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67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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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살다 함께 죽자 *



시작노트

" 같이 살다 함께 죽자 " 詩作 note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이 있다. 보통 혼례식을 올릴 때 주례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화두다. 남녀가 만나서 하나가 되고, 한 가정을 이루며 가족이 만들어지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같이 누리면서,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이 주어진 삶의 공식일진대, 그 중에서도 가장 행복하고 축복받은 상황이 이른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부부가 오래오래 함께 지지고 볶는 일이다.

물론 사는 것이 고해라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거칠고 버거운 세파를 헤치고, 질곡을 구비 돌다보면 슬프고 아파서 주저앉기도 하고, 마음 먹은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사가 원망스러워 한숨과 한탄으로 밤을 지새는 적도 꽤나 많기도 하다. 때로는 살 맞대는 부부간이라 할지라도 오해와 풀리지 않는 의심으로, 반목하고 미워하면서 세월을 낭비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런 저런 일들이 하냥 모이고 엮여서 소위 인생이라고 하는 여정이 빚어지고 쌓여가는 것이다. 작은 기쁨에 웃으면서 희망을 이야기 하고, 격려와 사랑으로 안락한 가정을 반죽하면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로 뭉쳐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혹여 중도에 절단난 가정들을 보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각오를 다지기도 하고, 한 번 쯤은 실수한 경험을 되살려 다시 도전하기도 한다.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은 것이 세상사요, 만만치 않은 것이 가족 간의 관계다. 그래도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한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가족이 똘똘 뭉쳐 함께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다” 라고 말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피치 못할 사유로 인해 부득이하게 헤어져야 할 경우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애끓는 이별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된다.

가슴에 쌓이는 커다란 구멍을 메울 길이 없어서 방황을 하기도 하고, 헤어나기 힘든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어둡고 긴 고통의 터널이 영원할 것 같은 느낌에 좌절한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고, 미상불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옅어진 상처를 스스로 쓰다듬으면서 자위하게 되고, 차츰 일상의 평범한 삶을 되찾아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세상의 그 어떤 흔적도 지나가게 마련이다. 세상이 무너질 듯한 충격일지라도, 세상 전부와도 바꾸기 싫은 기쁨일지라도 순식간이다. 지나고 나면 다 그냥 추억이다. 지나고 나면 죄다 어제의 일이다. 우리가 오늘을 사는 것은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에 붙잡혀서 내일을 꿈꾸지 못하는 삶이라면 오늘 숨 쉴 가치가 없다. 과거에 연연하면서 미래의 일을 설계하지 못할 사람이라면 아예 현재의 존재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오늘 밝히고자 하는 주제는 단연 ‘내일’이다. 우리 모두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와 소망을 부여해주는 내일이라는 단어는, 곱씹을수록 싱그럽다. 모든 미래지향적인 단어들이 전부 내일로 귀결된다. 모든 삶의 목표와 지향점이 하나같이 내일을 향한다. 내일을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곧 내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일은 꿈이며 새로운 기회다. 내일은 행복이며 사랑이며 바로 삶 그 자체다. 내일이 있어서 우린 산다.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했다. 일일이 기억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갔다.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 마저도 버겁다. 그 많은 이별 중에는 특별히 가슴 깊이 상처를 만들어준 큰 이별도 있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못할 애절한 흔적의 긴 이별도 더러 있다. 하지만 모든 이별의 공통점은 지금 곁에 없다는 거다.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그립고 보고 싶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행여 우연으로라도 해후하거나, 예기치 않은 계기에 조우하게 되기를 막연하게 기대하는 아쉬움도 있다. 아마도 사람이라는 게 나약하고 외로운 존재라서 그런가보다. 그런 기대조차 없다면 퍽 쓸쓸하고 더없이 허전할 게다. 어쩌면 또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기에 우리의 이별들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기회에의 매듭이다. 기대는 만남의 연결고리며 인연을 이어주는 동앗줄이다.

게다가 이상한 것이, 헤어지고 나서 돌이켜보면 더불어 있을 때의 기억들은 대부분 아름답다. 물론 함께 하면서 심하게 다투었거나, 반목과 싸움으로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거나, 아니면 기억하기도 싫을 만큼 심하게 자존심이 상하고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서로에게서 깊은 상처를 받았던 적도 있었을테지만 그런 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지저분하고 아주 싫기만 했던 사실들까지도 그리워지고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한다. 그러니 어찌 보고플 수 없으랴? 다시 만날 일을 기대하지 않으랴?

필자도 참 많이 보고픈 사람이 있다. 죽기 전에 꼭 다시 만나 더불어 호흡하고픈 사람이 있다. 삶의 무궁한 이야기들을 같이 나누며 어울려 숨 쉬고픈 사람이 있다. 그렇게 남은 삶을 같이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함께 죽어가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기도한다. 다시 만나기를. 다시 한 번 손 잡아보기를. 같은 데를 함께 바라보며 행복해하기를 말이다. 비단 그것이 부질없고 허망한 꿈일지라도, 그 꿈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 거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그런 꿈을 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믿는다. 이런 생각이, 이런 바람이, 다른 사람은 일절 상관없어 하고, 오직 필자만이 느끼는 한계라면 그건 너무 서럽다. 너무 외롭고 고적하다. 우리는 모두 하나로 이래야 한다. 그래야 서로 보듬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아픔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니까. 속절없이 지는 갈잎처럼 끝없이 나약하고, 죽기까지 행복을 찾아 헤매는, 고해 속의 작은 나룻배니까 말이다. 위로받고, 의지하며, 그렇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 미완성의 생명체니까 말이다.

“있을 때 잘 해.” 라고 우리는 농담처럼 말한다. 세월 흐르고 나서 훗날 후회하지 말고, 상실감에 빠져서 지난 날을 한탄하지 말고 지금, 지금 당장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대해야 한다. 어떤 댓가나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말고, 그냥 오로지 당신의 정성을 모두어 잘 대해줘야 한다. 겸손과 아량과 사랑으로 모든 허물을 감싸고, 작은 일에도 칭찬에 인색하지 말고, 언제나 격려와 권면의 말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소중한 당신의 그 사람은, 언제 당신의 곁을 훌쩍 떠날지 모른다. 세상 끝날 까지 옆에 머무를 거라고 막연하게 상상하던 그 사람은, 실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이별의 화신이다. 당신에게 등을 보이며 당신으로부터 멀어질 순간만 노리고 있는, 그래서 당신의 가슴을 호벼 파서 절절한 아픔을 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예리한 송곳이다. 그러니 긴장해야 한다. 곁에 있을 때 진정으로 잘 해야 한다. 지금 흘리는 땀 한 방울이 나중에 흘릴 눈물 한 방울을 대신하여 미리 흘려내는 셈이다. 명심하자.

지금 당신의 곁에 그 사람이 있음을 감사하자. 감사하는 마음은 늘 우리를 기쁘게 한다. 감사하는 말 한 마디는 항상 우리로 하여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러니 “당신 덕분입니다.” 라고 좀더 자주 말하자. 즐거움과 행복은 언제나 함께 하는 것, 감성이 풍부하지 못한 사람은 줄곧 ‘나’ 만을 앞세운다. 그러나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늘 ‘당신’을 먼저 생각한다. 나를 앞에 두든, 당신을 앞에 두든 놓인 위치는 비록 아주 조금 달라 보이지만, 사실 그 효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감사의 마음이 담긴 말은 작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원망이 서린 말은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성과가 없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길 원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서로의 장점만 보이게 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마음이 솟아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인정하게 되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말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를 드러내는 척도다. 오늘부터는, 당신부터 먼저 작은 일에 감사하자.

또한 마음에 있는 생각을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하다. 말은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더 많은 것이 전달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말하기 위한 비결 중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점이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히 덮어두거나 거짓말을 하면 갈수록 힘들어진다.

그리고 똑바로 말하기도 중요하다. 혹시 사과할 일이나 미안한 마음이라면, 생각나면 즉시 표현하도록 하자. 아울러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일이다. 남을 기쁘게 하는 말은 곧바로 하고, 남을 힘들게 하는 말은 한 번 더 생각하자. 분명히 말하기도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말의 핵심은 분명히 하여야 나중에 오해가 없다. 그런가 하면 눈을 보면서 직접 말하는 것은 상대방과 마음을 맞추는 것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말에는 사랑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어떤 말이라도 아름답다. 말이란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임에도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을 거다. 필자가 늘 강조하는 바, 상식이 다르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곡해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러기에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말 즉, 전화 통화나 편지, 요즘에 와서는 카톡이나 메일을 비롯한 사이버 상의 각종 의사표현 방식이 더 일상화가 되고 보편적이 되었으니 그런 종류의, 아이컨텍트가 없이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에서는 오해의 위험 부담이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언행에 더욱 더 신중해야 하고, 말이나 글의 표현을 하기 전에 각별하게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며, 이것이 인간관계의 올바른 금자탑을 쌓아올리는 데에 지표가 되고 밑거름이 된다는 점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귀로 듣는 소리에는 그 자체에 힘이 있다. 소리만 들어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으며
그 소리에 사람의 몸은 반응을 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길을 걸어본 사람은 주변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온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평안함을 주는 소리가 있으며, 듣기만 해도 불안해지는 소리가 있고, 때로는 미세한 소리가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목소리는 사람 내면의 영적 상태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시기하고 있으면 시기가, 저주하고 있으면 저주가, 사랑하고 있으면 사랑이, 또 행복해 하고 있으면 행복이 소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소리를 생각하자. 지금 본인이 내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가를 생각한다면 내 소리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되돌아옴으로 해서 내 영혼을 평안하게 할 수 있는 행복의 시작인 것이다.

소리의 주체인 말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내 마음이 날카로운 칼이면 상대방은 철판으로 방어를 할테고, 내 마음이 날아가는 화살이라면 상대방은 방패로 응수할 것이다. 내 마음이 햇살처럼 부드러우면 상대방은 가슴을 열고 햇볕을 쪼이겠지만, 내 마음이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라면 상대방은 추워서 마음의 문을 꽁꽁 닫을 것이다. 내 마음 쓰기에 따라 상대방도 마음을 조절하며 내 마음의 온도에 따라 상대방도 온도를 맞춘다.

내가 이웃으로 보내는 떡이 커야 그 이웃도 떡을 담을 수 있는 접시를 큰 것으로 준비하게 될 것이다. 열 사람의 동지보다 한 사람의 적이 없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다지만 감정의 교류가 오묘해서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이 부정적이면 은연 중에 그를 거부하는 마음이 생기고, 거부하는 마음은 스스로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법이다.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보다 본인 스스로에게 더 큰 해악이 되곤 한다.

나이를 먹으면 그 연륜만큼 넓고 깊어져야 하건만 그야말로 이론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집만 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조금만 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이해의 차원을 떠나 그들 나름의 삶을 존중할 여유도 가질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가장 큰 보호벽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사람 사이에서 의미를 이어나가야 하는 무기 중의 하나가 ‘미소’다. 사랑이 속으로 담아야 할 무기라면 미소야 말로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 결정적인 밑천이다. 미소를 곁들인 관계는 언제나 좋은 결과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게 된다.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우선 웃는 얼굴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늘 웃어. 그 사람은 뭐가 좋은지 늘 싱글벙글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냥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고이면서 행복해지고, 그래서 또 만나고 싶어진다.

그 반대로 늘 찡그리고, 늘 걱정하고, 늘 심란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어두워진다. “무조건 웃어라, 여행 중에도 웃어라. 버스 안에서의 웃음은
그 지방의 특산 과일을 가져다주고, 공원 벤치에서의 웃음은 꼬마의 과자를, 학교에서의 웃음은 멋진 친구를, 직장에서의 웃음은 뜻밖의 인맥을 가져다준다.” 어느 책에선가 이렇게 권하던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쇼펜하우어’도 강조한다. “늘 웃는 얼굴은 행복을 나르는 집배원이다.” 동서양이 따로 없다.‘그 사람은 늘 웃는다’는 이미지야 말로 중요한 삶의 전략이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다. ‘一笑一少 一怒一老(일소일소 일노일노)’라는 말도 익히 아는 말이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노하면 노하는 만큼 늙어지니 어찌 웃지 아니하겠는가?

또한 웃는 얼굴만큼 호감이 가고 매력적인 모습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쉬운 예로, 가끔 TV에서 홈 쇼핑 프로를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 모델의 화장 전과 화장 후의 다른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곤 한다. 물론 화장을 하여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모델의 얼굴을 보면 눈꼬리와 입매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금새 눈치챌 수 있다. 미소띤 모습으로 하여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예라 할 수 있다. 연출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게 된다. 매출은 오르게 마련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그래서 확실히 근거가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고, 또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며 좋은 유대감을 갖고 싶어지게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그 일상들이 모여서 삶을 이룬다. 마치 깊은 골짜기에서 만들어진 계곡의 물들이 모여 내가 되고, 강으로 흘러, 결국 바다에 도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적 하나 하나는 작은 해프닝들에 불과할테지만 그 기적들의 모듬이 역사이며 세상이다.

기적이라는 말, 삶의 기적이란 게 어떤 것인지 혹시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것은 가끔씩 겪게 되는 뜻밖의 만남이다. 기차 시각이 아직 여유가 있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중에 우연히 오랜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과 조우해 반가운 악수와 함께 따스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중학교 시절의 옛 친구를 예기치 않게 거리에서 만나 내가 가야 할 약속 장소를 잊은 채 “우리 예전에 그랬었지!” 하고 크게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이 다 기적이다.

삶의 기적, 그것은 여태껏 느끼지 못한 세상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다. 어쩌다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무척이나 많은 것을 보고 “와!” 하며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며 잠시 세상 근심을 모두 잊고, 넋 놓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는 보석상자를 열어 보는 일이다.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 삶의 기적인 것이다. 소소한 일들이 기적의 세포다. 기적의 구성요소다.

문제는 당신의 가슴이다. 이것들을 기적이라고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당신은 세상의 기적을 충분히 누리는 사람이다. 필자는 절대적으로 기적을 믿는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들 힘이 필자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믿는다. 힘이 있는데 만들지 않는다면 그건 삶에 대한 배신행위다. 직무유기다. 그렇게 살다 죽을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기적들을 생산하며, 사랑스러운 기적의 탑을 쌓아 올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삶의 공식일진대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한껏 행복하게, 같이 살다 함께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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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글거리는 창자 움켜잡고
셈바른 세상 장터 후미진 뒤 켠
쬐그만 점방 하나 장만하였더니

허망한 얌심꾸러미 주체 못해
헛짓거리 심취하던 남자와
방랑길에서 만난 여자 나란히 서서

검은 상복 차려입고는
나풀나풀나풀 손짓하는데
버겁도록 걸머진 보따리 속엔
무슨 찰진 사연 들어차있으려나?

수양버들 모양새 닮아
축 늘어진 양어깨에선 문득
눈물겨운 인연 십자가처럼 빛나고

어차피 주어진 목숨줄로
꼭 한 번뿐인 삶의 둥우리
소담소담 모여진 인정들끼리
서러운 가슴 맞대었으니

가난한 마을이라도 일구어
그나마 외로운 정 사고팔면서
같이 살다 함께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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