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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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데스다의 썩은 자리 *



시작노트

" 베데스다의 썩은 자리 " 詩作 note

구태여 개인의 종교나 신앙을 들먹여 편을 가를 속셈은 아니다. 누구나 마음 깊이 믿는 바 하나 쯤은 간직해야 이 험난한 세파 견디어내는 데 큰 위로가 되고, 보이지 않는 응원의 힘이라 여기면서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할 꺼리는 있어야 할테니, 누가 무얼 믿던 그건 각자의 자유다. 그래서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서 종교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어차피 모태신앙으로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은 개인적 입장이다 보니, 누가 뭐래도 크리스찬임이 확실하고, 그래서인지 가끔 영혼시나 고백시 종류의 기독교 색채가 진하게 묻어나는 시를 주제로 다룰 때는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필자는 계속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면서 이 노트를 작성 중이다. 나약하고 무력한 인간이다 보니, 또한 망각이나 기억 상실을 편한대로 발휘하다보니, 일상에서 자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고 겅중겅중 살아날 때가 훨씬 더 많지만, 그래도 가끔 충격적인 사건이나 예기치 않던 큰 일을 당하고 나면 벼락같이 하나님을 찾으며 매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비겁함이며, 버릴 수 없는 유치함이니, 이걸 믿음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필자의 오늘 이 아침 햇살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과 평안의 빛살이리라 여긴다.

사람끼리의 거래나 인간관계라면 아마도 필자는 애저녁에 배신자라고 낙인이 찍혔거나 지탄의 대상이 되어졌을 것이다. 필요할 때만 찾고, 별로 필요치 않다고 여길 때는 외면하는 상대와 누구라서 사귀고 싶겠는가? 그러나 필자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절대로 하나님은 필자를 버리거나, 필자의 간구를 모른 체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절실하게 그걸 체험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의 시작노트는 간증을 곁들인 셈이 된다.

금요일인 바로 어제 필자의 세 살짜리 어린 손녀에게 사단이 일어났다. 오후 한 시경 갑자기 딸에게서 긴급 전화가 걸려왔다.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고 낮잠시간이라서 누워 있다가 갑자기 경련과 더불어 얼굴이 빨개지더니, 급기야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전갈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서 긴급조치를 취하고는, 119에 신고를 해서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지인과 미팅 중이었던지라 부랴부랴 신촌의 한 대학병원 소아과 응급센타로 달려갔다.

요즈음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 여파로 모든 병동의 외래객 병문안이 전면 금지된 상태라 응급실 규제도 엄격했다. 아이 엄마만 겨우 출입이 허용되는지라 근처에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병원 로비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경과가 진행되는 사항을 궁금해 했지만 적절한 진료가 취해지는지, 검사나 후속 처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의 궁금증을 충족시키기에는 여건상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간혹 아이엄마에게서 카톡 문자가 전해졌지만, 현재 자가호흡이 전혀 안되어서 산소마스크를 이용해 호흡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데, 조금 더 지켜보다가 기도삽관을 할까 말까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바짝 긴장한 속은 더할 나위 없이 타들어갔다. 게다가 CT 촬영과 뇌파 검사 이후에는 추가로 검사를 시행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뇌압이 높아지고, 뇌가 붓는 상황이라 좀 더 지켜보자는 의료진의 소견이 전달되면서, 응급실 안팎에서의 분위기는 더 긴박하고 초조하게 이어져갔다.

그저 입 속으로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고, 무력한 존재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절감하면서, 아이 아빠와 둘이서 병원 로비를 서성이기 예닐곱 시간 만에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보호자들에게 생명수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7초 짜리, 아이엄마가 촬영한 동영상이 전송되어졌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고 울음을 터뜨리는 화면이었다. 비록 초췌하고 얼굴에 붉은 반점이 진하게 얼룩진 모습이었지만 의식이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우려나, 이후에 예견되는 예후 등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감사합니다” 만 연발하면서 필자는 정신 없이, 미친 듯이 로비를 걸어다녔다. 이후 병원의 규제로 필자는 숙소로 돌아가서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아침이 밝자, 다시금 또렷한 본래의 모습으로 영상 속에서 웃고 있는 손녀의 얼굴을 대하면서 콧등이 시큰해지고 절로 눈물이 고였다. 물론 아직 확실한 원인이나 구체적인 진단은 더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면서 확인하기로 했다.

병실로 옮겨 주말 내내 초조하게 지내야 할 입장이지만, 애초에 상황이 발생했을 때 느꼈던 암담함과 절박함과 비교하면 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근심인가? 또한 지나놓고 보니 처음 호흡이 멈췄을 때 어린이집 원장님이 시행한 심폐소생술 등의 초동대처가 너무나 유효 적절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어떤 일이든지 결과론적으로 단면만 보고 평가하기에는 참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번 긴급 상황에서 취해진 많은 분들의 노고가 새삼 가슴에 전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느끼는 이 긴박감은 어쩌면 잊혀질 지 모른다. 아니, 완전히 잊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현실적인 느낌은 희석될 테고, 또 다른 걱정이나 우환에 밀려 뒷전으로 자리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 또 한 차례의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필자를 외면하지 않고 내려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희미해질 오늘의 이 기억이 필자의 작은 믿음을 성숙케 하는 거름으로 녹아들 것임을 믿는다.

이따금 임의대로 편할 때만 찾는 하나님이지만, 그래도, 찾지 않아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아침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끝까지 동반자가 될 각종 삶의 질곡들을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쓰다듬으며, 기꺼이 고통 속의 소망을 향한 믿음으로 키워가 보겠다는 다짐으로 오늘을 시작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필자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모두어, 이웃과 더불어 누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가짐을 지니겠다는 각오를 얹어본다.

가수 ‘조용필’이 과거 4집 발매 후 한창 바쁠 때 한 요양병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 원장은 자신의 병원에 14세의 지체 장애 여자 아이가 조용필 4집에 수록된 ‘비련’을 듣더니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입원 8년 만에 처음 감정을 보인 것이다. 이어 병원 원장은, 이 소녀의 보호자 측에서 돈은 원하는 만큼 줄 테니 조용필이 직접 이 소녀에게 ‘비련’을 불러줄 수 없냐며, 와서 얼굴이라도 보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전했다.

매니저 ‘최동규’씨는 “당시 (조)용필이가 캬바레에서 한 곡 부르면 지금 돈으로 3,000만원 ~ 4,000만원 정도를 받았다.”면서, 그런데 조용필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피던 담배를 바로 툭 끄고는 병원으로 출발하자고 했다 한다. “그날 행사가 4개였는데 모두 취소하고 위약금 물어주며 시골의 병원으로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병원의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조용필은 병원에 가자 마자 사연 속의 소녀를 찾았다. 소녀는 아무 표정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기적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조용필이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부르자 소녀가 펑펑 운 것이다. 이 소녀의 부모도 울었다. 조용필이 여자애를 안아주고, 사인 CD를 주고나서 차에 타는데 여자애 엄마가 “돈 어디로 보내면 되나요, 얼마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조용필은 “따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또 앞으로 벌게 될 돈보다 더 비쌉니다.” 라고 답했다. 세상에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잊지 말자. 그리고 돈보다 귀한 것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오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는 마음으로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자.

하루 하루를 나름 열심히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삶의 모든 걸 대충은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알면서도 운이 없거나 재수가 없어서 목표 달성을 못하고, 성공의 대열에서 이탈되며, 다른 사람 탓에 뒤처지게 된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길은 걸어 가봐야 길을 알게 되고, 산은 올라 가봐야 험한 줄 알게 되는 법이다. 길이 멀어지면 말의 힘을 깨닫게 되고, 산이 높아지면 공기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사람은 겪어 보아야 사람을 알게 되고, 긴 세월이 지나 가봐야 그 사람의 마음도 엿보게 된다. 동녘은 밝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물은 끓기 직전이 가장 요란하듯이 행복은 막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늘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다가온다. 삶이란 ‘인고부지족(人苦不知足)’이라, 사람은 물질에 만족할 줄 모름을 괴롭게 여기고, 감나무에서 무작정 감이 떨어지기 만을 기다리지만, 세상에 거저는 없다. 준비하지 아니하면 기회도 오지 않는다.

큰 배라 할지라도 물 위에 뜬 것은 뒤집어지기 쉽고,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라 할 지라도 멈출 때가 있는 법이다. 일이란 이리 저리 늘 대비를 해가며 살아야 한다. 잘 된다고 하여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시기하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새도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화살을 맞는 법이다. 그런 간단한 이치가 커다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수월해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아껴야 할 마음은 초심이다. 우리 삶을 보다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 첫째는 초심, 둘째는 열심, 셋째는 뒷심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이 초심이다. 그 이유는 초심 속에 열심과 뒷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초심에서 열심이 나오고,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나오기 때문이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이다.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이다. 초심이란 첫사랑의 마음이다. 겸손한 마음이다. 순수한 마음이다. 배우는 마음이다. 싱그러운 봄날에 품는 첫마음이다. 봄날과 같은 동심이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바로 그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우리의 인생 위기는 그 초심을 상실할 때 찾아온다. 초심을 잃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마음을 관찰해야 한다. 초심은 사랑과 같아서 날마다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은 전등불이 아니라 촛불과 같다. 전등은 가꾸지 않아도 되지만, 촛불은 가꾸지 않으면 쉽게 꺼지고 만다.

미국의 대륙 횡단 열차 안에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객실 한 편에서 들려왔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아기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승객들도 조금씩 짜증이 밀려왔다. 승객들 역시 오랜 시간 여행에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참다 못한 한 남자가 화가 나서 일어나 외쳤다. “도대체 아기를 어떻게 돌보는 거요...?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지, 아니면 다른 객실로 옮기던지 하세요!”

그러자 아기를 안고 있던 남자가 일어나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를 보던 다른 승객이 그 남자에게 물었다. “아니, 아기 엄마는 젖은 안 먹이고 어디 간 거요?” 아기를 안고 있던 남자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제 아내는 옆 화물칸에 누워 있습니다. 서부에서 힘들게 살다가 병들어 세상을 떠나버렸고, 시신이라도 고향에 묻기 위해 이 열차를 타게 됐습니다.” 한 순간 승객들은 조용해졌고 열차 안은 힘없는 아기 울음소리만 들렸다.

우리는 남의 일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쉽게 자기 입장만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의 현실보다 내가 느끼는 기분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내 생각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더 다가가고, 조금만 더 들어보고,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미움이 공감으로 변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갈등을 푸는 것은 자기를 살피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다.

작고하신 어머니는 웃음이 많지 않으셨다. 사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따금 보여주시는 미소는 강하고 아름다웠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웃은 적이 몇 번인가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어머니를 웃게 하기 보다 오히려 울게 한 적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실은 어머니의 주머니를 채워 드리기 전에 먼저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전에는 깨닫지 못했었다. 그래서 필자는 어머니가 곁에 생존해계시는 사람들에게 권면한다.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손을 꼬옥 잡으십시오.” 어머니의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 어머니가 웃으시면 세상이 다 웃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기쁨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빛나는 기쁨은 어머니의 웃음이다.” 이는 ‘요한 페스탈로찌’의 말이다. 오늘 어떤 일로 어머니를 웃게 해 드릴까? 다시 말하지만, 어머니가 웃으시면 세상이 다 웃는 것이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전화라도 한 번 드릴 수 있는 날이었으면 참 좋겠다.

일본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어느 장소에서든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훈계한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남에게 양보하라고 가르친다. 그에 반해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절대 남에게 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우리에게 왜 배려와 겸손이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는가를 알려주는 이야기 같아 씁쓸하다. 욕심은 부릴수록 더 부풀고, 미움은 가질수록 더 거슬리며, 원망은 보탤수록 더 분하고, 아픔은 되씹을수록 더 아리며, 괴로움은 느낄수록 더 깊어지고, 집착은 할수록 더 질겨지는 것이니, 부정적인 일들은 모두 지우는 게 좋다.

지워버리고 나면 번거롭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사는 일이 언제나 즐겁다. 칭찬은 해줄수록 더 잘 하게 되고, 정은 나눌수록 더 가까워지며, 사랑은 베풀수록 더 애틋해지고, 몸은 낮출수록 더 겸손해지며, 마음은 비울수록 더 편안해지고, 행복은 누릴수록 더 커지는 것이니,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도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고 밝게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게 또 있을까?

혹시 ‘5통의 원칙’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첫 번째 통은 건강과 행운이 넘친다는 ‘운수대통’, 두 번째 통은 하는 일 마다 막히는 일 없다는 ‘만사형통’, 세 번째 통은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배려하는 ‘의사소통’, 네 번째 통은 늘 긍정적으로 웃으며 살자는 ‘요절복통’, 다섯 번째 통은 자주 인사하고 먼저 안부 전화하며 살자는 ‘전화한통’을 말한다고 한다. 이 5통으로 사람 사는 맛이 듬뿍 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시작노트 말미에 주저리 엮어보려고 하는데, 과연 이런 독백은 어떨까? - 나는 지금 학생이다. 무슨 과에 다니느냐고? 나는 광야대학교 고생과에 다니고 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이 학교 학생이다. 성적이 별로 좋지 못해서, 입학한 지 오래 됐지만 아직도 졸업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대학교의 총장님은 하나님이신데 엄격하기가 태산 같으셔서 대충 넘어가시는 일이 절대로 없으시다. 그래서 컨닝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시험을 볼 때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필수 교과목은 기다리는 훈련! 포기하는 훈련! 깨어지는 훈련! 내려놓는 훈련! 순종하는 훈련! 자아죽이기 훈련! 주어진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훈련이다. 학비가 비싸냐고? 많이 비싼 편이다. 인생을 모두 걸어야 할 정도이니까. 학비는 죽기 전까지 순종과 복종이라는 제목을 학비로 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과목은 버리기 훈련이다. 욕심, 탐심, 내 고집, 내 생각, 인간적인 모든 수단 방법도 버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매일 거듭해서 낙제를 하는 바람에 이렇게 졸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합격하리라 결심을 하고 도전해보고 있다. 합격하는 자에게는 졸업 선물이 주어지게 된다. 기쁨! 소망! 평안! 이런 선물이 주어질 것이다. 바라기에는 고생과를 졸업하고, 상급반인 헌신과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싶다. 그렇기에 오늘도 진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도 충분한 삶으로 빛나기를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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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오늘은
베데스다 연못물 움직인다던 바로 그날,

땡볕아래서 유난스레 익숙한
그 자리에 아지랑이 피워물고서
딴에는 싱그러운 체취로
눈길 잡아끄는 소용돌이 실상,
처참한 몰골로 웃기는 왜 웃는 건지

나, 원 참!

그러기에 한심한 서른여덟 해 동냥질이
애저녁에 낫기를 포기한 증거 아니겠냐며
찡그린 폭염 인상 더 써
율법인 양 대답 대신하는데

오로지 전설 하나 믿고 달려드는 객기에
기적처럼 환영으로 살아나는 목숨줄 미련,
저리도 맹렬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살고 싶긴 한가 보다

이대로의 내일이면 이미 포기할 세상인 걸
진즉에 눈치 채고 말았으니
보나마나 잔뜩 흐려진 물일지언정
하마 오래된 연못속으로는
그예 믿음질 퐁 퐁 솟누나, 오늘따라

애당초 하릴없는 변명 따위는
게다가 거짓된 위안 따위는
또는 허망한 자존심 따위라면
굴곡진 세월 앞에 망부석으로 선
헛된 신앙의 주검, 겉치레 불과한

그래도 오늘 연못가에 나서면
가슴에 들려나 인 치는 목소리,
“당장 일어나 네 썩은 자리 들고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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