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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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없는 새에도 바다, 그놈은 *



시작노트

" 나 없는 새에도 바다, 그놈은 " 詩作 note

겨울바다에 한두 번 안 가본 사람 있을까나? 그 쓸쓸하고 적막한 누리, 부서지며 몸부림치는 포말, 끝없이 펼쳐지는 고독과 그리움의 백사장, 몸부림치는 갈매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더욱 더 크게 다가오는 슬픔의 랩소디. 누구이든 감상의 끝자락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마력의 세상인 그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가만히 귀 기울이면 점점 더 커지는 낭만의 목소리를 우리는 추억처럼 동경한다. 그리고 찾아가고 싶어서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나 실체적 어려움들 때문에 쉽사리 걸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마음 속으로만 그리워하며 이런 저런 매개체를 통한 대리만족으로 그치는 경향이 많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필자도 묵은 때를 벗기고 쌓인 숙제를 정리하며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로 겨울바다를 가봐야겠다고 작심을 했지만 선뜻 나서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가 올 해가 가기 전에 찾아가겠다는 다짐을 또 날려버리는 건 아닌가 조급증이 나고 있다.

필자에게 바다는 기다림이다. 그리움이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보상이며 염원이다. 그래서 바다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바다를 떠올릴 때마다 필자는 가슴앓이를 한다. 어려서부터 바다를 가까이하면서 꿈을 먹었고 소망을 키웠었다. 그래서 바다는 고향처럼 필자의 아련한 추억에 자리하고 있다. 때로는 푸근함이나 안락한 피난처의 모습으로, 혹은 냉엄하고 매몰찬 채찍의 형상으로 필자를 자극한다. 바다는 무수한 얼굴로 변화하며 필자의 시심을 일깨웠다.

그 중에서도 유독 겨울바다는 많은 목소리로 필자를 불렀다. 그 부름에 필자는 거역하지 못하고 마치 몽유병자처럼 바다를 찾곤 했었다. 살을 에일 듯 한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밤이 샐 때까지 해변가를 방황하며 바다의 속내를 추측하고 싶어 하다가 목이 쉬도록 기침을 해대기도 했다. 그러다가 예기치 못한 세파에 휩쓸려 한동안 그토록 사랑하는 바다를 떠나 수년 동안 마음으로만 그리며, 정작 바다를 찾지는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랜 상사병 끝에 마침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환희와 환호로 다시 찾은 바다. 격하게 반가운 필자처럼 바다도 필자를 기꺼이 반겨주리라 믿고 한 걸음에 달려간 바다가 그냥 천연덕스럽게 철썩이며 제 할 일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심한 배신감과 모멸감으로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속내를 표현한 시다. 이 시는 그래서 시간이 좀 흐른 다음에 다시 읽어보니 속 좁은 졸부의 치기어린 시샘이 그대로 드러나는 낯 뜨거운 시인 것 같아 약간은 남부끄러운 시다.

바다는 바다인 것을. 그냥 너른 품으로 언제나 변함 없이 누구라도 반겨 맞는 우리 모두의 바다인 것을, 마치 필자 혼자만의 고향인 양 오해하고 있었으니 토라지고 삐쳐서 고개 돌리는 못난 처세를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겨울바다를 그리워하는 시인들이 지난 주말 조촐한 연말 모임을 가졌었다. ‘해피우먼’에 칼럼이나 시를 게재하고 있는 시인들의 식사자리라면서 ‘소정현대표’가 주선한 기회였는데 막상 참석해보니 필자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여류시인들로만 성원이 된 자리였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분위기에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하고 주로 듣는 편에 속해 있다가, 이런 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며 각자의 가정사나 삶의 고충들을 토로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에 빠져들어갈 수 있었다. 각자 연령도 좀 차이가 나고 생활 환경도 제각각이라 언뜻 동질감을 느끼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모두가 시를 쓰는 사람들이고, 보여지는 세상 못지 않게 보이지 않는 세상의 속살도 맛볼 줄 아는 공통분모가 느껴지면서 이내 화기애애한 대화의 장이 이어졌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다들 바쁘고 버거운 삶의 궤도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바라기에는 함께 어깨 걸고 겨울바다를 여행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돌아왔다.

올 해도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이런 이야기로 저물어가고 있다. 어쩌면 올 해의 이 연말이 삶의 자락에서 더없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고 여겨질 지도 모르기에 소중하고 아까운 마음으로 연말의 하루들을 헤아리고 있다. 가능하면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만 아쉬워하기 위해서. 더 반성하고 더 겸허하게 뒤돌아보는 성찰의 시간들로 메꾸고 있다. 필자의 삶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더 알차게 채우기 위해서 좀 더 바지런하게 움직이며, 필자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기 위한 몸짓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렇게 애쓰는 연말의 날들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을 어떻게 전할지,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사랑의 상대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우리의 사랑을 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야겠다.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춥고 메마른 누리일수록 따스하고 포근한 사랑이 필요한 이유다.

‘오만가지 생각’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하루 동안 평균 5만여 가지 정도의 다양한 생각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5만 가지 생각 중에서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한다고 한다. “싫어. 귀찮아. 필요 없어. 짜증 나. 그만둬. 하지 마. 틀렸어. 바보 같아. 하찮네. 쓸모없어. 별로네. 안 예뻐. 형편없어. 추하네. 느려. 속 터져. 똑바로 해. 포기하자. 안 돼...” 인생을 둘러싼 너무나 익숙한 생각들이다.

불평, 불만족, 시기, 질투, 불신, 의심, 원망, 심술, 짜증, 불만, 불안, 초조...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감정들이다. 우리의 한 해가 지금 저물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내 주변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간섭하고, 헐뜯는 데 얼마나 우리의 마음과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을까?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이룬 것,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존감이 적은 사람일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이고 적대적이라고 한다.

스스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과 능력을 키우는 노력보다는 다른 사람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려는 왜곡된 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그저 부정하고 불평하는 생각의 낭비는 결국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끝없는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나쁜 일을 생각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온 종일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것의 조합이다. 그 조합의 실체이며 증거인 것이다.

‘포드 자동차’를 창립하고 지금까지 자동차 왕이라 불리는 ‘헨리 포드’는 농촌에서 태어나 16세에 ‘디트로이트’로 건너가 유명한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회사의 직공으로 들어갔다. 포드 역시 에디슨처럼 정규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노력하여 인정받는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러한 포드가 휘발유 동력으로 움직이는 내연기관에 관심을 보이자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만류했다.

당시 석유의 사용은 등유를 사용하는 보일러가 대세였고, 등유를 정제하는 과정의 부산물일 뿐인 휘발유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때였다. 고민하던 포드는 에디슨을 찾아가 질문했다. “휘발유가 기계를 돌릴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습니까?” 에디슨은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자네 듣던 대로 현명하군. 생각대로 휘발유 자동차를 만들어보게.” 포드는 에디슨의 말에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3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드디어 자동차 엔진을 만들고야 말았다. 헨리 포드는 에디슨을 ‘아내 이외에 나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평생 존경하며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1931년 10월, 에디슨의 임종을 앞두고, 포드는 에디슨이 숨을 거둘 때 마지막 숨을 병에 담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포드가 에디슨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포드는 그 병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소중히 간직했고, 지금은 ‘미시간 주’에 있는 ‘헨리 포드 기념관’에 보관되고 있다. 뚜렷하고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어떤 실패와 난관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사람의 응원은 목표를 위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가능성을 칭찬하자. 어쩌면 우리의 말 한 마디가 위대한 성공의 길잡이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일을 실행할 만한 힘을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법이다. 자신에게 그러한 힘이 있을까 주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함부로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 된다. 옷깃을 한 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그리고 인연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니다. 우연한 기회나 뜻밖의 계기에서 삶의 전환점이 될 근거가 마련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금부터 약 90여 년 전에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시골 소년이 ‘런던’의 어느 큰 교회를 찾아갔다. 소년은 집이 몹시 가난해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자 교회의 도서관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그나마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려고 무작정 올라온 것이었다. 소년은 목사가 외출하고 없자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소년의 등 뒤엔 수많은 책들로 가득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에는 반짝 빛이 났다. 흥분한 소년은 책을 둘러보다가 한 쪽 구석에 두껍게 먼지가 쌓인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볼품이 없는 그 책은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듯 했다. 소년은 먼지라도 털 생각으로 책을 꺼냈다가 차츰 그 내용에 빨려들게 되었다. 그 책은 ‘페브리에’의 ‘동물학’이었다. 소년은 서서 그 책을 열심히 읽었다. 마침내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뒷장에 이런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곧 런던법원으로 가서 1136호의 서류를 가지십시오.” 어리둥절한 소년은 곧장 법원으로 달려가 서류를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서류엔 소년에게 400만 달러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소년은 눈을 비비며 다시금 꼼꼼히 서류를 읽어보았다. “이것은 나의 유언장입니다. 당신은 나의 저서를 처음으로 읽어주신 분입니다. 나는 평생을 바쳐 동물학을 연구하고 책을 썼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권의 책만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도서관에 기증하고 나머지 책은 모두 불살랐습니다. 당신이 그 교회의 내 유일한 저서를 읽어주셨으니 내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 F.E. 페브리에 -”

그 사건은 영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모두들 엄청난 유산에 관심이 쏠렸다. 소년은 페브리에의 뜻을 기려 영국 전역에 도서관을 세웠다. 그리고 좋은 책을 보급하는 데 힘썼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평생을 보냈다. 책 한 권이 소년에게 놀라운 행운과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 우리는 인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신중하고 열정적인 생각과 실천의지가 빚어낸 아름다운 사실과의 인연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를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인연을 애써서 찾되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편향적인 생각에 치우친다는 것이다. 사실은 가장 기본적이고 간단한 가족관계에서 모든 인연은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가족들 앞에서 너무 쉽게 화를 낸다. 남들 앞에서는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참을 수도 있는 문제를, 가족이라는 이유로 못 참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서로 허물없다는 이유 때문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편한 관계라는 핑계로 발가벗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가 얼마나 흔한가?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뜨거운 불은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불을 지른 쪽은 멀쩡할 수 있겠지만, 불길에 휩싸인 쪽은 크건 작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내 곁에 가까이 있어서, 나 때문에 가장 다치기 쉬운 사람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 자국을 가족들에게 남겨왔던가?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에게 함께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남긴 그 많은 상처들을 이제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보듬어 줄 때인 것 같다. 나로 인해 상처를 주기보다는, 나로 인해 기쁨을 줄 수 있고, 나로 인해 모든 이가 행복했으면 참 좋겠다. 우리 모두는 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소중하기에, 조금씩 놓아주어야겠다. 가정은 생각과 말과 행위로 행복을 저축하는 곳이지, 행복을 캐내는 곳이 아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해보고, 혹여 생각과 말과 행위로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뒤돌아보는 연말이 되기 바란다.

가슴이 찡해지는 어느 사연을 공유한다. - 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꼭 밥을 먹여 보내려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친정에 가면 부엌에도 못 들어오게 하셨고, 오남매의 맞이라 그러셨는지 남동생이나 당신 보다 항상 내 밥을 먼저 퍼주셨다. 어느 날 오랜만에 친정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푼 밥을 내 앞에 놓자 어머니가 “얘, 그거 내 밥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엄마 웬 일이유? 늘 내 밥을 먼저 퍼주시더니...”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게 아니고, 누가 그러더라. 밥 푸는 순서대로 죽는다고. 아무래도 내가 먼저 죽어야 안 되겠나?” 그 뒤로 어머니는 늘 당신 밥부터 푸셨다. 그리고 그 이듬해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얘기를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남편과 나, 그 중에 누구 밥을 먼저 풀 것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 남편 밥을 먼저 푸기로 했다. ‘홀아비 삼년에 이가 서 말이고, 과부 삼년에는 깨가 서 말.’이라는 옛 말도 있듯이 뒷바라지 해주는 아내 없는 남편은 한없이 처량할 것 같아서이다.

더구나 달랑 딸 하나 있는데, 딸아이가 친정아버지를 모시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 만에 하나 남편이 아프면 어찌 하겠는가? 더더욱 내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통스럽더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남편을 끝까지 보살펴주고, 뒤따라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줄곧 남편 밥을 먼저 푸고 있다. 남편은 물론 모른다. 혹시 알게 되면 남편은 내 밥부터 푸라고 할까? 남편도 내 생각과 같을까? 원하건대 우리 두 사람, 늙도록 의좋게 살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

한 부인이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을 잃은 뒤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잘 살아왔었는데 아들마저 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자신에게도 큰 병이 찾아왔다.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부인은 충격에 빠졌다. 그날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아들의 묘를 찾아 꽃다발을 놓고 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이를 눈여겨보던 공동묘지 관리인이 “사모님, 산 사람은 살아야 합니다. 이제 그만 슬퍼하시죠.” 부인은 그 말을 듣자 자신조차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더더욱 슬픔이 복받쳐 울었다. 그러자 관리인이 말했다. “죽은 사람은 꽃을 보거나 향기를 맡을 수가 없잖아요. 그 꽃을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준다면 어떨까요?” 몇 달 뒤, 부인은 밝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찾아와 묘지관리인에게 말했다.

“그때 당신 말을 듣고 전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어요. 남편에게 줄 꽃다발을 병들고 아픈 사람들에게 갖다 주니 무척 기뻐하더군요. 의사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의아해 하지만, 전 제 병이 나은 이유를 알아요.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지요.” 사람 사이의 인연에 숨어있는 비밀은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행위의 결과가 자신에게 복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혹시 이번 연말에 도저히 짬을 내기 힘들어 겨울바다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겨울바다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아주 듣지 못하는 건 아니다. 바다는 오늘도 우리를 향해 넌지시 이야기를 건넨다.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모든 인연들을 기꺼이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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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는 새에도 바다, 그놈은
있던 그 자리에 그냥 넉장거리로 누워
변함없는 꿈만 꾸어댔구나
세월 마르고 계절 시듦 일절 모르는 척,

여유롭게도
참 여유롭게도 -

다시 찾은 바다
여유로운 작태에
괜히 나만 민망해서 입맛 다시고섰다

나 없는 새에도 바다, 그놈은
있던 그 자리에 그저 철푸덕 주저앉아
변함없는 울음만 울어옜구나
깊은 속내 한번도 비추지 않고,

허허롭게도
참 허허롭게도 -

다시 찾은 바다
허허로운 모양새
문득 나만 머쓱하니 발길 멈추었다

나 없는 새에도 바다, 그놈은
있던 그 자리에 하냥 붙박이로 머물러
변함없는 물살만 출렁였구나
망망한 창파 무시로 철썩이며,

야속하게도
참 야속하게도 -

다시 찾은 바다
야속한 짓거리
언뜻 나만 계면쩍어 종종걸음 쳤다

나 없는 새에도 바다, 그놈은
있던 그 자리에 대개 영원인듯 맴돌아
변함없는 노래만 불러제꼈구나
내 시절따위 아랑곳 않고,

뻔뻔하게도
참 뻔뻔하게도 -

다시 찾은 바다
뻔뻔한 몸부림
결국 나만 황당해져 고개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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