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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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영(世永) *



시작노트

" 세영(世永) " 詩作 note

이즈음이면 특별히 탄생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고 고귀하게 여기면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된다. 바로 성탄절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엄숙하고도 빛나는 역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비단 종교적인 관련성이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는 지구촌 모두의 축제이며 경사로 여겨진지 오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금은 들뜨고 한껏 흥분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랑의 나눔이 지금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이 시는 외손자 세영이가 태어났을 적에 축하의 의미로 지어주었던 시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잘 자라주어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딸아이가 둘째를 가졌다. 그리고 내달 초면 해산을 하게 된다. 듬직한 사위를 들여 일가를 이루더니 알콩달콩 잘들 살아간다. 보기 참 예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도 잘 안 하고, 아이 낳기 꺼려해서 날이 갈수록 출산율이 저하되며,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노령사회로 접어든다고 걱정들이 여간 아니다.

그런데 우리 딸의 가정에서는 계속 어린 생명의 울음소리가 들려난다는 건 필시 하늘의 축복이리라. 유난히도 아이를 좋아하는 사위의 심성도 큰 몫을 한다. 부디 이 참에도 너끈하게 순산을 하여 한결 더 건강하고 행복한 식구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아이들끼리도 더없이 우애가 돈독하여 부모의 긍지와 희망으로 오롯이 자라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로하신 필자의 아버지께서는 작명의 기회를 한 번 더 얻으시곤 희희낙락이시다. 필자도 심혈을 기울여 퍽이나 좋은 축시를 또 빚어내야 할텐데, 시상이 고갈된 듯하여 전전긍긍이다.

모름지기 가정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의 태동이 이어져야 한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새로운 숨결이 결국은 역사와 전통의 기원이며 터전이다. 어디에서든 이러한 삶의 윤회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모든 인연과 교류가 단절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일상이 사람 사는 세상을 점거한다면, 그건 결국 파멸과 쇠퇴로 이르는 길일 수밖에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서운 걸음이며 최악의 결론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결같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제 할 일을 마땅히 해나갈 제 인류의 부단한 역사가 면면히 그 위상을 이어갈 수 있음이다. 자기 자신은 주어진 도리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무와 책임만을 요구하고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사람 사이의 일들은 결국, 그 구성원인 사람이 존속되어야만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건 당연지사다. 그저 통계 자료나 수치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런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만연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본의 아니게 초래하게 될 결과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문명의 이기와 혜택을 골고루 누리고 있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최첨단의 과학과 기술의 산물들이 우리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 현재 자라나는 신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과거의 형편이나 세태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냥 지나간 과거지사로만 여기고 본인들의 삶과는 완전 무관하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탓하거나 지적할 수는 없다.

당연히 그들의 세상과 이전 세대의 세상은 별개인 만큼, 어떤 연관고리도 찾아내기 힘드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바라볼 도리밖에는 없는 노릇이다. 직접적인 체험이 아니라 기록이나 서적을 통해서나 알 수 있는, 마치 다른 나라의 삶과 흡사하다고 여기는 아이들의 그릇된 인식을 이제 와서 뭐라 탓하겠는가? 단적으로 지금까지 끌고 온 기성세대의 불찰이며 반성해야 할 숙제다. 그렇지만 늦었다고 여기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되돌아보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지표를 찾아야 한다. 어차피 역사는 돌고 돈다. 전통은, 문화는, 그리고 사람들의 풍습은 윤회의 일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난날을 잊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혹은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금언이리라. 모두가 진리요, 타당한 말이다. 또한 응당 그래야 한다. 시쳇말로, 기껏 뛰어야 벼룩인 주제에 하릴없이 덩더꿍거린다는 것은 보기에도 몰골이 사납거니와, 그래가지고서야 세상만 시끄러울 것임에 틀림 없으리라. 너도 나도 목청높여 떠벌이다보면 어느 게 옥이고 어느 게 돌인지 구분키 어려울 것이다.

‘고대 희랍’의 어느 철인이 그랬던 것처럼 참다운 사람을 찾아 대낮에도 촛불을 밝혀 들고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다녀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누군가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은 할 수 없다. 다만 그 철인이 대낮에 촛불을 들고 다니면서 자기 자신을 표현했고, 그러한 사실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공을 격해, 필자까지도 에피소드를 인용하고 있으니, 자기 표현의 방법으로는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이라 여겨진다.

시인 ‘에머슨’은 말하기를 “산 위에서 구르는 바위덩어리가 움푹 움푹 파인 구멍을 흙 위에 남기는 것은 돌이 굴렀다는 자기 표현이며, 빗물이 흘러 도랑을 이루는 것도 역시 자기 표현이다.” 라고 했다. 이러한 무생물도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기거늘 하물며 사람일진대, 더욱이 이상은 높이 하늘을 나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라면, 온 누리에 떨치고픈 자기 표현의 욕구를 무한히 펼치되, 시간이 지나면 그 역시 과거로 치부될 거라는 대승적인 안목은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온고이지신’이라는 고사성어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옛날 어느 왕국, 축제가 한창인 거리에서 한 청년이 술이 담긴 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걷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 청년의 등 뒤에, 칼을 뽑아 든 병사가 따라가고 있던 것이다. 성대한 축제를 치르는 거리에는 화려한 볼거리와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차 있었지만, 청년은 어디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술잔에 담겨 있는 포도주를 바라보며 걷기만 했다. 청년이 조금 발을 헛디디자 술잔의 포도주가 넘칠 듯이 출렁거렸다.

그러자 뒤따르던 병사가 칼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의 술잔에 포도주가 한 방울이라도 땅에 떨어지면 왕이 명령하신 대로 칼로 벨 것이다.” 청년은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하며 다시 걸었다. 축제를 즐기던 수많은 사람이 이 특이한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청년은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고 그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걷기만 했다. 청년이 시내 중심의 광장에 다다르자 그곳에는 왕이 있었다. 청년은 왕 앞에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전하. 술잔의 포도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시내를 가로질러 왔습니다. 이제 약속하신 대로 인생의 성공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왕은 청년이 들고 온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가 지나온 거리는 축제가 한창이었는데, 너는 거리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왕은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재주를 넘는 광대도, 신기한 동물들도 보지 못한 것이냐?” 청년은 왕에게 대답했다. “네, 오직 술잔에만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껄껄 웃으며 청년에게 말했다. “바로 그것이다. 그 집중이 성공에 꼭 필요한 비결이다. 그 술잔에 한 것처럼 앞으로 어떤 일이든 집중한다면 어떤 유혹에도 지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노력하고, 집중하고, 인내하고,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 “지금 삶에 재미가 없는 것은, 내가 지금 내 삶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스승 ‘혜민 스님’의 말씀이다.

‘영국 BBC’ 방송 프로그램에 한 노신사가 초대되었다. 왜 자신이 이 프로그램에 초대되었는지도 모르는 노신사에게 아나운서는 놀라운 자료를 보여주었다. 바로 그 노신사에게 보여준 것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669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영국으로 입양시킨 증거서류와 사진들이었다. 노신사의 이름은 ‘영국의 쉰들러’라 불리는 ‘니콜라스 윈턴’이었다. 방청객들은 윈턴씨에게 찬사를 보냈지만 윈턴씨는 오히려 부끄러워했다.

전쟁 당시 29살 은행원이었던 윈턴씨는 아이들까지 갇힌 나치의 난민 캠프의 실상을 보고서는 사비를 털어 669명의 아이를 영국으로 데리고 오는 데 성공했지만,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마지막 250명의 아이를 태운 기차는 출발조차 못했으며, 그 아이들은 지금까지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구한 아이들 보다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심한 죄책감을 느낀 윈턴씨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50년 후, 그의 아내가 관련 서류를 우연히 발견하여 방송에 알리지 않았다면 아직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방송에 불편해하는 윈턴을 보며 아나운서가 말했다. “혹시 방청객 중에 여기 있는 니콜라스 윈턴씨가 생명을 구해주신 분이 있다면 일어나 주세요.” 그러자 윈턴씨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벌떡 일어났다. 그 아이들이 윈턴씨를 위해 그 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윈턴씨는 그들과 함께 50년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윈턴씨가 구한 669명의 아이들과 그들이 낳은 자녀와 손자들까지, 약 6,000명의 가족들을 ‘니키의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2002년에는 니키의 아이들 5,000명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으며, 2003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2008년에 체코 정부는 그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2014년에는 최고 권위의 ‘백사자 훈장’을 수여했다.

영국의 쉰들러인 니콜라스 윈턴은 가족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2015년 7월 1일 10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도 체코 프라하 중앙역에 있는 윈턴의 동상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추모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온 영웅이다. 남에게 해준 일보다는 해주지 못한 일을 괴로워하는 성자다. 그 아름다운 인생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삶의 참된 의미는 나무를 심으며, 훗날 그 나무 그늘에 앉아 쉴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역사의 흐름을 따라 순리대로, 진실의 물결은 끊이지 않고 흘러갈 뿐이다.

수레를 끌고 가던 청년이 가파른 언덕길 앞에 멈췄다. 수레에 실린 짐은 부피는 작았지만 무거웠기 때문이다. 청년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죄송합니다만, 이 언덕길 올라갈 때까지만 수레를 밀어주실 수 없을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튼튼해 보이는 청년의 몸과 부피가 작은 짐을 흘낏 보고, 청년의 부탁을 거절했다. 청년은 사람들이 야속했지만, 할 수 없이 혼자 힘으로 수레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갔다.

예상대로 매우 힘들었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고, 반도 올라오지 못했는데 땀이 비 오는 듯 흘렀다. 급기야 힘이 빠진 청년이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청년의 수레를 함께 밀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청년은 무사히 언덕길을 오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생각했다. ‘내가 할 일을 시작도 안 하고 도움만 청할 때는 아무도 돕지 않고,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면 도움을 받는구나. 과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시작도 하기 전에 ‘안 돼. 못해.’ 라고 포기해 버린 일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와 함께 그 일을 해낼 이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노력했다면 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저 포기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주변의 도움이나 협조는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돕지 않는 자는 기회도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 더불어서 사는 이 세상에서 독불장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역사 속의 모든 인물들이 홀로 독야청청하지는 않았다. 함께 어울려 성의껏 기울인 협력과 합심의 결과로서, 바로 적재적소에 안성맞춤의 미래를 향한 역사의 주춧돌이 놓여져 온 것이다.

‘조선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두루 거친 이름난 정승 ‘맹사성’이 있다. 그도 19세에 장원급제하여 ‘파천 군수’로 부임했을 때는 자만심 가득한 청년이었다. 그런 맹사성이 한 고승과 이야기를 나누며 물었다. “군수로서 지표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고승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만 하는 것입니다.” 맹사성은 자신처럼 학식이 높은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한 대답을 하는 고승에게 화를 냈다.

고승은 화를 내는 맹사성에게 아무런 말 없이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런데 찻잔에 차가 흘러넘쳐 바닥을 적시게 되었다. 맹사성은 더욱 화가 나서 고승에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차가 넘쳐 바닥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러자 고승이 웃으면서 말했다. “차가 넘쳐 바닥을 더럽히는 것은 알면서 학식이 넘쳐 인품을 더럽히는 것은 왜 모르십니까?” 이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 맹사성은 황급히 방을 나가려다가 출입문 윗부분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아픔과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맹사성에게 고승이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매사에 부딪치는 법이 없지요.” 맹사성은 그 일로 깊이 깨닫고, 그 후 자만심을 버리고 청백리가 되어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정승이 되었다. 가진 것을 뽐내기 위해 머리를 꼿꼿이 세우면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칠 위험이 커진다. 많은 걸 가졌다면 다른 사람에게 먼저 낮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럼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겸손함 없이 말하는 이는 말을 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간호사로 근무하는 어느 여성의 고백이다. - 2017년 8월 초, 한동안 선선하더니 다시 더운 날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환자 침대를 끌고 보호자와 함께 산책하러 나갑니다. 침대를 끌고 온 내 등에는 땀이 흥건하고 더운 바람에 땀을 식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 들려오는 환자의 한 마디. “우와, 시원하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자연 바람이 너무 좋았나 봅니다. 남들은 시원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만, 한 달 가까이 병실에 있는 환자에게 병원의 에어컨 바람은 차갑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춥다고 합니다.

병실에서 수면 양말까지 신고 오신 환자는 햇볕을 쬐기 위해 양말을 벗고 이불까지 걷어 온 몸으로 햇볕을 느껴봅니다. 보호자와 저는 너무 뜨거운 햇볕에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들어 그늘 밑에 앉아 말없이 환자를 바라봅니다. 환자의 행복한 모습에 산책 오길 잘했다 생각하지만, 옆에 앉아 있는 보호자는 간호사의 바쁜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안절부절못합니다. 하지만 올해 봄부터 밖에 나가지 못하고 병실에만 누워있던 환자분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갑자기 햇볕을 쬐던 환자가 우릴 부릅니다. “잠시만 도와주세요. 침대를 천천히 360도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이 하늘나라 가기 전에 마지막 산책이 될 것 같아서...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고 기억하고 싶네요.” 너무 힘들고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아는데, 환자의 한 마디에 보호자와 저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침대를 천천히 돌리고 있습니다. 천천히 환자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2번의 산책을 더한 환자분은 사랑하는 아들과 딸, 배우자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표정으로 임종하셨습니다. 저는 오늘도 날씨가 좋은 날에 침대에서만 생활하시는 환자를 모시고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함께 하는 산책이 저에게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분들에게는 따뜻한 날이 되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나고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다. 죽음은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기에 늘 두렵고 피하고 싶은 길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삶의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으로, 생의 끝자락이지만 또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행복하고 놓칠 수 없는 시간들...

지금도 어디에선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그리고 다른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삶을 다하고 세상을 하직한다. 이른바 윤회의 한 페이지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고, 멈춤이 있으면 지나가는 게 있다. 끊어진 듯 하지만 부단히 이어지는 굴레 속에서, 우리네 삶은 수많은 인연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며 계속된다. 나 하나의 삶은 짧고 작은 세상의 티끌이지만, 이런 작은 일상들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세상의 역사를 형성해간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얼굴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얼굴의 한 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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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퍽도 좋이
시나브로 꽃비 내리는
을미(乙未)년 오월 상춘(賞春)의 시절
천지가 바라예는 풍광(風光)빛이라면
의례 마땅한 연유 있을 손

꽃 진 자리마다 움터오른 햇살 터
다감(多感)한 연록(軟綠)의 요람에서,
희망이라 쓰이더니
세영이라 불리운 아이
우뚝 솟아올랐네

옹골찬 대장부 뜻 아비가 심고
음전하고 조신한 어미는
품 속에 열달 고이 안은즉
오호라,
과시 역사 찬란히 엮이었고나

흙벽 몸부림 죄다 목 삼켜
장대고 곧추선 사내다움
죽순(竹筍)인 양 마디 빚어
무럭무럭 치돋으니
대저 이 날 개벽(開闢)의 햇살
온 몸으로 인 치다

눈 뜬 자 볼 것이로되,
창공 비상(飛上)하는 소리개 날갯짓
허접스런 한낱 부귀영화 초월하여
참 기개로 자리매김하거라

귀 있는 자 들을 것이로되,
천하 호령하는 호랑이 포효성
마땅찮은 세속(世俗) 거품인심 평정하여
불멸로 기꺼이 기억되거라

하여,
세영(世永)이라는 그 이름
世世永永토록 드높이거라

- 을미년(乙未年) 오월칠일 咸世永 출생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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