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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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불의 세상 *



시작노트

" 하얀 불의 세상 " 詩作 note

예전부터 겨울이면 의례껏 당연하게 여기던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이제는 ‘삼한사미’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 한 상황으로 급변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한 건가? 기상특보가 내릴 정도로 매서운 날은 지나치게 추워서 힘들고, 조금 기온이 올라간다 싶으면 여지없이 미세먼지 농도도 함께 올라가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예전에는 그래도 겨울에는 춥기는 할지언정, 대기가 맑고 청아한 맛은 간직하고 있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시도 때도 없다. 그냥 시절을 모르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니 정말 지겹고도 숨이 막힌다. 아마도 이것도 산업화의 폐해 중 하나일텐데, 뻔히 알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세울 수 없으니, 그저 각자 알아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려니 막상 미세먼지가 엄습해오면, 막연하게 걷히기만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노릇이 연일 일과처럼 이어지고 있다. 기관지가 약하거나 피부에 트러블이 있는 사람들은 특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래저래 겨울은 고생이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인정사정 없이 습격하는 자연의 공해를 피해서 정신적인 안정을 취하거나 좋은 기분을 간직할 방도는 전혀 없을까? 천만에! 눈을 잠시만 돌려보자. 무자비한 공해가 감히 어쩌지 못하는 곳이 있긴 있다.

기왕지사 겨울이니 계절 특성 상 어찌할 수 없는 예외적 사항은 인정해야 한다. 비록 몰아닥친 추위야 감수해야 할 과제인 건 당연한 사실이고, 그럼에도 그 추위조차 짜릿한 감동으로 승화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가 어디일까? 바로 오늘 필자가 추천하고자 하는 하얀 눈 쌓인 겨울산이 해답이다.

하얀 겨울산, 그 매력은 도무지 단적으로 어떤 글이나 그림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다. 직접 가서 온 몸으로 느껴보는 수 밖에. 비단 완벽한 장비를 갖추고, 오랜 준비를 거쳐 시도해야 하는 높은 겨울 설산 등정만 그런 묘미를 주는 건 아니다. 그냥 간단한 작심으로 호젓한 길 걸어올라, 눈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가까운 야트막한 산 어딘가라도 가보자.

하얀 세상, 하얀 누리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사랑하고 싶은 마음가짐의 소유자가 되어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는 매서운 추위까지도 정겹고, 살을 에는 듯 불어오는 겨울바람 소리도 흥겨울 수 있다.

그러나 아등바등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서민들이야 생각만이 앞서있을 뿐, 좀처럼 시간 내기가 용이치 않을 터이고, 필자도 또한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역시 특별한 부류는 아니라서, 동경하는 설산에 한 번 오르려면 큰 맘을 먹어야 비로서 어떤 결과까지 이끌어낼 대사이다.

새 해 들어서 벼르고 벼르던 끝에, 수일 전 귀가 번쩍 뜨이는 요청을 접하게 되었다. 모처럼 하얀 눈이 소담스레 덮인 치악산 등정을 하자는 친구의 권유에, 황급히 다른 일정들을 조정하고는 기꺼이 부름에 응해 동행을 수락하게 되었다.

실상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오르내리던 치악산인지라 달리 준비할 것도 없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겨울 등정에 필수인 장비들을 꼼꼼이 챙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치악산에 들어섰다. 드디어 도달한 치악산 어귀! 필자는 이곳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성장했다.

그래서 언제 찾아와도 푸근한 고향의 품을 느끼게 된다. 타지에서 한 평생 떠돌며 살아가면서도 늘 그리워 했고, 꿈에서도 찾아 헤매던 피난처요 안식의 터전이 바로 치악산이다. 크게 숨을 한 번 몰아쉬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발을 뗀다.

드디어 새 해의 첫 겨울산 등정, 마침내 걸음걸음 설산에 오른다. 눈이 가득 쌓이니 우뚝한 바위산의 산세가 순해진 듯 보인다. 헐벗은 나목에 화사한 눈꽃이 피니, 고상한 멋이 봄 못지않다. 능선에서 눈 덮인 들판을 굽어보니 하얀 융단이 지천으로 깔린, 이름하여 별천지다.

볼수록 눈이 맑아지고 마음도 순백이 된다. 이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천지사방에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다. 사실 전에도 겨울 되면 눈 덮인 산에 올라보곤 했었다. 그리고 그 때 마다 겨울산의 마력에 유혹되곤 했었다. 궂은 길을 차분히 짚어 꼭대기에 오르면 여느 계절에는 도저히 경험 못할 큰 기운을 느끼게 된다. 춥고 긴 세속의 겨울을 버틸 힘도 덩달아 생긴다, 치악산, 그리 높지 않다.

이렇게 힘이 솟구치는데 단숨엔들 못 오르랴! 황골에서 시작하여 입석대를 지나 오르다가 상원사쪽으로 하산하려다가, 비로봉인 시루봉에서 사다리병창을 지나 구룡사로 내려가는 원조 종주코스를 일정으로 택했다. 허기사 거꾸로 가도 상관없다. 치악산, 정말 매력 덩어리다.

발 들여놓기 전에 범상치 않은 몸체에 눈이 먼저 놀란다. 이런 산, 흔치 않다. 시내의 언저리인 신월랑 들머리에서 산을 올려다보면 대번에 알게 된다. 대폭발에도 끄떡 않을 것 같은 바위산의 모습이 이토록 당당하다.

정상인 최고봉 높이가 불과 1288m. 더 이름난 유명산들에 비견하여 아주 높지는 않지만 산세는 거침없다. 능선 곳곳에 솟은 암봉의 등등함이 해외 어떤 고산준봉 못지않다. 산 좋아하는 사람들, 이 모습에 반해 ‘치악설화’란 애칭을 붙여 놓았다. 눈 내려 쌓여있으니 산은 더 전설 같다.

산에 들면 대단한 위엄이 사라지고 대신 은근한 재미가 솟는다. 종주하려면 너댓개의 봉우리를 타고 넘어야 한다. 등에 땀이 난다 싶을 때 조붓한 숲길이 나타나고, 판판한 능선길이 지겹다 싶을 때 바위봉우리가 느닷없이 등장한다. 변화무쌍하니 지루할 틈이 없다. 산이 살아있다.

여기에 봉우리 주변마다 부려진 기암들은 산행의 흥을 더욱 돋운다. 비로봉 아래에 도착하면 하늘로 뻗은 세 개의 석탑이 반긴다. 나타나는 능선마다, 계곡마다, 바위마다 모두 천하제일의 볼거리니 잊지 말고 챙긴다. 돈 주고도 못 볼, 솜씨 좋은 자연의 조각품이다. 하나씩 짚어 가면 숨 가쁠 틈이 없다.

내친 김에 멋진 바위 하나 ‘콕’ 찍어 멋대로 이름 하나 붙여본다. 퍽퍽한 일상 벗어나, 주인 없는 산에서 누리는 호사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이 재미 찾자고 오른 산이 아니던가! 겨울산은 눈 밟는 재미로 오른다.

“사각사각!” “뽀드득! 뽀득!” 발바닥에 은근슬쩍 밀려오는 간지러움과 물렁한 촉감이 쏠쏠하다. 깨소금 맛이다. “싸르륵 사그락” 방금 내린 싸락눈 지그시 밟는 소리, “보드득! 보드득” 곰삭은 홍어 뼈 잇몸으로 궁굴리듯, 조심조심 스리슬쩍 밟는 소리, “저벅 부드득!” 건장한 사내들의 거침없이 퉁퉁 내딛는 소리, “퍼벅! 퍼버벅!” 아이들의 빠릿빠릿 종종걸음 소리, “저벅! 절푸덕!” 내려갈 때 지친 몸으로 터벅터벅 밟는 소리.... 한 발 한 발 무심하게 걷는다.

사위가 쥐죽은 듯 적막하다. 봉우리는 아득하다. 헉헉! 하얀 입김이 뭉툭뭉툭 똬리를 튼 채 가뭇없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껑충 큰 이깔나무들이 하얀 눈꽃을 다발로 피운 채 서있다. 눈 이불 뒤집어쓴 졸참나무, 물박달나무, 고로쇠나무, 생강나무, 층층나무, 가래나무, 물푸레나무....

바람이 맵차다. 나무들이 진저리를 친다. 눈꽃들이 우수수! 흩날린다. 호르르 호잇! 갑자기 새들이 듣그럽다. 치악산은 편안하다. 암소 잔등처럼 비교적 완만하다. 살집 두툼한 육산(肉山)이다. 굵은 뼈는 살집에 숨어있다.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후덕하다. 높되 험하지 않고, 웅장하면서도 그 품이 아늑하다. 역시 ‘보은의 산’이다.

혹자는 이름에 ‘악(岳)’ 자가 들어간 산은 산세가 험하고 지형이 인색하다 했지만 그건 그 사람의 논리일 뿐이다. 발에 착착 감기고 손을 뻗으면 비로봉까지 닿을 듯 그 숨결이 지척에서 밭은 소리로 들려나는 치악산은 그냥 이웃일 뿐이다. 아무 때나 누구나 친근하게 반겨주는 친구같은 산이다.

치악산의 겨울엔 눈꽃이 황홀하다. 8분 능선까지 오르는 데 ‘깔딱 고개’ 같은 것은 없다. 초중반이 약간 가파를 뿐이다. 그렇지만 무조건 만만하게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이 계절에는 아이젠과 스틱은 필수장비이다. 신발 속으로 파고드는 눈과 정강이의 찬 기운을 막아주는 스패츠도 물론이다. 신발은 발목 끈을 다시 한 번 꽉 조여야 한다. 능선 칼바람도 만만치는 않다. 얼굴마스크나 이중장갑(속·겉장갑)을 갖추는 것도 좋다.

요즘 치악산은 눈이 적다. 영하 10도 이하의 꽁꽁 얼어붙는 날씨도 작년에 비해보면 드물다. 그러고 보니 상고대(Air Hoar) 보기도 쉽지 않다. 아쉽다. ‘강원산간지역 대설주의보’는 언제쯤 발효될까? 서해안지방에 비할 순 없지만 그래도 영동엔 눈이 많이 내렸다는데, 영서는 왜 눈이 적을까? 요즘 영서지방의 겨울 산꾼들은 발을 동동대며 애를 태운다.

상고대는 눈과 강추위가 만들어내는 눈꽃의 절정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이 얼어붙은 ‘얼음꽃’이다. 겨울나무의 사리 ‘눈물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치악산 8분 능선의 철쭉, 분비나무, 주목, 잣나무에 핀다. 앉은뱅이 철쭉무리에 얼음꼬마전구가 덕지덕지 매달린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나무에도 주렁주렁 매달려 수정처럼 빛난다.

치악산 보호주목은 설악산, 덕유산, 소백산 주목보다 잘생겼다. 붉은 근육질몸매가 탄탄하다. 붉은 열매, 붉은 껍질에 늘 푸른 뾰족 바늘잎. 그 사이로 주렁주렁 피운 하얀 얼음꽃. 몽환적이다. 치악산 능선 나뭇가지들은 겨우내 상고대를 피우며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한다. 살은 얼고 피부는 트다 못해 얼어터진다. 그래도 얼음꽃을 피우고 또 피운다. 마치 우리에게 끈기와 집념의 멧세지를 전해주는 것 같다.

정상에서 이리 저리 고개를 돌리며 바라보니 우뚝우뚝한 봉우리들이 휘뚜루마뚜루 빙 에둘러 서 있다.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라 미끄럽다. 아이들은 임시 비닐봉지썰매를 타고 깔깔대며 내려간다. 여성들은 넘어질세라 가슴이 조마조마 엉금엉금 내딛는다. 남자들은 그래도 제법 균형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두둑 두두둑!” 문득 간 밤에 얼었던 눈 더미를 밟는다. 댕강! 눈 허리가 발밑에서 으스러지는가 했더니 쫘악∼ 미끄럼을 탄다. “아이쿠!” 넉장거리로 나뒹군다. 하늘에 별 부스러기들이 어지럽게 날린다. 엉치뼈가 시큰하다. “푸하하!” 아늑하다. 강같이 평화롭다. “그래, 내가 살아있구나!”

이제 산을 내려가면 어떤 색으로 삶을 살아갈까? 누운 김에 시퍼런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앞으로 주어지는 오늘을, 내일을 어떤 이야기로 채워야 할까? 살아있다는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어떤 그림으로 그려내야 하는 걸까? 생각이 깊어진다. 넓어진 생각이 더 골몰하다.

기대가 컸던 만큼이나 충만하고 왕성한 의욕과 감성을 회복하고 돌아온 그날의 산행은 필자에게 올 한 해를 살아가는 데에 큰 위안과 격려의 손길로 각인되었다. 아마도 모름지기 하얀 설산을 닮은 하얀 마음으로, 이웃과 더불어 한껏 찰진 삶의 날들을 이어갈 수 있을게다.

호두를 쪼개서 안을 들여다보자. 호두 속 살이 껍질 속 구석구석, 틈새마다 꽉 채워져 있다. 껍질 때문에 크기가 모양을 스스로 정하지는 못해도, 나름 그 한계 속에서 최대한 성장한 모습이다. 우리도 호두처럼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꽃을 활짝 피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용기를 내자. 호두가 그럴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운명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능동적인 사람이 될까?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생각한다. 우리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과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

이미 주어진 껍질에 연연하여 삶을 원망하고 비관하느라 혹시 속을 채우는 데 게으르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자신에게 커다란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한다.

혹여 그 동안 노력해 온 것이 미흡하게 생각이 들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속을 살뜰이 채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그 이상으로 삶에 최선을 발휘하도록 애써야겠다. 오늘은 모처럼 다른 일은 제껴두고 각오를 다지는 시간들을 갖도록, 모두에게 다짐의 시간을 권유하고 싶다.

한 해 동안의 계획이나 포부를 설정하기가 너무 길고 버겁다면, 먼저 반 정도만이라도 잘라서 잘 살자고 다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개인적인 일상이든, 대인관계의 올바른 처세술이든, 우선은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인생관이 건전하면서도 올바르게 설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바로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 알기 전에는 각기 다른 섬과 섬이다. 그 섬에 다리를 놓는 것이 바로 인사이다. 휼륭한 인사는 품격 있는 인간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인사하는 습관, 옷 입는 습관, 책 읽는 습관, 돈 쓰는 습관, 상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습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아는 습관, 아이들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감싸고 도와주는 습관, 사물의 이면을 관찰하는 습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습관이 모여서 인품을 만든다.

나쁜 습관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3의 눈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다. 좋은 습관이 몸에 밸 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스물네 시간 지켜보는 것이다. 의식의 일부분을 떼어내서 관찰자 역할을 맡기면 된다. 그렇게 반년 쯤 지나서 자신의 모습을 예전과 비교해보자. 아마도 필경 한층 더 성숙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반년을 살면 된다.

필자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죽는다’라고 되뇌이며 잠이 든다. 그날이 더없이 좋은 날이었든, 내 인생의 최악의 날이었든, 필자는 매일 밤 그런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그날이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면 필자는 오늘 무엇인가 조금 이루어졌다 해서 거만해지거나 들뜨지 않고, 내일 아침엔 다시 태어나 평상시의 아무 것도 아닌 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이 다시는 되돌리고 싶지 않은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면 삶이 힘들고 괴로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오늘까지만 하고, 내일 아침엔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내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밤의 끝이면 날마다 필자는 죽는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잘난 나였든, 못난 나였든, 필자는 매일 아침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의 인생은 오늘도 여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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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섶 사르며
눈불이 탄다,
하얗게 하얗게 새하얗게

온 산, 온 들, 누리에 온통
활활 눈보라로 흩날려
하얗게 살아오른다

시끌벅적 세속의 허접쓰레기들아,
허망하니 스러질 오욕덩어리들아,
시절좇아 가버릴 거품나부랭이야,
이젠 불티로 날아가거라
이젠 재 되어져 오르거라
이젠 먼지로 흩어지거라

마즈막 남은 양심 한 올
잘 지켜내도록
눈불로 흠씬 뎁혀줄 터,

사람으로 세상 살아예다가
못내 설워 눈물 떨굴 날이어든
서로가 서로를 서로
아낌을, 챙김을, 보듬어안음을
하얀 옷으로 입고

하얀 하늘 맘으로 살아가라 한다,
하얀 전령 눈불 흩뿌려
하이얗게 한 세상 태운다
긴 겨울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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