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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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의 진실 *



시작노트

" 7월의 진실 " 詩作 note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세상을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 더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틀림없이 정직하고 진솔한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복을 받게 되어있어야, 착하고 어진 사람에게 세상의 축복이 더 돌아가야 마땅하거늘, 실제 겪어보니 세상의 인심이 그렇지를 않다.
남을 헐뜯고 중상모략을 일삼으며, 자기 자신만의 영달을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이른바 파렴치한 사람들이, 득세를 하거나 성공이라는 관문에 먼저 들어가서 떵떵거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주변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본다.
그럴 때마다 도대체 정의구현이라는 것이, 올바른 삶의 도리라는 것이 왜 필요한 삶의 덕목이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냥 대충대충 하거나 정도를 슬그머니 벗어나면서, 이따금 감쪽같은 속임수로 세상을 기만하기도 하면서,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남보다 더 윗자리를 쟁취하는 것이, 그래서 실세가 되고 주류가 되고 본질이 되는 것이, 약아빠진 처세의 방도이며 뛰어난 삶의 기술이 아닌가 말이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라면 진실은 사라진 의미이며 이미 실종된 가치이다.
적어도 진실이라는 단순한 단어조차도, 어느 사이엔가 현대사회에서는 아예 골동품 취급을 받는 옛말이 되어지고 말았다.
안타깝고도 분한 노릇이다.
도대체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품격있는 마음의 산물인데, 진실이 무엇인지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생매장되어버렸단 말인가?
예컨대 ‘진실’이라는 단어는 ‘거짓이 없는 사실’ 또는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진실을 논하자면 그에 앞서 우선적으로 그 반대편에 서있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 ‘거짓’을 새겨보아야 한다.
거짓을 일삼고, 거짓이 만연된, 거짓으로 일상을 도배하는 현대인의 그릇된 사고방식이 바로 ‘진실’을 죽여버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그렇다면 실종되어버린, 우리의 삶에서 사라져버린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며,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알맞은 것’이 바로 진실이다.
허세와 허영, 그리고 허욕 따위를 왜 거짓이라고 하는지 아는가?
그것들은 모두 알맞지 않는 까닭이다.
무엇을 안다고 뽐내는 사람은, 조금 알고 있을 뿐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잘 모르면 어렵게 말하고, 잘 알면 쉽게 말한다.
쉬운 것을 어렵게 둘러치는 건 바로 서툰 까닭이다.
원숭이는 사다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무를 타는 기술이 능숙한 까닭이다.
산새는 앉을 나뭇가지를 고르지 않는다.
어느 가지에나 앉을 줄 알기 때문이다.
서툴면 억지를 부리고, 쉬운 길을 두고 가파른 길로 어렵게 간다.
그러나 어렵던 것도 잘 터득하고 나면 쉬워지게 된다.
인생에는 어려움과 쉬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짓을 해서 남의 눈을 홀리게 꾀를 부릴 이유도 없고, 그 사실을 호도하거나 자랑할 것도 없다.
알맞은 것은 언제나 그냥 본연이다.
꾸미지 않고 숨기지 않으면 그게 바로 본연인 것이다.
세상에 본연보다 알맞은 것은 없다.
그렇게 진실의 참모습을 배우는 삶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다.

또한 진실은 낮출 때에 비로서 높아지는 것이다.
조화로운 인간 관계란 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문을 열기는 커녕 경계하는 마음이 된다.
주는 마음은 바로 열린 마음이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의 마음을 받아 주는 것, 그것이 열린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애써 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린 마음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냥 열린 마음으로 있으면 된다.
가만히 있어도 열린 마음이면 그건 주는 마음이다.
나를 낮추는 것은 열린 마음의 시작이다.
나를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다.
벽도 없고 담장도 없다.
넓디 넓은 들판엔 수많은 꽃들이 다투어 피고, 뭇 짐승들이 자유롭게 찾아와서 머물고, 머물다가는 또 자연스럽게 떠난다.
그러니 거기엔 아무런 시비도 투쟁도 없다.
갈등도 없다.
장애도 없다.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주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요, 열린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다.

울타리가 좁으면 들어설 자리도 좁다.
많이 쌓고 싶으면 울타리를 넓게 쳐야 한다.
더 많이 쌓고 싶으면 아예 울타리를 허물어야 한다.
넓은 들판엔 아무리 많은 양을 쌓아 놓아도 여전히 빈 자리가 남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열린 마음은 강하다.
아무 것도 지킬 게 없으니 누구와도 맞설 일이 없다.
맞서지 않으니 누구도 대적하려 하지 않는다.
그 마음은 곧 허공과 같을진대 누가 감히 꺾으려 들겠는가?
우리는 높이 오를수록 낮아져야 한다.
많이 가질수록 가난해져야 한다.
목에 힘을 빼고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나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진정 강해지려면,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려면,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어야 할 것이다.
저 광활한 들판이 어떤 것과도 자리 다툼을 하지 않듯이 열린 마음에는 일체의 시비가 끼어들지 않는다.
그리되면 모두가 나와 더불어 살고, 아낌없이 나누기를 즐겨 할 것이다.
거기에 바로 자유인의 길이 있다.
그 자유인의 길이 진실한 삶의 길이다.
세상에 제 아무리 높은 것이라도 세우지 않은 것과 높이를 다툴 수는 없다.
그래서 낮은 것이 높은 것이고 열린 마음이 강하다는 것이다.

손은 두 사람을 묶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 낼 수도 있다.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 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손에 달려있다.
그런데 그 손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마음이다.
미처 준비되지 못한 내 마음, 준비되지 못한 어리석은 내 손이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남에게 손가락질 할 때마다 스스로가 세 개의 손가락으로 항상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함께 슬픔을 느끼고 함께 행복을 느끼고 함께 고마움을 느끼도록, 오늘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오늘도 함께 기뻐할 사람을 찾으며 살아야 한다.
오늘도 함께 성공하고픈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함께 할 줄 아는 사람을 사귀면 된다.
함께 시간을 낼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함께 섬길 줄 아는 사람을, 함께 짐을 져줄 사람을, 함께 사막을 걸을 사람을, 함께 끝까지 동행할 사람을 찾으면 된다.
함께 땀을 흘리며 함께 소중한 것들을 공유할 사람을 만나는 그 삶이 바로 진실된 삶이다.

진실이 없으면 곧 믿음도 없어지게 마련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그렇게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겉으로는 웃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인간의 한계를 표현하는 말 중에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믿음이나 일방적인 신뢰가 오히려 화가 되고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해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요즈음 정치나 사회 분야에서 우스꽝스럽게 반복되는 인사검증 관련 보도를 접하면서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통상 고위층의 비리나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를 보면 누구보다도 최측근의 제보가 한 몫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지근거리에서 가장 은밀한 일들을 담당해서 처리를 하다보면, 그만큼 숨겨진 비밀이나 감추어진 사실의 비리에 관하여 많이 알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요는 친하고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거침없이 잘 돌아가는 듯 하다가도,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치거나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그 사실들이 모두 정보화가 되고 첩보사항으로 바뀌어, 본인의 목줄을 죄는 비수로 악용된다는 점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독불장군이 없어서, 어떠한 일을 수행할 때 후환이 두렵다고 하여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자니 부득이하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협조를 받아야 마땅하거늘, 뒷날을 위해서라도 진실된 자세를 지속적으로 견지해야만 할 것이다.
소위 시종일관한 사람에게서는 털어도 먼지가 안나게 마련이다.
그러려면 일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세밀한 관찰과 자세한 분석이 반드시 받쳐져야 할 것이며, 적절한 궤도 수정과 순간적인 대처능력의 발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인공위성의 경우 발사각도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오차가, 목표점에서는 수천 km 떨어진 엉뚱한 장소에 착륙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언제 어디서나 진실을 전제로 한 삶이라면 세상에 두려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으며, 아울러 진실의 이름으로 쌓아가는 인연의 탑이라면 그야 말로 영원한 동지이며, 이웃으로 삼아도 무방한 인연의 증거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16일 전 국민을 비탄에 빠지게 한 세월호 침몰 참사는 정부와 언론의 무능함을 되돌아보게 한 계기였다.
특히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으니, 비판적인 시각을 잃은 채 영혼 없이 반복되는 ‘자기 복제 보도’는 세월호 침몰 참사가 낳은 또 다른 참사였다.
보도의 영역이 침체기에 빠짐과 함께 시사 프로그램이 위축됐다는 점도 뼈아프다.
탐사보도(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의 이면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언론보도방식)의 선봉으로 사회 개선에 앞장서야 할 시사 프로그램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도 반복됐다.
세월호 국면에 세월호 특집 편을 제작 방송한 지상파 3사의 시사 프로그램에, 당초에 대중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것은 이러한 상황에 놓인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다.
알고 싶은 욕구는 가득한데, 이에 상응하는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환대’의 근저에는 무너진 언론에 대한 반발 심리가 깔려있다.
그런데 그 시사프로그램들이 과연 적절한 시점에서 적당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신중하게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다소 식상한 명제가 다시금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시사 프로그램의 역할과 기능이 예전에 비해 다소 축소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방송의 파급력’이란 실로 막강하다.
‘사실’ 너머의 ‘진실’을 쫓아야 할 시사 프로그램의 혼란이나 쇠락은 곧바로 국민의 피해로 직결된다는 점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의 본령을 직시한 각 방송사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한 시작점이다.
진실을 근본으로 한 진실의 소리를 내고, 진실의 얼굴로 대중 앞에 다가서는 진실한 언론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고 표출되는 시사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방영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국민의 알권리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진실이라는 명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진실된 역사를 창조하는 데에 언론이 선도적 역할을 하기를 고대한다.

현실에 배어있는 사회적 배경을 소재로 하여 시작노트를 작성하다보니, 웬지 모르게 칙칙하고 우울한 주제로만 이어진 듯 하다.
실은 초록의 감성이 무성하고 태양의 낭만이 넘쳐나는 7월의 진실이라면, 적어도 뜨겁고 화창하며 정열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하늘을 향해 소리높이 외쳐야 하는 것일진대.
그래서 청춘도 노래하고, 사랑도 노래하며 7월을 만끽해야 하는 건데 말이다.
그렇다, 7월에는 애틋한 그리움마저 아름다운 아픔일 것 같으니 누군가를, 무언가를, 어딘가를 그리워 하는 그리움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오늘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꽃잎 향기 날리는 그대로, 마음 깊이 새긴 하얀 꽃잎을 넓은 하늘에 펼쳐놓고, 하얀 구름에 그리운 사람 이름 새겨놓으며 마음 놓고 마냥 그리워하자.
7월의 햇살처럼 그리움이 가슴에 스며들면, 멀리서 다가오는 구름 떼어내 오늘이라면 푸른 숲 싱싱한 잎사귀에 하얗게 달아주자.
수목의 그늘 아래 번진 그림자 아련하게 보이면, 사랑하는 마음 가슴에 담아 오늘이라면 빛나는 눈물로 감싸 더 그리워하자.
진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꽃향기 가득한 계절, 낯설지 않은 부드러운 바람결에 마음 실어
오늘이라면 누군가에게 향기로 날리게 하자.
빛 고운 추억의 지난 날들이, 오늘이라면 반짝이는 햇살 아래 들꽃 하나로 마음에서 자라나는 그리움이 되게 하자.
곁을 지나가는 바람결에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 오늘이라면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꽃으로 피어나게 하자.
가슴을 헤집던 한없는 그리움일지라도 오늘이라면 꽃빛에 잠긴 향기로 가득 채우게 하자.
그토록 바라던 그리움의 노래를, 그리움 가득한 한 편의 시를 저 넓은 하늘 원고지에 써보는 오늘이, 내일이, 그리고 이어지는 많은 날들이 되기를, 우리 진실로 기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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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7월이었고, 여전한 7월이다

우리가 쌓아가는 거짓과 허구
그리고
그와 상관없이 몰래,
숨어들었다 심장 빠져나가는 진실에 대해

나그네와 같은 그 진실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모든,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다만,
거짓을 쌓아갈 뿐이다 그리고,
믿을 뿐이다 어떤,
조짐도 징후도 없이

누군가 목매기 전 유서에 써놓았다더라
-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다 -

진실이 자살하는 계절,
여전한 7월이었고, 여전히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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