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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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게 뭔지.... *



시작노트

" 사는 게 뭔지.... " 詩作 note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칭얼대는 어린 자식을 바라보던 남겨진 아빠의 모습이 이제도 눈에 삼삼한데, 당시 겨우 걸음마를 하던 한율이가 올 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는 소식이다. 세월이 하마 이렇듯 무심히도 흘러버린 거다. 그런 거다. 갈 사람은 가도, 남겨진 사람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거다. 그저 잊을 건 잊고, 기억할 것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렇게 사는 거다. 사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냥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거다. 열심히 열심히 숨을 쉬는 거다. 때로는 벅찬 숨 몰아쉬기도 하고, 혹은 여유로운 쉼의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한 평생 주어진 삶을 이어가는 이것이 우리네 삶의 본 얼굴이다.

오늘 고른 이 시는 시라기보다는 그저 넋두리다. 어찌보면 사람의 보잘 것 없는 무력함에 항거하는 신에 대한 반발인지도 모른다. 그냥 맥없는 푸념이며, 가없는 하소연이다. 답없는 의문이며, 끝없는 몸부림이다. 그래서 한참 세월 흐른 이즈막에 읽으면서도 가슴 저리고, 답답함의 극치다. 누구라도 확실한 지표를 제시해줄 수 없는 막막한 이정표이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영원한 숙명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 이 시는 특별하다. 비단 필자의 시라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업수이 여겨서는 안 되는 숙제이며 제언이다.

정녕 산다는 게 뭔지... 탑 쌓아가는 인연들 속에서 우리가 가늠해야 할 여정의 길이와 넓이, 그리고 그 깊이를 한 마디로 함축시킬 수는 없더라도, 언젠가는 누구나 가야 할 길이 있으니 겁 내지도 말고, 피하려 하지도 말며, 차분하고 진솔한 마음가짐으로 늘 대비하면서 받아들여야 할 운명의 손짓이다. 예컨대 우리가 태어난 것이 자의가 아니듯, 돌아가는 일도 자의는 아니겠지만 언젠가 조물주의 섭리가 있어 우리가 이승을 하직할 그 날,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이 미련이나 후회이기 보다는, 그래도 ‘한 평생 후련하게 잘 살아냈노라!’ 하는 호통과 너털웃음으로 막을 내릴 수 있도록 차근차근 대비하는, 그런 예쁜 삶의 하루를 오늘도 열어준 신에게 감사드린다.

고민하지 말자. 내일 벌어질 어떤 걱정거리를 미리 앞당겨 한숨 쉬지 말자. 우리에게 소중한 건 오늘이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오늘 해야 할 당면과제가 바로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오늘 우리가 이룩한 삶의 업적이 모이고 쌓여 일생의 이력서가 된다. 오늘 작심하고 계획한 일들이 평생의 공적이 되고 경력이 되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도 부단히 배우고 노력하며, 항상 시작의 자세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거다. 어떤 사람이 미워서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가? 곰곰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좌지우지 당하는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말아야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는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쓸 데 없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든지, 자기 힘으로 안 되고, 인륜도 천륜도 아닌 것에 매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용서하면 안 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세상을 재미없어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세상을 통해 공부하라는 것이고, 우리는 다 공부하러 나온 학생이다. 그런데 학생이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고, 공부를 재미없어 하면 안 될 것이다. 입버릇처럼 죽어야지, 사는 맛이 없다느니, 하면서 의욕이 없고 우울해 하면 안 된다. 세 번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인데 사랑하지 않고 팽개쳐 두는 것, 역시 용서하면 안 되는 일이다.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야 자신의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 때문에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는 절제를 잃고 산만해져 많은 세월과 기회를 허비하기 쉽다. 심지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아
생활의 원칙과 방향을 상실하기도 한다. 인간의 의지력은 인생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요소로서 인간 활동의 모든 상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돈이 많으면 절약을 잊어 재산을 탕진하게 되고, 지위가 높으면 절제를 몰라 권력을 잃게 되며, 큰 명성을 누리다보면 지조를 잃어 이름을 더럽히게 되기도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고난을 잘 이겨내야 무슨 일에서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면 자신을 망치게 되고, 행운이 다가와도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그냥 밟고 지나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람살이라는 것이 늘 호사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치 날씨와도 같이 변화무쌍하다. 계획되어졌던 일이라면 일사불란하게 처리해 나갈 수 있지만, 때로 예기치 못했던 어려운 일들도 우리 삶엔 얼마든지 많다.

어려움이 없는 삶에는 감사함이 없다. 우리 삶에 질병과도 같은 어려움이 없다면 건강에 대해 상대적인 감사함을 느낄 수 없을뿐더러 삶에 저항력 또한 기를 수 없어, 또 다른 힘든 과정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고난은 더 큰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고난 앞에 도도할 이유,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너라~ 부딪혀 주마!”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오늘이다.

어느 연못에 아름다운 황금 비늘을 가진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황금 비늘이 물결에 반사될 때마다 물고기들은 모두 황금 물고기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에 잔뜩 도취된 황금 물고기는 행여 자신의 비늘이 다칠세라 다른 물고기들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로만 다녔다. 물고기들도 황금 물고기가 자기들을 업신여긴다는 것을 안 뒤로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황금 물고기는 점점 외톨이가 되었고 아무도 자신의 황금 비늘에 관심을 주지 않자 슬퍼졌다.

물고기 마을에 축제가 열려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끼워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황금 물고기는 아무리 아름다운 비늘을 지니고 있어도 친구가 없는 이상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그 즈음 다른 연못에서 이사 온 물고기가 황금 물고기에게 다가갔다. “황금 물고기야, 너는 참 예쁘구나. 그런데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니?” 외로웠던 황금 물고기는 그와 곧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친구 물고기가 황금 물고기에게 부탁했다. “친구야, 너의 아름다운 비늘 하나만 주지 않을래?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 잠시 망설이던 황금 물고기는 자신의 금비늘 하나를 내주었다. 황금 비늘을 얻은 친구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본 순간 황금 물고기는 비늘 하나를 떼어낸 아픔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그것을 본 연못의 다른 물고기들도 황금 물고기에게 비늘을 달라고 졸랐다. 황금 물고기는 친구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황금 비늘을 다 나눠주고 마침내 보통 물고기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황금 물고기는 다시 자기를 찾아온 물고기들 때문에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그 뒤로 연못 속 물고기들이 하나씩 지니고 있는 황금 비늘이 저마다 빛날 때마다 연못 전체가 황금색으로 아름답게 반짝이게 되었다. 인간은 사회성이 강한 동물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 늘 일상 속에서 접하는 말이다. 무엇이건 홀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존재함은 수많은 엑스트라가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고, 각 사람마다 주어진 역할에 성실할 때에 주인공이나 각 배역을 맡은 사람들 또한 있는 자리에서 돋보이는 것이다.

지극히 상호보완적이면서도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해 줄 때에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나 할까? 우리의 삶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타인을 진실로 인정하고 그 인정되어진 이를 통하여 나를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관계라고 말한다. 서로를 인정하는 성숙한 인간관계를 경영함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 여긴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미워하지 말고, 버리라는 것이다.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의 마음은 조급하다. 그러나 언덕에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내게 미움이 다가 왔을 때 미움 안으로 몸을 담그지 말자. 내게 걱정이 다가왔을 때 긴 한숨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말자.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일 뿐이다. 다만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인내의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빛을 떠올려 보자. 미움과 걱정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언덕에 서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움은 미움으로 갚을 수 없고, 걱정은 걱정으로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언덕에 서서 미움과 걱정을 향해 손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에,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위해서는 생각을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주관적인 시각으로는 바로 설 수가 없다. 흔들리고 치우치게 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것이 때로 냉정함으로 비춰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골 깊은 감정의 늪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미움이, 걱정이, 근심이 깊을 때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기 보다, 심기를 다스려 힘껏 아웃사이더가 되려고 노력해 보자. 어쩌면 너털웃음이라도 웃고 싶을 만큼 별 거 아니라고 느껴질 지도 모른다. 또한 큰 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쳐보자.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라고 말이다. 자신의 삶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희망과 기쁨이 날마다 샘솟듯 넘치고, 다가오는 모든 문들을 하나씩 열어가면, 삶에 리듬감이 넘친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중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세상에 희망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사랑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나눔을 주기 위하여, 우리는 각각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져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울까?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자신을 향해, 세상을 향해 외쳐보자.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라고...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남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은 단번에 승부를 내는 복권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차근차근 쌓아가는 적금이다. 고운 정에다 미운 정까지 이자로 덧붙여 온다. 세상이 하도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까 느긋하게 뭔가를 기다리는 게 참 바보같이 느껴진다. 식당에 앉아 밥을 주문하고 5분을 채 기다리지 못한다. 2분도 안 되는 간격으로 오는 지하철도 언제나 답답하게만 느껴지고, 월급 차근차근 모아서 결혼하고 집을 사는 사람이 희귀종으로 취급되는 세상이다.

적금을 붓기 보다는 복권에 승부를 걸고, 그나마도 일주일간의 기다림을 참지 못해 또 다시 즉석 복권을 긁어대는 사람들.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지만 사랑은 복권이나 증권처럼 단번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싫증나면 금방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사랑 말고, 오래오래 계속 될 사랑을 원한다면 차근차근 적금 붓듯이 사랑을 쌓아 가자. 고운 정은 물론 미운 정까지 이자로 덧붙여 준다.

이유 없이 사람이 그리운 날이 있다.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서 있을 때,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할 때, 마음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몸만 살아 움직일 때, 그런 날은 진짜 사람이 그립다. 가슴 속 뒤주에 꼭꼭 숨겨두었던 속내 깊은 이야기 밤 새 풀어놓으면 마음이 후련해 질 수 있는 사람, 세월 가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지라도 눈물을 쏟아내며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 나도 이젠 누군가에게 눈물을 걸러줄 수 있는 그리운 사람이 되어야겠다.

혹시 당신은 이런 약속 지켜본 적이 있는가? “언제 한 번 저녁이나 함께 해요.” “언제 한 번 술이나 한 잔 하죠?” 언제부턴가 우리들의 입에 붙어버린 말, 오늘은 또 몇 번이나 그런 인사를 했는가? 악수를 하면서, 전화를 끊으면서, 친구에게, 직장 동료에게 “언제 한 번”은 오지 않는다. “언제 한 번”이라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 라고 물어보자. “이번 주말이 한가하지?” 라고 물어보자. 아니면 “지금 만날 수 있겠어?” 라고 물어보자. 사랑과 진심이 담긴 인사라면 ‘언제 한 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은 미루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토마토는 진실하다. 겉이 빨간색을 띄고 있으면 속도 빨갛게 익어 있다. 겉이 푸른색을 띄고 있으면 속도 푸른색으로 익지 않아 있다. 겉만 보아도 토마토는 속을 알 수가 있다. 우리 사람들도 그렇게 겉과 속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형제는 뜨거운 피를 함께 나눈 사이다. 연인은 뜨거운 심장을 함께 나눈 사이다. 그러나 친구는 같이 나눈 것이 단 하나도 없는데도, 언제나 나를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바닷물을 처음 마실 때는 시원하지만 돌아서면 갈증이 더욱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의 목마름에 목이 타 들어가도 좋다. 그래도 ‘사랑하는 게’, ‘하지 않는 것’ 보다 더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헤어질 때 죽을 만큼 힘들지만 그래도 또 하고 싶은 게 사랑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내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새장에 새를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만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 새를 사랑하는 것이듯 말이다.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있다. 쉼표를 찍어야 할 때가 있다. 차마 마침표를 찍지 못해 쉼표를 찍을 때도 있다. 쉼표를 찍어야 할 때 마침표를 찍어 두고두고 후회할 때도 있다. 쉼표와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줄 아는 사람은 인생에 있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빈 틈 없이 뭉쳐있는 마침표의 단단함에 이끌려 후회를 만든 적은 없는지, 소용돌이 치는 쉼표의 꼬리에 휘말려 또 다른 후회를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우리, 더 늦기 전에 고쳐 쓰기로 하자.

오늘은 어제와 같다고 사람들은 늘상 불평을 한다. 만나는 이마다 “뭐~ 재미있는 일 없어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필자는 “글쎄요. 다 똑같죠, 뭐!” 라고 말한다. 그리곤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 똑같은 시간,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전철의 같은 칸에 타고, 똑같은 사무실 자리에 앉아 똑같은 일을 또 하고 있다. 그리곤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개비를 들고 말을 한다. “뭐~ 재미있는 일 없어요?” “아~ 내일은 새로운 아침이 올까?”

더러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또 더러는 굳게 닫은 마음의 문에 육중한 자물쇠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보았다. 갈수록 그러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당신의 가슴은 언제나 비어 있기를 빈다. 당신의 가슴이 언제나 열려 있기를 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이에 반비례하여 시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인간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삶이다. 그리고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울할 땐 머리카락이나 등을 쓰다듬어주자. 그가 피곤할 땐 어깨를 주물러주며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자. 그가 슬퍼할 땐 가만히 얼굴을 가슴에 안아주자. 그가 기뻐할 땐 두 손을 꼭 쥐고 얼굴을 마주 보자. 그가 고민할 땐 팔꿈치와 팔뚝을 쓰다듬어주자. 그가 무관심해 보일 땐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눈을 맞추자. 그가 지쳐보일 땐 조용히 다가가 뒤에서 등을 안아주자. 그가 화가 났을 땐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자. 그가 힘이 없을 땐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강하게 힘을 주자.

어느 바쁜 아빠가 모처럼 휴일을 맞아 식구들의 간청에 마지못해 낚시를 갔다. 그날 밤 그는 일기장에 “오늘은 아이들과 노느라고 소중한 하루를 낭비하고 말았다.” 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었다. “오늘은 아빠와 함께 낚시를 했다. 내 일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필자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책을 읽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책 모서리를 접어놓았던 것처럼, 누군가 그런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접어놓을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고, 언제 올 지 모르는 것이고,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고, 지극히 영원한 것이다. 사랑은 정답이 없는 것이고, 마음의 전부를 갖는 것이고, 영원히 식지 않는 것이고, 항상 생각하는 것이고,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고, 한없이 그리워하는 것이고, 다 잃고도 다 얻은 것 같은 것이고, 다 얻고도 다 잃은 것 같은 것이다.

사랑은 바로 옆에 있어도 모르는 것이고, 누구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고, 어떤 모순도 감싸 안을 수 있는 것이고, 눈을 멀게 하는 것이고, 눈을 뜨게 하는 것이고,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게 하는 것이고, 한없이 샘솟는 우물과 같은 것이고,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고, 가까이 있어도 더 가까이 가고 싶게 하는 것이고,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더 설명해야 하는 것이 생기는 것이고, 육체적 혈연적 관계가 없어도 하나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사랑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주저함 없이 잔뜩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가지 사항들을 나열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의 완성을 칭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다. 어떤 조건이나 세부사항을 열거할 필요도 없이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벌써 우리가 가진 모든 다른 것을 능가한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한 거다. 영원하고 또 영원한 거다. 우리가 사는 게 뭔지는 중요치 않다.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면서, 서로 사랑하면서 하루를 지내는 것, 그게 사는 것의 전부이면 된다. 그렇다. 아마도 우리가 사는 건 바로 사랑을 하는 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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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율이엄마 訃音소식으로 황망한 아침결이다.
불과 몇 달전, 방사선치료를 시작한다는 풍문이더니,
이리도 급히 진행되어 졸지에 유명을 달리할 줄이야
미처 예측조차 못하던 터수다.
喪報를 대할 적마다 처음인 양 먹먹하고 안타깝기는
늘상 비슷비슷한 심사건만,
그 중에서도 특히 천수를 다하지 못한 죽음 앞에 서면
유독 참담할 따름이다.
이제 세상나이 설흔 좀 지났는 걸,
겨우 돌잡이 어린아이를 두고 차마 억울하여
어찌 눈을 감았을거나?
남겨진 이들에게 어려운 숙제를,
막중한 책임을 잔뜩 맡기우고 그니는 과연 갔구나.
먼저 가버렸구나.

신선한 충격 앞에 선
세상이란 놈 차라리 잠잠해,
딱 그 만큼의 세월 훌쩍 흐르고
세상이 나만큼
내가 세상만큼
세월의 매듭에 목숨 매단 건 어쩌라고

어차피 누구든 언젠간 가는 그 길
그저 주어진 삶의 분량 가늠해
맘편케 그리 살면 되지
그만 살고싶다 해서도,
더좀 살고싶다 해서도,
늘이고 줄이지 못할 찬찬한 질투

어떻게 질투는 늙지도 않냐?
망상의 세월 반겁으로 흘렀거늘

세상이 날
특별하다고 여기는 만큼만
나도 세상을
특별하게 여겨줄 그 때
삶에서 죽음까지 이어지는 관계가 형성되지

살고 죽어지는 관계라는 게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냐,
애당초 중요한 건
이런 애타는 목마름이
속에 담겨져있느냐 하는 거지,
이런 간절한 부르짖음이
겉으로 들려나느냐 하는 거지,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나 원 참!
사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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