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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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시계 *



시작노트

" 꽃시계 " 詩作 note

역시 어김이 없다. 불과 며칠 사이에 불쑥 치고 들어온 가을이 새벽으로 이불 자락 탐하는 방구석에 그득 들어찬다. 이젠 어쩔 거냐? 진즉에 기세 잃었으면서 아닌 체 하는 여름아! 헛짓거리 갈무리 하고 차라리 속 차려, 이젠 내년 다시 올 네 계절이나 기약하려마. 그렇다. 높푸른 하늘과 선들바람으로 목하 가을은 우리에게 찾아들었다. 엄청난 위상은 아니지만, 빈번한 비바람 데리고 태풍 몇 개 불어준 덕에, 비교적 수월하게 마무리 지은 여름에게 손짓하면서 거뜬한 심사로 맞이한 절기다.

달력을 보니 올 해는 추석이 비교적 일찍 자리하고 있어서 햇곡식이나 햇과일로 차례상 차리기에는 다소 버겁겠지만, 지금부터는 가을에 이어질 여러 가지 행사와 축제들을 두루 살피면서, 알차고 보람 있는 날들을 좀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다른 해보다 제법 강렬하기에 조급하게 서두르고는 있는데, 글쎄다. 지나고 돌아볼 제, 역시 이번에도 공수표만 남발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메꾸어가는 게 상책이리라.

오늘 시작노트에 고른 시도, 지은 지는 제법 경과된 시인데, 당시도 지금 못지 않게, 아니 지금보다 훨씬 더 암울하던 시기에, 어딘가 원치 않던 장소에 격리되어 있으면서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가 문득, 피어나는 꽃들을 헤아리면서 절박한 처지에 스스로 한 줄기 소망의 빛을 심어보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마음에서, 질그릇을 굽듯이 빚었던 투박한 시다. 그런데 한참 세월 흐른 이제, 비망록을 뒤적이다가 그 주제가 창밖의 비와 오묘하게 교차하여 오버랩되면서, 언뜻 심장을 호벼 파는 어떤 통증으로 되새김하게 되었기에 슬그머니 집어들었다.

아팠던 기억이라면 그 아픔만큼 절실한 바램이 있었기에, 당시의 쥐어짜는 고통을 죄다 덮을만큼의 간절한 열망이 있었기에, 아마도 필자의 그 여름이 이토록 숱한 세월의 편린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뇌리에 침 박았나 보다. 그침 없이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맺고, 인연을 쌓아가다가 본의 아닌 헤어짐들을 경험하면서, 차츰차츰 성숙해져가는 감성이지만, 그래도 아무리 세월 흘러도, 아무리 여러번 반복을 해서 체험을 해도, 여전히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래서 오늘도 필자는 슬프다. 슬퍼서 아프다.

슬픔도 아픔도 늘상 느낄 때마다 새삼스럽게 여겨져 새로 배운다. 그렇게 새롭게 새기자니 언제나 슬픔은 아프고 아픔은 슬픈 건가 보다. 이 나이 먹어 작은 위로나마 스스로 만들어내는 재주 조금 배우고 나니, 지금에 와서는 슬픔을 아파하거나 아픔을 슬퍼하는 빈도수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남들 모르게 속으로 홀로이 느끼는 통증은 항시 필자를 외롭게 하고, 괴롭게 하며 저리도록 사무치게 만든다. 아직도 배울 게 무지 많이 남아 있는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필자는 한 가지 새로운 배움을 체득했다. 가능하면 앞에 놓여있는 아픔이나 슬픔을 잡아당기기 보다는 조금 밀어놓고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다.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는 연습 말이다. 물론 말처럼 쉽거나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너무 지나치게 주관적인 관점은 자칫 편협하고 일방적인 결론을 유발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는 점에서, 새겨봄직 한 말이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코비’의 '90대 10의 원칙'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에서 능동적으로 이 원칙을 발견해 보자. 필경 이것은 우리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그럼 이 원칙은 무엇일까? 당신 인생의 10%는 당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로 결정된다. 나머지 인생의 90%는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10%를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고장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비행기가 연착하여 모든 일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도, 어떤 운전자가 느닷없이 내 차 앞에 끼어드는 것도 어쩌지 못한다. 이러한 일들이 바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10%에 해당되는 일이다. 그러나 나머지 90%는 다르다. 그리고 그 남은 90%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어떻게? 바로 '당신의 반응'으로! 당신은 빨간 신호등을 조작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의 반응을 조정할 수는 있다. 당신은 당신의 반응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당신은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당신의 딸이 커피잔을 엎어서 당신의 정장 출근복 위에 커피를 쏟아버린다. 당신은 방금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다음에 일어날 일이 달라진다. 당신은 화를 내고 욕을 하며 딸을 혼낸다. 딸이 운다. 딸을 혼낸 뒤 당신은 아내에게 컵을 테이블 끝에 두었다고 비난한다. 작은 말싸움이 따르게 된다. 발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 입는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딸은 우느라고 아침도 못 먹고, 학교 갈 준비도 못해서 통학버스를 놓친다. 아내는 지금 당장 출근을 해야 한다. 당신은 서둘러 딸을 학교에 태워다 준다. 당신은 늦었기 때문에 시속 50km 구간을 70km로 달린다. 경찰관에게 딱지를 떼인다. 15분이나 시간을 지체하고, 5만원 속도위반 벌금을 물기까지 하며 학교에 도착한다. 딸은 당신에게 인사도 안 하고 학교로 뛰어 들어간다. 회사에 20분이나 지각해서 도착하고 나서야 집에 서류가방을 놓고 온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의 하루는 엉망진창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가 진행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 같다. 집에 가면 당신과 아내, 그리고 딸 사이가 불편할 것이다.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당신이 오늘 아침에 보여준 반응 때문이다. 당신은 왜 나쁜 하루를 보냈을까? A) 커피가 원인일까? B) 당신 딸이 원인일까? C) 경찰관이 원인일까? D) 당신이 원인일까? 정답은 D이다. 당신은 아침에 딸이 쏟은 커피에 대해서는 아무런 통제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보인 5초간의 반응이 당신의 나쁜 하루를 만들었다. 당신이 보였어야 하는 반응은 다음과 같다.

커피가 당신 정장에 쏟아진다. 딸은 울음을 터뜨린다. 당신은 다정하게 “괜찮아, 다음부터 더 조심하면 돼!” 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는다. 서류가방을 들고 내려온다. 창밖을 보니 딸은 통학버스에 오르고 있다. 딸이 뒤돌아보더니 손을 흔든다. 같이 손을 흔들어 준다. 당신은 5분 일찍 회사에 도착하여 동료들과 반가운 아침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활기차게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두 가지 다른 시나리오의 차이를 느끼는가? 둘의 시작은 같았다. 그런데 둘의 끝은 너무도 다르다.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인생의 10%인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머지 90%는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동차가 고장났다고 화를 내고 욕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당신의 하루를 망치게 한다. 화를 낼 시간에 서비스차를 불러야 한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당신의 스케줄이 엉키게 되었다고 해서, 왜 비행기 승무원에게 신경질을 부리는가? 그녀는 그 일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다.

신경질 부릴 시간에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더 낫다. 운전 중에 누가 끼어들면 어떻게 할까? 빵빵 눌러 대며 화를 낼까? 운전대에다 화풀이를 할까? 왜 스트레스를 받는가? 그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받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와 시험과 문제와 골치거리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90대 10의 원칙을 알았으니 삶에 적용해 보자. 아마 도래하는 결과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가 행동하고, 주고, 말하고, 심지어 생각하는 모든 것은 부메랑과 같다.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우리가 받고 싶다면 우리가 주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우리가 주면 빈 손이 된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찰 것이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이 모양으로 살아왔는데 뭘 이제 와서 힘겹게 고치냐고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가?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무슨 버릇을 교정하려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항의하고 싶은가?

“God bless u! Peace be with u (닳아 없어지는 것이,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 ‘소크라테스’의 원숙한 철학은 70세 이후에 이루어졌다. 철인 ‘플라톤’은 50세까지 학생이었다.‘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완성한 것은 90세 때였다. ‘파테레프스키’는 70세 때도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베르디’는 오페라 ‘오셀로’를 80세에 작곡했고, ‘아베마리아’를 85세에 작곡했다.

미국의 부호 ‘벤더필트’는 70세 때 상업용 수송선 1백척을 소유했는데, 83세로 죽기까지 13년 동안, 1만척으로 늘렸다. 대문호 ‘괴테’는 대작 ‘파우스트’를 60세에 시작하여 82세에 마쳤다. 미국의 현대 화단에 돌풍을 일으킨 ‘리버맨’은 사업에서 은퇴하고 장기나 두려던 차에
어떤 아가씨의 충고를 받아들여, 단 10주간 그림 공부를 한 후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 때가 81세였다. 그는 101세에 스물 두번째 개인전을 가졌는데, 평론가들은 그를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이라고 극찬했다.

‘조지 잘루키’는 60세에 은퇴한 후 유럽에서 ‘ACN’을 시작하여 지금 75세가 훨씬 넘었으나,연봉이 100억대에 육박하여 ACN에서 최고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민족 해방의 일선에 섰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들은 결코 후회라는 것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제 나이 60대 중반을 막 넘겼으니 아직도, 어떤 것이라도 다시 시작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결코 늦은 게 아니라고 여겨져서 힘을 내본다.

더불어서 필자의 남은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리라는 다짐과 항상 웃음으로 세상을 관조하리라는 각오를 다지며, 놓여진 현실에 희망을 실어본다. 웃음에 대한 한국인의 해부학적인 단점은 연습으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웃음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연습이고 습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을 지닐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뇌에는 웃는 입 모양을 식별하는 전용 시프템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가장 쉽게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 입꼬리를 위로 올려서 웃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입모양만 바꾸어서 일부러 웃는 표정을 지어도 뇌는 이것을 실제로 웃는 것으로 판단하게 되고, 우리 몸에 이로운 반응을 일으킨다. 입꼬리를 당기고 내리는 근육의 신경이 뇌를 자극해서 면역력을 높여주는 호르몬을 분비시키기 때문이다.

말기암 시한부 3개월의 절망 속에서 웃음으로 활력을 되찾은 ‘김상태 목사’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웃음으로 활기를 얻는 것은 비단 우리의 육체만이 아니다. 스트레스에 찌든 우리의 마음도 웃음으로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할 힘을 얻게 된다. 신이 인간에게만 준 선물 웃음, 오직 우리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그 특권을 마음껏 즐기자. 그러면 반드시 인생이 바뀔 것이다.

‘버나드 쇼’가 죽으면서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적어달라고 했단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묘비명이다. 인생을 되돌아보며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충고해 주는 글이 아닌가? 누군가에게 강제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보게 한다는 ‘넛지효과’를 생각해보자. 인생은 퇴고 기능이 없다. 다만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바르게 사는 수 밖에 없다. 인생은 재방 없는 드라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성실하게 살자. 참으로 깊은 의미의 묘비명이다.

지금 당장 어떤 결심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삶의 색깔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랜 기간 동안 부단히 노력하고 결연한 의지로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가야 훗날 그 담금질에 대한 반대급부의 결과로, 보람을 얹어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요한 한 가지를 제언한다. 그것은 끊임 없이 걸으라는 것이다. 걷지 않으면 모든 걸 잃어버린다는 각오로 틈만 나면 걸어야 한다. 여건이 되면 산을 오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산으로 가는 길에는 등산이 있고, 입산이 있다. 등산이 땀 흘리고 운동하는 산길이라면, 입산은 궁지에 몰렸을 때 해답을 모색하고 구원을 강구하는 길이다. 그래서 ‘入山修道’ 라는 말이 있다. “骨山(바위산)은 精氣를 얻으러 入山을 하고, 肉山(흙으로 덮인 산)은 靈氣를 맞기 위해 登山을 한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있다. 사람은 결국 걷지 못하면 삶이 끝장나는 것이고, 비참한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걷고 달리는 활동력을 잃는 것은 생명 유지능력의 마지막 기능을 잃는 것이 아닌가. 걷지 않으면 모든 걸 잃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진리이듯, 다리가 무너지면 건강이 무너진다. 무릎은 100개의 관절 중에서 가장 많은 체중의 영향을 받는다. 평지를 걸을 때도 4-7배의 몸무게가 무릎에 가해지며 부담을 준다. 따라서 이 부담을 줄이고 잘 걷기 위해서는 많이 걷고, 자주 걷고, 즐겁게 걷는 방법 밖에는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우유를 마시는 사람 보다는 배달하는 사람이 되라!” 라는 말을 농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언제 어디서든 시간이 나면 무조건 걷자. ‘동의보감’에서도 ‘약 보다는 식보요, 식보 보다는 행보(行補)’라 했다. 누우면 약해지고, 병 들게 되며, 걸으면 건강해지고 즐거워진다. 질병, 절망감, 스트레스, 모두 걷기가 다스리고, 병이란 내가 내 몸에 저지른 죄의 산물이다.

일어나기 몇 시간 전에 잠이 깨어 죽은 듯이 누워, 온갖 근심 걱정에 가슴 아파하지 말고, 박차고 일어나 운동화 하나 신으면 준비는 끝이다. 뒷산도 좋고, 강가도 좋고, 동네 한 바퀴 어디를 가도 부지런한 사람들과 만난다. 처음에는 30분 정도 천천히 걷지만 열흘이면 한 시간에 20리를 걸을 수 있다.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고 자신감과 즐거움이 샘솟아 당신은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뇌혈관 지표를 정상으로 돌리는 방법으로 먹는 식습관 보다 운동 습관이 더 중요하다. 걷기운동은 혈관을 깨끗하게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하자. 허리 둘레는 가늘수록, 허벅지 둘레는 굵을수록 좋다. 다른 핑계 대지 말고 오늘 당장 시작하자.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공원을 걷더라도 우선은 길을 나서는 실천이 중요하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결단력과 과감함임을 잊지 말자. 그러한 자신의 선택이 건강과 무병을 선물로 가져다 줄 것이다.

오늘 비 내리는 여름의 하루, 예전 언젠가 그 날의 아팠던 기억을 새삼 떠올리며 슬퍼하기 보다는, 이제부터 시작될 이후의 삶에 더없는 사랑과 가없는 희망을 심으면서, 필자는 지체없이 우장을 챙기고 길을 나서련다. 그리고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으로 걸음 하련다. 꽃시계가 들려주는 경쾌한 초침, 분침, 시침 소리를 뇌리에 새기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줄 향기의 시를,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적어보련다. 그렇게 모두 모두의 아픔도 치유하고, 슬픔도 어루만져주는 평화의 시를 빚어보련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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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주렁비 하늘 매달려
진종일 땅에 심는 창밖
빗줄기 끝자락 잡아
우우우 솟아오른 빨간 꽃잎들,

수북히 피어난 꽃시계 봅니다

꽃송이 얼마나 빠르게 피어나나 헤아려보다
다시한번 헤아리는 사이에도
봉오리는 또 쑥쑥 올라오니,
어지러워라 -

도대체 몇송이나 순식간 피어나는지
난 차마 알 수가 없습니다

꽃 피고 지고,
새잎 피고 지는 일들은
0.00001초까지 변함없이
우리게 약속으로 지키려는 자연의 시계입니다

째깍째깍 초침 내닫는
직각의 시계 아니고
너울너울 흘러가는 강물처럼 둥근 시계가
올 여름에도 담뿍 꽃 피워냅니다

주렁비 매달리고 빨간 꽃 솟아오른
찰나의 마주침,
오묘한 어울림

늘 가슴 저릿한 찰나의 그 사랑에
날카로이 마음 베인 듯
상실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주렁비는 내려와
온 땅에 시계소리
약속으로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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