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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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추(晩秋)를 살아내는 방책 *



시작노트

" 만추(晩秋)를 살아내는 방책 " 詩作 note

영화가 있다. 이미 50년도 전에 최초로 개봉되었던 영화인데, 지니고 있는 서정성과 뛰어난 감각이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도 현실인 듯 사뭇 가슴저려와, 근래에도 최신버전으로 리바이블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다. 제목은 역시 ‘만추(晩秋)’다. 순수한 영상미학으로 절박한 남녀의 애정을 묘사한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대구교도소에서 복역중 어머니의 성묘 휴가를 얻은 모범여죄수가 인천으로 가는 열차 속에서 우연히 만난 도망자청년과 벌이는 3일간의 애정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의 연출자는 전체적으로 두 인물의 미묘한 심리와 영화적인 시간과 공간을 절묘한 영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처음 30분 동안 대사도 음악도 없이 묘사되는 열차 속에서의 장면, 호텔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주인공의 애절한 여심, 형사들의 추적을 받는 남자주인공의 대비적인 묘사, 마지막 열차 속에서의 만남, 교도소 앞에서의 감동적인 이별장면 등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의 뛰어난 작품성이나 깊은 공감대 부분의 강조가 아니다.

영화의 제목이 주는 애잔한 울림과 절묘하게 대칭되면서, 딱히 무언지 모를 추억으로 인해 콧등이 시려오는 인간본연의 영원한 방황의식이 마치 원죄처럼 영화를 본 관객들의 가슴을 옥죈다는 점이다. 잠시 왔다가 이내 가버리고 마는 계절 가을, 그 중에서도 미처 느낄 새도 없이 흔적으로만 여겨지는 늦가을의 순간적 정서가 마치 우리네 가슴에 화인으로 남듯이 영화는 하마 줄거리 속에 만만치 않은 삶을 담아내고 있음을 눈치 채게 된다. 짧은 절기 가을은 우리의 가슴을 쓸쓸함으로, 외로움으로, 그리고 망연한 기다림으로 채색한다.

그러다가는 미처 슬퍼할 새도 없이 다시 돌려앉는 능청스러움으로 우리의 다음 계절을 천천히 열어간다. 마치 영화 속에만 침잠해 있을 수는 없다는 다짐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우리의 실생활을 채근한다. 그렇다 우리는 영화처럼만 살 수는 없다. 얼른 정신 챙기고 다가오는 계절을 받아 안을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 비단 이 계절에만 더 절실하다 할 수는 없지만 역시 오늘의 화두도 우리가 아낌없이 나누어야 할 ‘사랑’이다. 주고받는 비율이나 조건이 필요치 않은, 댓가나 보수를 바란다는 건 아예 가당치않은 영원한 우리의 과제인 사랑이, 왠지 모르게 갈증을 부추기는 계절이 바로 스산한 바람 옷깃으로 스미는 이즈막이다.

사랑라면 2,800냥, 행복김밥 1줄 2,500냥, 2줄 4,700냥, 믿음메밀 5,000냥, 희망된장찌개 6,000냥, 기쁨떡볶이 3,000냥, 어느 분식집의 차림표다. 파를 다지는 아주머니의 현란한 손놀림,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맛난 소리들.... 라면에 사랑을 담고, 김밥에 행복을 싣고, 메밀에 믿음을 채우고, 된장찌개에 희망을 넣고, 떡볶이에 기쁨을 뿌릴 수 있다면 인상 찌푸리지 않고 살 수 있겠다.

오늘도 만원사례를 이루는 분식집의 문을 힘차게 열며 사랑, 행복, 믿음, 희망, 기쁨이 넘쳐나기를 차림표에 맹세해본다. 며느리도 모르는 이름난 맛 집의 비결은 바로 사랑, 행복, 믿음, 희망, 기쁨이었던 것이다. 가끔 TV에서 맛집 탐방이나 별미집을 소개할 때 그들 만의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하면 대개는 알려 줄 수 없다고들 한다. 더러 상세하게 알려주는 듯한 곳도 있지만 아마도 들어가는 재료 중에 한 두가지 정도는 살짝 빼 놓고 알려주는 건 아닐까? 재료를 보면 참 굉장하고도 장황하다.

사실상 음식을 할 때는 부재료나 양념을 최소화한다. 양념으로 맛을 내려 하다보면 주재료가 가진 맛의 특성을 즐길 수도 없거니와, 칼로리만 높아지고 그리 썩 건강에 좋지도 못하다. 어떤 경우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단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함에도 목적이 다른 두 경우의 대비를 살펴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수익을 위한, 말하자면 돈벌이를 위한 준비다. 후자의 경우는 필자의 경우를 말했지만, 보편적인 가정의 이야기다. 편안한 휴식과 가족들의 건강과 이해를 위한 대화의 자리, 즉 사랑의 공동체를 위한 준비라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얕은 맛과 깊은 맛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각자가 조금씩이라도 다른 개념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 하기를 무지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 듣기를 무척 즐긴다.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마음 노출증이 강한 사람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아는 것을 소화하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입력한 만큼 다 쏟아내야 하는데 쏟아내지 못하면 정보 소화불량이 된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듣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실속파로 다른 사람의 정보를 얻어내는 것을 즐긴다. 물론 절충형의 사람들도 있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말을 경청하려면 정신적인 안정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연설을 하고, 논쟁을 하거나 성명서를 발표하고, 또는 선언을 하는 등의 행위로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남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경청하는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들은 사람을 맞이하고 환영하며, 받아들이는 데 자유로운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사람은 간접적으로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효율적인 사람이며, 많은 정보를 비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쌓아두기만 하면 아무런 쓸모없는 정보로 변질되고 만다. 반면 많이 이야기 하려는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얼핏 자기 말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장점도 있다. 입력과 출력의 조화를 이룬다면 이들 모두 장점인 셈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가급적이면 많이 만나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형태로든 나의 지식으로 안착시킬 수 있다. 인간이기에 지식을 축적하고, 그 지식을 전달하며 진보해 간다. 때로는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겪는 이들도 있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많은 말을 해야만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도 한다. 이야기 하고 싶을 때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병이 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그 사람을 치유해주는 일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보시를 하는 것이나 선행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왕 들어줄 일이면 몸을 비비꼬면서 마지못해 들어줄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줌으로서 나아가서 나의 정보로 삼기도 하고, 더불어서 마음이 즐거웠으면 한다. 오늘은 그럴만한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하루로 삼는다면 그것도 참 좋겠다.

나이를 먹어가니 남성성과 여성성에 조금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자연스런 홀몬 분비 때문일 거다. 입에 지퍼를 채우고 산다 하리만큼 집에 들어와 말 한 마디 않던 필자가 요즘은 집에 와서 말도 참 잘한다. 반면에 아내는 전엔 하루 종일 기다렸다는 듯이 밖에서 돌아온 남편 앞에서 조잘 조잘 제 입으로 동네 한 바퀴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남편 이야기를 들어주려 많이 애쓰는 편이다.

특별히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닐 게다. 간혹 별스런 스케줄을 소화하는 시간 외에는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하거나 책만 보는 사람이니 누군가와 무엇이든 이야기가 하고 싶겠지, 그냥 그런 단순한 추측에서 기인된 이유에서려니 하는 생각이다. 아무튼 그런 아내가 고마워 어떤 때는 슬금 뒤돌아서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전에라면 의례히 아내 앞에서는 무게나 잡고, 되도 않는 소리로 헛기침하면서 뒷짐 지은 채로 앞서가던 동행길에서도, 요사이는 굳이 나란히 서서 걷기를 즐긴다. 나이 이제 한참 먹었음인가?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는가 싶더니 두어 풀 꺾이는 것도 찰나, 불쑥 솔솔 소슬바람이 불어와 조석으로 이불자락을 탐하게 만든다. 평소보다 구름이 다섯 뼘 정도 높이 떠 가을 뒷모습을 실감나게 하는 요즘이다. 계절에 대한 감수성이 유난스레 풍부한 필자는 석별의 가락인 양 대나무 잎새 스치는 소리로 가을이 갈 듯 해지니, 더욱 많은 가을의 단어들이 고파진다. 높푸른 하늘, 단풍, 귀뚜라미, 잠자리, 독서, 억새풀, 옛사랑, 추억, 추수, 낙엽, 가을타는 남자, 멜로 영화, 만추 등등. 그래! 이 가을 아주 가버리기 전에 얼른 솔찮은 가을추억 하나 쯤 장만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겠다. 그것이 만추를 살아내는 최선의 방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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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의 림삼의 '살며 사랑하며'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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