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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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밤 소야곡 *



시작노트

" 여름밤 소야곡 " 詩作 note

이제 여름잡절의 대표인 말복도 지났다. 하마 입추는 그보다도 더 먼저 지나갔다. 물론 아직은 한낮으로 폭염 특보가 발령되고 있고, 밤으로는 끈덕지게 열대야라는 녀석이 짓궂은 몽니를 부려대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제 몇 날만 견디면 조석으로 불어오는 소슬바람의 기운에 새벽녘으로는 은근 슬쩍 이불깃 탐하게 되리라.

게다가 작년 비교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 여름 뙤양볕에 정신 못차릴 즈음에 때맞추어 태풍 너댓 차례 불어와, 그럭저럭 바람 머금은 소나기 한 줄금씩 뿌려대는 통에 달아올랐던 대지 저절로 식혀준 일 여러 번이었고, 지역에 따라 다소간의 편차는 있었지만, 엄청난 찜통더위에 예비 전력 사정이 거의 비상 단계까지 갔었던 작년에 비하면야 너끈히 견뎌낼만한 터수였으니, 그래도 올 여름은 비교적 무난히 깔딱고개를 넘긴 듯 하다.

허기사 아직 늦더위의 이름으로 집안 곳곳 스며든 흔적 앞세워, 넉장거리로 철푸덕 주저앉은 여름이 쉽사리 그 자리를 내주려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봤자 오는 절기 앞에서는 한낱 어릿광대 놀음일 게니, 이제는 필자도 슬슬 가을에 이루어낼 차분한 목표와 다짐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이 여름 아주 저물기 전, 여름 마무리는 올곧고 당차게 매듭지어야 하겠다. 다음에 다시 올 여름에 남사스럽지 않도록 여름 추억 하나 쯤, 여름 소야곡 한 소절 쯤 진국으로 장만하면서 남은 절기 갈무리해야겠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돌이켜보니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의 작은 습관들이 모여 나를 만들어간다. 알게 모르게 수 년이 지나면 내 습관이 나를 얼마나 변하게 했는지 알 수 있다. 바라기에는 이대로 10년이 지나고 나면, 작지만 좋은 습관들을 만들어가는 성공자의 삶을 살아낸다면 좋겠다. 항상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 항상 긍정의 말만 하는 습관, 남에게 뭔가 주는 것을 기뻐하는 습관, 문제만 제시하지 않고 대안도 제시할 줄 아는 습관, 그런 습관들을 만들며 승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나쁜 습관들은 하나씩 지워갈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좋은 말, 좋은 행동을 늘 반복으로, 그 반복들이 모여서 좋은 습관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자신만이 이룰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가꾸었으면 좋겠다. 결국 우리 인간은 함께이면서도 혼자인 것이다. 단지 누구의 도움을 잠시 받고 얻을 뿐, 모든 것은 내 자신 스스로가 해야 하니까 말이다.

좀 더 풍요롭게 기쁨 속에서 행복을 얻을 수도, 가끔은 우울함에 눈시울 적시울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만들어지는 삶이 조금씩 미소가 더 많아지는 날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어제는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다른 지방을 다녀왔다. 고속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들이 휴가 철임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한 많은 사람들이 재충전을 위해서 떠나는 휴가 길이 더없이 멋지고 알찬 여정이기를 빌면서, 미소 지으며 그 행렬을 바라보았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들 제 자리에서 잘 있어주니까 이 세상이 이토록 활기차게 돌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기꺼이 교통 체증을 소화했다. 밥은 원래 인간이 먹기 위해 지은 것이다. 따라서 밥은 밥그릇에 담겨 있어야 한다. 밥은 밥그릇에 담겨 있어야 인간의 생명을 돌보는 제 값어치를 지닌다. 그런데 밥이 모셔져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밥이 개 밥그릇에 담기면 그만 더럽고 초라한 개 밥이 되고 만다. 밥알이 사람의 얼굴이나 옷에 붙어 있어도 그만 추하게 느껴진다. 밥이 밥그릇을 벗어나 제 본연의 자리를 잃음으로써 동시에 제 본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조차 잃은 것이다. 우리가 밥을 먹다가 땅바닥에 흘린 밥을 잘 주워먹지 않는 것도 더럽고 불결해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밥이 제 자리를 벗어나 이미 밥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바닷가에 버려진 흰 쌀밥이나, 남의 집 대문 앞에 뿌려진 제삿밥이 신성하게 느껴지지 않고 지저분하고 추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제 있을 자리가 다 정해져 있다. 간장 종지에 설렁탕을 담지 않고, 설렁탕 뚝배기에 간장을 담지 않는다. 버섯이 아무리 고와도 화분에 기르지 않는다. 인간도 자기 인생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인간이라면 그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제대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내 마음 속에 있어야지 다른 인간이나 짐승의 마음 속에 있으면 내가 아니다.

비단 ‘정호승’ 님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만, 있는 자리에서 분별 있게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앉을 자리, 설 자리를 가릴 줄 아는 분별력, 넘침이 월권이 아닌, 친절의 선을 넘지 않는 자기 제어 능력, 말이나 행동에 앞서 우선 생각하는 사려 깊음 등이 필요하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생각을 하고 행하면 행함에 서두름이 없고, 또한 뒤돌아서서 후회하는 일도 그만큼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페르시아’에 아들 네 명을 둔 왕이 있었다. 왕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아들 한 명씩을 보내어 어떤 곳에 심어져 있는 과일나무를 보고 오게 했다. 1년이 지난 후 왕은 네 아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자기가 본 나무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게 했다. 겨울에 과일나무를 보고 온 아들은 나무가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고, 봄에 과일나무를 보고 온 아들은 잎이 푸르고 싱그러운 모습이었다고 했으며, 여름에 과일나무를 보고 온 아들은 꽃이 아름다웠다고 말했고, 가을에 과일나무를 보고 온 아들은 열매가 탐스러웠다고 했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본 모습이 맞는다며 우겨댔다. 이에 왕이 말했다. “너희 모두의 말이 옳다. 나무는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 하느니라. 꽃이 아름다운 것도, 잎이 무성한 것도, 열매가 탐스러운 것도, 가지만 앙상한 것도 모두 나무의 모습이지.” 그러면서 왕이 결론을 말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가장 중대한 법칙 가운데 하나는 ‘무슨 일에든 남들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대인관계의 실패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홍성중’ 님의 글을 읽으면서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를 생각한다. 전에도 필자가 한 번 언급한 내용이지만,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면서도 실은 너무나도 작고 어리석으며 편협하기까지 해서, 내가 본 것, 만진 것, 그렇게 직접 확인한 것 외에는 잘 인지하지도 못하고, 또 인정하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실은 내가 속해 있는 곳 외의 또 다른 속함 속에 있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모르고 있는 것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르고 있는 것을 존재함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이 정녕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대화를 하면서 한 단어나 문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야기 전체의 맥을 이해해야 하듯, 조금 더 넓게,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아마도 마음의 가시거리가 그만큼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융통성 있는 삶은 마음의 부요를 누리게 하는 법이다.

꽃이 피어나서 좋은 것은보는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태어나서 좋은 것은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때문이다. “네가 태어나줘서 고맙다.” 혹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내 사랑으로 누군가가, 나로 인해 기뻐하며 흔쾌히 “네가 태어나줘서 고맙다.” 라는 말을 하는지 자신의 삶을 신중하게 돌아보자.

저 꽃들은 우리들에게 충분히 향기와 아름다움을 주고 있는데 우리들은 행여, 사랑을 주기 보다는 아픔과 상처만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다.” 라는 말을 들었던 ‘가롯 유다’와 같은 삶은 아닌지. 오늘도 당신이 곁에 있음으로 누군가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당신이 존재함으로 그 누군가 더 아름답고 윤기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진실로 “네가 태어나줘서 고마워...”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문득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은 밤이다. “그대가 태어나줘서 고맙습니다. 그대가 제 곁에 있어줘서 너무나 힘이 됩니다.”

육십이 넘은 노부부가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했다. 성격차이로 이혼한 그 노부부는 이혼한 그날, 이혼 처리를 부탁했던 변호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주문한 음식은 통닭이었다. 주문한 통닭이 도착하자 남편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날개 부위를 찢어서 아내 할머니에게 권했다. 권하는 모습이 워낙 보기가 좋아서 동석한 변호사가 어쩌면 이 노부부가 다시 화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내 할머니가 기분이 아주 상한 표정으로 마구 화를 내며 말했다.

“지난 삼십년간을 당신은 늘 그래왔어.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하더니 이혼하는 날까지도 그러다니... 난 다리 부위를 좋아한단 말이야. 내가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당신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아내 할머니의 그런 반응을 보며 남편인 할아버지가 말했다. “날개 부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야.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삼십년간 꾹 참고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준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이혼하는 날까지...”

화가 난 노부부는 서로 씩씩대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가버렸다. 집에 도착한 남편 할아버지는 자꾸 아내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말 나는 한 번도 아내에게 무슨 부위를 먹고 싶은가 물어본 적이 없었구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부위를 주면 좋아하겠거니 생각했지.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떼어내서 주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만 들고... 돌아보니 내가 잘못한 일이었던 것 같아. 나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과라도 해서 아내 마음이나 풀어주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남편 할아버지는 아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보고 남편 할아버지가 건 전화임을 안 아내 할머니는 아직 화가 덜 풀려 그 전화를 받고 싶지가 않았다.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또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이번에는 아주 배터리를 빼 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깬 아내 할머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 삼십년 동안 남편이 날개 부위를 좋아하는 줄 몰랐네. 자기가 좋아하는 부위를 나에게 먼저 떼어내 건넸는데 그 마음은 모르고 나는 뾰로통한 얼굴만 보여주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나에게 그렇게 마음을 써주는 줄은 몰랐구나. 아직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헤어지긴 했지만 늦기 전에 사과라도 해서 섭섭했던 마음이나 풀어주어야겠다.”

아내 할머니가 남편 할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지만 남편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화가 났나? 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전 남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남편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간 아내 할머니는 핸드폰을 꼭 잡고 죽어있는 남편을 보았다. 그 핸드폰에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고 찍어둔 문자 메세지가 있었다.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용서해.”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며 살아가게 된다. 사랑이 담긴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상대로 하여금 커다란 자긍심과 용기를 심어주기도 하지만, 무심코 던진 날카로운 말 한 마디는 오래도록 날개를 달고 다니면서 누군가에게 평생 씻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와 한으로 남겨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살지만 오래지 않아 자신이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말을 한 사람은 금방 잊어버리게 되지만, 그 말로 인해 용기를 얻어 세계적인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 가난했던 어느 소년의 이야기를 문득 떠올리게 된다.

부부라는 인연의 끈으로 매여 30년을 해로 하면서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다 알 거라 믿으며, 정작 꼭 해줘야 할 말을 해주지 않은 탓에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던 사연의 주인공들인 노부부의 사랑도 끝내 가슴 아픈 비극으로 마지막 생을 마칠 수 밖에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남자는 사랑하는 마음만 가슴에 담고 있으면 그만이라고들 하지만, 여자들은 한사코 그 가슴 속에 담아둔 사랑을 꺼내서 보여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남자들도 가끔 여자들처럼 속 깊은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도 있기는 하다.

부부 금슬이 좋기로 유명한 노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위해주며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 부부를 보고 있으면 어느 사람이라도 행복을 느끼게 할 정도 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런 행복을 깨는 불행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바로 건강하던 할아버지께서 아프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아버지가 병원에 치료를 다니면서부터 할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하시는 거였다. “약 가져와라.” “여기 있어요.” “물은?” “여기요.” “아니. 뜨거운 물로 어떻게 약을 먹어?”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물컵을 엎어버렸다.

그래서 이번엔 뜨거운 물이 아닌 찬 물로 할머니가 물을 다시 떠왔더니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찬 물을 가져오면 어떡해!” 하며 또 할머니가 가져온 물을 엎질렀다. 시간이 얼마 안 지난 시각 손님들이 찾아오자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손님들 오셨는데 왜 이렇게 늦게 상을 차리냐며 소리쳤다. “당신이 하도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정신이 벙벙해서 그만...” “이기. 어디서 말대답이고?” “손님들 계신데 너무 하시네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할머니께서는 마음이 너무 아프셨다.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가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에 너무 당황한 손님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왜 그렇게 사모님을 못 살게 구세요?” 그러자 한참 동안 말이 없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저 할망구가 마음이 여려. 나 죽고 나면 어떻게 살지 걱정이 되어서 말이야. 얼른 정을 떼어야 해. 날 미워하게 해서라도 나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야 될 거 같어...”

눈가엔 어느 새, 울며 나간 할머니보다도 더 슬퍼 보이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을 떠나셨다. 그리고 그 무덤가 한 켠엔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일부러 할머니와 정 떼려고 했던 할아버지가 원치 않던 독한 모습을 보였던 게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할머니도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정 떼려고 일부러 모질게 그러셨단 말이 필자에게는 절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아마도 할머니는 아셨을 거다. 왜 할아버지가 그러셨는지 말이다. 긴 여름이 여물어 이제 그 뒷태를 보이기 시작하는 이즈음, 나는 당신이 되고 당신은 그대가 되는 아름다운 세상이면 참 좋겠다. 숨기고 덮어야 하는 부끄러움 하나 없는 그런 맑은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닫힌 문이 없으면 좋겠다.

혹여 마음의 문을 달더라도 넝쿨 장미 휘돌아 올라가는 꽃문을 만들어서 누구나가 그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하고 싶다. 모두가 귀한 사랑 받고 살아야 하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고 도란거리며 사는 세상이면 좋겠다. 가졌다고 교만하지 말고 못 가졌다고 주눅 들지 않는,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이면 좋겠다. 내 마음 열면 하늘 열리고, 내 마음 열면 그대 마음 닿아 함께 행복해지는 따스한 촛불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이제 필자는 마지막 노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련다. 해 저문 노을을 미소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련다. 타들어가는 석양의 꼬리를 잡고 마지막 인생을 넉넉하게 관조할 수 있는 여유로운 이별의 노래를 부르련다. 마지막 가는 길 마저도 향기롭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 진정 환한 미소로 두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련다. 마지막 순간까지 회한의 눈물이 아닌, 질펀하고도 끈끈한 삶의 눈시울을 붉힐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길 갈망한다.

온갖 돌 뿌리에 채이고 옷깃을 적시는 여정일지라도, 저문 노을빛 바다로 미소 띤 행복을 보낼 수 있다면 어떤 고행도 기쁨으로 맞을 수 있으리라. 진정 노을빛과 한 덩어리로 조화롭게 뒤섞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그렇게 이 여름의 소야곡을 구성지게 부를 수 있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으로 되살아나는 나날들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 귓전에는 여름을 축복하는 소야곡이 들려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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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끝 별 우수수 지는
목소리, 필경 밤인 게지, 그것도
그리움만 물컹 묻은 채로

대체 얼마만큼 더 그리워해야
저 별빛
가슴으로 감싸 잠들 수 있을텐가?

땅끝 바람 휑하니 내닫는
모양새, 분명 밤인 게지, 그것도
외로움만 글썽 젖은 채로

과시 언제까지 더 외로워해야
저 바람
영혼으로 보듬어 쉴 수 있을텐가?

들판 누리 한아름 피어나는
꽃내음, 허면 밤인 게지, 그것도
기다림만 흠씬 품은 채로

행여 하시절 더더 기둘려야
저 향기
온 몸으로 받아 꿈꿀 수 있을텐가?

그렇지,
눈 감아도 잠들지 못하고
귀 막아도 쉬지 못하며
손 모아도 꿈꾸지 못하여

이리도 하마 그리운 걸 보면,
이다지도 퍽 외로운 걸 보면,
이토록 기둘리고 있는 걸 보면,

시방 영락없는 밤인 게야
인연의 옷자락 훌훌 벗어버리고
하늘로 훌쩍 뛰어오를
우리네 여름밤, 그 밤의 소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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