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1집. 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  


  "1집. 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
동인지 형식이 아니고 단독 출판한 詩集으로는
林森의 첫번째 공식詩集으로서
92년3월20일 '도서출판 명보'에서 인쇄하였습니다.

처음 詩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의 作品을 총 망라하여
그 중에서 61편만을 선정한 詩集이며
序詩의 제목은 '정',
내용은 총 5개의 章으로 분류하여 엮었는데 순서대로
'序曲의 章' '發端의 章' '矛盾의 章' '追求의 章' '反省의 章'입니다.

고인이 되신 작사가 '박건호님'의 권두시가 처음에 있고
'박일송님, 이외수님, 정화석님, 최성현님, 박재우님'의 추천사가
'사색의 창을 열면서'라는 프롤로그에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林森,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가호성님'이 적어주셨습니다.

林森의 초기 詩風을 짐작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도서출판 명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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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 *



시작노트

" 들 " 詩作 note

어떤 마을에 드넓은 초원이 있고 거기에는 진한 갈색의 멋진 종마가 풀을 뜯고 있다.
그 곁에는 그 말을 돌보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고 이웃에는 누구보다도 그 종마를 사랑하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말을 돌보는 할아버지가 멀리 출타하면서 소년에게 말을 부탁한다.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그 멋진 종마를 사랑하고, 또 그 말이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알고 있으므로 이제 그 종마와 단 둘이 보낼 시간이 주어진 것에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종마가 병이 나게 된다.
밤 새 진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종마에게 소년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원한 물을 먹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년의 눈물겨운 간호도 보람 없이 종마는 더 심하게 앓았고, 말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돌아왔을 때는 안타깝게도 다리를 절게 되어버린다.
놀란 할아버지는 소년을 나무랐다.
“말이 아플 때 찬 물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줄 몰랐단 말이냐 ?”
소년은 대답했다.
“나는 정말 몰랐어요.
내가 얼마나 그 말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후 이렇게 말한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화두이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사랑에는 대상이 다른 여러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그 사랑에 가장 우선적인 것은 건강함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 또한 육신과 같아서 넘치거나 부족하게 되면 건강을 잃게 된다.
사랑 또한 균형과 조화가 필수일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 자녀 사랑일 경우에는 미숙한 상태에서 본인 선택의 여지없이 여과되지 못한 채 받아들여져 성장 과정에서 문제를 야기시키거나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만다.
우리는 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서 사랑만큼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단연코 없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건강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랑을 연구하다 보면 사랑에도 적절한 방법이 있고 선택의 조건이 있어서 결국은 사랑도 과학이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주는 오묘한 가감의 이치가 사랑에는 담겨져 있느니 만큼 이 예술같은 느낌을 잘 간직하면서 늘 우리의 마음 안에 건강한 사랑이 넘친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넓고 큰 무한대의 사랑이 넘쳐나는 대자연의 들판을 닮아져서 우리 주변의 모두를 넉넉하게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넓은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래서 그런 건지 오늘따라 유난히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는 넓은 대자연으로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푸르른 들과 하늘이 배경으로 활짝 열리는 컴퓨터 바탕화면 보다 훨씬 신선한 느낌을 물씬 풍겨내는 실제의 초원을 거닐고 싶은 충동이 솟구쳐오른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른 초원, 그 완만한 지평선 너머에선 시원한 바람을 타고 생명력 넘치는 초목의 내음이 달려온다.
약간 아래 쪽에서 구릉지 쪽을 바라보면 아마도 이 세상엔 딱 두 가지 밖에 안보일 것이다.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
어느 것이 땅이고 어느 것이 하늘인지 구별이 힘든 그 둘의 경계를 아주 완만한 S라인 구릉지가 있어서 살며시 구분지어주는 그곳, 하늘과 땅의 경계선으로 오로지 푸르름만 있는 그 곳, 우리를 부르는 한여름 초원의 유혹은 상큼하다.
한번 생각이 들면 떨쳐버릴 수 없을 정도로 가보고 싶은, 도시민의 답답한 가슴 속을 활짝 열어주는 대자연 사랑의 품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곳에만 간다면 세상 모두를 사랑할 줄 아는 푸근한 가슴을 배워올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에서라면 정말이지 세상 누구보다도 이웃을 사랑하고 제대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평안한 인품과 소양을 쌓아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이 여름날에 넓은 들을 동경한다.
넓은 들의 그 넉넉한 가슴을 사랑한다.

한 철학자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제자들을 떠나보내며 마지막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가 빙 둘러 앉았다.
철학자는 제자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들판에 잡초가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잡초를 모두 없앨 수 있느냐 ?”
제자들은 학식이 뛰어났지만 한 번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답했다.
“삽으로 땅을 갈아엎으면 됩니다.”
“불로 태워버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뿌리 째 뽑아 버리면 됩니다.”
철학자는 제자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것은 마지막 수업이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말 한대로 마음 속의 잡초를 없애보거라.
만약 잡초를 없애지 못했다면 일 년 뒤에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자.”
일 년 뒤, 제자들은 무성하게 자란 마음 속 잡초 때문에 고민하다가 다시 그곳으로 모였다.
그런데 예전에 잡초로 가득했던 들판은 곡식이 가득한 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런 글귀가 적힌 팻말 하나만 꽂혀 있었다.
“들판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바로 그 자리에 곡식을 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자라는 잡초는 선한 마음으로 어떤 일을 실천할 때 뽑아낼 수 있다.”
넓은 들의 사랑 법칙을 알려주는 말이다.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자연의 가르침이 여기 있다.

사랑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고 사랑을 할 때는 더 한층 조심스럽게 마음을 갈고 닦는 수양의 자세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사랑의 모습에서 우리 삶의 진실이 배어나오게 된다.
생각해보니 세월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늙고 있다는 것이 기쁨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뒤를 돌아보면서 덧없음의 눈물만 흘리거나 남을 원망하면서 삶에 대한 허무감에 젖지 않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성스러운 존재와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다.
정직하게 나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부끄러움 없이는 떠올리지 못하는 일들이 많고, 때로는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다.
그런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쁘게 살아 있고 나의 길지는 않을 미래가 설레임으로 계속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늘 완벽하게 기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해탈하지 않는 한 완벽하게 기쁠 수는 없는 존재임을 안다.
그러나 인생의 큰 흐름이 기쁨과 설레임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얼마간의 슬픔이나 우울 따위는 그 흐름 속에 쉽게 녹아 없어진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내가 어쩌다 이런 행운과 함께 늙고 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더 늙어서도 더욱 깊은 기쁨과 설렘의 골짜기에 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늙었지만 젊고, 나이가 많지만 싱싱한 영혼으로 현재를 살며, 미래를 깨우는 일에 정성을 바치면서 삶을 끝없이 열어가는 대자연의 들판을 닮은 내 모습이 그립다.
‘잘하겠다.’는 정성이지만 ‘더 잘하겠다.’는 욕심이다.
‘사랑한다.’는 아름답지만 ‘영원히 사랑한다.’는 허전하다.
‘감사합니다.’는 편안함이지만 ‘너무 감사합니다.’는 두렵다.

우리 마음이 늘 하늘과 들이 맞닿아있는 지평선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우리의 일도, 사랑도, 감사도 늘 평평하고 잔잔하여 멀리서 보는 지평선 같기를 바란다.
아득한 계곡이나 높은 산 같은 변화무쌍한 마음이 아니라 들판같이 넉넉하고 순박한 마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이렇게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바른 마음이다.
앞만 보고 오를 때는 발끝만 보이지만 멈추어 서서 보면 내 앞에 지평선이 펼쳐진다.
마음도 쉬어야 넓고 부드러워진다.
그래야 더 맑고 넉넉한 사랑의 마음으로 거듭나기가 쉽다.
가능하다면 앞으론 나를 위해 사랑을 하지는 말자.
내가 기쁘기 위해 상대를 사랑하지는 말자.
대신에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나를 내바치는 사랑을 하도록 하자.
나를 위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애욕이고 집착일 뿐이다.
‘내 사랑’, ‘내 사람’이 되어야 그것만이 사랑인 줄 알지만, 사랑이 소유가 되면 사랑 그 자체의 맑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소유키 위해 사랑하지는 말자.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자유를 위해 사랑해야 한다.
참된 사랑은 소유나 집착이 되어선 안된다는 걸 거듭 명심해야 한다.
그냥 상대가 기쁘면 그것으로 나의 사랑은 이루어진 것이다.
설령 먼 훗날 헤어지는 인연이 되었을 때라도 상대를 위한 이별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그런 지혜로운 사랑을 했으면 하고 바란다.
사랑은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음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현상이 아니다.
그냥 이렇게 감정을 느끼고 있음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즐기고 누리고 음미하고 있는 지금의 이 마음이 사랑이다.
사랑은 이처럼 그저 느끼는 것인데 그 느낌을 가지려 하다가는 눈 깜짝할 새에 벌써 저만치 멀어져가기 마련이다.
온전한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인해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한다.
사랑하면서 이별의 괴로움을, 질투의 쓰라림을 그 깊은 너머에 미리 간직하지는 말자.
사랑 그 반대의 경우는 그냥 맑게 다 비워 두고 온전히 지금은 사랑만 하기로 하자.
앞으로라도 괴로울 일은 전혀 없을 그런 맑은 사랑을 하자.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오더라도 사랑했음에 행복했노라고 미소지을 수 있을 그런 넉넉한 사랑을 하자.
그것이 바로 자연이, 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방정식이다.

우리들의 인생에는 속도가 있다.
너무 빨리 달려도 아니 되고 너무 느리게 달려도 아니 되는 인생의 속도가 엄연히 존재한 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과속을 하여 목표지점에 다다르려면 그 만큼 위험도 따르게 되고 얻는 것만큼 또한 잃는 것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너무 느리게 달리다 보면 자칫 목표지점에 다다를 수가 없게 되고 뒤를 돌아다 볼 기회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속도는 그래서 너무 빨리 달려도 아니 되고 너무 느리게 달려도 아니 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하고 유효한 속도라야 한다.
순간 순간 마다 펼쳐지는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도 있어야 하고 장면 장면 마다 펼쳐지는 인생의 묘미를 향유할 수도 있는 그런 인생의 속도가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대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찰라와도 같이 보잘 것 없을지 모르지만 애써서 서로 사랑하며 그 사랑의 댓가를 또 다른 귀한 사랑에 쓰고 나누면서 사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참다운 가치를 찾아가는 우선의 초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디 비 내린 뒤 더없이 맑고 청아한 햇살과 더불어 푸르른 꿈으로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저 대자연의, 저 푸르른 들의, 사랑 듬뿍 머금은 부름에 부끄러움 없이 나서는 우리들의 오늘과 내일이 되어지기를 염원하며 여름날의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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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상념의 햇살 아래 꿈을 만지며
구슬을 굴리는 은근한 정념의 미소.
거기 아롱지는 얼굴 있어라
구수한 눈길이 있어라

파아란 가슴의 하늘이 간직된
농부의 그것 처럼
변치 않고 떠나가는 귀로의 햇살에
땀방울이 따사할 지음......
파르르 열리는 자그마한 주먹에
들이 열리다

너얼리 잉태된 뜨락에 벅참이 익어
잔디 고요히 열리는데
풀내음 덜커덩 거리며 햇살을 먹다

타락한 세월이 먹혀 들어가고
아침이 투명하게 수정되면
먼지 속에 밝히 부서지며 삼키는
햇살아 !
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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