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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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바람 *



시작노트

" 겨울 바람 " 詩作 note

겨울이 무르익고 있다.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추운 숨결을 몰아쉬면서 우리는 2019년의 겨울을 살아내고 있다. 올 겨울은 예년에 비해서 엄청 추울 거라더니 오히려 별다른 큰 추위 없이 겨울이 소리 없이 쌓여간다. 허기사 아직까지가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끝까지 이럴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언제 또 온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혹한이 우리를 엄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항상 대비하면서, 긴장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겨울의 심장부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세먼지는 극성이다. 올려다보이는 하늘이 뿌옇다.

예전에는 미세먼지니, 초미세먼지니, 황사니, 매연이니, 이런 환경 공해라는 건 전혀 없었는데. 사시사철 푸르른 하늘과 맑은 공기가 너무도 쾌청한 것이 자랑인 우리 나라의 하늘이었는데. 언제부터 이토록 대책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는지 돌아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세상을 암담하게 물들이는 대기의 습격에 그저 하리망당해질 따름이다. 이것이 이웃 나라인 중국만의 영향일리도 없고, 지구촌 전체가 무방비로 배출하는 문명의 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매일 별 생각 없이 저지레하는 우리의 일상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드러나는 민낯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 참담하고, 한결 더 고개를 숙일 수밖에.

대관절 우리의 편리함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인간들이 자랑하고 큰 소리치는, 끝닿은 데 없는 지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그 첨단과학이, 미래과학이 만들어내는 발전과 폐해는 어떤 상대적 공식으로 결론을 짓게 될까? 어쩌면 불확실하게 다가오는 미래의 우리 모습은 진정한 행복이나 만족 보다도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여겨져 자못 불안하고 두근거린다. 그저 주어진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인 우리들이지만, 이제라도 가능하면 진솔하고 성실한 자기 성찰과 점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임은 분명하다.

설사 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을지라도 명확한 점검과 확실한 성찰이 있다면 다시 바로잡아 길을 되짚을 수 있다. 설령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으로 실수를 했더라도 반성과 다짐을 통해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삶의 얼굴이다. 어차피 완전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대충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오늘날의 인류는 이만큼 발전해 온 것이다. 이것이 이룩된 역사이며 쌓여진 전통의 속내다.

남아프리카에 마을을 이루고 수렵과 채취로 생활하는 ‘바벰바’라는 부족이 있다. 어느 날 바벰바족 마을 광장 중앙에 한 남자가 서 있고, 마을 사람 전부가 그 남자 주변에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은 한 명씩 그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습지에서 넘어져서 다쳤을 때 나를 부축해 주었어요.” “저 친구는 쾌활한 성격이어서 주변의 이야기를 언제나 잘 듣고 웃어줘요.” “좋은 화살을 만드는 요령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남자의 장점이나 선행을 한 가지씩 꺼내 이야기하고 있었다. 며칠에 걸친 칭찬 릴레이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그 남자를 중심으로 잔치를 시작한다. 그런데 실은 이 남자는 범죄를 저지른 잘못을 한 사람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을 이 의식을 통해 새 사람이 되었다고 인정해주고 격려하며 축하해 준다. 그리고 범죄자는 진심으로 새 사람이 되어 모든 이웃의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눈물겨운 결심을 하게 된다. 실제로 바벰바 부족사회에서는 범죄 발생률이 극히 적어 이런 의식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흔히 말하기도 한다. 사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함께 교화와 반성을 하게 하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죄는 취소될 수 없다. 다만 용서될 뿐이다. 일단 저질러진 실수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겸허하게 결과를 수용하는 자세라면 다시 이어질 행보에서는 그런 잘못이 반복될 리는 없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변의 분위기를 밝고 맑게 만드는 행위는 소박하지만 아름답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해를 여는 행동을 한다. 어떤 이들은 새 다이어리를 사고, 어떤 이들은 새 달력을 방 안에 걸어두며, 어떤 이들은 새 옷과 새 신발로 멋지게 단장하며 마음을 새로이 하기도 한다. 새로운 계획이나 다짐으로 결심을 굳히기도 하며,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심이나 의지를 피력하면서 그 다짐을 더욱 공고히 다지기도 한다. 나름 저마다 엄청나게 분주하다.

가족의 의미, 가정의 참 뜻에 대해 다시 한 번 심도있게 돌아보기도 하고, 이웃들을 향한 손길이나 관심도 다져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초심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사는 게 바빠서, 하루의 일상이 버거워, 돌아보고 점검하는 일에 게을러지기 시작한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게 되고, 타성에 젖은 자기 합리화와 매너리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는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자신의 과오나 실패에는 관대해지기 시작한다. ‘내로남불’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신조어에 적응해지면서 남은 한 해는 적당히 살게 되고, 다시 돌아올 새 해로 모든 귀찮은 다짐을 또 미루게 된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전 유럽을 석권하던 ‘나폴레옹’이 ‘폴란드’를 침략하던 때의 일이다. 거침없이 폴란드를 점령하던 나폴레옹이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한 폴란드 영주가 나폴레옹을 초대해 저녁 만찬을 대접했다. 그런데 영주가 안내한 나폴레옹의 자리는 위에 상석이 두 자리가 더 있는 세 번째 자리였다. 불쾌한 나폴레옹의 표정에 함께 온 신하들은 항의하며 영주에게 물었다.

“우리 황제의 말씀 한 마디면 이곳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황제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 자리에 상석을 저렇게 비워두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영주는 주변 사람들과 나폴레옹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두 자리는 곧 나오실 제 부모님의 자리입니다. 두 분이 연로하셔서 거동이 조금 늦으십니다. 황제 폐하가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분인지 모르지만, 이 집안에서는 저희 부모님이 가장 높은 분입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 상석을 준비했습니다.”

영주의 효성과 기개에 감탄한 나폴레옹은 마음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위대한 업적보다도 부모님을 공경하고 가족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이 어쩌면 더 크고 위대한 일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도 항상 우선순위에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의 모습을 먼저 떠올려 보는 올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좋은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좋은 가정이란 누군가가 전해주는 선물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가고 가꿔가는 노력의 산물이며 열매다.

1952년, ‘뉴질랜드’ 출신의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는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과 준비를 마치고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다. 세계 최고봉이라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은 당시 아직 어떤 인간의 발길도 허락하지 않은 죽음의 미답지였다. 지금은 선험자들 덕분에 등반 코스 등이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산행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지라 에드먼드 힐러리의 열정적인 도전은 긴 준비와 극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재도전을 준비하던 에드먼드 힐러리에게 영국의 한 단체로부터 에베레스트 등반에 대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강의를 수락하고 연단에 선 에드먼드 힐러리는 에베레스트의 험준함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한 청중이 질문했다. “그렇게 험준한 산인데 등반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까?” 에드먼드 힐러리는 지도에 표시된 에베레스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오. 나는 다시 등반할 겁니다. 처음은 실패했지만, 다음은 꼭 성공할 겁니다. 왜냐하면 에베레스트는 이미 다 자랐지만 나의 꿈은 아직도 계속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는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산악인이 되었다.“泰山(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노라.” 라는 시조처럼 세상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반드시 그 끝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인간의 꿈과 의지에는 끝이 없다. 우리의 꿈을 이루는 것을 막는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올 해는 스스로의 꿈을 가로막는 어리석은 행동은 삼가고, 꿈과 소망을 더욱 힘차게 키워내는 소망과 꿈의 해가 되어진다면 그도 좋겠다.

어느 가족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 “여보. 오늘은 당신이 동진이 좀 데리고 와줘. 난 오늘도 야근이야.” 유난히 피곤한 아내의 목소리를 전화로 듣고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요즘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부부가 맞벌이하지 않으면 자녀 혼자 키우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최근 야근이 늘어 피곤함에 지친 아내를 위해서 오늘은 제가 아들 녀석을 씻기고, 저녁 먹이고, 유치원 숙제를 차근차근 봐줬습니다. 저는 가끔 하는 일인데도 정말이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겨우 설거지를 끝내고 한숨 돌리려고 TV를 켰는데 해외토픽에 미인 선발대회가 나왔습니다. 마침 아내가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오더니 화려하게 치장된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 부자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습니다. 무심코 변명하려는 순간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미인대회라는 게 뭐야?” 순간 당황한 나는 더듬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아. 그, 그거는 그냥 가장 예쁘고 착한 여자에게 상 주는 거야.”

나의 대답에 아들은 엄마를 보면서 천연덕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럼 엄마는 왜 저기에 안 나갔어?” 그 말에 아내는 피곤함에 지친 표정이 단번에 사라지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 그리고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면 말 한 마디에도 감동을 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전해 주자.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선물이다.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올 해는 아름다운 색깔의 꽃으로 가득한 화원을 가꾸는 데 가장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사람으로 살아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올 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 일조를 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신라’ 말기, 당시 ‘당나라’ 소금장수 출신의 ‘황소’가 일으킨 ‘황소의 난’ 때문에 당나라의 사정은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그때, 신라에서 온 젊은 유학생인 ‘최치원’이 황소를 엄히 꾸짖는 ‘토황소격문’을 썼고 그 글을 읽은 황소가 놀라 침상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한 일이다.

12세의 나이로 당나라 유학을 떠나는 최치원에게 아버지는 10년 안에 과거급제를 못 하면 부자의 연을 끊겠다고 했는데 6년 만에 18세 나이로 그는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한다. 많은 사람들이 최치원을 천재라고 말하지만 그는 스스로 “남이 백의 노력을 할 때 나는 천의 노력을 했다.”라고 말하는 노력형 천재임을 강조했다. 이런 최치원의 노력에도 한계는 있었는데 바로 신분제도인 ‘골품제’와 신라 말의 어지러운 정세였다.

진골도 성골도 아닌 ‘6두품’인 최치원은 6두품 최고의 관직인 ‘아찬’까지 올라갔지만 그의 벼슬은 거기까지였다. 또한 혼탁한 신라 말기의 사회를 바로잡고자 ‘시무 10조’를 ‘진성여왕’에게 개혁정책으로 올렸지만 신분상의 한계와 지역 호족들의 반발로 결국 실패로 끝나버린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세워질 때 그 고려의 건국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들이 6두품 출신의 관리들이었다고 한다.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부당하게 차별받던 사람들의 분노의 힘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역사는 차별이 가진 위험성을 항상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그런 제도적인 규제나 신분상의 불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어떤 도전이나 개척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굳세게 밀고 나가는 의지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떤 이유나 핑계가 아니다. 오직 스스로의 길과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는 의지와 노력이다. 우리는 지금 2019년의 1월을 살아가고 있음이다.

몸이 너무 편하거나 생활이 호사스러우면 마음은 만족하기 보다 오히려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몸과 마음이 호사스러움과 쾌락을 즐기다 보면 정신과 영혼은 서서히 병들게 된다. 반대로 몸과 마음이 시련을 겪게 되면 그 시련 동안에는 괴로울 것이나, 시련이 끝나고 보면 정신과 영혼은 겪은 시련만큼 성숙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시련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 빠른 길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의하는 것이며, 인생에 대한 깊은 자유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자성을 발견함으로서 일 것이다. 시련에 의하든,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의하든, 깨달음이 있으면 정신과 영혼은 건강하게 성숙할 것이고, 쾌락 속의 방종이라면 정신과 영혼은 병들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살다보면 자꾸 자꾸 낡아지고, 닳아 없어져 갈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첫 장부터 빽빽하게 잘 정리해 나가던 노트를 다 썼을 때라거나, 또 두껍던 일기장 한 권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보일 때, 새로 산 잉크 한 병이 어느 새 바닥을 보일 때, 참으로 기분이 좋다. 또 책이나 사전에 손 때가 묻어서 얇게 부풀어 오른 것도 은근히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 모습이 좋아서 억지로 길을 들이려 하거나 닳아 보이게 하려 해도, 그처럼 자연스러운 멋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낡고 닳아지는 것들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그것들이 낡고 닳아가는 사이에 내 한 쪽이 충실하게 채워져가고 있다는 뜻이 될테니까 말이다. 연초라서 바쁘게 이리저리 쏘다니다보니 피곤에 겨워 그리 썩 컨디션이 좋지를 않다. 가는 데 마다 주절 주절 이야기 보따리를 잘도 풀어내곤 했었는데, 웬 걸, 어제 오늘 사이에는 힘이 좀 부치는 것 같다. 그래도 항상 들르는 장소에 도장 찍듯 걸음하고, 작은 목소리로라도 정겹게 나누는 대화는 사뭇 즐겁기만 하다. 오랜 집기들에 더 애착이 가는 것처럼, 낡으면 낡아지는 만큼, 그리고 손 때가 묻는 만큼 정이 드는 탓과 무관하지 않음이다.

길이 든다는 것은 적응이 된다는 것. 그만큼 편안해지는 것이고, 비록 생명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젖어들어 속(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한 끼의 밥이 우리 앞에 놓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하며, 한 뼘의 키가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물들의 목숨이 사라져야 하는지 돌아본다. 지금까지 우리를 존재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희생되어 왔는지도 돌아본다.

마음이 흥부를 만들고, 생각이 놀부를 만든다. 흥부가 다리를 다친 제비를 보고 불쌍함을 느껴서 치료를 해주었던 것은 마음에서 기인된 행동이지만, 놀부가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분질러서 치료를 해주었던 것은 생각에서 기인된 행동이다. 자신과 대상이 합일되었을 때의 감정은 마음에서 기인되고, 자신과 대상이 분리되었을 때의 견해는 생각에서 기인된다. 무엇이건 상대적일 때에 평가가 가능한 것 같다. 공급해 주는 이들이 있어 수요자가 있는가 하면, 수요자가 있어 또한 생산을 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내가 누구인가는 이웃이 있어 이름 지어지는 것이고, 내가 있는 위치 또한 아랫 사람과 윗 사람이 있어 어디 쯤인지, 가늠이 되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는 홀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우리가 갖고 누리는 것들이 형식상으로는 어떤 댓가로 얻어진 것들이라 할 지라도, 수고로운 노고의 손길 없이 단지 댓가만으로 얻어질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용기 있는 사람이어도 우리보다 파워 있는 사람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삭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뒤에서 누군가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을 뒤에서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뒤에서 한 말도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말은 그냥 돌아다니지 않고, 돌고 돌면서 부풀어올라 크게 변질된다. 뒷 말이 무서운 것은 말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평을 들어주며 “그건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하며 맞장구치는 사람도 믿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우리 말을 듣는 동안에는 “절대 다른 데 옮기지 않을게.” 라고 했을지라도 언제든 마음이 바뀌어 제 삼의 인물에게 “이 말을 전하지 않기로 했는데 너만 알고 있어.” 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밀을 지킬 수 없다. 그리고 언제든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양심 때문에 약속을 깰 때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 말을 보탠다. 그래서 남의 말을 옮기는 사람들은 의레껏 “그 사람 뒷 말이 많아서 못 쓰겠어.”라는 토까지 단다. 그러니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라면 뒤에서도 하지 말자. 뒤에서 한 말일수록 크게 부풀어 올라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이제 이 겨울도 고비를 지났다. 얼마 안 있으면 얼음장 밑으로 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릴 것이고, 먼 산의 눈이 녹아 파릇한 새 싹이 돋아나는 봄의 전령이 찾아올 거다. 남은 이 겨울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지 다시 한 번 다잡아 자신을 점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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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
낡은 창살문 열었을 뿐인데
서성이던 바람들 소스라쳐 먼저 밀려들어

늘어선 병동 좁다란 울타리
갇혀 지내던 바람들이 -

참 이상도 하지
이제사 말하지만
여긴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같은 바람들이 불고있었어

내가 알던
언젠가의 그 바람들이야, 그건

황량하고 칙칙하고 앙상하던
내 추억의 겨울강에서
불어온 바람들,

기슭 넘어오지 싶게
기세 좋이 넘실거리던 풍경이
사람 부풀게 하는 바람에
갈아부은 듯 흰색으로 덮이면
이스트 뿌린 것 처럼 온통 하얗게 변하는 추억....

겨울숲도,
겨울강도,
겨울을 사는 사람의 가슴도,
바람결 스멀스멀 부풀어올라
달콤시큼한 발효의 냄새 풍기고 있을 터,

자꾸만 눈감게 한다

좁디좁은 방안 고개 디밀어
시린 추억 밀려들게 하는
겨울 바람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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