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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1집. 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  


  "1집. 그대와 같이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 있는 한"
동인지 형식이 아니고 단독 출판한 詩集으로는
林森의 첫번째 공식詩集으로서
92년3월20일 '도서출판 명보'에서 인쇄하였습니다.

처음 詩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의 作品을 총 망라하여
그 중에서 61편만을 선정한 詩集이며
序詩의 제목은 '정',
내용은 총 5개의 章으로 분류하여 엮었는데 순서대로
'序曲의 章' '發端의 章' '矛盾의 章' '追求의 章' '反省의 章'입니다.

고인이 되신 작사가 '박건호님'의 권두시가 처음에 있고
'박일송님, 이외수님, 정화석님, 최성현님, 박재우님'의 추천사가
'사색의 창을 열면서'라는 프롤로그에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林森,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가호성님'이 적어주셨습니다.

林森의 초기 詩風을 짐작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도서출판 명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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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



시작노트

"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 詩作 note

몇 해 전 리더스다이제스트에 소개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98년 5월 15일 미국 북쪽에 위치한 ‘미네소타주’의 외딴 원시림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우체국장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존슨’은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그는 사위 ‘오하라’와 함께 별장을 수리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적당한 목재를 구하기로 작정한다. 맞은 편의 길가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부러져 있는 삼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그 나무는 가져다가 울타리로 세우기에 쓸 만해 보였다. 그런데 그 삼나무 앞으로 눈 녹은 물이 흐르고 있는 깊은 개울이 있었고, 폭이 300미터 쯤 되는 빽빽한 덤불과 숲을 통과해야 원하는 나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워낙 가까이에 건너다 보이니까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불과 몇 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숲으로 들어가 보니까 원시림은 그의 판단과는 전혀 달랐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 시간 쯤 흐른 후에 존슨은 자신이 지금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집에 있던 사위도 뭔가 심상치 않은 사고가 난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뿔나팔을 불어보기도 하고, 숲 속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장인의 흔적을 도무지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곧 밤이 되었다. 다음날 또 수색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시체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반팔 셔츠에 작업용 장화, 그리고 야구모자가 존슨이 지닌 전부였다. 그는 이런 복장으로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숲 속에서 8일이나 헤맨 끝에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뜻밖의 시련을 통해서 그가 경험한 얘기가 우리의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는 길이 없는 숲 속을 헤매야 했다. 그랬던 그가 말한다. 길 없는 숲 속에서 정작 그에게 다가온 가장 큰 두려움은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그 숲이 아니더란 말이다. 가장 큰 두려움은 자꾸자꾸 마음 속에 밀려드는 어두운 상상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존슨이 처했었던 것 같은 상황을 우리는 ‘패닉상태’라고 부른다. 또는 ‘공황상태’라고도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치게 될 때, 갑자기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한 상태가 나타난다. 심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제력을 잃기도 하고, 심각한 공포감에 빠지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발작을 일으키거나 숨을 쉬지 못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제 풀에 그냥 쓰러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쓰러지게 되는 것은, 직접적으로 정작 그가 부딪친 그 어려운 상황 때문이 아니다. 그로 인해서 일어난 심리적인 상태 때문에 문제가 더 크게 발생되는 것이다. 물론 이 존슨과 같은 경우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서 당황스러움을 겪는 일은 우리들에게는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 무슨 예정되어 있는 구도에 따라서 움직여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일상에 묻혀서 살아가고 있다. 그 평범한 일상이 이런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오늘이 그랬으니까 내일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 세상만사가 그렇던가? 갑자기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부지불식 간에 수시로 일어나게 된다.

내 힘으로는, 내 능력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그런 어려움 앞에 서게 된다. 그 어려움은 내 뜻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일어나게 되고 또 진행된다. 그런데 그 상황 속에 빠지게 되면 도무지 길이 없어 보이니까 답답하고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럴 때 존슨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우리를 실질적으로 두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 길이 없는 그 암담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꾸만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어두운 상상의 그림자다. 절망하게 나를 만드는 그림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상상들을 극복하고 물리치고 이겨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안고 오늘의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기 위한 힐링의 시간이니까....

“남의 말은 나의 인생을 만들고, 나의 말은 남의 인생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군가의 말에 의해서 움직인다. 어린아이는 지각이 부족해서, 부모가 어떤 말을 하든지 그 말대로 행동을 한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기 마음에 드는 말을 선택하여 따른다.

청개구리는 엄마의 말과 반대되는 행동을 해서 엄마 청개구리를 화병으로 죽게 하였다. 사람들은 동화 속의 어린 청개구리를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똑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즉, 자신의 마음에 새겨야 할 아름답고 선한 말들은 다 버리고, 오히려 자기 인생을 슬프고 비참하게 하는 말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우리들의 마음에 새겨진 말들은 누구의 말일까? 혹시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나,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의 말이 아닐까? 또한 어떠한 내용들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을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었던 말들은 아닐까?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말들은 우리의 행동기준이 되고 생활 습관이 된다. 혼내는 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새겨진 사람은 반항적인 인생을 살아간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마음에 새긴 사람은 습관적인 무관심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우리의 마음에 말을 새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내 마음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할 아름다운 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생동안 우리를 염려하며 사랑해주는 부모와 형제, 친구와 이웃, 성현들의 말씀.... 이 좋은 말들은 관심을 두지 않고, 되레 우리에게 상처를 입혔던 말, 가시처럼 찌르는 말, 실수의 말, 오해의 말들을 마음에 새기고는 두고두고 되새기며, 비만 오면 울어대는 청개구리처럼 주기적으로 원망과 탄식을 뿜어내고 있다. 그러한 탄식과 원망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상처와 아픔을 준다.

이제 우리는 이 악한 말들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부터 아름다운 말들을 마음에 새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를 속상하게 하는 말, 고함소리, 불평, 상처 입히는 말, 화내는 말, 잔소리들은 빨리 잊어버리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넓게 하는 말,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말, 행복하게 하는 말, 기분 좋은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그러한 말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감사의 말을,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근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평안의 말을, 잡담으로 가득한 사람에게는 진실의 말을,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져서 그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고, 또한 그들의 말은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우리의 인생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 편, 가장 깊은 사랑과 관심은 말이 아닌 포옹으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그 테라피(Hug Theraphy)’란,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 아픈 곳을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저 따뜻한 포옹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아픈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환자들이 아픈 곳은 몸이지만 치료의 근원지는 마음에 있다고 한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마음의 의사가 될 수는 있다. 아픈 사람에게 다가가 따뜻한 눈빛과 체온을 나누어 보자. 그리고 느껴보자. 그의 심장이 우리의 심장에서 뛰고 있음을. 작고 여린 새처럼 우리의 품 안에 안긴 그의 숨결을.

무슨 위로의 말을 해주느냐는 그리 중요치 않다. 그저 따뜻하게 꼭 끌어안아 주면 된다. 그리고 그냥 느껴보는 거다. 내가 안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안긴 것처럼 더없이 평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말이다. 사랑과 관심은 부메랑과 같아서 베풀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우리 모두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그 근사한 이유를 느끼면서 안아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숨겨 곱게 간직되어 있는 사랑과 순결의 마음을 이제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자. 나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이웃을 위해서, 세상의 모두를 위해서 이제는 그 소중한 자산을 꺼내어 베풀어보자. 평화와 화합의 멧세지를 가득 담아서 하늘 높이 날려보자. 지금 필요한 건 진실한 마음, 바로 그것이다.

우리 마음이 순결하다면 얼마만큼 맑게 깨끗할 수 있을까? 우리 생각이 의롭다면 얼마나 높이 의로울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추수가 끝난 빈 들에 남아 있는 이삭을 줍듯이, 순결과 의로움과 사랑의 이삭이라도 주워 그것으로 빈 가슴을 채우고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우리가 참을 수 있다면 어떤 일까지 참아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먼 앞날의 일까지 알 수 있을까? 편지를 길게 쓴 다음 깜빡 잊은 것이 있어 덧붙이는 추신처럼, 기다림과 인내와 지혜의 작은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마음에 평안이 있다면 얼마나 고요히 잔잔해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 감사가 있다면 얼마나 깊이 감사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기쁨이 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기뻐할 수 있을까? 하루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 잠시 펼쳐지는 서쪽 하늘의 노을처럼, 평안과 감사와 기쁨을 잠깐씩이라도 내 가슴에 펼치면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에게 희생할 일이 있다면 무엇까지 내어놓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용서가 있다면 어떤 사람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겸손이 있다면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을까?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같이 연약한 우리들이기에 희생과 용서와 겸손의 작은 촛불이라도 켜, 내 주위를 단 한 뼘이라도 밝히면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바다에 배가 지나가면 파문이 일어난다. 멈추어 있는 배 주위에는 파문이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배는 진행하는 방향을 따라 끊임없이 파문을 일으킨다. 어찌 보면 삶이란 자기가 만들어가는 파문이다. 어느 때는 큰 파문으로 힘들어지고, 어느 때는 잔잔한 파문으로 조용한 날들을 보내기도 한다.

행복이란 큰 파문이 없는 잔잔한 삶이 아니라, 파문이 일어도 그것이 내 마음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내가 되어갈 때 조용히 찾아와, 내 몸과 마음에 물처럼 향기처럼 스며드는 위로와 평안과 감사이다. 행복이란 기쁨과 슬픔의 인생 전체를 통해 알게 되는 나에 대한 신뢰와 만족이고, 나를 아름답게 자라게 하는 기쁨이다. 내가 나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이다.

진정한 행복을 기원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을 가지자. 세상은 하루 밤을 자고 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게 유혹하고 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부를 모으고 있다.

많은 지식을 소유하기를 원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그리고 후세에 남을 명예를 원하기도 하며, 의롭고 선하게 살기를 원해서 불의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며 절개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사상이 있다. 그래서 마음에 생각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그 어떤 것도 원천적인 만족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마음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재물도, 명예도, 지식도, 그리고 선하고 의롭게 산 것도,마음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만큼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가지면 될 것 같아서, 인생을 걸면서 그것을 가지려고 전쟁을 하듯이 싸우지만, 가져도 가져도 부족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부터 진실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을 가지자. 사람들이 갖고자 수고하고 애쓰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우리의 영혼 속에 있다. 그것을 가지면 배가 부르듯이, 마음을 채우면 포만감이 넘치게 될 것이다. 물질은 육체의 영역, 정신은 영혼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육신의 영역에 있는 것은 아무리 자신을 위해 소유하고자 해도, 때로 그것은 나를 향하는 무기가 될 때가 많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치면, 소유하기 위한 방법이 불합리하거나 정당하지 못해 결국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조차도 불행으로 이끄는 경우를 종종볼 수 있다. 반면 정신을 위한 투자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평안을 주며 안색을 밝게 하여,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까지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마음에 평안을 주는 근본 에너지가 되어, 빛이 되고 활력이 되어, 세상을 비추며 생동하게 만드는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은 삶의 가장 근원적인 숙제이며 의무이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들이 인정되면서 관계가 형성되고 인연이 맺어지며, 순환 고리가 이어져가게 되는 순리가 인간의 역사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둘의 조화에 의해서 세상이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만남은 하늘에 속한 일이고 관계는 땅에 속한 일이다. 세상에는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듯이,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속한 관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한 인격체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를 밝고 맑게 만드는 따뜻한 관계, 아름다운 관계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에게만 생겨나기 마련이다.

좋은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관계는 대가를 치를 때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준 사람들, 부모, 자녀, 형제, 이웃, 친구, 동료.... 이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것들이 투자되어야 한다. 좋은 것을 투자하면 반드시 좋은 관계가 맺어진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내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엄마의 웃음을 마음에 담아보자. 그러면 어느새 마음은 평안해진다. 불안해질 때마다 아빠의 믿음직한 웃음으로 인해 든든함을 얻게 된다. 순간순간 그려지는 사랑하는 이의 웃음은 삶의 샘물 같다. 나를 바라보며, 나의 못난 모습까지도 웃음으로 안아주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함박웃음으로 힘이 되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관계의 미학인 것이다.

루비는 ‘7월의 탄생석’으로, 끝없이 타오르는 불멸의 불꽃같은 매혹적인 광채로 유색보석의 왕으로 여겨져 왔다. 성서의 ‘욥기’에 의하면 “지혜의 가치는 루비보다 뛰어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루비는 그때부터 이미 최고의 보석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루비는 ‘대영제국’의 영예로운 왕의 대관식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성 조지’의 십자가를 새긴 커다란 스텝 컷의 루비가 26개의 다이아몬드에 둘러싸여 세트된 대관식의 순금 반지는, 대영제국의 영원한 영광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날 왕비에게도 루비 반지가 선물로 주어지는데, 대관식에 루비 반지를 쓰는 관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태양의 빛과도 같고 사람의 피가 응축된 것 같기도 한 아름답고 붉은 루비를, 장식품으로 뿐만 아니라 불행을 막아주는 부적으로, 불로장수의 영약으로 여겼고, 착용자에게 부와 지혜를 준다고 믿었다.

지금은 태양이 루비처럼 붉게 광채를 뿌리는 7월이다. 모든 삼라만상이 밝게 빛나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활짝 피어나는 뜨거운 계절이다. 지금이라면 어둠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이 계절에 웅크리고 있는 건 필경 죄악이다.

오늘 우리는 새롭게 부활하기에 아주 적당한 여름날을 살아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를 짓누르던 모든 우중충한 족쇄들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이젠 날아오르자. 저 넓고 푸르른 하늘 위로 힘껏 날개짓 하자. 진정한 마음에 평안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삶을 다걸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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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하는 태양, 모래바람, 광풍, 메마른 길....
생수가 두어방울 뿌려져
안식에 취해버린 방랑자

사막의 오아시스는 오늘 따라
더더욱 멀기만 하고

오히려 거칠어지는 반란의 군중속에서
한 줄 회오리로 와준
그대 목소리, 님이신가 ?

때로는 행복하기도 했었지

간혹
새 삶 누리는 또다른 내 얼굴로
성형해본 적도 있었지, 아마

그리고서도 그리운 그대 향하여
오늘도 불러보는 기구한 기도

길 잃은 이 마음에
평안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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