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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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피스의 눈동자 *



시작노트

" 엘피스의 눈동자 " 詩作 note

목하 세밑이다. 열심히 달려온 올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때론 회한으로, 혹은 아쉬움으로, 아니면 미련으로 채워진 지난 한 해의 일상의 삶들이 파노라마처럼 영상되어 뇌리를 스친다. 미흡하지만, 많이 부족하지만 그냥 이 정도로 이 쯤에서 마무리하고 접어야 하는 한 해의 이야기다. 이제 밝아오는 돼지해 새 해를 맞이할 때다. 감동과 희망으로 기다리던 새 해의 이야기를 적어나가기 시작할 때다. 힘들고 지친 영육을 다잡아 정리하고 힘차고도 활기있게 나아갈 때다. 그러니 힘내자.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자.

어쩌면 그토록 힘겹기만 하고, 세상만사가 마음 먹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한 해였는지 생각할수록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리고 유난히 나만 더 잘 안 풀리는 삶이었던 것 같은 날들이었지만, 그런대로 그 속에 작은 기쁨이 있었고 만족이 있었으며, 나름 보람과 성취의 행복도 느끼기는 했던 것 같아 조금 위안이 되기는 한다. 아울러 잘못 되어진 모든 일에 대한 원인과 사유가, 부족한 스스로의 생각과 처신에서 비롯되었음을 진솔하게 깨닫고, 솔직하게 인정하기에 더 이상의 후회는 없다.

새 해에는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더 반성하면서 하루하루를 최후의 날로 여기며, 최상의 날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아침 햇살을 마주한다. 더 열심히 배우고 익혀 세상의 작은 빛이라도 되어보자며, 작은 향기라도 풍겨보자며 아침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떠오르는 태양을 나의 것이라고 여기면서 아침을 나선다. 이웃하는 모두의 손을 잡고, 모두의 어깨를 걸고, 모두의 발걸음에 새 소망을 심으면서 우리의 아침은 오늘도 시작되고 있다.

옛날 중국 당나라에 살던 ‘노생’이라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큰 부자가 되는 것, 출세하여 명성을 얻는 것,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생은 신선도를 닦는 ‘여옹’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노생은 여옹에게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절히 애원했다. 묵묵히 노생의 말을 듣고 있던 여옹은 목침을 꺼내 주며 쉬기를 권하였다. “이보게. 이 목침을 베고 잠깐 눈을 붙이게. 그동안 나는 밥을 짓도록 하겠네.”

의아해하던 노생은 혹시 이 목침이 도술을 부리는 물건인가 싶어 목침을 베고 누워 달게 잤다. 그런데 그 이후 노생의 인생이 바뀌었다. 노생이 응시한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황제의 치하를 받으며 큰 벼슬에 올랐고, 권력을 가지게 되자 재산은 절로 불어났다. 부와 명성을 거머쥔 노생은 아름답고 현명한 아내를 얻어 총명하고 귀여운 자식들과 함께 영화로운 삶을 마음껏 누렸다.

‘도술로 얻은 이 행복이 또 다른 도술로 사라지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과 함께 살던 노생이 늙어 천수가 끝나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밥이 다 익었으니 이제 일어나 밥 먹게나.” 노생이 눈을 번쩍 떠보니 여옹이 밥상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가 한바탕 꿈이었다. 80년 동안의 부귀영화가 잠깐 밥 짓는 사이에 꾸었던 꿈이었던 것이다. 그 어떤 거창한 비전이라도 스스로 쟁취하지 않으면 언제 사라져 버려도 미련을 가질 필요 없는, 그저 사라져 버릴 하룻밤 꿈에 불과하다.

그 꿈을 움켜쥘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손뿐이다. 꿈꿀 수 있다면, 그 꿈을 이룰 수도 있다. 막연하고 헛된 허무한 꿈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계획과 실천의지로 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이제는 더 이상의 꿈을 꿀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야 마땅할 노년의 삶에 맞닥뜨려 있다고 해서, 정작 꿈이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의 삶이 이어지는 한 어떤 꿈이든 꿀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고 그 꿈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그동안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로 줄기차게 살아온, 노년의 초입에 선 어떤 남자가 어느 날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차례차례 세상을 떠났고, 아내나 자식은 예전처럼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마음 속이 텅 빈 것 같았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사회에 의미 있는 일도 좋고, 봉사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의 안을 무언가로 꽉 채우고 싶었다.

그는 진짜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찾고 싶은 마음에, 사춘기 때도 안 하던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걸 배워보자고 작심했다. 플루트 연주와 시 쓰기, 만다라 그리기를 배우면서 그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철학에도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읽어야 할 책도 너무 많고, 공부할 것도 너무 많더군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게 너무 신나요. 모두의 인식을 바꿔 갈 철학 공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삶 중 지금이 제일 풍요로운 기분입니다.”

내면에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혼자 충만한 시간을 보낸다. 몰두할 자기 세계가 없는 경우, 노인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주변 사람을 괴롭히기 쉽다.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한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소중하고, 그 시간의 가치는 유년이나 노년이나 다를 바 없다. 매 순간이 삶에서는 늘 최초이자 돌아오지 않을 시간인데, 은퇴 후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의 무게가, 청소년들의 ‘앞으로 커서 뭐 하지?’ 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년은 외적으로는 축소되는 세계가 내적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시기일지 모른다. 그런 삶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탐색함으로써 가능해진다. 특히 지금처럼 어떤 계기를 마련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면 잠깐이지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늙는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계를 돌리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질문은 이게 된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무얼 할 것인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리마 아지미(Lima Azimi)’는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100m 달리기 세계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3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육상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그녀는 외모부터 눈에 띄었다. 다른 선수들의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의 몸과 달리 가냘픈 몸에, 헐렁한 티셔츠와 긴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모처럼 어색한 출발 자세로 달리기를 시작한 그녀는 놀라운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18초 37’.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사상 가장 느린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그녀의 조국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과의 오랜 내전으로 경제 상황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안정을 찾아가는 그녀의 조국을 다시 세계에 알리고자 운동장 트랙에 올라섰다. 그녀는 영문과의 대학생으로 스포츠클럽에서 육상을 시작한 지 고작 3개월 정도였다. 게다가 클럽 활동마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1주일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 클럽에 다니는 유일한 미혼 여성이었던 그녀는 세계육상 선수권대회의 조직위가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특별히 배려해서 출전하게 된 선수였다. 그런 그녀가 꼴찌를 할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어쩌면 엄청난 창피를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출전했고 많은 사람의 응원 속에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초라해지고 어쩌면 우스워질 수도 있는 상황에도 그로 인해 희망을 얻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최초의 아프가니스탄 여자선수로, 조국에 희망을 선물했던 그녀의 힘찬 발걸음에는 그 어떤 선수들의 기록보다 더 값진 찬사가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달렸다고 해도, 만약 끝까지 달렸다면 어떤 마라톤에서든 성공한 것이다. 가장 느린 신기록을 작성하면서도 떳떳할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지금 우리의 삶에 덧입혀보자. 어쩌면 다시는 기록하지 못할 신기록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용기와 자부심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빛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행복들이 모여 커다란 행복의 낙원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소소한 일상조차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여성의 이야기다. - 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린 시절 아토피가 심했다고 하더군요. 하나뿐인 딸을 걱정하던 엄마는 건강 음식, 웰빙 마니아가 되셨고, 엄마의 엄명으로 우리 집은 인스턴트 음식이 금지되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주 건강해서 아무거나 잘 먹지만 엄마는 아직도 음식에 예민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건 아빠가 라면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조금 늦어진다는 소식에 아빠는 후다닥 슈퍼에 가서 라면 2개를 사 오셨습니다. “아빠. 엄마가 알면 난리 날 텐데.” “괜찮아. 안 걸리면 될 거야!” 그리고 아빠의 눈물겨운 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버너와 냄비를 준비하고, 냄새로 들킬까 싶어 추운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 엄마가 안 계시는 시간을 이용하여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라면을 끓여 드시고 엄마 몰래 설거지까지 마친 아빠는 저를 향해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척 내밀며 마치 전쟁터에서 이겨 돌아오는 장수의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아빠 너무 귀여우시죠? 근데 아빠. 사실 엄마는 아빠 라면 먹는 거 다 알고 있었답니다. 베란다에서 그러는 게 너무 애처로워서 이번 한 번만 봐준 거라네요. -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고작 라면 하나에서도 사랑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듯이 말이다.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종이의 규격은 한 변이 21cm, 다른 한 변이 29.7cm다. 흔히 A4용지라고도 불리는 종이 규격이다. 이 규격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카논(여러 수치 사이의 비율)’ 중의 하나로 특별한 성격을 가진다. 21cm, 29.7cm 의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길이였던 것이 너비가 되면서 둘 사이의 비율이 여전히 똑같아진다. 반으로 접기를 여러 번 반복해도 그 고유의 비율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논은 이런 특징을 갖는 유일한 비율이라고 한다.

변화무쌍하게 자주 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기본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같은 가슴을 가지고 있기는 힘든 일이다. 내가 종이라면.... A4 용지이고 싶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또 바뀌어가는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의 본질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요즈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어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기본적인 틀, 가정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다.

기본적인 틀이 무너진다는 것은 우리가 속해있는 집단이 와해되고 질서가 흐트러짐을 의미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꼭 있어야 할 자리를 잊지 않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다면 신뢰와 믿음이 꽃피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미국 ‘워싱턴D.C’의 ‘놀런 크리크’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키가 큰 측백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그런데 이 측백나무에는 자연의 교훈이 새겨져 있다.

30여년 전 정부의 허가를 받은 벌목꾼들이 숲의 오래된 나무들을 베어냈다. 그때 이 측백나무도 벌목 대상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베러 온 사람들은 세상에서 세 번째로 큰 나무를 차마 베어버릴 수 없었다. 결국 벌목꾼들은 기념비적인 이 나무만 살려두기로 결정했다. 함께 자라던 주변의 나무들이 다 베어지고 측백나무는 혼자 덩그러니 살아 남았다. 그러나 특별히 보호를 받은 나무는 뜻밖에도 서서히 죽어갔다. 사람들은 당황스러웠다.

대단한 기록을 가진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점점 말라가던 측백나무는 결국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하얗게 바랬다. 사람들은 뒤늦게 측백나무가 말라죽은 원인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큰 나무라 해도 허허벌판에서 혼자 거센 바람을 맞으며 살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무들이 잘려 나가면서 이끼와 지의류도 죽어버리자 측백나무도 따라 죽어갔다. 이렇게 다른 나무들과 함께 살았던 나무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진리를 측백나무는 죽음으로 보여주었다. 무차별 벌목이 계속되고 있는 지구의 여러 땅에서도,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이웃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세상의 여러 마을에서도, 한 번쯤 놀런 크리크의 측백나무를 떠올렸으면 한다. 혼자서 살아남지 못한 측백나무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더불어 삶의 절박한 필요성을 깨닫는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그러하듯이 우리들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누군가의 의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필연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존재를 잃어버리면 가슴을 잃는 것이다. 가슴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잃는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면 세상을 잃는 것이다. 세상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잃는 것이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정성을 들이면 길이 보이고, 살면서 만나는 인연에 정성을 들이면 정이 들어 서로 마음 깊이 감동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강력한 삶의 무기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진실되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큰 것을 좋아한다. 나라 이름부터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나라의 최고 수반을 대통령이라고 하고, 최고 학부를 대학교, 대학원이라고 한다. 길들도 대부분 대로(大路)다. 강남대로, 양재대로 등 절대 소로(小路)는 없다. 다리를 놓아도 대교(大橋)다. 성수대교, 영동대교 등등 다 대교라고 한다. 이러한 표현은 작다는 열등감에서 나온 일종의 보상 심리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다. 우리는 작은 것들은 비하시킬 뿐만 아니라 작다는 것을 자꾸만 감추려 하고 심지어는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말에서 작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잘다’,‘좀씨’ 등등.. 그런데 사실은 작은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성수대교를 건설할 때 작은 나사 하나, 작은 시멘트 하나가 제대로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면 그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것 속에서 미래를 볼 줄 아는 지혜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행복은 근사한 말이 아니다. 행복은 마음 속 깊은 데 숨어 있는 진실이며 행동하는 양심 이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이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진다. 행복은 또 스스로 만족하는 데에 있다. 남보다 나은 점에서 행복을 구한다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한두 가지 나은 점은 있지만 열 가지 전부가 남보다 뛰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이란 남과 비교해서 찾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중요한 메모를 해두었다가 찾는 데 한참이나 걸렸던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 나의 옷들엔 주머니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었다. 바지에서 티셔츠, 스웨터에까지 수많은 주머니들을 일일이 들쳐보느라 당황스러웠던 경험. 나는 이 주머니들이 내가 성장하고 사회에 길들여져 가면서 갖게 되었던 욕망, 욕심이라는 주머니가 아닌가 하고 비추어보았다.

어린 시절엔 최소한의 것으로도 만족하던 것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불만족이 더해지다가 노년기에 접어들은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자꾸 ‘더, 더’ 라는 소리만을 외칠 뿐 쉽게 만족할 줄 모르는 나의 주머니가 되어져버렸다. 인간이 태어나서 마지막에 입는 옷,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앞둔 이제는 내 마음의 욕심이란 주머니를 헐거이 모두 비워내고, 그 없음의 여유로움으로 살아가고 싶다. 정말이지 새 해에는 우리 모두의 가정마다 많은 복이 찾아오고 만사형통하는 대운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넉넉한 돼지 꿈이라도 꾸면서 푸근하게 새 해를 기다리기로 작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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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 밤중

누리는 어둠,
칠흑같은 어둠, 지척을 분간 못할
그리하여 온전한 어둠

그러나 나는 이미 안다
그 어둠의 심장으로부터
새벽은 진즉 오고 있음을

빛이 오고 있도다
찬연한 밝음으로 오고 있도다

모진 세파의 욱여쌈에
곤비할 대로 곤비해진 뇌세포
언뜻 변개하는 목마름

틈을 파수하는 아우성
진리의 목소리로 울대 울리면

내가 살며 저지른 모든 죄들을,
범죄의 튼실한 증좌들을,
주저없이 속량하는 까만 눈동자

소녀상의 이슬찬 눈물 속에서
울음으로 살아난다, 꺼이꺼이

그래, 되살아나는구나
살아서 되살아나는구나
그렇게 새록새록 돋아오르는구나

그래서 나는 다시 안다
그 빛의 심장으로부터
새 계절이 필경 눈 뜨는 것을

바람이 되어, 연기가 되어
훌훌 용서 열어제끼는
엘피스의 구슬픈 눈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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