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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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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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 2 *



시작노트

" 기다림 2 " 詩作 note

벌써 1월도 다 갔다. 이제 2월의 문 앞에 섰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대관절 우리가 기다리는 건 무엇인가? 새 해가 시작되면서 작심했던, 그리고 바라고 염원했던 그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절기상 대한과 소한의 사이에 끼어있는 겨울의 한 가운데,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실종되어버린 겨울 앞에서 넋 놓고 있는 처량한 군상들, 도무지 추워질 줄 모르는 날씨 앞에서 망연자실 하늘만 바라보는 가련한 중생들, 일단은 더도 덜도 아닌 그 궁상맞은 자화상이 바로 나요, 너요, 그리고 우리들이다.

언제부터인가 기상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기온이 점차 아열대기후를 닮아간다고도 하고, 겨울의 대명사였던 삼한사온의 공식이 무너진 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겨울 날씨에 안절부절 못하는 처지라고, 요즈음의 겨울을 한탄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작년까지는 그걸 완벽하게 실감한다거나 몸으로 느끼는 데에는 다소 현실감이 뚜렷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바야흐로 올 겨울은 어떠한가? 겨울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제대로 영하권의 날씨를 보여준 날은 불과 사나흘도 채 안 되는 것 같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겨울에는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추위가 몰아치고 칼바람이 기승을 부려야 하는 이유와 명분이 있다. 물론 서민들에게는, 덜 추워야 그나마 혹독한 겨울의 질곡을 견디는 게 좀 낫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겨울을 대하는 소회는 그렇지 않음이다. 이미 올 겨울에는 제대로 얼음이 얼지 않아서 많은 겨울 관련 축제들이 취소되거나, 그나마 겨우 시작되었던 것들도 조기에 폐장이 되고 말았다.

겨울장사를 위해 한 해를 기다려 온 온열 난방 관련 제품이나 두꺼운 의류 등은 이미 반값 할인에도 고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필자가 거주하는 강원도에서도 거의 눈을 볼 수 없다 보니, 스키장이나 눈썰매장은 아예 개점 휴업 상태로, 내쉬느니 한숨이요 짓느니 울상이다. 심지어는 정책자들로부터 천대 받아오던 강원도를 이젠 하늘마저 외면한다는 말들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아직 겨울이 다 간 건 아니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손 잡아주고는 있지만 우리는 안다. 하마 깊은 계곡의 물소리조차 맥빠진 시름에 겨워 졸졸거릴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이해야 한다는 말인가? 저 무심한 하늘에 종주먹 들이대고 삿대질을 해봤자, 야박한 인심에 서운해 하며 켜켜이 쌓인 먼지만 털어대다가 가게의 진열대를 뒤집어 엎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가는 계절을 잡을 수도, 끝자락 보이는 겨울바람을 되돌릴 수도 없는 신세타령으로, 하염없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필자의 이웃들이 가련타. 필자의 형제들이 불쌍타. 그리고 그들의 흐르는 눈물이 가엽고도 가여워 사뭇 가슴 저린다.

그러니 어쩌랴?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오리니, 마지막 남겨놓았던 한 오라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통곡 한 차례 거하게 쏟아내고, 잠긴 울대 캑캑 거려 뚫은 후에 다시금 힘을 내보시라. 아직은 그래도 원망할 힘이나마 남아 있으니, 이 남겨진 힘 모두어 또 다시 손 맞잡고 기적의 노래 불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자! 이 손 잡으시라. 함께 어깨 걸으시라. 우리는 하나이니, 우리의 꿈도 하나. 우리 향한 행복의 문은 어디에선가 반드시 열리리라.

우리는 따지고 보면 지구라고 하는 멋진 펜션에 잠시 왔다 가는 여행객 들이다. 적어도 지구를 우리가 만들지 않았고, 우리가 값을 치르고 산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펜션의 주인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다들 일정 기간 후에 떠나는 것을 보면 이곳에 여행 온 것이 맞는 듯 하다. 단지 여행의 기간이 3박 4일이 아닌 70, 80년 정도일 뿐인데 우리는 의외에도 여행 온 것을 잊을 때가 많다.

펜션의 주인이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이 여행객들은 서로 자기들의 방을 잡고는 마치 진짜 자기 집인 양 행세하기 시작한다. 다른 방에 있는 여행객들이 한번 들어와 보고 싶어 하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 일정한 값을 치르고 나서야 들여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다투기도 한다. 다른 방을 차지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기도 하고, 다른 여행객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도 하고, 목숨을 해하기도 한다.

우리는 펜션 주인이 제공하는 햇빛과 물, 공기와 같은 가장 비싸야 되는 것들을 공짜로 이용하면서, 심지어는 방들도 공짜로 이용하면서, 서로에게는 값을 요구한다. 과연 이 펜션에 우리 것이 있을까? 우리는 여행객인데 말이다. 마음씨 좋은 주인이 함께 누리라고 허락해준 이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다 함께 여행을 즐기면 어떨까?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소중히 여기자. 자신에게도 딱 한 번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딱 한 번 있는 여행이니까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와도 견뎌내고,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는 힘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하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것이다.그러면 용기를 얻게 된다. 어둠의 터널을 아직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내가 가장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다만, 힘들다고 느낄 뿐이다. 그러나 필자는 힘들다고 느끼고 있는 그 사람들을 응원한다. 지금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인생을 경주하고 있다면, 사실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전이 아니더라도 지금 괴로울 만큼 힘들다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절망과 한숨이 희망과 경탄으로 바뀌는 것, 바로 그것이 삶의 드라마다. 그렇기에 지금 힘들다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잘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시라. 하루는 스승이 제자를 만나 물으셨다. “가시나무를 보았는가?” “예, 보았습니다.” “그럼, 가시나무에는 어떤 나무들이 있던가?” “탱자나무, 찔레나무, 장미꽃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이 있습니다.”

“그럼, 가시 달린 나무로 넓이가 한 아름되는 나무를 보았는가?” “못 보았습니다.” “그럴 것이다. 가시가 달린 나무는 한 아름 되게 크지를 않는다. 가시가 없어야 한 아름되는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시가 없는 나무라야 큰 나무가 되어 집도 짓고, 상량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가시 없는 큰 나무는 다용도로 쓸 수 있지만, 가시 있는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시가 없는 사람이 용도가 많은 훌륭한 지도자이며, 꼭 필요한 사람이며, 정말로 성현이 될 수 있는 그릇이다. 가시는 남을 찔러서 아프게 한다. 그리고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한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의 가시, 손발을 통해서 나온 육신의 가시, 욕심을 통해서 나온 마음의 가시 등, 나무가 가시가 없어야 다용도로 널리 쓰이듯, 사람도 가시가 없어야 우주를 살려내고, 인류를 살려내는 성현이 되느니라. 그래서 가시 있는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가끔은 필자도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가시를 만든 적은 없는지 슬그머니 걱정이 든다. 지금도 말이나 글의 가시로 남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을지 모르므로 항상 조심해야겠다. 가능하다면 가시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새 해가 시작되고 많은 다짐과 설계를 했지만 이미 지켜지지 않은 계획에 스스로 실망한 것도 많고,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여겨 또 새로운 시작을 감행한 것도 있다. 지난 주에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연휴가 이어지면서 특히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이 있었다.

높임을 받으려면 높임을 주어야 하고, 대접을 받으려면 대접을 해야 하며, 세상 일은 순리에 따라 행하여지고, 내가 행함에 따라 복을 받을 수 있다.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보는 삶 속에 깨달은 작은 진리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필자로 인하여 행복하여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인생을 즐겨보고도 싶다. 아등바등하며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이 조금은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되게 오래 살 것처럼 행동하면 그것이 곧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된다. 걷지도 못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몸이 허락하는 한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도 좀 하고 싶다. 그리고, 기왕에 찾아든 질병은 차라리 기쁨으로 대해야겠다. 가난하건, 부자건, 권력이 있건, 없건, 모든 사람은 생로병사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필자에게 찾아온 까짓 질병이 무에 대수랴? 그저 친구 삼아 적당히 구슬리면서 함께 살아간다고 여기면 그 뿐인 걸.

또한 이제부터는 기회 있을 때마다 옛 동창, 옛 동료, 옛 친구들을 만나야겠다. 그 회동의 관심은, 단지 모여서 먹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인생의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다는 데 있다.또한 돈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정립해야겠다. 은행에 내가 넣어둔 돈도 내 돈이 아닐 수 있다. 돈은 쓸 때에 비로소 돈이다. 늙어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사고, 즐길거리가 있으면 즐기자.

혹시 병이 들더라도 겁 먹거나 걱정하지 말자. 태어나고, 늙고, 병 들고,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아닌가?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자식들이나, 손자에 관한 일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만 하고, 입은 꼬~옥 다물도록 해야겠다. 아무튼 나이 들어 쓰는 돈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아껴야 할 것은 노년의 시간이고, 노년의 생각이고, 노년의 건강이라는 것을 꼭 명심해야겠다.

만일 돈과 사랑이 남아 있다면, 제발 얍삽하게 아끼지 말고 베풀도록 하자. 자신이 자신을 최고로 여기고, 자신을 대접하며 살다 가는, 생로병사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그것이 행복의 문을 여는 방법인 것이다. 남의 손을 씻어 주다보면 내 손도 따라서 깨끗해지고, 남의 귀를 즐겁게 해주다보면 내 귀도 따라서 즐거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남을 위해 불을 밝히다보면 내 앞이 먼저 밝아지고, 남을 위해 기도를 하다보면 내 마음이 먼저 맑아진다고 한다. 지금 말하자, 사랑한다고...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다.

꽃은 피어날 때 향기를 토하고, 물은 연못이 될 때 소리가 없다고 한다. 언제 피었는지 정원에 핀 꽃은 향기를 날려 자기를 알린다.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난다. 한 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사람과 만나고,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정이란 무엇일까? 주고 받음을 떠나서, 사귐의 오램과 짧음에 상관 없이, 사람으로 만나 함께 호흡하다 정이 들면 더불어 고락도 나누고, 기다리고, 반기고, 보내는 것이 아닐까?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또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그렇게 소담하게 살다가, 미련이 남더라도 때가 되면 보내는 것이 정이던가?

대나무가 속을 비우는 까닭은 자라는 일 말고도 중요한 게 더 있다고 했다. 바로 제 몸을 단단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나무는 속을 비웠기 때문에 어떤 강풍에도 흔들릴지언정 쉬이 부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 비워둔 방 안에도 금세 먼지가 쌓이는데, 돌보지 않은 마음 구석인들 오죽하겠는가? 누군가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에 물든 필자도 마찬가지다. 1월의 막바지를 달려가는 즈음, 가만히 가슴에 손을 올려보며 생각한다. 혹여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을 서운하게는 안 했는가를 생각해보며, 먼 추억의 여행을 되새긴다.

필자와 친구들은 대부분 1950년 중반이나 그 이후에 태어났다. 우리는 기다랗고 커다란 안테나가 달린 흑백 티비에 리모컨이 없는 로터리식을 이어서, 손으로 직접 채널을 돌렸던 걸 기억한다. 티비 화면이 잘 안 나오면 한 사람이 옥상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실외안테나를 좌우로 돌려 안테나 방향을 맞추곤 하였고, 티비에는 문도 달렸고, 열쇠가 있는 티비도 있었으며, 다리도 네 개가 있었다. (대한전선, 이코노TV)

친구들과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김일, 여건부, 천규덕, 장영철,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 김태식’ 등의 격투기시합과 ‘이회택, 차범근, 허정무, 펠레, 에우제비오, 마라도나, 김봉연, 김재박, 장효조, 최동원, 장훈, 백인천’ 등의 경기에 열광했다. ‘여로, 팔도강산, 전우, 아씨’ 같은 드라마와 ‘보난자, 초원의 집, 전투, 육백만 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형사 콜롬보’ 등의 외국 드라마를 보았던 걸 기억한다.

우리는 아침부터 부엌에 나가 아궁이에 나무를 때거나, 일산화탄소를 마시며 연탄을 갈았다, 때로는 곤로에 불을 붙여 밥을 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부모님의 일, 또는 농사일 등을 도와야만 했으며, 일이 끝나면 해가 져 어두울 때까지 형, 누나들과 ‘오징어 찜, 안까스, 박까스, 얼음땡,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자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 땅 따먹기, 가이상, 숨박꼭질, 새총, 고무총이나 나무칼 싸움, 다방구’를 하며 놀았다.

우리는 간혹 하늘에서 나풀거리며 떨어지던 삐라를 보았고, 그것을 모아 학교에 갖다주면 공책 한 권과 연필 한 자루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황금박쥐, 타이거마스크, 철인 28호, 용감한 4인조, 밀림의 왕자 레오, 마린보이, 아톰, 유성가면 피터, 캔디, 달려라 캐산, 은하철도999, 마루치 아라치, 똘이장군, 마징가Z, 그랜다이져, 짱가’ 등의 만화영화를 보고 자랐다.

우리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라면땅, 자야, 아폴로, 크라운산도, 고구마과자, 백묵과자’ 같은 과자와 ‘쫀드기, 쭐쭐이, 달고나, 띠기’ 같은 불량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네마다 울려퍼졌던 화약총을 기억한다. 우리는 운동회 때 하얀 체육복을 어김없이 입었고 ‘곤봉, 마스게임, 차전놀이, 단체무용, 포크댄스(손잡기 싫어서 나뭇가지를 서로 잡고)’ 등을 무수히 연습했던 걸 기억한다.

우리는 하교길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 서 있어야 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란 것에 익숙해, 어김없이 아침 무렵 동네 어귀에서 울려퍼지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라는 노래를 듣고 자랐다. 우리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 헌장’을 아무 뜻도 모르고 외웠고, “기미년 삼월일일” 하는 ‘3.1절 노래’를 알고 있고, “무찌르자 공산당” 하는 ‘6.25 노래’도 알고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뗏장, 대변(기생충 검사용), 나락, 쥐꼬리’를 가져 오라고도 하고, 단체 위생 차원에서 냇가에서 단체 목욕을 실시했고, 조막손으로 봄에는 식목하고, 가을에는 길 가에서 코스모스를 심었으며, 학교 내에서는 시간 내서 ‘통일동산’을 꾸몄다. 교정에는 ‘이순신장군’ 동상과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있었다, 우리는 ‘육영수 여사,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단 소리를 듣고, 어린 맘에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으며, 티비에서는 영정사진만 몇 날 동안 나왔던 걸 기억한다.

명절 며칠 전엔 엄마 손에 이끌려 여자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다가, 우리 반 여자애랑 만나서 얼굴 붉혔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죠다쉬, 빌리진, 뱅뱅, 써지오바렌테, 핀토스’ 등의 청바지들과 승마바지를 입던 것도 기억한다. 우리는 ‘쇼 비디오 쟈키’에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참 재미있었다. 우리는 올림픽을 보면서 ‘손에 손잡고’를 따라 불렀다. 우리는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한국에 와서 “싸랑해요 밀키스”라고 떠드는 걸 티비 광고에서 봤다. 우리는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한국에 와서 “반했어요 크리미”라고 하는 것도 봤다.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으며, 팝송을 한글로 적어 따라 부르곤 했다. 우리는 ‘런던보이스, 왬, 모던토킹, 아하’ 라는 외국 가수들을 통해서 ‘유로댄스’란 걸 알았다. 우리는 친구들과 카세트를 어깨에 매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새도록 놀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썬데이 서울’이나 ‘건강 다이제스트’를 기억하며, ‘플레이보이’, ‘팬트하우스’와 같은 외국성인잡지를 친구들과 돌려보면, 어떤 불량한 녀석(?)이 볼(^^)만한 페이지를 몰래 찢어가곤 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고, 학과목에 ‘교련’ 과목이 있어 ‘제식훈련, 총검술, 구급법’을 익혔다. 큰 도시에는 시내버스 토큰도 있었지만, 학생 때에는 매점에서 회수권을 다발로 구입하고, 그걸 아끼려고 열 한 장으로 작업해서 잘랐다. 우리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 하춘화, 조미미, 배호, 펄시스터즈, 김상희, 윤항기, 패티김, 조영남, 이종용, 이용복, 이현, 정미조, 김정호’ 등의 대중가요와 ‘장현, 양희은, 어니언스, 서유석, 이장희, 트윈폴리오’로부터 ‘남궁옥분, 소리새, 해바라기, 이문세, 이연실’과 같은 통기타 포크송을 두루 섭렵하고, ‘들고양이들, 사랑과 평화, 산울림, 다섯손가락, 이치현과 벗님들’을 비롯하여 ‘대학가요제’에서 배출한 ‘라이너스, 샌드페블스, 휘버스, 블랙테트라, 옥슨, 건아들, 로커스트, 송골매, 마그마, 해오라기, 노고지리’ 등의 그룹사운드 음악을 들었다.

‘조용필, 이용, 전영록’도 기억하며, 묘하게도 그 때는 그 중 한 명만을 좋아했다. ‘이선희, 김현식, 이상은, 김광석, 유심초’를 좋아했고, 그러다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에 세대차이를 느끼고, 한 때에는 ‘맘모스, 크리스탈, 부림호텔 나이트’에서 밤 문화를 풍미했지만, 젊은 아이들이 테이블에서 술 마시며 그 자리에서 춤을 춘다는 락카페가 참 신기했다. 아무튼 우리는 밤12시 넘어서 새벽까지 술집에서 당당하게 솔담배와 접대용(?) 청자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게 너무너무 좋았다.

우리는 삐삐의 암호와 같은 숫자의 뜻을 모두 알고, 그 중 ‘3535’란 숫자를 제일 좋아했다. 우리는 일부러 공중전화부스 옆에 가서 삐삐와 씨티폰을 꺼내 통화하며 뿌듯해 했다. 희한하게도 우리는 이렇게 제도의 변화란 변화는 모두 겪으며 그렇게 사회인이 되었다. 우리는 중요한 고비마다 닥쳐왔던 불리한 사회적 여건을 원망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어느날 문득 뒤돌아보니 벌써 50대가 되어 있었고, 누군가는 지금은 60대 후반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새 해라는 명찰을 달고 졸지에 얼마 전에 나이를 하나 더 먹어버렸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던 우리들의 모습에, 글을 읽다보니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옛 추억이 스쳐지나가는 당신은, 바로 림삼의 친구다. 그리고 당신은, 오늘 모든 아픔 앞에 당당히 맞서서 내일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래서 필자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을 응원한다. 그리고 언제까지라도, 당신이 도달할 성공과 행복의 화원을 기다릴 것이다. 꼭 기다릴 것이다. 기다림의 의미를 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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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바람속에서
흔들리지 않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삶에 깊이가 필요한 이유이겠지만 -

살다가 누군가를 떠난다는 건
남겨진 누군가에겐
버림받는 고통이라는 걸
그 땐 미처 몰랐었다
기다림이 아무리 찬란하더라도,

사실 산다는 게 그렇더라

잊어야 할 건 잊지 못하고
잊지 말아야 할 건 오히려 잊게 되던 걸,

시 그리고 사랑은
내 삶의 영원한 화두였다
그러나 시골 사랑방벽 매달린
메주덩어리처럼 굳어버린 두뇌로야
새삼 무슨 곡예 부릴까

무겁고 낯설고 벅찬 짐들
가슴 짓누르면
모든 걸 다 헤아릴 것도 같았다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심정 되기도 하면서

막연한 기다림 젖은 나는
무언가를 기다린다
기다리기는 싫어하지만 그래도 나는
열심히 기다릴 수 밖에 없다

페터빅셀의 기다림 이미 배워버린 나는,
기다림의 기다림을 기다리기에
아주아주 적합하게 개조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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