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 그 이름 아래 밤이 " 詩作 note

‘운명’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어학사전을 찾아보니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착실하게 일러준다. 참으로 심오하고 광대한 뜻이 담겨져 있기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감히 인간의 힘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어떤 절대자의 힘이 느껴진다. 그냥 무력하게 휩쓸려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처지를 단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라서 웬지 스산하다.

그렇다. 운명이 일단 지정해 놓은 결론은 제 아무리 잘 난 인간도 뒤바꿀 수 없고, 운명의 이름으로 정해진 규칙을 틀을 수는 없다. 그저 순리대로 적응하면서 복종하는 게 마땅한 길이요 방책이다. 그리 믿는 것이 차라리 더 가뿐하고 개운하다. 역행하려 애써본들 헛심만 쓰게 될 테고, 거스르려 발악을 해도 이루어내지 못할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을 믿는 것이고, 그렇기에 운명 앞에서 체념을 배운다. 우리가 채 깨닫지 못한 우리의 운명은 이미 미래를 선점하고, 우리에게 야금야금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우리의 삶을 조율한다.

어느 정도라도 예측할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덜 힘든 삶을 살아낼 수도 있겠지만, 야속하게도 운명은 우리에게 안개와 어둠을 앞세우며 갑질을 하고, 정신세계를 휘저으며 현혹시킨다. 그래서 방황과 혼란을 벗하게 되는 우리는 운명의 궤를 멍에처럼 걸머지고, 버거운 을의 삶을 살며 벅찬 질곡을 건너는 것이다. 운명의 맛은 그래서 쓰고도 쓰다. 아픔으로, 울음으로 억눌러 차마 삼키기 힘들고 역겹지만 거듭 거듭 참아내며 목구멍으로 넘긴다. 우리는 그렇게 운명의 삶을 산다.

그리고 유독 남들에 비해 자신의 운명만 가혹하고 모질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더러 축복도 받고, 때에 따라서는 운수대통의 행운도 찾아오고 하는데, 자신의 삶에는 쥐꼬리만한 볕도 들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세상은 공평하다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정하면서, 스스로의 박복함을 탓하면서 살아간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치지만, 이상하리만치 야속한 운명의 여신은 그 날카로운 창날을 들이대면서 고문을 한다고 여긴다. 숙명이라는 변치 않는 법칙 앞에서 무기력한 우리네 심사는 그토록 고달프고 애달프다.

지난 주말에 필자의 연로하신 아버지께서 혼절하시는 사달을 일으키셨다. 강원도 원주에서 따로 거하시면서 정책의 도움을 받고 계셨었는데, 자식들의 중첩된 관심 가운데에도 사각이 존재하였던지라, 잠깐 사이에 화장실 다녀오시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에 충격을 받고 졸지에 혼절을 하신 것이다. 다행히 얼마 경과되지 않은 시간에 필자의 관찰 카메라에 포착되었기에, 발견 즉각 119에 신고하였고, 즉각 출동한 구급대원들의 신속한 조처로, 뒤로 넘어지신 지 30여분 만에 극적으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하여 참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

서울에 있었던 필자는 금요일 저녁 시간의 혼잡한 교통지옥을 원망하면서 부랴부랴 길을 잡았고, 응급조치와 CT 촬영 끝에 가벼운 뇌출혈 증상이 발견되었지만, 적절한 절차를 밟아 새벽 3시에 일반 병실로 입원조치 되었고, 필자는 병원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아버지 곁에서 일상을 보조해드리는 것으로 휴일의 일과를 대신해야 했다. 그런데 새벽 시간에 잠을 깨신 아버지의 배변을 케어하다가 필자는,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그 일을 처리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는 이내 그 자연스러움의 원인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 후에는 한참 동안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커텐 사이로 보이는 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보며 필자의 운명을 탓하게 되었다.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들 있을까? 새벽 이 시간에 잠이 깨어 필자처럼 이렇게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도 아니고, 반대급부가 주어지는 일상도 아닌데 어떻게 필자는 이토록 스스럼없이 이 험한 일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을까? 사연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동갑이신데, 우리 연세로 90세이시다. 7, 8년 가량 아버지와 같은 시설에 계시다가 작년 여름에 패혈증과 식사 의욕 상실 등의 복합적인 증세로 혼절하셔서 역시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셨었는데,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거쳐 요양병원과 요양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옮겨가시며, 지금까지 거의 1년 가까이 코를 통한 삽관으로 음식물을 공급받으면서 연명 중이시다. 당시에는 의사들의 종합적인 소견으로, 위험한 지경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통보까지 받았었는데, 기사회생하셔서 의식은 돌아오셨지만 거의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계신다.

그래서 등에 욕창이 창궐하여 그 치료에도 많은 애를 쓰다가 이제 겨우 잡혔는데, 다시 여름이 왔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입으로 제대로 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시니, 심한 말로 산송장이나 진 배 없고, 팔목이 마치 나무젓가락같이 가늘어, 뵙기에 여간 가슴 저린 게 아니다. 그 과정 중에 필자 보다도, 춘천에 거주하는 필자의 여동생이 참으로 많은 수고를 감당하고 있어 안타깝고도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 아버지와 다른 병원, 다른 병상에 누워 계시지만 두분이 다시금 함께 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할 방도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새로 생겨났다.

필자의 아내는 아주 이른 나이에 노인성 치매 질환에 걸려 이미 10년이나 되었다. 처음 6년 동안은 어떻게 하든 가족들의 힘으로 견뎌보려고, 자녀들과 더불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하면서 견뎠었다. 데이케어센터에서 낮 시간을 감당해주고, 밤에는 가족들이 케어를 하면서 아내의 병 수발을 들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심화되어지고, 이따금 일으키는 발작의 강도와 횟수가 심해지면서, 비례하여 정신병원에 긴급 입원하는 부득이한 경우도 빈번해지는 바람에 결국 포기하고, 4년 전에 경기도 광탄 소재의 치매 전문요양원에 입소시킬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매 주 거르지 않고 찾아가고 있지만 속절없는 세월의 횡포에 보잘 것 없는 필자의 힘을 한탄할 따름이다. 그래도 이따금 의미 없는 웃음일 망정 미소를 보여주기도 하던 시절은 덧없이 지나가버리고, 속도전이라도 벌이는 건지 나날이 급하게 악화되어가는 증세를 대하면서 가슴이 미어진다. 이제는 전혀 사람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아주 기초적인 말 마저도 다 잊어버렸다. 모든 기억이 죄다 상실된 듯 하다. 게다가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조차 잊어가고 있음인지, 입을 잘 벌리지 않고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현상이 시작되었기에 더욱 애달프다. 역시 어머니마냥 거동을 못하고 있으니 자꾸 살만 찌고, 반대로 하체는 부실해져서 발목은 심할 정도로 가늘어졌다.

이렇게 필자는 일상의 시간을 조정하여 각각 처소가 다른, 피 같은 가족 세 사람을 찾아다니며 분주하게 운명과 동행하고 있다. 어쩌면 이 운명의 끝에 어떤 소망과 피안이 마련되어 있을 지는 모른다. 다른 사람 보다 조금은 더 고단하고 버거운 삶의 자락이 내일의 어떤 위로와 기쁨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는 모른다. 다만 필자가 아무리 안달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운명이라는 피상적인 굴레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체념하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다.

필자가 아직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있기에, 감당하고자 하는 의욕과 다짐이 있기에, 지금의 이 상황들이 운명이라는 그럴싸한 명찰을 달고, 필자의 삶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필자를 시험해보는 것인지, 아니면 필자의 연단을 통해 더욱 큰 섭리를 보여주시려는 조물주의 배려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확실한 한 가지는 필자는 아직도 이렇게 힘을 내고 있음이다. 지금도 웃음을 잃지 않고, 스스로 힘을 내며, 자신의 용기와 실천력에 격려를 얹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필자가 아버지의 병 수발에 자연스러운 답습의 효과를 내고 있는 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운명이라는 것, 별 것 아니다. 그까짓 운명이라는 멍에, 확실한 결단과 희망 의지라면 너끈히 무너뜨릴 수 있는 장벽이며, 불면 날아갈 거품이다. 그리 믿으면서 필자는 오늘도 운명과 팔씨름 하고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배우면서 필자의 시작노트를 메꾸어가고 있다. 필자의 긴 이야기는 그렇게 짧은 단상에서 시작되어 장정을 시작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는, 필자의 바램을 담은 이야기는 이제 다시 그렇게 그 작은 꽃망울을 피워 올리고자 한다.

우체통 앞에서 어린 꼬마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손이 우체통 편지 투입구에 닿지 않아 끙끙거리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온통 먼지 투성이인 청소부가 우체통 부근으로 다가섰다. 꼬마가 청소부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그러나 청소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먼지 투성이의 손과 팔과 가슴으로 꼬마를 가볍게 안았다. 청소부가 우체통 가까이로 허리를 숙이자 꼬마가 편지통에 편지를 넣었다.

순간 멀리서 지켜보던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자가 달려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냥 편지를 받아 넣어주면 될 것을 왜 안아 올렸어요? 좀 보세요. 더러워졌어요. 새로 산 옷인데...” 청소부는 “편지를 대신 넣어주면 이 아이는 우체통에 다시 오지 않을 거예요. 편지도 다시 쓰지 않겠지요. 앞으로는 부인께서 직접 안아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아이가 직접 넣을 수 있게요.” 우리들의 자녀 대하는 방법을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서 이 예화를 올렸다. 스스로 수저 들고 밥 먹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선에서 끝내고, 가능하면 밥은 떠먹여주지 말라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쳐보자. 아름다운 삶을 개척하는 연습을 위하여 작은 실천으로 시작해보자. 작든 크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다. 의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라는 것은 선한 마음에서도 나올 수 있지만, 전쟁터에서 일주일 굶은 사람은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졌다 해도 의를 갖기가 힘이 드는 것이다. 본능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보통의 삶에서는 본능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의가 보이는 것이지만 갈증난 사람의 눈에는 물만 보이는 것이다.

장미와 민들레의 팔자는 타고 나는 것이다. 그러나 장미는 아름답게 가꾸면 더 탐스러워질 수 있지만 민들레는 아무리 가꾼다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장미처럼 태어난 사람도 있다. 그들은 조금만 자기를 가꾸면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향을 나타내면 사람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를 향하고, 그 향기와 아름다움에 취해 그를 식물이 아닌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미가 식물이듯이 모든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장미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장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면 가시만 더욱 무성하게 자라나게 된다. 그렇게 자라난 장미 가시로 찔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장미는 그런 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단지 자신의 아름다움과 날카로운 매력에만 치중하여, 이기적인 편견과 합리화의 근거만 쌓아가게 될 뿐이다. 그렇다 하나 타고난 어떤 조건이나 자격에 연연하지 말고 스스로 명품이 되어보자.

명품을 부러워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내 삶이 명품이 되게 하자. 명품과 같은 인생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산다. 더 나은 삶을 산다. 특별한 삶을 산다. 기왕이면 내 이름 석 자가 최고의 브랜드, 명품이 되는 인생이 되도록 해보자. 인생 자체가 귀하고 값어치 있는 명품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할 수 있다면 당당하고, 멋있고, 매력 있는 이 시대의 명품이 되어야 한다. 명품을 사기 위해서 목숨 거는 인생이 아니라, 옷으로, 가방으로, 신발로 치장하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명품으로 만드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제대로 된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가 그런 자녀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재삼 강조하건대, 명품을 부러워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내 삶이 명품이 되게 하자. 내 손으로 직접 쌓아올린 경험일 때 비로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열심히 노력했다면 반드시 자신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별다른 노력도, 경험도 없다면 자신감이 없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무런 연습 없이 무대에 오른 가수가 자신감을 가질 수는 없다. 자신의 피나는 노력, 산전수전의 경험들이 자신감을 갖게 한다. 아울러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자신감을 키워준다는 사실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행복해서 노래하는 게 아니고 노래하니까 행복해진다’ 라는 말이 있다. 누구 하나 삶이 힘겹지 않는 사람이 없다. 사실은 누구에게나 운명은 공평하게 시련을 주고, 역시 기회도 공평하게 제공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행복해 보이고, 어떤 사람은 세상의 번뇌를 다 짊어진 것처럼 인상을 쓰는 사람이 있다. 지금 자신만이 너무나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한 번 웃어보자. 그 웃음으로 인해 하루의 기분이 바뀔 것이다.

어깨 힘을 빼고 눈을 지그시 감고, 편안하게 웃어보자. 얼굴을 활짝 펴고 웃는 것을 반복해보자. 이것을 3초 씩 반복하다 보면 아주 좋은 ‘뇌 운동’이 된다고 한다. 그런 후에 본격적으로 웃어보자. 사람이 웃고 있을 때 몸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웃으면서 계속 뇌에 집중을 하면 뇌와 가슴이 하나로 연결된다. 가슴에 있는 에너지의 샘이 열리면서 아주 순수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이 에너지에는 몸과 마음의 부정적인 기운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어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제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속삭이자.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라고 말하자. 망설이지 말고 해보자. 적극적인 행함이 남아있는 문제다. 자! 지금 바로 거울을 보자. 그리고 거울 속의 나에게 웃어 주자. “너의 웃는 모습이 나를 참 행복하게 해.” 기분이 좋아질 거다. 그 좋은 기분 그대로 밖으로 나가자.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사물의 가치를 어떤 기준에서 평가할까? 현대의 물질 문명에서는 물론 돈의 가치로 사물을 평가하게 된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대부분 돈의 가치가 먼저 잣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사물과 사람의 가치는 물질로 평가될 수 없다. 길 가에 핀 들꽃은 물질적 가치는 사소하겠지만, 우리에게 추억과 아름다움의 여백을 채워주는 면에서는 그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의 잣대로 보면 값 비싼 보석보다 더욱 값진 것이다.

사랑의 가치를 돈으로 잴 수 없듯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은 그 가치의 잣대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물질의 평안은 결코 삶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배가 고픔에도 물질에 초연하라는 것은아니다. 물질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데 없어서는 아니 될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넘친다고 꼭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흔한 말로 조금 더 편할 뿐이다.

아니 어쩌면 더 불편할 수도 있다. 넘치게 갖기를 원하는 것은 즉, 욕심이니까 말이다. 욕심에는 만족이 없는 법이다. 아무리 귀한 것도 너무 많으면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며, 아무리 객관적으로 가치 있게 평가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쓰임새에 따라 그 가치가 재 평가되는 것이다. 100원을 100만원처럼 사용할 것인가, 100만원을 10원어치의 가치보다 못하게 사용할 것인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을 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가늠이 되어질 것이다.

그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또는 속해 있는 것들 중의 하나로 예를 든 것일 뿐, 실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의 가치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무한하다 생각한다. 시간이 그렇고, 생명이 그렇고,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피상적인 것으로까지, 그 모든 것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느냐는 아마도 삶의 주인인 각자의 몫이 아닐까? 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밤의 그늘이 찾아온 이 시각,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운명의 여신은 손을 뻗치기 시작한다.

이 밤이 괴로워, 운명을 원망하며 울부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일의 삶도 밝은 광명과 시원한 바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밤에 운명을 받아들이고, 평안한 휴식과 충전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필경 내일에 떠오르는 태양의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운명, 그 이름 아래 밤이 익어가고 있는 이 시각, 필자는 아버지의 곁에서 포근한 나름의 잠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거친 아버지의 숨소리와 삐걱거리는 병원 침대의 소음을 벗 삼아, 운명이 제공해준 필자의 삶에 대한 애환과 갈증을 한 줄 시로 승화시켜보련다. 그러다가 이내 잠 들어 꿈나라 향해 떠나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