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66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1집. 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  


  "1집. 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
동인지 형식이 아니고 단독 출판한 詩集으로는
林森의 첫번째 공식詩集으로서
92년3월20일 '도서출판 명보'에서 인쇄하였습니다.

처음 詩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의 作品을 총 망라하여
그 중에서 61편만을 선정한 詩集이며
序詩의 제목은 '정',
내용은 총 5개의 章으로 분류하여 엮었는데 순서대로
'序曲의 章' '發端의 章' '矛盾의 章' '追求의 章' '反省의 章'입니다.

고인이 되신 작사가 '박건호님'의 권두시가 처음에 있고
'박일송님, 이외수님, 정화석님, 최성현님, 박재우님'의 추천사가
'사색의 창을 열면서'라는 프롤로그에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林森,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가호성님'이 적어주셨습니다.

林森의 초기 詩風을 짐작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도서출판 명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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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별 *



시작노트

" 낮별 " 詩作 note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때에 있다는 건 참으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실제로는 잘 안된다. 심지어는 결과가 정반대로 되어지기도 한다. 아주 쉬운 일인 것 같지만 도무지 제대로 되지를 않는다. 그렇게나 퍽도 어렵다. 아마도 그게 바로 진리라서 그럴 거다. 본래 진리란 아주 당연한데도 잘 안된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진리는 단적으로 가깝고도 먼 대상이다. 생각에 따라서는 아주 친근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도 멀어서 형상이 가물거리기도 한다. 그러기에 있어야 할 장소에 머물러 있는다는 건 그토록 어려운 난제다. 해서 영원한 인간의 숙명적 과제이기도 하다.

모든 삼라만상의 자리가 날 때부터 근본적으로 정해져있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거부감 없이 인식되어지는 자리가 바로 제 자리다. 별이란 밤하늘에 뜨는 건데, 생뚱맞게 낮시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면, 그래서 가물거리는 낮별 입장이라면, 이미 그건 의미를 상실한 빛이며, 아예 별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낮달도 어처구니 없기는 매 한 가지다.

북반구에 위치한 우리 나라에서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엔 춥지만, 남쪽에 있는 호주에서는 기온이 반대의 성향을 띈다. 장소에 따라서 진리가 달리 해석되어지는 경우다. 예컨대 진리는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여건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린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절대적인 진리라고 하더라도 개인차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익히 아는 ‘우산장수와 나막신장수’의 예를 보아도, 날씨에 따라 정 반대의 입장이 확고부동한 그들의 진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진리란, 보여지는 안목에 따라 수준이나 정도가 달리 결론지어지는, 이른바 태생적인 껍데기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세상사 마음 먹기 달려있다지만 어차피 삶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고, 제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보아도 쉽사리 풀려지지 않는 것이 인생사인 것을, 그저 막연한 희망과 꿈일 망정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시종일관 묵묵히 정진할 따름이다.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지난 어느 날 영동고속도로의 한 휴게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년 부인 한 사람이 승용차 창문을 반 쯤 내리고, 부근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미화원을 불렀다. 그런데 열심히 빗자루질을 하던 미화원은, 부인이 부르는 ‘아저씨’가 자신이란 걸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귀가 먹었나? 이거, 일회용 종이컵 어디에 버려요?” 손을 내밀고 종이컵을 건들거리는 여성에게 미화원이 다가가서 손을 내민다. “이리 주세요.” ‘그걸 몰라서 묻나? 쓰레기통까지 가기가 그렇게 귀찮은가?’ 속으로 투덜거리는 그는 휴게소 미화원으로 일한지 이 날로 꼭 한 달째다.

그런데도 아직 아저씨란 호칭이 낯설다. 지난 27년 동안 ‘신부님’이란 소리만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이용해 휴게소 미화원으로 취직하여 임시로 청소부가 된 신부.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 휴게소 광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며 빗자루 질을 한다.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주변에 한 명도 없다.

제보를 듣고 찾아간 필자의 ‘기습’에 깜짝 놀란 그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일인데....”하며 사람들 눈을 피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 사는 게 점점 힘들어 보여서 삶의 현장으로 나와 본 거예요. 난 신학교 출신이라 돈 벌어본 적도 없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워요. 신자들이 어떻게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장만하고, 교무금을 내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소위 ‘빽’을 경험했다. 농공단지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갔는데 나이가 많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아는 사람이 힘을 써줘서 겨우 휴게소 미화원 자리를 얻기는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곧바로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란 걸 피부로 느꼈다.

그는 출근 첫 날 빗자루를 내던지고 그만두려고 했다. 화장실 구역을 배정받았는데 허리 펴 볼 틈도 없이 바쁘고 힘이 들었다. 대소변 묻은 변기 닦아내고, 발자국 난 바닥 걸레질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오면 또 엉망이고, 그래도 일이 고달픈 건 견딜 만 했다. 사람들이 보내는 멸시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했다. 무엇을 잘못 눌렀는지 커피가 걸쭉하게 나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발견한 신부는 휴게소 직원의 입장으로서, 자신의 동전을 다시 넣고 제대로 된 커피를 뽑아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이 “고마워요. 저건(걸쭉한 커피) 아저씨 드시면 되겠네.”라며 돌아서는 게 아닌가?

“제가 그 때 청소복이 아니라 신사복 차림이었다면 그 여성이 어떤 인사를 했을까요?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죠.” 신부는 “그러고 보면 지난 27년 동안 사제복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인사와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눈물 젖은(?) 호두과자도 먹어 보았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나왔는데 허기가 져서 도저히 빗자루질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트럭 뒤에 쪼그려 앉아 몰래 먹었다. 손님들 앞에서 음식물 섭취와 흡연을 금지하는 근무규정 때문이다.

그의 한 달 세전 월급은 120만원. 그는 “하루 12시간씩 청소하고 한 달에 120만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건지, 적게 받는 건지 모르겠네요?”라고 필자에게 물었다. 또 “언젠가 신자 한 사람이 사다준 반팔 티셔츠에 10만원 넘는 가격표가 붙어있던데....”라며 120만원의 가치를 따져보았다.

이번엔 필자가 “신부님이 평범한 50대 중반 가장이라면 그 월급으로 생활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내 씀씀이에 맞추면 도저히 계산을 못하겠네요. 그 수입으로는 평범한 가장이 아니라 쪼들리는 가장밖에 안 될 것 같은데.” 그는 “신자들은 그런데도 헌금에 교무금에 건축기금까지 낸다”며 “이제 신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강론대 에서 ‘사랑’을 입버릇처럼 얘기했는데 청소부로 일 해보니까 휴지는 휴지통에, 꽁초는 재떨이에 버리는 게 사랑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누군가가 그걸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또 과시할 것도 없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죠. 시기질투도 없습니다. 그게 참사랑입니다.”

그는 “신자들이 허리 굽혀 하는 인사만 받던 신부가 온종일 사람들 앞에서 허리 굽혀 휴지를 주우려니까 여간 힘든 게 아니다”며 웃었다. 또한 “퇴근하면 배고파서 허겁지겁 저녁식사 하고 곧바로 곯아 떨어진다”며 “본당에 돌아가면 그처럼 피곤하게 한 주일을 보내고 주일미사에 온 신자들에게 평화와 휴식 같은 강론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날은 그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애초에 한 달 계획으로 들어왔다. 그는 ‘낮은 자리’에서의 한 달 체험을 사치라고 말했다. “난 오늘 여기 그만 두면 안도의 한숨을 돌리겠죠. 하지만 이곳이 생계 터전인 진짜 미화원이라면 절망의 한숨을 쉴 것입니다. 다시 일자리를 잡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도 ‘빽’써서 들어왔는데. 그리고 가족들 생계는 당장 어떡하고. 그래서 사치스러운 체험이라는 거예요.”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일터로 뛰어갔다. 한 시간 가량 자리를 비운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 같다. 미화반장한테 한 소리 들었을지도 모른다. 쓸고 닦고 줍고.... 몸을 깊숙이 숙인 채 고속도로 휴게소를 청소하는 신부. 그에게 빗자루질은 사제생활 27년 동안 알게 모르게 젖어든 타성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때를 씻어내려는 기도인지도 모른다.

시인 ‘박동남’의 ‘고독사’라고 하는 작품은 소외된 노인의 죽음을 표현한 시다. 우리 주변의 흔하디 흔한 풍속도라서, 진한 감동까지 주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읽을수록 서글퍼진다. ‘몸만 빠져 나갈 수 있는 골목에 어깨를 맞대고 붙어선 집들 / 통장의 동네 방문으로 한 평의 방에서 연고 없는 노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 몇 개의 그릇과 윗목에 검은 가방이 무언의 이력을 대변하고 / 지독한 냄새가 혼령처럼 떠돌아도 이웃의 관심은 실종된 지 오래

교도소 독방에 수용된 것 같은 단절 / 가슴에 담은 말을 쏟아내지 못하고 신음으로 일관하다 절명한 흔적이 / 부패한 얼굴 입술 언저리 힘줄에 배어 있는 듯하다 / 밤에 산길을 홀로 걷는 것 같은 고독 / 고독을 참는 것도 독이었고 / 죽음의 통증이 온몸을 점령하여 유체이탈로 눈을 부릅뜬 것이리라 / 이 모든 사실을 처음부터 TV가 지켜보고 있었다

바깥에 하얀 국화꽃 대신 출입금지 노랑 띠가 둘리고 / 조문객 대신 웅성웅성 소리가 나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 정리업체 인원이 와서 소문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목적으로 신속정확하게 처리하였다 /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이 복귀되고 /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 삭제된 내용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어차피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죽음. 삶을 마감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 죽음의 상황이 제각각 다르다. 살아온 이력에 따라서 다르고, 빈부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고, 가정형편과 친지들의 수준에 따라서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와 눈물 속에서 거행되는 의식이 있는가 하면, 소리 소문 없이 그냥 초라하게 마무리 지어지는 장례도 있다.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죽음이라는 절대 진리 앞에서 대관절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무엇이며, 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구분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삶의 시간 만큼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면, 그 후의 모습에는 그다지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삶의 뒤에 이어지는 죽음은 자연스러운 불변의 진리인 것을.

옛날에 아주 잘 그려졌다고 알려진 그림이 있었다.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 아래서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 초기의 ‘안견’이 그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은 비록 묘하기는 하다. 그러나 사람이 고개를 젖히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는 법인데, 그걸 안 그렸으니 그 뜻을 크게 잃었다.” 그 뒤로는 아무도 그 그림을 명화로 보아주지 않았고, 마침내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또 옛날 아주 뛰어나다고 사랑받는 그림이 있었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는 그림이었다. 얼마나 생생하게 그렸던지 살아있는 듯 했는데, ‘세종대왕’이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림이 좋긴 하다. 하지만 무릇 사람이 어린 아이에게 ‘아-’하며 밥을 먹일 때는 반드시 그 입이 절로 벌어지는 법인데, 이 노인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잘된 그림이라고 두고두고 칭찬을 받기는 어렵겠구나.” 그 뒤로는 이 그림도 마침내 버림받고 말았다.

지금 거론한 두 그림을 그린 화가의 그림 솜씨는 뛰어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목 뒤의 주름과,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입에 대한 관찰을 놓치고 말았다. 작다고도 볼 수 있는 이 흠 때문에 끝내 그림이 잊혀지고 말았는데 그 까닭은 이렇다. 목 뒤 주름은 축축 늘어진 큰 소나무의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이고,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입은 손자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 마음을 못 읽은 탓에 그림에서 빠뜨릴 수밖에 없었을 거다. 따라서 선 몇 개를 안 그린 것이 아니라 큰 뜻을 놓친 것이다. 예술이란 마음의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의 감동은 단지 테크닉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래 갈고 닦은 테크닉에 진정한 혼이 담겨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완성도와 가치가 인정되어지는 것이리라.

테크닉이란 표면적인 것이고, 혼이란 내적인 것이다. 표면적인 것은 넓지만 얕고, 내면적인 것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도 넓다. 혹시, 우리의 삶을 그리면서 때로 너무 표면적인 것에 치중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칠 때는 없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사람 또한 여늬 예술품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겉치레에 너무 열중하다가 속사람을 만드는 데는 실패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을 담아내는 작은 표현은 아마도 예술품에만 있는 것은 아닐 거다. 우리네 또한 일상 속에서 마음이 담긴 표현을 할 때, 서로 감동을 주고 받는 귀한 동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줄 수는 없다. 가장 정상적인 자리에 본인의 삶의 설계도를 올려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닐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승리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를 찾아내는 것이야 말로 숨겨진 보물찾기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쾌거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아무리 밤이 즐거워도 새벽과 아침과 맞바꾸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평범한 사람은 겨우 자명종을 누르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갈 때, 성공하는 사람은 공원을 산책하며 하루를 설계한다. 평범한 사람은 두 번째 자명종을 누르며 지겨워할 때, 성공하는 사람은 아내와 아침식사를 한다.

평범한 사람은 겨우 일어나 치약을 짜고 있을 때, 성공하는 사람은 아내의 웃음 띤 인사를 받으며 출근한다. 평범한 사람은 허겁지겁 집을 나서 콩나물 전철 속에서 땀 흘릴 때, 성공하는 사람은 이미 한산한 전철에서 책을 읽고 나서 회사에서 오늘의 스케줄을 챙기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누가 인생의 승자일지는 뻔하다.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새벽형 사람들이다. 아침에 강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진리는 과거나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동일한 진리일 것이다.

물론 이 역시 결코 바뀌지 않는 진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볼 때, 실패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행성 성향을 가지고 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치고 성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 야행성 생활에 젖어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생활 리듬이 깨지고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야행성 생활의 가장 심각한 폐단은 아침 우울증이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무기력해지면서 매사에 수동적으로 변한다. 이런 습관으로는 절대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야행성 인간들은 저녁에 술로 우울함을 달래거나 어떤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

그럼 새벽형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소한 밤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꼭 들어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일찍 자는 싸움인 것이다. 최대한 밤 11시에는 꼭 잠자리에 들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부자는 밤 9시 이전과 밤 10시 이전에 거의 대부분 잠을 잔다. 그리고 새벽 3시에서 4시면 반드시 일어난다. 이런 건강한 생활 습관과 부지런함이 부자를 만드는 것이다.

수면시간은 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까지가 최상이다. 체온이 최저인 새벽 2~4시에 반드시 숙면하고 맥박이 빨라지는 오전 5시에는 일어나는 것이 좋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두뇌가 가장 명석해지는 시간대이다. 그래서 아침의 한시간이 낮의 세시간과 필적할만 하다. 따라서 새벽형으로 생활이 바뀌면 집중력이나 판단력, 일의 능률이 그만큼 오르고, 효과도 크고 또한 출근 지옥도 없으므로, 항상 여유롭게 출근한다

미국에서는 ‘좋은 차를 탄 사람 순서대로 출근한다’는 말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일찍 출근한다는 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건강해지고 부유해지며 현명해진다. 당신에게 현실이 힘들다면 그럴 때 일수록 새벽에 벌떡 일어나라. 괜히 미적거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스무 살 전에는 가족과 선생님의 기대 속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스무 살이 지난 후에는 뜨거운 혈기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하지만 20년 동안 일하고 난 후, 나이가 마흔 쯤 되면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래서 사장과 회사, 더 나아가 사회를 원망하기도 한다.

회환과 상심 속에서 20년이 훌쩍 지나간다. 60세가 되면 원망할 대상이 없어진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남은 생을 걸어간다. 그리하여 80세가 되고, 삶이 끝날 때가 되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무언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일이 있는데....’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생각한 끝에 스무 살 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힘겨운 상황에서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할 이유 또한 아무 것도 없다. 현실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지금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언젠가 특별한 삶이 찾아온다면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일일 수가 있다. 덧없는 약속이 그림자처럼 삶에서 비켜나가도 아픔보다는 탄성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아직 말하지 못한 것, 노래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사랑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낮별처럼 처량한 신세가 되어, 대낮의 밝은 하늘에서 의미를 상실한 채 깜빡거리는, 하릴없는 처지가 되지 않는 지름길이다. 크고 작음은 문제가 아니니, 소중한 빛을 머금어 어두운 밤하늘에 밝음을 선사하는 소중한 별로 다시금 태어나는 첩경이다. 모름지기 별은 밤하늘에서 빛나는 눈동자일 때 바로 제 값을 하는 것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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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하늘 마당 가 별이 꼭 하나 있어서
눈물 머금는 소리,
벌건 대낮에 어떤 사연 품고
숨지를 못했나?

오래 전 악마의 눈동자로
헤매 돈 적도 있었지만,
갓난이 되어 돌아온 그 자리에
버릇처럼 졸고 있는 비단붕어 꼬리지느러미마냥

한들 바람에도 차마 힘에 겨워
가쁜 숨 몰아쉬며
기대일 곳 바로 저기마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고적한 별아

모두 다 떠나가도 나는 남아
이 하루 낮을 지키련다,
저 별이 참별 되어져
온 밤하늘을 밝히 안아보기 까지

[동짓달 열사흘 째 대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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