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67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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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자락 *



시작노트

" 가을자락 " 詩作 note

가을엔 그저 가을이야기가 제 격이다. 이런 저런 잡스런 다른 이야기를 주저리 풀어보았자 종국에 가서는 가을로 결말짓게 되는 것이 오묘한 가을의 마술이다. 어차피 힘주어 외면하려 해도 가을은, 그 진한 빨판을 박고 우리에게 가을의 냄새를 흘려 넣어준다. 그래서 우리의 가을은 이미 우리의 몸 속에, 마음 속에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러니 가을 노래 부르고, 가을 시 적는다는데 새삼 시비 걸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냥 짧아서 아쉬운 이 계절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다음 계절에 즈음하여 후회나 미련 남기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의 가을을 한껏 사랑해야 한다. 주어진 시절을 만끽해야 한다. 가을이 가을다운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얼른 깨닫자. 그리고 우리에게 드리워진 가을의 그늘에 푹 젖어보자. 가을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잊지 못할 우리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보자.

구태여 큰 소리로 떠들 필요는 없다. 애써서 남에게 드러내려 힘쓸 이유도 없다. 그냥 조용한 침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선물을 즐기면 되는 거다.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어떤 고난이나 역경이 와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도록 하자.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면서,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자. 그들 역시 분명히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

이런 계절에는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사람들은 가급적 피하자. 그들은 영혼을 괴롭힌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이 하찮아 보이고 비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더 위대하거나, 더 못한 사람은 어디에나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당신이 계획한 것 뿐만 아니라 당신이 이루어 낸 것들을 보며 즐거워하자.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당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자. 그것이야 말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의 운명 안에서 진실로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상적이기 쉬운 이 계절 가을이거늘, 사업상의 일에도 주의를 쏟자. 어쩌면 세상은 속임수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미덕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지는 말자.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애쓰고 있고, 삶은 영웅적인 행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당신 본연의 모습을 찾도록 하자. 그래서 가식적인 모습이 되지 말자. 또한 사랑에 대해서 냉소적이 되지 말자.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꿈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은 잔디처럼 돋아나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는 겸손히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생각에는 품위 있게 양보하자. 갑작스러운 불행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영혼의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쓸 데 없는 상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자. 많은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생겨난다. 아울러 자신에게 관대해 지도록 노력하자. 당신은 나무나 별들과 마찬가지로 태고 적부터 우주의 자녀다. 당신은 마땅히 이곳, 가을의 지구에 머무를 권한이 있다.

당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주는 그 나름의 질서대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웃들과 평화롭게 지내자. 당신이 이웃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노동과 소망이 무엇이든, 시끄럽고 혼란한 삶 속에서도 영혼의 평화를 간직하자. 서로 속이고, 힘들고, 꿈이 깨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 그러니 늘 평안하고 행복하려고 애쓰자. 가을이 익는 무렵에 갑자기 시선을 돌리는 글을 보면서 괜시리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 가을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 모습이 우리 삶의 근본이고, 본 모습이어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가 재판을 받게 되었다. 판사는 노인에게 “왜 빵을 훔쳐 먹었습니까?” 라고 물었다. 노인은 대답하기를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때부터 아무 것도 눈에 안보였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판사는 이 대답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런 판결을 내렸다. “당신이 빵을 훔친 절도 행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됩니다.” 판사의 판단에 방청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때 판사가 자신의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며 말했다. “그 벌금은 내가 대신 내겠습니다. 내가 그 벌금을 내는 이유는, 그동안 내가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벌금입니다. 나는 그동안 좋은 음식을 너무나 많이 먹었습니다. 오늘 이 노인 앞에서 참회하면서, 그 벌금을 대신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판사는 방청석을 향해서 “이 노인이 밖에 나가서 다시 빵을 훔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뜻이 계신 분들은 스스로에게 벌금을 내십시오!” 라고 했다.

이윽고 자율적으로 사람들은 벌금을 냈고, 그 모금액이 무려 47만 달러나 되었다. 이 재판으로 그 판사는 유명해져서 나중에 ‘뉴욕’의 시장까지 역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라과디아 판사’다. 후에 ‘라과디아(Fiorello LaGuardia)’의 훌륭한 덕행을 기념해서 뉴욕에 ‘라과디아 공항’이 생겨나기도 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살 맛나게 하는 날씨. 청명한 하늘, 후련하게 불어오는 바람, 이 판사와 같은 지혜를 가진 정치인이 이 나라에는 없을까? 세월에 지친 우리를, 오늘의 날씨와 같이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일, 그런 사람이 어디 없을까?

오래 전 우리 동네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두부를 팔러 오는 여든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 시간에 늘 자전거를 타고 호루라기를 불며, 신선한 두부를 팔러 왔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호루라기를 불던 할아버지는 그만 자전거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바람에 자전거에 실려 있던 두부들도 땅에 떨어져, 일부는 흙투성이에 깨지고 말았다. 이 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재빨리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아주머니는 늘 이 할아버지에게 두부를 사던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고마운 이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다른 데서 두부를 사야겠어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할아버지, 괜찮으니 두부 2모만 주세요. 늘 할아버지 것만 먹었는데 흙이 좀 묻었다고 다른 두부를 먹을 순 없잖아요. 할아버지 두부가 최고거든요.” 할아버지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손을 내저었지만 아주머니의 막무가내로 결국 두부를 팔았다.

이 광경을 본 다른 사람들도 두부를 사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친절은 절망에 빠진 사람을 일어나게 하며 다시 꿈꾸게 하는 힘이 있다. 주는 사람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친절을 베풀 수 있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이 베푼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이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라고 한 ‘플라톤’의 말을 기억하자.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간디는 기차를 타고 업무를 하러 가게 되었다. 이제 막 떠나는 기차에 도착하여 기차 발판에 오르려는데 그만 한 쪽 신발이 벗겨져 기차 밖으로 떨어졌다. 기차는 이미 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신발을 주울 수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신고 있던 한 짝 신발을, 떨어진 신발 옆에 던져 놓았다. 함께 있던 친구가 몹시 의아해 하면서 물었다.

“왜 나머지 신발을 벗어 던졌는가?” 그러자 간디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누군가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쪽이 다 있어야 신을 수 있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부족한 게 내게 있다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그립다. 작은 것이라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조그마한 배려는 더 큰 사랑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가을에 돌아보아야 할 우리의 이웃들이, 소외된 친구들이 의외로 참으로 많다. 그런데 그 모습들은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여진다.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 우리의 눈에도 지금 그런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가? 살펴볼 일이다.

어느 마을 다리 밑에 걸인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다리 입구 쪽에는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리를 세우기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한 걸인은 그 기념 비석에 침을 뱉으며 언제나 욕을 해댔다. “에이! 양심도 없는 놈들! 돈 많은 것들이 몇 푼 기부했다고 생색내기는...” 그러나 한 걸인은 늘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참 고마운 사람들 아닌가? 우리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많은 사람을 건너가게 해주니 말일세. 나도 언젠가 이 사람들처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그 다리 옆에 새로 큰 다리가 세워졌다. 그리고 기념 비석에 새겨진 이름 중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그 걸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그는 넝마주이를 시작으로 열심히 일하여 마침내는 건재상을 경영하는 부자가 되어 기금을 기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침을 뱉으며 항상 욕을 했던 다른 걸인은 여전히 그 다리 밑에서 살고 있었다.

서로 주고 받는 소통의 장에서 희망과 행복의 샘이 솟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긍정의 힘은 위대하다. 내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분명 행복해질 것이다. 그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가을을 대하는 자세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가을의 지혜가 바로 이것이다. 가을이 울림의 소리를 낸다. 우리는 그저 귀를 기울이면 된다.

어차피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여정이다. 남의 짐보다는 내 짐이 가장 무겁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삶의 무게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어느 사람이 자기의 짐을 지고 가다가 신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신이시여, 다른 사람의 짐은 다 작고 가벼워 보이는데, 왜 제 짐만 이리 크고 무겁습니까?”

그러자 신은 빙그레 웃으며 그 사람을 데리고 짐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네 짐이 크고 무겁다니 다른 짐으로 바꾸어 주겠노라. 이 중에서 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보아라.” 그 사람은 기쁜 마음에 가장 작고 가벼운 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짐을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하루를 꼬박 고르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짐을 고를 수가 있었다. “드디어 마음에 꼭 드는 짐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작고 가벼운 짐으로 바꿀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이 말했다. “너의 그 짐을 자세히 보아라! 그 짐은 본래부터 네가 지고 가던 그 짐이란다.” 삶을 살다보면 다른 이의 삶의 무게는 작고 가벼워 보일 때가 있다. 지금도 왜 나의 삶의 무게만 무겁냐며 불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보면 무거운 인생의 짐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의 짐이 크고 작으냐에 집중할 시간에 내 삶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끼와 톱과 망치가 서로 힘자랑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주 단단한 쇳덩이를 부수는 쪽에게 맏형의 지위를 주기로 했다. 먼저 도끼가 나섰다. 도끼는 날을 세워 쇳덩이를 내리쳤다. 그런데 도끼의 날만 무디어질 뿐 쇳덩이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이번에는 톱이 나섰다. 톱은 쇠의 표면에 날을 대고 열심히 반복 운동을 했다. 그러나 톱의 날이 모두 뭉그러지고 말았다.
“너희는 안돼.” 망치가 의기양양하게 나섰다. 망치는 있는 힘을 다해 쇳덩이에 부딪쳤다. 그러나 그 결과도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고 약한 불꽃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한번 해볼까?”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우리처럼 강한 자들도 못한 일을 작고 연약한 네가 어떻게...” 그러자 불꽃은 쇳덩이를 끌어안고 타오르기 시작했다. 쇳덩이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쇳물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낙수가 바위를 뚫는 법이다. 인내와 끈기는 역경의 쇳덩이를 녹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그 환경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고 지배하는 것도 사람이다. 주변 환경만 탓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극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환경을 탓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탓한다. 그렇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을 바꾸거나 그 환경에 자기 몸을 맞춘다.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그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일에 적극적일 수 없다. 남 탓을 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 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남 탓을 한다고 바뀌는 것이 있다면 성공과 점점 멀어져가는 자기 자신 뿐이다. 삶의 길에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환경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무한 긍정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인내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이 가을에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덕목 중의 다른 또 하나다.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탬’이라는 박사가 있었다. 그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1976년에 갑자기 병이 들었다. ‘척추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척추암은 수술로도, 약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몇 달 후에 그는 병상에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출근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병이 낫게 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스탠리 탬은 “아, 네, 전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 감사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병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살려 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하나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그렇다. 매 순간마다 감사하고 감사했더니 암세포는 없어졌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은 ‘감사’때문이었다. 비단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결과가 아니다. 감사의 대상이 지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마음 속으로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지닌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다. 원망하고 탓을 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진솔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는 것이 말처럼 물론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어렵다고 해도 필경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마땅히 애써서 노력할 일이다.

요즘 미국의 정신병원에서는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물치료 보다는 소위 ‘감사치유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감사한 일들은 무엇일까를 찾아내게 하고 감사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물치료보다도 이 감사치유법이 훨씬 더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 감사치유법은 단지 정신과적인 치료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탠리 탬의 경우와 같이 육체의 질병에도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본’ 해군 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찌’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오고 나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짜증이 났고 불평 불만이 쌓여져 갔다. 결국 그는 전신이 굳어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때에 그는 정신 치료가인 ‘후찌다’를 만나게 되었다.
후찌다는 그에게 “매일 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만 번씩 하세요.”라고 처방했다. 기이찌는 자리에 누운 채로 매일 밤 쉼 없이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계속했다.

매일 “감사합니다.”를 했기 때문에 감사가 몸에 배어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두개의 감을 사와서 “아버지 감을 잡수세요.”라고 말했는데, 그 때 아들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신기하게도 손이 움직였고 차츰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던 목도 움직여지게 되었다. 말로만 하던 감사가 실제 감사가 되었고 불치병도 깨끗이 낫게 된 것이다.

사람의 병은 대부분 스트레스에서 온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마음의 상처와 부정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모든 스트레스와 병을 이길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인 ‘미국 텍사스 주립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31년간 봉사한 ‘김의신’ 박사는, 신앙이 암 치료에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교회 성가대원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해보니 성가대원들의 ‘면역세포(일명 NK세포)’ 수가 일반인보다 몇 십 배도 아닌, 무려 1,000 배나 많은 것으로 측정되었다고 말했다.

감사로 찬양을 하면서 사는 것이 그만큼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한다. 또한 감사는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을 떨어뜨리고, 소화 작용을 촉진한다고 한다. 1998년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 두 의사가 실험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찬양하고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존 헨리’ 박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이다.”라고 말했다. 감기약보다 더 대단한 효능을 가진 것이 감사약이다. 우리가 기뻐하며 감사하면 우리 신체의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감기 환자는 매일 감기약이 아니라 감사약을 먹어야 한다. 우리가 1분간 기뻐하여 웃고 감사하면 우리 신체에 24시간의 면역체가 생기고, 우리가 1분간 화를 내면 6시간 동안의 면역 체계가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며 감사약을 먹으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유지할 수가 있다. ‘탈무드’에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항상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호흡이 있는가? 그러면 감사하자. 지금 걸어 다닐 건강이 있는가? 그러면 감사하자.

지금 살아서 움직이며 할 일이 있는가? 그러면 감사하자. 이런 건강이 없어서, 마음의 소원은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음만 기다리는, 죽은 사자같은 모습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을이 훌쩍 가기 전에 기억할 감사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가을을 대하면서 부끄럽지 않도록,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온전하게 기리도록 하자. 가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감사의 삶으로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가을이 우리에게 꿈을 주고 있다. 그 아름다운 가을의 꿈을 선사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이가 더 행복하다. 글을 잘 쓰는 작가보다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사는 이가 더 아름답다. 꿈은 인간의 생각을 평범한 것들 위로 끌어 올려주는 날개다. 내일에 대한 꿈이 있으면 오늘의 좌절과 절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꿈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생의 비극은 꿈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이 없다는 데 있다. 절망과 고독이 자신을 에워쌀지라도 원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아름답다. 꿈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한한 노력을 담는 그릇이다. 이것을 가르쳐주는 가을은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 아름답다. 진정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가을이 가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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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 된 것은 이미
가을이 정직한 바람 주었기에,
내가 나인 것은 진즉
가을이 진솔한 햇살 주었기에,

들큰한 내음으로
시절 걷어가는 마무새
거기 가을이 흠씬 하늘 열다

가을 입구에 서서 어언
내가 내려놓는 고백의 읊조림,
열린 문틈으로 흠칫 보여질
저 낙엽의 길 우에
사랑의 길 비스듬 덧대어

어깨 겯고 느껴울다
성큼 문턱 넘어서 다가오는 연가....

가을스러운 미소로
두어 줄금 뿌리는 비,
가을다운 손짓으로
슬몃 오른손 잡는 안개,

나의 가을은
붉은 빛깔 숨결 토하며
격하게 감상 빚어올리고
누리 글썽여 가을의 자락은
물컹 익어가다,

이토록 절실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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