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일이야, 어째서
내 삶의 수많은 비극들은 한결같이
이렇듯 따뜻한 봄날에만,
봄볕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날에만
일어난 걸까?

서서히 마각 드러내며
신기루로 눈앞에 펼쳐보이는
가상세계, 그렇다면
이 땅엔 마땅히 온종일 비만 내려도
시원치 않으리

아이러니하게도 의식은
비극적 현실에 괴리 던지면서
지독한 역설 빚고 우뚝 멈추거늘

어차피 산다는 건
현실이라는 놈과 가상이라는 녀석의
피 튀기는 치열한 전쟁,
그리고 이 전쟁의 목적이란
승리가 아니라 오로지 시간지연

일단은 살아남고 보자, 그래야
봄햇살에 부서질 비극일지언정
혀끝으로 찍어 맛이나 좀 볼 거니
봄 올 그 날,
봄 맞을 그 때 까지만이라도

내 잔인한 봄날은
야윈 가을 갉아먹고는
되레 살을 불리며 저토록 버티는데

애초 비극은 시작조차 안했다는
굳은 믿음 하나 들고,
입가엔 썩은 미소 매단 봄바람이
가을내내 불어제끼고 서서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