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까치 " 詩作 note

세상의 모든 소리들은 듣는 사람의 기준에 의해서 그 가치가 결정되어진다. 사람의 말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진정한 의미가 드러날 수도 있고, 반대로 참뜻이 가려질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똑같은 소리일지라도 듣는 사람의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수가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특히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하는 이유다. 자칫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어 큰 다툼으로 화하는 사단도 기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판단했더라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기에 앞서서 잠시만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우리들이 벌이는 분쟁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익히 알면서도 막상 자신이 어떤 경우에 처하게 되면 분별력을 상실하고 쉽사리 흥분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정작 나이를 점 점 먹어가면서 절제와 겸양의 미덕을 몸에 배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는 있으나 뜻한 바대로 잘 되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아파트촌이라고는 하나 어느 정도라도 조성되어 있는 녹지 때문인지 그런대로 새벽이면 이런저런 새소리들을 조금은 들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새벽이면 빠지지 않고 우짖는 까치소리는 언제 들어도 우렁차다. 고유의 텃새 중에서는 제일 싸움 기질이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녀석들이라서 그런지 씩씩하고, 비교적 계절에 무관하게 수시로 우리의 새벽을 깨우는 까치는 이미 비둘기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대표적인 이웃새다. 그래서 시골에서든 도심에서든 새벽이면 경쟁하듯 울어제낀다.

어느 날 새벽잠에서 깨어난 필자는 미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몽사몽간에 아련히 까치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그 소리가 서글프게 들렸던 적이 있다. 평소에는 아예 의식을 하지 않거나, 의미없이 시끄러운 잡음 정도로 여기곤 하던 그 소리가 어째서 새삼 그토록 슬픈 울림으로 귓전을 두드렸는지는 모른다. 단지 그날의 까치소리는 한밤중의 소쩍새 울음소리나 호젓한 산중의 산부엉이 울음소리보다도 더 마음을 헤집었음이다.

이유도 없는 설움에 한동안 느껴울다가 주섬주섬 한 날의 일상을 위해 추슬러 일어나긴 했지만 아무튼 답도 없는 서글픔에 하루 종일 우울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 날부터 필자는 길에서 마주치는 까지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을 건네고는 한다. 까만 눈동자로 마주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하는 듯 한데 도대체 울음소리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제 가을이다. 유난히 까치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나는 계절이다. 기필코 이 가을에는 까치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볼 작정이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허기사 사람들의 말도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새소리의 의미를 파악하겠다고 이러는 건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주책스럽게 여겨지기는 한다. 그보다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먼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의미를 서로 나누고, 그렇게 형성된 유대를 기리기 위한 베풂과 선행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남의 좋은 점을 보는 것이 눈의 베풂이요, 환하게 미소 짓는 것이 얼굴의 베풂이며, 사랑스런 말소리가 입의 베풂이고, 자기를 낮추어 인사함이 몸의 베풂이요, 곱고 착한 마음 씀이 마음의 베풂이니, 베풀 것이 없어서 베풀지 못함이 아니라 베풀려는 마음이 고갈되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만약 우리에게 구걸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를 자신을 일깨우는 스승이라 생각하고, 그가 나의 삶의 바탕이라 생각하고, 나의 가르침을 따라 베풀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사람의 참된 도리라 여겨야 한다.

재물을 베풀면서는 아깝다는 마음이 없어야 탐욕심이 없어지고, 구걸하는 사람에게는 자비심을 드러내야만 배척하는 마음이 엷어지며, 베풀면서 아울러 깨달음을 원하면 바로 어리석음이 엷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베풂이 큰 기쁨으로 화하는 기적을 경험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우뚝 서 있어도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다. 가슴에 품어온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세상이 녹록하지 않고 세상 사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흔들린다고 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늘 고요하다 여겨져도 그 모습 뒤에는 분명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다. 가끔은 흔들려보기도 하며, 때로는 모든 것들을 놓아보아도 좋다. 가다가 넘어진 것처럼 주저앉아 한동안 넋을 잃은 듯 눈앞의 불을 바라보는 불멍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다.

필경 그러한 과정 뒤에 오는 소중한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다시 희망을 품은 시간들이다. 다시 시작하는 시간들 안에는 새로운 비상이 있다.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그렇게 적당한 소리를 내며 살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 완벽하고 완전한 인격체라야 하는 건 아니다.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인성이어야만 행복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그저 좀 부족하고 불쑥 허점이 드러나곤 하는, 그런 게 사람다운 면모이고 사람스러운 형상인 것이다.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 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입만 열면 곱지 않은 소리로 세상 탓을 하면서도 뭇 사람들을, 이 세상을 열심히 사랑했던 우리 시대의 기인, 지금도 눈에 선한 고 ‘이외수’ 소설가가 문득 생각난다. 같은 강원도 감자바우로 젊은 시절 한동안 어울려 돌아치며 함께 뒹굴던 기억도 가슴에 삼삼하다. 나이는 필자보다 위지만 때로는 형처럼, 친구처럼 참 많이도 부대끼며 티격태격했었다.

어느 눈 쌓인 겨울밤, 그림 그리는 친구 ‘화석’과 셋이 어울려 원주 필자의 본가에서 함께 잠을 자다가 새벽에 갑자기 의기 소통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홑옷 차림으로 치악산을 오르며 소리 소리 지르던, 치기어린 20대 초반의 청춘의 얼굴들이 이렇듯 추억 되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건, 그래서 못 견디게 보고파지는 건, 아마도 오늘 아침에도 언뜻 까치울음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 거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지만, 근심은 사람의 뼈도 상하게 한다. 마음을 잘 지키는 자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마음에서 생명이 나오며, 마음에서 건강도 나오고, 마음에서 성공과 장수도 나오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면 궁궐도 좋은 줄 모르나 마음이 즐거우면 초가삼간에서도 만족하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마음 먹기 달렸다는 건 오래된 진리요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제일 중요한 적은 심려다. 심려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고,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바로 보면 우리는 심려에 빠지지 않는다. 즉, 우리가 잃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내 것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삶의 여유가 생긴다. 이러한 마음이라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내일 새벽에도 까치는 울음소리를 들려줄 게다. 필경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필자의 마음을 헤집으려 들 게다. 그러면서 또 필자의 하루를 심란하게 만들려고 할 게다. 그러나 이젠 섣불리 흔들리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심려의 근원이, 근심 걱정의 원인이 필자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진대 어찌 끝도 없이 이 미몽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까치야, 새벽 까치야! 이젠 네 울음소리로 힘을 얻어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려 하는데, 과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