기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한 번 밖에 살지 못한다. 한 번 밖에 살 수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인 듯 최선을 다해 살고, 지금이 생애의 최고의 순간인 듯 행복해야 한다.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임을 명심하자. 소망은 쫒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이다. 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디는 것이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하는 것이다.

사랑은 끓이는 것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이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이다. 자유는 즐기는 것이고, 속박은 날려버리는 것이다.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고, 울음은 남을 위한 것이다. 기쁨은 바로 행복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은 누가 만들어줄까? 바로 우리 자신이다. 힘들고도 쉬운 이야기다. 어렵고도 간단한 말이다. 행복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고, 행복의 대상은 바로 우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 행복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큰 행복이 될 수 있고, 사소한 기쁨도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커다란 즐거움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생각 자체로 우리는 세상에 향기를 만들어 보낼 수도 있고 반대로 세상을 오염시키는 원흉이 되어질 수도 있다. 바로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의 모든 것에는 항상 존재하는 양 극이 있다. 간단하고 단편적인 순간의 깨우침이 커다란 발전과 역사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시작이 되어진다.

일전에 글쟁이들의 모임에서 우스갯소리로 띄어쓰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큰 의미를 갖는 게 아닌데도 띄어쓰기를 잘못해서 완전히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과정을 토로하면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서울시 체육회’를 ‘서울 시체 육회’로 잘못 표기하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른 고백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자신의 실수들을 늘어놓았다. ‘서울시 장애인 복지관’을 ‘서울시장 애인 복지관’으로 써놓아 엄청난 해프닝을 유발한 경우도 있다.

‘무지개 같은 사장님’을 ‘무지 개같은 사장님’으로 한다던가. ‘게임하는데 자꾸만 져요’ 라는 말을 ‘게임하는데 자꾸 만져요’로, ‘후배 위하는 선배가 좋다’를 ‘후배위 하는 선배가 좋다’로 쓴다면 그걸 읽는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바교적 작은 실수가 자칫 커다란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도화선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일상에서는 아주 사소하고 세심한 부주의가 예기치 않았던 큰 여파나 반향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 들을수록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해서 하고, 글 한 줄이라도 유념해서 정성껏 적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금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에 잘 살아야 한다. ‘디오게네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 그에게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결승점에 다가간다고 달리기를 멈추어야 할까?”

그렇다. 모든 순간에 잘 살아야 한다. 젊을 때는 젊으니까 잘 살아야 하고, 나이가 들면 들었으니까 더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달리기의 결승점에 이르는 순간까지, ‘열심히 달렸다’,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잘 살았다 할 수 있다. 보통은 하찮은 것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기는 참 어렵다. 또한 생각을 먼저하고 행동을 나중에 하는 것은 어렵다. 언제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도 쉬운 노릇은 아니다.

그렇다면 많이도 말고 우선은 오늘 하루 동안만이라도, 친절하고 즐겁고 동정적이고 관심을 가져주면서 이해하는 삶을 살도록 해보자. 일단 최선을 다하는 거다. 무슨 일을 잘 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나무라지 말자.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거다. 그래봐야 오늘 하루뿐인 걸, 뭐 그리 애써 힘겨워 할 건가? 혹여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가 정말로 오늘이 인생에서의 아주 좋은 날이 될지.

가급적 약속을 하지 말되, 일단 약속을 했다면 성실하게 지키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말이다.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믿게 만들자.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많이 즐거워하자. 당신이 하찮은 일로 아파하고 실망함으로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하자. 이 세상에 마음의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또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존중하도록 하자. 최선을 다하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얻어지는 성공이 더욱 달콤한 법이다. 실은 지금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쓸모없는 날은 웃지 않는 날이다. 믿음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의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간다. 자신감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간다. 희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낙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간다.

항상 새롭게, 항상 즐겁게,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날들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때로 아주 작은 일에 마음상해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가볍게 웃어 넘어 갈 일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기쁘게 사랑만 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라는 걸 명심하자.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는 법이다. 각박하고 험한 세상살이지만 우리, 이렇게 살면 안 될까?

누군가 자신을 연주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악사가 되어야 한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소리를 내는 인생은 불행하다. 자기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말자. 스스로 자기 인생을 연주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쨍’ 소리가 나도록 튕겨주어야 한다. 더 이상 사랑과 행복을 구걸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가 날마다 꺼내 써도 끝이 없는 사랑의 은행을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 그 은행은 영원히 부도가 날 일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종종 자기 통장의 잔고가 바닥이라도 난 듯이 늘 남의 사랑을 뺏거나 얻어오려고 애쓴다. 행복의 원천이 자기 안에 있지 않으면 항상 무엇인가에 연연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행복을 느끼려 하는 것은 사막에서 신기루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가가면 사라져 없어지고 마는 허상 말이다.

의존했던 이가 멀어진다거나, 환경이 달라진다거나, 그러면 행복이라 여겼던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행복의 조건은 바로 ‘스스로 행복해지기다. 스스로 행복하다는 것은 내 안에 고갈되지 않는 오아시스 하나를 갖는 일인 것이다. ’사하라사막‘을 여행하던 한 사람이 목이 말라 고통스러워 하다가 펌프 하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펌프 속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실망하면서 돌아서려다 펌프에 적혀 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펌프에서 동쪽으로 2m쯤 되는 곳의 모래를 파헤치면 큰 돌이 나올 것입니다. 그 돌을 들면 플라스틱 통이 있습니다. 통 안에는 물이 가득 있으나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됩니다. 먼저 물을 4분의 1쯤 펌프에 부어서 메마른 가죽을 축이십시오. 약 15분 정도 지나면 가죽이 다 불어나게 되는데, 이때 통의 물을 서서히 부으면서 계속 펌프질을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넘치는 물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있던 물통에 물을 넣어서 마개를 꼭 막아 다시 제자리에 놓은 후, 돌을 덮고 그 뒤에 모래를 덮어 두십시오.”

누구든지 돌 밑에 있는 통의 물을 발견했을 때 유혹이 생겼을 것이다. ‘이 물을 먼저 조금 마시면 안 될까? 만일 펌프에 물을 다 부어도 샘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통에 있는 물은 한없이 많이 흘러가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데 꼭 필요한 마중믈인 것이다. 만일 그 물이 없으면 지하수도, 펌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다행히 그 펌프가 계속해서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의 목을 시원하게 해주는 생명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절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기만을 위해 통 속에 있는 물을 마셔버렸다면 뒷사람들은 모두 목이 말라 고통 속에서 사막을 건넜거나 죽고 말았을 것이다. ‘시간 전망(time perspective)’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얼마나 먼 미래까지 영향을 끼칠까를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감정이나 행위에 있어서 성숙한 사람은 현재의 시계를 더 넓고 더 크게 볼 수 있다. 눈 앞의 것만을 바라보며 일처리를 하면 삶의 전체가 흔들릴 수 있고 그것의 여파는 비단 나 한 사람에게뿐 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과 또, 내가 속해있는 사회집단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행하는 것들이, 또 조급한 마음에 내리는 결정들이, 넓게 여유를 갖고 사물을 바라보면 조금은 달리 보여질 것이다. 살아온 세월의 연륜만큼 매사 사려깊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는, 그래서 나 하나의 유익이 아닌, 내가 속해 있는 집단과 또 거시적 집단에 유익이 되어질 수 있는 그런 우리들이기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엮어나가야 할 것이다.

어떤 여인이 한 남자를 그리워하다 죽어서 그 남자의 무덤 가에 피어났던 꽃의 열매가 바로 커피라고 한다. 커피의 색은 어두운 핏빛인데 그건 그 여인의 눈물 빛깔이고, 너무나도 울어서 피눈물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커피가 쓴 이유는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고,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밤낮으로 그 사람을 기다렸던 그 여인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커피의 향이 그윽한 이유는 그 여자의 사랑하는 마음이 향기가 되어 흩날리기 때문이란다. 지금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그리움과 사랑의 커피로, 마음 가득 그 향기 느끼며 애잔함의 물결이 일렁이어, 고된 하루 힘들지 않는 윤활유가 되어보길 소망하는 염원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심코 마시던 커피지만, 오늘만큼은 마시는 따스한 커피의 그 의미가 새삼 진하게 전해지니, 소중하게 한 잔을 손에 꼭 보듬어서 온기 나누며, 그렇게 조금씩 마셔봐야겠다. 맞다. 바로 커피는 사랑이다.

우리가 지금 견디고 인내하는 이 길고 불행한 날들이 나중에는 그저 소중한 기억록의 한 페이지를 달랑 차지하게 될 것이고, 지금의 이 질긴 고통의 시간이 언젠가는 또한 지나가서, 과거의 일이 되어질 것임을 우리가 알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내일의 꿈은 얼마 안 가서 오늘의 일상이 되어질 것이다. 우리가 역사 속 어떤 여인의 눈물과 한으로 점철된 쓴 커피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달콤한 향으로 음미하듯이, 우리의 이 절절한 체험도 먼 훗날 누군가는 역사 속의 과거사로 기억해낼 것이다. 지금 아등바등하는 우리라는 거대한 존재가 결국에는 긴 영원에 속한 미미한 티끌에 불과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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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 내내
너무너무 가슴시리고
마음에 종일 바람 휭휭 불어와,

가슴 따습길
마음 보드랍길
그런 내일이기를,
어제도 오늘도 한결 내일로 오기를

겨울날엔
구름 한 점 없이 하늘 맑아도,
가슴엔 그렇게나 짙은 슬픔
마음엔 그토록 멍울진 상처
흠씬 드리워져

하늘, 저만 혼자 그렇게 맑게,
그토록 말이지

걱정 우에 걱정 덮이고
바람은 연실 불어
가장 아래 깔린 마음
더없이 무거워지지만

봄이 오면
땅에 묻히운 추억들도
꽃과 잎새 속 스며 숨어
다시 오리라

삶과 죽음이 이별로 교차되면
만남과 스러짐 또한 교차될텐데,
저는 이리로 올 수 없지만
이는 저리로 갈 날 있으니

그리하여 언젠가
다시 만날 날 있으니,
그 때까지는
소복한 꿈으로만 살아예다가

바램

봄처럼 따습고
봄같이 보드랍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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